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226화 (226/577)

< 마다가스칼의 개봉 >

그렇다면 연말은 어떨까?

‘판타지 대작인 반지원정대 3편에다가 네오트릭스의 3편이 있지.’

반지원정대는 늘 12월이고 확실한 흥행아이템이다. 네오트릭스도 그걸 알고 경쟁을 피하려 할 정도이니 우리의 마다가스칼이 잘못 들어갔다가는 샌드위치처럼 끼어서 폭삭 주저앉아버릴 게 틀림없었다.

하는 수 없다. 이렇게 총체적으로 곤란하게 될 거라면 차라리 6월을 노리는 게 나을 것이다.

‘미노가 3주간 1위를 할 테지만 그 이후에는 힘이 빠질 거야. 그러니 우리는 4주 차에 들어간다.’

두 얼굴의 히어로인 허크는 히어로가 떼로 나오는 영화에서의 활약 말고 단독 영화는 다 망했던 거로 알고 있다. 거기에 미녀 4총사도 1편이 대박이고 2편은 좀 여유가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것이 전부 피할 수 없기 때문에 나름대로 최적의 시기를 찾은 거였다. 나는 이를 통보했다.

“6월 20일.”

“네?”

“마다가스칼은 6월 20일에 개봉합니다. 최종인 대표님은 파라마운틴에 가서 6월 20일에 무조건 개봉해야 하고 미리미리 스크린 확보 역시 해달라고 이야기해 주세요.”

그러자 그가 내가 미처 간과했던 사실을 알려주었다.

“개봉 일을 정하는 건 저희보다 배급사의 권한에 가깝습니다. 저희가 요구한다고 들어주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그 말을 듣고서야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까지 개봉한 영화들은 전부 중소 배급사와의 계약이었던 데다가 블루워터는 우리의 마케팅으로 그 위치에 올라갈 수 있었다. 그래서 배급사가 우리 말을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파라마운틴은 메이저 배급사이지 이야기가 다르다.

‘크게 돈 벌기 어렵구나.’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따름이다.

“그래도 영화가 가장 수익을 볼 수 있는 시기를 잘 잡아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얘기라도 한 번 해보세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한 가지 안건을 정리한 뒤 마다가스칼의 성공을 위한 다른 궁리와 조치를 이어나갔다.

*

“거참 야박하네.”

매년 전 세계에는 손가락으로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다양한 영화제가 열린다. 다만, 일반 영화들과 달리 애니메이션 관련의 영화제는 홀수 해에 진행하는 것들이 적은 편이다. 그리고 5월과 6월에 열리는 건 ‘특히’라는 단어를 사용해도 될 만큼 더욱 적다.

이 가운데 우리가 문을 두드린 영화제는 총 5개였다.

메이저 영화제 1개와 마이너 영화제 4개.

그리고 결과적으로 4개의 영화제가 우리의 참여를 원하지 않았다. 남은 1개에서는 답장조차 없고 말이다.

‘아무리 상업적인 영화라고는 하지만 수상 후보도 아니고 참여조차 못 하게 하다니!’

참여는 당연하고 후보에 오르는 것까지도 김칫국을 마셨던 만큼, 이건 정말이지 예상조차 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그 탓에 마이코닉스 전체에 축 처지고 칙칙한 분위기가 감돌 정도였다. 내가 괜히 호기롭게 진행하는 바람에 다들 수상에 스리슬쩍 관심을 가진 여파인 셈이다.

설상가상일까.

이런 판국에 우리를 더 몰아세우는 것이 더 있었으니 그건 바로 북미의 2003년 5월 박스오피스였다.

내가 예상했던 그대로 대작들이 치열한 공방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고래 싸움에 새우가 괜스레 등이 터지듯 최소 3주는 1위를 해볼 만한 영화들이 한 번에 몰려서 미국 극장가는 그야말로 행복한 비명을 연신 질러대고 있었다.

【지갑이 가벼워져도 전혀 아깝지 않은 영화의 행렬!】

【네오트릭스 드디어 X팀을 잡다! 일주일간의 접전 끝에 네오트릭스 박스오피스 1위 탈환!】

【네오트릭스 1주 천하? 보로스 올마이티 개봉과 동시에 박스오피스 1위!】

‘네오트릭스랑 X팀만 생각했는데, 보로스 올마이티까지 있었구나.’

떠들 소식이 많은 덕분에 언론계 역시 축제의 분위기가 만들어졌고 말이다. 바로 이 잔치가 출품조차 거절당한 우리 마이코닉스의 직원들을 더욱 기운 빠지게 만들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성공을 자신한다고 해도 시국이 이러니 다른 도리가 없었다.

“회장님. 저희 영화가··· 정말 괜찮겠습니까?”

최종인 대표는 내가 보고 있는 보도 자료들을 보면서 이마에 난 땀을 훔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마다가스칼의 성공을 똑똑히 꿈속 미래에서 지켜본 남자다.

저들의 눈에는 무모하게 비칠지라도 자신감 넘치게 말했다.

“당연합니다.”

“하지만 지금 이 작품들을 보면···”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전부 마다가스칼의 개봉할 때는 다 내려갈 것들입니다.”

‘여기에 날짜를 점지하는데도 심혈을 기울였고. 그러니까 안심해도 돼.’

이런 속내를 누르며 그에게 말했다.

“우리는 분명하게 성공할 수 있습니다.”

미국은 한국처럼 스크린을 배급사에서 독점으로 잡고 늘어지지 않기에 제아무리 영화가 잘 나가도 3주면 끝을 볼 수 있다. 간혹 그 이상 1위를 유지하는 영화들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이는 정말 이례적인 경우다.

하지만 최종인 대표의 합리적인 걱정을 누르기에는 부족했다.

“지금의 영화들이 저희와 경쟁할 작품이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경쟁해야 하는 건 허크와 미녀 4총사가 되겠죠. 게다가 아무리 3주 전 개봉이라고 해도, 미노를 찾아서 또한 무시 못 할 작품이기도 하고요.”

이 중에서 그가 지목하는 것은 같은 애니메이션인 미노를 찾아서였다. 나는 가벼운 어조로 장난기를 담아 말했다.

“왜요? 겁나요?”

“아무래도 저희는 첫 작품인데, 대진이 너무 좋지 못하니까···?”

그가 말을 이으려 할 즈음이었다. 그의 휴대폰에서 알림음이 들렸고 진동상태의 내 휴대폰이 부르르 떨었다.

“죄송합니다.”

그는 황급히 휴대폰에서 배터리를 빼 버렸지만, 나는 묘하게 이 메시지를 봐야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 둘에게 같은 타이밍에 무언가가 날아오는 일은 흔치 않기 때문이다.

“아니요. 저도 왔습니다. 아무래도 대표님 역시 다시 켜서 메시지를 보셔야겠는데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게 아니라 꼭 보셔야 하는 메시지 같습니다.”

나는 먼저 읽고 있는 메시지를 그에게 보여주며 웃었다.

“프랑스로 가셔서 시사회를 해야 하니 말입니다. 몸을 바쁘게 움직여야 할 것 같네요.”

“프랑스라면···!”

“네. 안시에서 대표님을 찾는 거 같은데요?”

마이너한 4개의 영화제에서는 까임을 당했고 답장조차 없는 줄 알았던 마지막 하나인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 바로 그곳에서 우리를 부른 것이었다.

‘솔직히 마이너가 되고, 여기서 까일 줄 알았는데.’

메이저 영화제는 일반적으로 큰 투자금을 활용한 상업 영화보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한 톡톡 튀는 독립영화를 선호한다. 그래서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뜻밖의 장소에서 기회의 동아줄이 내려왔다.

“정말로 저희가 안시에 가네요? 제가 보고 있는 게 진짜 맞겠죠?”

최종인 대표는 부리나케 자신의 휴대폰을 켰고 거짓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저한테도 왔는데 거짓이면, 홍보팀 직원들을 다 잘라야죠.”

“그··· 그렇죠?”

“정말 다행입니다. 그렇잖아도 분위기가 칙칙해서 힘들었는데, 이제 좀 밝아지겠네요.”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최종인 대표는 이미 휴대폰 속의 메시지에 푹 빠져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문자를 뚫어지라 보는 그에게 내가 말했다.

“최종인 대표님. 뭐하십니까? 이런 기쁜 소식을 혼자만 알고 있을 거예요?”

“아! 아닙니다. 지금 홍보팀을 통해서 언론을···”

“아니요. 그게 아니라 우리 직원들의 기부터 살립시다. 가셔서 빨리 소식을 전하고 오늘은 소고기 회식이나 하지요.”

“알겠습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그가 부리나케 움직였다. 그리고 시일이 흘러 불안과 기대감으로 두근거리는 마다가스칼의 시사회 날이 다가왔다.

할리우드에서 이루어진 시사회는 꽤 조촐하게 치러졌다. 이유는 마이코닉스 스튜디오 자체가 미국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잡것’ 취급이라는 것, 파라마운틴 역시 메이저 배급사이지만 애니메이션에서 지금까지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위안이랄 것은 기자들의 반응이 제법 괜찮았다는 점이다.

“뭐가 됐든 홍보 효과만 확실하면 됐지.”

초대박 작품인 미노를 찾아서의 여파로 눈이 높아진 영화 관계자들은 시큰둥했다. 하지만 자극적인 기삿거리가 필요했던 기자들은 어떻게든 마다가스칼을 미노를 찾아서와 엮어내며 말을 만들어냈다. 개봉 시기도 은근히 비슷했기에 그 덕분을 톡톡히 볼 수 있었다.

그 결과, 시사회를 마치고 이튿날 아침부터는 예상대로의 자극적인 기사 제목을 보게 되었다.

【집을 떠난 동물의 좌충우돌 모험 애니메이션의 대격돌!】

【미노를 찾아서 VS 마다가스칼】

【드리머스의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하다!】

기사의 대부분은 우리와 팩사를 엮어서 자극하는 종류였다. 그러다 이따금 만년 2등인 드리머스와 엮는 기사들도 종종 보였다. 대부분이 어그로성 기사였지만, 우리에게는 오히려 호재나 마찬가지다.

‘이런 기사가 아니었으면 우리 애니메이션을 아예 몰랐을 사람들이 넘쳐났을 테니까.’

어떤 식으로든 마다가스칼이 언급되면 마냥 땡큐였다.

그리고 2003년 6월 20일, 드디어 마다가스칼이 개봉했다.

*

6월 23일 월요일.

20일부터 22일까지의 박스오피스 성적이 나오는 날에 불안감과 초조함이 끝까지 차오른 한 어른이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하고 말았다.

“최 대표님. 직원들이 다 보는데 입에서 손가락은 빼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아··· 죄송합니다. 그런데 회장님은 처음에도 그렇고 전혀 긴장하지 않으시네요. 사시면서 긴장이라는 것을 전혀 해보지 않으신 것 같을 정도입니다.”

“로봇도 아닌데 당연히 저도 긴장은 합니다. 지금도 이거 보세요, 무진장 떨고 있는 것을요.”

티 나게 수전증이 걸린 양 달달 떨어 보이고는 웃었다.

“그런데 화장실에 들락날락하거나 다리에서 힘이 풀리건 결과가 바뀌는 건 아니잖습니까. 할 수 있는 건 받아들이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그때부터는 조금 나아진 것 같았더라고요.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으니 말입니다.”

“정말이지··· 대단하십니다.”

그렇게 긴장을 풀다 보니 아쉬움이 담긴 안시 영화제의 이야기도 잠깐 나왔다. 예상대로 참여만으로도 만족할 만큼, 마다가스칼은 폐막식까지 가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한 성과를 이뤘다.

영화의 상업성을 눈여겨본 여러 국가의 관계자들이 접촉해온 것이다. 그 덕분에 전 세계로 수출할 계약까지 성사했으니 영화제에 나갔던 목적은 모두 이룬 셈이었다.

바로 그때, 큰 목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떴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사무실 벽에 세워진 대형 모니터로 향했다.

기다리고 고대하던 박스 오피스가 나온 것이다.

『Rank.1 [Hurk] Weeknd Gross : $62,128,420

Rank.2 [Madagaskal] Weeknd Gross : $54,745,680

Rank.3 [Finding mino] Weeknd Gross : $32,613,097』

- 2위다!

- 우리가! 우리가!

- 으아아··· 이제 드디어 발 뻗고 잘 수 있겠어.

3주간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던 미노를 찾아서가 한 방에 3위로 떨어지면서 2위에 안착하고 우리의 작품인 마다가스칼은 2위를 차지했다.

금, 토, 일. 이 3일간의 수익이 이미 총투자금을 넘어섰고 말이다.

‘계약상 우리 수익은 거의 없는 상태긴 하다만 그래도 이게 어디냐?’

직원들의 분위기는 완벽하게 축제였다. 약간의 아쉬움을 가진 나와는 다르게 저들은 입이 떡 벌어지는 성과를 냈음에 순수하게 감격해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서 이 정도의 매출을 올리려면 800만 관객이 필요하다. 그런 수치를 미국에서는 고작 주말 3일간 이뤄낸 것이다. 비록 한국에서 이뤄낸 것은 아니지만 한국인이 제작한 작품 중에서 이러한 성과를 이룬 영화가 과연 몇이나 있겠는가.

- 우와! 예고편 클릭 수는 우리가 1위다!

조금 전에 우렁차게 소리쳤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영화의 예고편 클릭 1위라는 것은 주말동안 허크에는 밀렸지만, 월~금 5일간에는 어쩌면 역전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의미가 담긴 숫자다. 그간 나 혼자만 장담하던 마다가스칼의 성공을 이제 모두가 자신하게 된 순간이었다.

< 마다가스칼의 개봉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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