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저씨 팬의 서포트 >
마음 같아서는 불안하게 하지 않고 지금 바로 알려주고 싶었지만, 이는 옳지 못한 행동이었다. 오디션을 보지 못한 뒤편의 대기자들이 상황을 알게 될 가능성이 높았고 그것은 배우들이 실망감을 가지게 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게다가 반장을 정했다고 하여 모든 오디션이 종료된 건 아니었다. 아직 다른 역할이 남았고 그 자리에 걸맞은 배우를 고를 필요가 있기에 그들은 에밀리에게 말을 아꼈다. 대신 한 마디는 해주었다.
[어떤 배역으로든 우리와 함께할 것 같으니까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바로 알려주지 않는다는 말을 불합격으로 생각하고 쳐졌던 에밀이의 어깨가 마지막 말에 훅하고 솟아올랐다. 그러며 경쾌하게 나가는 모습에 심사위원들이 다시금 웃고 말았다.
[지금 봤어요? 감정의 변화가 이렇게 눈에 보일 정도라니.]
[이번 영화는 진짜 재미있게 될 거 같지 않아요?]
[그럴 것 같아요. 기대 되네요.]
마이티는 혹시라도 감독이 그녀를 쳐낸다면 다른 배역을 만들어서라도 살리겠다는 마음마저 먹었다. 그만큼 에밀리는 그녀의 마음에 쏙 드는 배우였다.
***
“평가받는다는 건 역시 영 별로네.”
에밀 리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지망생 아이들의 별별 모습들을 보았다. 입이 바짝바짝 마르는지 긴장을 가득한 이부터 태연함을 가장하는 얼굴, 망했다면서 울면서 나오거나 한없이 우울해하는 표정에서 후련하다는 아이까지였다.
당사자의 스트레스도 상당할 테지만 보호자의 마음도 싱숭생숭한 것은 마찬가지로 보였다. 더군다나 그저 자신의 딸과 아들이 상처를 받지는 않을까, 걱정하고 응원하는 것이 고작이기 때문에 더 무력할 것도 같았다.
그래서인지 지금 막 나온 에밀리의 모습은 다른 아이들과 대조되어 보였다.
[엄마! 나 왠지 잘한 거 같아!]
[그래~?]
가뜩이나 차별화된 복장으로 이목을 사로잡은 소녀가 환하게 웃으면서 다가오기까지 하니 그녀의 어머니 역시 기쁘게 반겨주었다. 하지만 예의가 아니다 싶어서 나는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가며 ‘쉿’하고는 말했다.
[여기서 이야기하기에는 그리 좋은 생각이 아니야. 그러니 차에 가서 이야기하자.]
[네! 대장!]
함께 가벼운 걸음으로 이동했다.
오디션이 끝났으니 이곳 시카고에는 더 이상 볼일이 없었다. 하지만 LA보다는 시카고가 뉴욕과 훨씬 가까웠기에 일단은 호텔로 향했다. 가는 내내 에밀리는 자신이 본 오디션의 이야기를 즐겁게 늘어놓았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연기를 했거든? 사생팬이라구욧!?]
들뜬 마음을 담뿍 담겨서인지 상당히 과장된 리액션을 보였다. 실제로 저렇게 오버해서 연기했다면 작가가 싫어했을 것 같지만, 한창 기분이 업된 상태이니 이해가 됐다.
[그러니까 엄청 기대하면서 막 노래를 시키더라고요!]
[그래? 노래까지 시켰어?]
[그래서 제가 샤이닝 로드의 주제곡을 불렀어요!]
[뭐? 그 노래를 알아?]
[그럼요! 그 게임 우리 집에도 있어요!]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원래는 몬스터 프레데터스가 출시되자마자 ZBox와 함께 풀 패키지로 구매를 했다고 하는데, 도저히 그건 못하겠어서 샤이닝 로드를 시작했다고 한다.
‘헌팅 액션이 익숙해진 한참 뒤라면 모를까, 지금 시기에는 애초에 매니악한 게이머들이나 아니면 호승심이나 도전정신이 있는 게이머에게나 추천하는 게임이니까.’
몬스터 프레데터스는 캐릭터가 아닌 게이머가 레벨업 해야 하는 게임이다.
에밀리 같은 소녀가 즐기기에는 다소 힘들었을 것이다.
[알았어. 그 노래를 부르니까 뭐래?]
[노래를 잘 부르지 말고 못 부를 수 있냐고 물어봤어요! 그래서 제가 바로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죠! 지금처럼 이렇게! 이렇게! 막 록밴드 헤드뱅잉처럼 엄청 끄덕였어요!]
[처음부터 못 부르는 모습을 보여준 게 아니라 잘 불렀다고?]
[아!]
혼내려고 꺼낸 말이 아니었는데 내 말을 들은 에밀리의 얼굴에 뒤늦게 내 눈치를 보았다. 내가 노래를 시키면 무조건 못하는 척을 하라고 했었는데 그 조언에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게··· 막 혹시 어쩌면 노래를 잘하면 좋아할지도 모른다고···]
‘내 인상이 무서운가?’
밝았던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라도 낀 것처럼 시무룩해 한다. 어찌 되었건 작가는 그녀에게 다음 기회를 주었고 그것을 잘 잡았으니 혼낼 마음은 없었다. 나는 혹시라도 기운을 잃을까 봐 얼른 말했다.
[괜찮아. 잘했어. 노래를 잘하는 모습에다가 못하는 연기까지 제대로 보여준 거잖아? 그러니 훨씬 더 마음에 들었을 거야.]
[진짜요?]
[그래. 진짜야.]
그제야 손을 가슴에 얹고는 크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걸 보고 확실하게 알았다.
‘내가 연기에 속았구나.’
어려도 배우는 배우인가보다.
오디션 결과 연락을 받은 것은 다음 날 정오 즈음었다.
- [스쿨 오브 밴드 제작진입니다. 에밀리 양의 보호자인 미스터 윤이 맞으십니까?]
[네. 맞습니다.]
- [내부 검토 결과 에밀리 양이 반장 역할에 낙점되었습니다.]
에밀리의 밝은 얼굴만큼이나 좋은 소식이었다. 애쓴 만큼 좋은 결과를 얻었다는 사실에 감사해 하며 제작진에게 물었다.
[그럼, 뉴욕에는 언제쯤 가면 될까요?]
- [뉴욕에 오실 필요는 없습니다.]
[네? 1차에 합격하면 뉴욕에서 2차 오디션을 보는 게 아니었습니까?]
- [이미 감독님은 카메라 테스트 영상만으로 상당히 만족하셨거든요. 바로 LA에서 보았으면 하시네요.]
‘오호!’
2차 오디션 없이 그냥 통과!
이건 단순히 합격한 것보다 더욱 좋은 소식이었다.
[감사합니다.]
기분 좋게 대답하고 끊으려던 차에, 앞서의 말을 리셋 시키는 마법의 단어가 저편에서 들렸다.
- [그런데···]
잠시 기다리니 그가 말했다.
- [배급사나 영화사 모두 이 영화에 대단한 기대를 하는 건 아니거든요. 그냥 다양한 영화에 투자 중이라고 생색이라도 낼 겸, 버리는 돈이라고 여기고 제작하는 실정입니다.]
[그렇군요.]
‘이건 몰랐네.’
하긴, 작년 할리우드 영화의 평균 제작비가 7,870만 달러였다. 스쿨 오브 밴드의 예산이 3,500만 달러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건 ‘저예산 영화에도 꾸준히 투자하는 배급사’라는 사실을 어필하기 위한 생색내기 영화가 맞을 것 같았다.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 [덕분에 배급사 입장에서는 영화의 흥행보다 나중에 성공할 배우의 데뷔작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글쎄? 3,500만 달러면 400억인데 그걸 통째로 버려도 괜찮다 여기는 건 믿기 어렵다고.’
감히 장담하는 데 그런 생각은 아닐 것이다. 투자금이 적으니 원금을 뽑아내는 건 어렵지 않다고 여기는 쪽이라고 본다.
어쨌거나 이런 이야기를 꺼낸 데에는 이유가 있을 터다. 나는 이리저리 돌려 말하는 그에게 직설적으로 물었다.
[그럼 저희가 뭘 어떻게 해야 합니까?]
- [A급 매니저와 계약한 배우가 아니면 확실히 성공할 소스를 가지고 있기를 원하고 있거든요.]
‘그 소리였군. 나나 부모님이 아니라 제대로 관리해줄 매니저를 찾아서 계약하라는 것.’
영화 제작사 측에서 우리에게 불합리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할리우드는 배우들의 매니지먼트 시스템이 한국과 다르다.
한국은 소속사에서 매니저와 스타가 함께 소속되어 가수들처럼 통합 관리를 하는 시스템이다. 반면에 할리우드의 매니지먼트는 오직 매니저만이 존재한다.
배우는 그들 중 마음에 드는 매니저와 1대 1의 형태도 계약을 맺는 것이다.
‘이거 팬심으로 너무 깊게 관여하는 것도 같은데··· 아무튼, 하던 일이니 마저 매듭을 지어야겠지. 한국이라면 대형 기획사에 미리미리 들어가는 것도 좋았겠지만, 여기는 미국이니까······.’
이곳에서는 그저 오디션을 대신 알아봐 주고 약간의 도움을 받는 정도에 매니저와 계약하는 것은 낭비에 해당한다. 그렇기에 할리우드는 중견 배우 중에는 매니저가 없는 이들이 수두룩했다.
‘게다가 그녀의 매니저는 생각해둔 사람이 있거든. 꿈속 미래에서 본 사람이 말이야. 어떻게 만났는지도 잘 알려진 인물이니 그쪽이랑 연결하는 게 딱 좋아. 다만, 지금 당장은 찾기가 어렵다는 게 문제지.’
어떤 식으로 만났는지에 대한 가십을 알 따름이지 매니저의 신상명세까지는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굳이 트러블을 일으킬 필요 없이 내가 해줄 수 있는 도움을 주기로 했다.
[에밀리의 성공을 확신하실 수 있는 소스를 보여드리면 되겠군요.]
- [네? 그게, 제 말을 잘못 이해하신 것 같은데요. A급 매니저와의 계약을···]
나는 그의 말을 자르며 끼어들었다.
[아닙니다. 제대로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파라마운틴에서 이해할 수 있는 소스도 있고요.]
어차피 지금 이들이 말하는 A급 매니저라고 해봤자 그 수준은 매우 낮다. 이제 막 데뷔를 준비하는 에밀리 입장에서의 A급이기에 아역치고는 괜찮은 TV 드라마를 주선할 수 있는 수준에 불과하다.
‘물론, 그런 매니저라도 있으면 편하기는 해. 하지만 내가 그 이상의 배경을 만들어 줄 수 있거든.’
나는 정확한 이야기는 배급사와의 미팅 때 공개하겠다는 말로 제작진을 설득한 뒤, 통화를 마쳤다. 그리고 에밀리 모녀와 점심을 먹고자 나서며 살짝 속상한 척 연기해 보았다.
[대장. 표정이 안 좋아요. 왜요? 무슨 일 있었어요?]
[응? 아냐? 좀 생각할 게 있어서 그래. 그보다··· 뉴욕 말이야.]
내 말에 시선을 집중하는 두 모녀.
[못 가게 됐어.]
그러자 언제나 밝은 웃음이 서려 있던 에밀리의 얼굴이 울상으로 변해갔다. 지금 에밀리에게 뉴욕을 가지 못한다는 말은 오디션에 떨어졌다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져서다. 나는 가볍게 놀려주려는 마음으로 해본 말인데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에밀리를 보니 그 장난기가 싹 지워졌다.
더 놔두었다가는 안 될 것 같은 죄책감이 들어버려서 얼른 말했다.
[감독 오디션은 볼 것도 없다고 바로 배급사 미팅에서 보자고 하더라!]
[지··· 진짜요?]
[그래! 도대체 얼마나 오디션을 잘 한 거야? 감독 오디션을 프리패스하다니!]
그 말에 대번에 표정이 바뀌었다.
[진짜. 진짜. 진짜죠?]
[그래. 진짜. 진짜다.]
[우와아! 엄마! 나 오디션 합격했대!]
너무나 해맑게 좋아하는 아이의 모습이었다. 그러자 이를 보고 아무것도 모르는 주변 사람들이 축하한다며 박수를 쳤다. 누가 보면 동네 오빠나 누나 사이인 줄 알 것이다.
‘미국 문화도 생각보다 오지랖이 넓구나.’
어쩌면 LA나 뉴욕의 특정 대도시가 아니라서 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배급사와의 미팅에서 만족할만한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숙제가 남기는 했지만 이건 에밀리가 신경 쓸 부분이 아니니 언급하지 않았다.
[그럼. 식사하고 바로 LA로 돌아갑시다.]
산뜻하게 좋은 결과를 안고 즐거운 식사시간을 가졌다.
‘남는 건 사진이라던데, 나도 중간마다 찍어둘까?’
미래의 스타가 어린 시절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지켜보는 기분을 만끽했다.
그리고 LA로 돌아온 뒤, 파라마운틴과의 미팅을 준비했다.
그들이 요구했던 에밀리의 성공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소스는 마이코닉스의 일부 인력을 모아서 열심히 제작했다. 그런데 막상 만들고 나니 팬심이 지나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의 소스면 오디션을 보러 가는 게 아니라 영화사에서 에밀리를 모셔가야 하는 거 아닌가?”
영화를 더욱 크게 성공하도록 만들 기막힌 소스.
이건 영상으로 제작했는데 여기에서의 핵심은 두 가지였다.
‘신과 같이’에서의 퀘스트 걸!
신과 같이는 LA를 그대로 게임에 집어넣으려 노력했던 덕분에 방대한 크기의 맵을 만들었다. 하지만 영화 한 편 수준의 스토리라서 게임 자체의 볼륨은 작은 편이었다. 이 부족한 볼륨을 채우기 위해서 넣은 요소들이 있는데 그게 바로 미니 퀘스트와 미니 게임이다.
‘그리고 이것 중에서 몇 개의 퀘스트에 에밀리를 출연하기로 했었지.’
당연히 게임이니까 에밀리가 직접 들어가거나 하는 건 아니다. 대신, 최대한 에밀리의 외모와 성격을 비슷하게 만든 캐릭터를 구현하여 등장시켰다. 해당 NPC의 성우는 당연히 에밀리였기에 싱크로율은 88% 수준이다.
‘90% 이상으로 높이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이건 기술력의 한계니까.’
그래도 높은 싱크로율 덕분에 누가 봐도 에밀리라는 것은 알 수 있으니 그거로 충분하다.
준비한 이 영상 뒤에는 지금까지 GF에서 개발한 게임들이 나올 것이며 해당 게임을 즐기는 유저가 얼마나 많은지를 보여준다. 과장이나 거짓이 없는 팩트들로 말이다.
‘두 게임을 합쳐서 500만 장이 넘는 판매량을 올렸고 신과 같이 역시도 상당한 매출액을 볼 게 분명하지. 여기에 임팩트가 강력한 캐릭터가 에밀리이니 많은 남자가 이 목소리와 얼굴을 기억하게 될 테고.’
신인 배우들이 자신의 얼굴을 알리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떠올린다면 이게 얼마나 사기적인 소스인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게임을 좋아하는 남성들은 대부분 10대에서 30대 사이라는 사실도 굉장한 장점이 된다.
‘에밀리의 나이가 어린 만큼 젊은 층에 어필하는 게 유리하니까.’
그리고 강력한 무기 하나를 더 준비했다.
“이게 가진 자의 팬심이 부리는 만행이란 거다!”
바로 스텔라의 전속모델로 에밀리를 세우는 것이다.
“완전 강력한 한 수지.”
< 아저씨 팬의 서포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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