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239화 (239/577)

< 나빠요 >

재빨리 견적을 매겼다.

‘매지션 하나에 엘프 일곱으로 구성된 활피단. 나이트는 없고 오직 활피단의 데미지만을 믿고 덤비는 녀석들인데··· 아까 그렇게 당하고도 또 덤빈다는 건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이야기일까? 숫자가 많아져서 그냥 자신감이 생긴 것?’

아니면 아까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얼마든지 죽지 않고 귀환할 자신이 있었기에 겪으면서 확인해보기로 했다.

첫 목표는 언제나 그랬듯이 매지션이다. 그런데 패배를 통해 학습을 제법 했나보다.

‘아까의 매지션이랑은 다르게 반응이 제법 좋은데?’

내가 달려들기 무섭게 ‘이뮨 투 함’을 통해 스스로를 보고하고는 빠르게 엘프들의 뒤로 빠지는 매지션.

‘하지만 그래봤자지.’

아무리 뮨이 피해의 50%를 감소한다고 쳐도 +11 싸울아비 장검과 높아진 근력은 그것조차 찢어버릴 수 있다. 그런 확신을 갖고 매지션을 집요하게 노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강력 회복 물약도 아닌 고급 회복 물약으로 내 데미지를 너끈하게 감당하는 것이 아닌가.

매지션 클래스의 체력과 방어력으로는 불가능한 현상이었다.

‘맞다! 정령마법!’

물 속성 엘프의 스킬인 엘리멘탈 블레싱은 술자와 파티원 사이에 막힌 벽이 존재하지 않을 때 거리에 상관없이 바로 체력회복이 들어간다. 대단히 효율 높은 기술이기에 5클래스인 만큼 레벨 50이라는 진입장벽과 스킬 습득의 필수 아이템인 크리스탈도 정말 구하기 어려웠다.

그 블레싱을 사용하는 엘프가 이 활피단에는 무려 세 명이나 있었다. 이 정도면 내 칼로 매지션을 찢을 수 없다.

‘여기에 소울까지 있고.’

일반적인 회복 스킬들이 마나를 소모해서 체력을 회복한다면 소울은 체력을 소모해서 마나를 회복하는 스킬이다. 몇 번만 사용해도 마나를 꽉 채울 수 있는데, 블레싱을 사용하는 엘프들이 뭉쳐 있으면 무한한 사용이 가능해지는 사기적인 회복술의 연계가 성립된다.

‘답이 없다.’

활피단에 매지션이 없다면 블레싱을 사용하는 엘프를 먼저 공격해서 체력을 떨어트리면 소울을 사용할 수 없을 것이고 이를 이용해서 마나 회복을 방해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매지션이 이뮨 투 함을 사용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리도 없으니 그 방법은 불가능한 셈이다.

‘귀환.’

괜히 싸우다가 체력이 아슬아슬해져서 도망칠 이유가 없었다. 나는 귀환석을 사용하여 즉시 마을로 돌아왔다.

이쯤에서 목운동을 하며 생각을 환기했다.

“아··· 이 자식들이 즐기려고 들어왔는데 빡세게 게임하도록 만드네?”

과연 진수와 성찬이가 사대룡 이야기를 듣자마자 득달같이 달려온 이유가 있었다. 그 정도의 움직임을 보여야만 저놈들은 움찔한다는 이야기였다. 한편으로는 길드원을 소집해서 단발적으로 쓸어내 봐야 그건 잠시에 불과하다는 의미도 된다.

파티 단위가 아니라 길드를 통째로 찍어 눌러야 했다. 그런데 이건 간단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당한 유저 입장에서는 울화가 치밀겠지만 어찌 됐건 피케이는 게임의 중요한 구성요소이자 재미의 한 부분이다.

그걸 내가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없애버리면 무단 피케이 못잖은 강자의 횡포가 될 뿐이었다. 그렇기에 칼을 뽑아서 휘두르기 전에 제대로 알아보고 저놈들을 징계해도 좋은지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혼자서는 마음대로 분풀이해도 상관없지만, 집단이 되면 명분이 꼭 필요하거든.’

플레지를 종료하고 게이머스 포럼의 페이지를 열었다.

검색어는 사대룡이다. 곧 무수한 게시물들이 보였다.

「화룡? 사대룡? 이 넘들 뭔가요? 막피인가요?」

「사대룡에 수룡이라는 넘들 막피던데 연합 전체가 막피입니까?」

「사대룡 막피 길드 입니다! 다들 조심하세요!」

전체 서버에서 활동하는 길드도 아니고 켄헬 서버에서 활동하는 길드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이놈들에 관한 게시물이 3페이지를 넘어갔다. 내용은 어떤 식으로 이들에게 당했는지, 사람들을 몰아낸 뒤 자신들이 사냥터를 독점하고 이를 쫓아내려고 유저가 모이면 그들을 사냥하는 식의 이야기들이었다.

‘그냥 내키는 대로가 아니야. 기업형이나 마찬가지군.’

이렇게 하면 확실히 돈은 벌린다.

대신 서버가 망해버린다.

‘이런 놈들이 활개 치면 딱 그만큼씩 게임 수명이 단축되지.’

보통은 유저들끼리 담합을 해서 공공의 적을 물리친다던가 하는 일들이 생겨나지만, 유저들만의 행동으로 자정작용이 불가능해진다면 운영진이 나서게 된다. 그리고 이럴 때 십중팔구는 게임이 산으로 가는 결과가 나온다.

‘운영진의 패치에는 정도껏이라는 단어가 없거든.’

이쯤에서 답이 나왔다.

“얘들아. 이 자식들 우리가 정리하자.”

“사대룡?”

“아까 봤잖냐. 이미 수시로 싸우고 있는 거.”

“노노. 지나가다 만나서 붙는 게 아니라 아예 공개적으로 선포하자는 말씀이시다.”

“그게 뭐 다른가?”

“어차피 이미 싸우고 있는데?”

“이 자식들, 답답하기는. 인마! 사람들이 잘 모르잖아.”

우리가 게임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는 게임을 통해서 현실의 고단함을 잊는 것이 무조건 들어간다고 봐도 좋다. 어디건 불공정하고 불공평하기는 매한가지지만 적어도 게임 속은 그 정도가 덜하고 성취감도 빠르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막피단이 활개를 치고 다니면?

자신들이 독점한다며 보통 사람들은 들어서지 못하는 제한구역이 생긴다면?

기회를 박탈당해서 성장할 수 없게 된다면?

‘게임과 현실의 고단함이 닮은꼴로 나타나면 누가 그 게임을 하겠어?’

그래서 우리가 널리 알리며 경찰 노릇을 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가 서버를 위해서 악당들과 싸울테니 나쁜 폭력배가 나타나면 혼자 끙끙 앓지 마라, 게임을 즐기다가 신고해주면 우리가 처단하겠다, 그러니 꾸준하게 게임을 즐겨주시라!

이런 안정감을 주기 위해서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있냐 싶으면서도···”

“네가 하는 거니까 그게 맞는 거겠지.”

진수와 성찬은 대수롭잖게 고개를 끄덕였다.

“글은 어떻게 할 거임?”

“본토행티켓님 부를까?”

“됐어. 이게 무슨 제갈량의 출사표라도 되냐?”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쓰는 격이다. 한편의 대 서사시를 써서 철퇴를 내릴만큼 사대룡 연합은 고귀하지 않으니 내가 대충 올리기로 했다.

그렇게 게이머스 포럼의 게시판에는 「구운몽입니다.」라는 제목의 새로운 글이 올라왔다.

「구운몽입니다.」

최근 사대룡 연합이라는 길드의 등장으로 통제 없는 서버라는 자부심이 무너졌습니다. 이에 사람들 길드 연합은 서버의 안정화를 위하여 사대룡 연합이 무너져야 한다고 판단을 내렸습니다.

선포합니다.

현 시간부로 사람들 연합은 통제 없는 서버. 소규모 막피는 몰라도 이런 대형 막피단은 없는 서버를 만들기 위하여 사대룡 연합이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 그들과의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사대룡 연합에게 피해를 본 분들의 제보가 기다립니다.

여러분의 제보가 저들을 서버에서 몰아내는 데에 큰 힘이 되어 주리라 믿습니다.

└ 빗발친닷 : 응? 뭐야? 구운몽 아직도 게임을 하고 있었어?

└ 하늘에서 : 이야. 얘네들 진짜 노답이라고 생각했는데 드디어 사람들 길드가 전면에 나서는구나.

└ 청량고추가 : ㄴㄴ 대체 구운몽이 언제적 구운몽임? 지가 아무리 과거에 잘나갔다고 해도, 지금 와서 사대룡에게 비빌 수 있을 거라고 봄?

└ Re 나가신다 : 너 사대룡이지?

└ Re 청량고추가 : 왜? 사대룡 맞으면 덤벼보게? ㅉㅉ 플레지에 와서 적과의 동침을 찾아라.

구운몽이라는 타이틀 때문인지, 아니면 이후에 사대룡과의 전쟁 선포 때문인지는 모를 일이다. 다만 글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순식간에 10개가 넘어가는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했으며 내가 쓴 글을 캡쳐하고는 ‘과연 이 싸움의 결과가 어떻게 이어질까?’ 등의 게시글이 추가로 작성됐다.

- 천잔반 : 이야~ 그래도 켄헬섭에서 게임 하는 사람들은 겜 할 맛 나긋다.

- 쿠리링 : 사대룡 이야기 못 들었냐? 저런 놈들이 판치는 서버가 할 맛이 나겠어?

- 야물치 : 놉놉. 니들은 그래도 거만의 탑에서 사냥하다가 막피를 당하기라도 하지 우리 서버는 통제 때문에 거만의 탑을 가지도 못한다. 데포 서버 성혈들은 각성하라! 각성하라!

└ Re 호이포잇 : 맞아. 데포 섭 성혈들은 좀 보고 배워라! 통제 때문에 게임 할 맛이 안 난다.

- 베지텃 : 이참에 켄헬로 서버를 옮겨버릴까?

└ Re 무갈도사 : 상황보고 결정해보자고.

- 팝콘사온다 : 찢으려다 찢기면 개 쪽이니께 구경하는 재미는 쏠쏠할 듯?

한편, 가만히 당할 수만은 없다고 봤는지 사대룡 연합에서도 「구운몽 보시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구운몽 보시오.」

사람들 연합이 그동안 서버의 성들을 계속 차지하고 있었고 드래곤 슬레이어니 뭐니 치켜세워주니까 그냥 자신들이 최고라고 믿고 있는 거 같은데, 이보쇼.

망신당하기 싫으면 일찌감치 정신 차리는 게 좋을 거요.

우리가 당신들이 공격하겠다 한다고 겁먹고 그럴 레벨이 아니거든.

└ 뾰롱망치 : 캬~ 여윽-시 사대룡! 당신들의 패기! 그 담력! 멋지십니다!

└ 혈검파천황 : 성? 공성전? 풉! 우리는 관심이 없었을 뿐.

└ 죽음의데스 : 그딴 일에 돈 쓰고 시간쓰기 아까워서 공성전을 안 한 거지 마음만 먹었으면 성도 빼앗았다.

└ Re 폭탄굴러간다 : 어휴. 그러세요? 일반 유저들 등쳐먹고, 돈 많이 벌어서 배때지가 아주 든든하시겠습니다?

└ Re 죽음의데스 : 그러~엄. 엄청 든든하쥬. 왜? 억울합니까? 억울하면 강해지시든가.

└ 혈검파천황 : 강해지는 건 쉬운 줄 아십니까? 노력을 하세요. 노력이나 하고 떠들으라 이 말입니다. 그리고 마무리는 글 말고 칼로 대화합시다.

자고로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구경이 불구경과 싸움 구경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 사태는 켄헬서버 뿐만 아니라 플레지를 하는 많은 유저에게 퍼졌고 관심을 가지는 결과로 돌아왔다. 어느덧 점점 ‘사람들 VS 사대룡’의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이냐를 두고 갑론을박이 오갔으며 플레지에서 일어난 올해 최대의 사건으로 손꼽을 정도가 되었다.

이른바, 멈출 수 없는 자존심 대결이 된 것이다.

어차피 적당히 하려는 생각도 아니었지만, 이쯤 되면 이야기가 다르다.

진짜 작정하고 해주기로 했다.

“쟤네랑 그래도 꾸준히 싸워왔다고 했지?”

“어.”

“그러면 사대룡 연합의 간부에 대해서도 아냐?”

“당연하지.”

“누구누구인데?”

“그건···”

“잠깐 기다리삼.”

진수성찬은 그들의 아이디를 모르고 있었는지 연합 채팅으로 사대룡 연합의 정보를 묻기 시작했다.

- [연합] 범 : 나이트 라인은 여포대장, 기사닷, 나이트웨인, 백구, 아발론, 불패검사. 얘네가 나이트 라인이라고 보시면 되는데, 사실 얘네 말고는 나이트들은 별 볼 일 없기도 해요.

- [연합] 황성찬허좁 : 하긴, 얘들은 원래 격수보단 딜러 집합이니까.

그중에는 이미 알고 있는 아이디들도 보인다. 거만의 탑에서 봤던 닉네임이 아니라 왕년에 나름 명성을 구가했던 유저들이었다.

‘나이트웨인이랑 불패검사는 원래대로면 아직까지 이 서버에서 성을 차지하고 어깨에 힘주고 있었을 사람들인데 나 때문에 제대로 말려버렸구나.’

지금은 사람들 길드에 밀려서는 저런 막피단의 간부가 되어 있었다.

물론, 별로 미안한 마음은 들지 않았다. 어차피 저들은 그대로 놔두었어도 사냥터 통제니 뭐니 난리를 쳤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꿈속 미래에서도 내가 무지 고생했었지. 똥이니까 더러워서 피한다고 자위하기는 했지만, 기분은 구질구질했고.’

거만의 탑은 물론이고 그 이전인 용의 협곡부터 온갖 플레지의 좋은 사냥터는 모조리 독식했던 길드였다. 그러니 나이트웨인과 불패검사의 상황을 보니 쌤통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 [연합] : 범 : 엘프라인은 적반하장, 피칠갑, 적재적소, 활지롱, 은빛여우, 캬캬캬, 하라굽쇼, 엘프닷. 이렇게가 간부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 중에 주의해야 할 인물은 적반하장, 피칠갑, 활지롱, 캬캬캬 이렇게 4인입니다.

굳이 저 중에서 4명을 주의해야 할 인물이라고 했다는 건 저 4명이 주로 지휘를 담당하기도 하면서 공격력이 강한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적반하장은 물 엘프도 아니었지.’

엘프의 속성은 수풍지화(水風地火)로 총 네가지다. 그리고 각 속성은 개별로 특화된 방향이 다른데, 지(地)속성은 방어 특화, 수(水)속성은 치유 특화로서 둘 다 지원형으로 분류한다.

풍(風)속성과 화(火)속성은 공격 특화이기는 한데, 화 속성은 근접 특화라서 현재는 버려진 속성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적반하장의 특성은 풍이겠군. 수속성이었으면 허망하게 도망치거나 죽어서 아이템을 쉽사리 떨구지는 않았을 테니까.’

바람 속성은 속도와 날카로움이라는 이미지에 어울리게 화살의 명중률이나 데미지 강화 쪽의 버프를 주로 사용하게 된다. 완전히 극딜에 집중을 한 모양이다.

어차피 원거리로 빠르게 죽이는 게 활피단에는 생존보다 공격이 더욱 중요하다. 생존했다 한들 타깃이 살아서 귀환해버리면 의미가 없어지는 것과 다름없으니 말이다.

‘즉, 대부분의 엘프는 풍 속성과 수속성 두 가지이고 이 중에서는 무조건 수속성부터 잘라내야 한다.’

힐러를 먼저 처리하고 딜러를 노려야 하는 건 상식 중에서도 상식이다.

- [연합] 범 : 매지션 라인은 딱히 정보가 없어요. 그나마 천자, 쿠테타, 꼴통. 이정도가 메인 매지션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로서 대략의 정보를 수집했다.

이제 남은 것은 싸움뿐이었다.

< 나빠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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