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222화 (222/577)

< 아저씨 팬의 서포트 >

[치료가 정말 잘 되었군요. 너무 잘 되어서 푹 빠질 정도로 말입니다.]

[그런가 보네요.]

내 말에 에밀리의 어머니가 빙긋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하지만 이내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런데 회장님이 보시기에 에밀리는 언제쯤 배우로 도전하는 게 좋을 것 같나요?]

[언제쯤이요?]

[저나 남편은 에밀리의 연기력을 잘 몰라요. 하지만 회장님은 그걸 보는 눈을 가지신 것 같아서요.]

첫 만남에서 보였던 내 확신이 꽤 인상 깊었던 것 같다.

[아직 본격적으로 연기하기에는 많이 부족한가요?]

[아닙니다. 부족하다니요. 부족했다면 굳이 제가 댁까지 찾아가서 이렇게 계약을 했겠습니까?]

누가 뭐래도 미래의 대스타다. 이런 내 말에 그녀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래요? 그러면 당장이라도 오디션을 보러 다니는 게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엥? 오디션?’

그러고 보니 에밀리라는 인맥을 잡으려는 생각만 했다는 자각이 들었다. 그녀를 데려와서 우리 게임이나 성우로 활용하며 덕을 보고 할리우드의 대배우가 되면 친분을 자랑하자는 속물적인 생각이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야기를 들으니 양심이 콕콕 찔렸다.

‘설마 나 때문에 망하거나 하는 건?’

배우에게 작품은 아주 중요하다. 그녀가 나 때문에 일찍 활동하게 된 만큼 엄한 데 오디션을 보고 자칫 할리우드 대스타에서 벗어나게 되면 어쩌나 하는 인간적인 우려가 들었다. 이는 나와 인연 있는 이들이 망하지 않고 더욱 성공하게 해주던 지금까지의 행보와도 어긋난다.

함께 지켜보던 최종인 대표에게 말했다.

“저는 잠시 에밀리와 이야기를 나눠봐야 할 것 같습니다. 촬영은 제가 있으나 없으나 잘 진행되겠죠?”

그냥 하는 소리다. 솔직히 내가 있는 것보다 없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물론입니다. 차질 없이 제대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예상대로의 답변을 듣고 나는 에밀리를 불러서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회의실로 들어갔다.

지금 이 아이가 어떤 꿈을 꾸고 있는가, 내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이런 것을 제대로 생각해보기 위해서였다.

[에밀리.]

[네! 대장!]

꼬마 군인처럼 경례마저 하는 모습에 그녀의 어머니가 따끔하게 말했다.

[에밀리. 회장님에게 그렇게 호칭하는 거 아니라고 했지?]

[그치만 chief나 head··· 또 chairman 같은 것보다는 akela가 훨씬 멋있단 말이야.]

[그래도. 회장님에게 그런 호칭은 무례한 거야.]

나무라는 어머니와 칭얼대는 소녀였다. 나는 아저씨가 아니면 무조건 만족하였기에 얼른 만류했다.

[괜찮습니다. 아이들의 호칭이야 아무러면 어떻겠습니까? 그냥 소통만 되면 되죠.]

[거봐. 대장님도 괜찮다잖아. 히~]

에밀리의 어머니는 내 말에 한숨을 쉬면서도 수긍한 듯 더 이상 에밀리를 나무라지 않았다.

[그래. 호칭이야 나쁜 의미만 아니라면 편할 대로 하렴.]

[네~]

그리고 본론에 들어갔다.

[오늘 이렇게 에밀리를 불러서 대화하려는 건 에밀리의 생각을 알고 싶어서야.]

[어떤 생각이요?]

[에밀리는 연기가 좋은 거지?]

[네!]

[그럼. 어떤 연기가 하고 싶니?]

잠시 이리저리 생각하고는 에밀리가 대답했다.

[저는 코미디 연기가 좋아요. 말하자면 멜로사 메카시, 제이 리치··· 아니면 튜나 페이 같은 코미디언도 좋아요!]

[그래?]

‘생각보다 더 영특한데?’

이건 좀 놀랐다. 어린아이니까 그냥 ‘코미디가 좋아요.’에서 끝날 줄 알았는데 관련 배우의 이름까지 나왔다. 물론, 죄다 내가 모르는 이름들이다.

‘내가 영화를 보더라도 어지간해서는 실제 배우 이름까지 별로 관심을 안 갖거든.’

엔딩 크레딧을 다 보고 떠나는 게 영화관의 에티켓이고 하지만 그건 상영관에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나처럼 집에서 다운 받고 스킵하며 보는 녀석은 얼렁뚱땅 넘겨보고 말기 마련이다.

‘그러고 보니 원래도 그녀의 연기 커리어는 대부분 코미디 연기에서 쌓은 것들이 대다수였었지.’

이미지 변신 같은 몇 가지 사유 때문에 코미디가 아닌 다른 연기도 했고 그 대부분이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핵심은 언제나 코미디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에밀리가 말했다.

[저 요즘 오디션도 알아보고 있었어요!]

[응?]

[뭐?]

나만 놀란 게 아니다. 그녀의 어머니도 같이 놀란 얼굴로 보고 있었다.

‘여전히 엄마 모르게 준비하는구나.’

그동안 몰래 하던 것이 버릇되어서 이제 안 그래도 되는데도 자신도 모르게 그러고 있었던 것 같다.

[어떤 오디션?]

[가방에 있는데···]

재빨리 스튜디오의 직원에게 에밀리의 가방을 챙겨오라고 연락했다. 곧 돌려받은 가방에는 에밀리가 남몰래 알아보고 모아둔 갖가지 오디션들의 정보가 나와 있었다.

[어디 보자.]

내가 나름대로 미다스의 손으로 통하는 안목의 소유자가 아니겠는가. 관심을 두고 훑어보았다.

‘드라마, 연극, 영화까지 별것이 다 있네.’

문제는 별다른 시놉시스나 그런 정보들은 없고 오직, 배역과 작품명 그리고 장르만 적혀 있다는 것이었다. 분류는 코미디 아니면 로맨스 코미디였고 말이다.

‘역시나 대부분 모르는 것들이고.’

한국에서라면 드라마나 영화의 성공 여부를 조금 더 쉽게 떠올릴 수 있겠지만, 지금 이것들은 전부 미국의 드라마와 영화, 연극이었다. 내가 가진 미래의 지식에 전혀 없는 것들이다.

그리고 일천한 내 지식정보 속에서 남아있는 작품의 제목이 여기에 있다면?

‘그건 성공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지.’

그리 생각할 즈음, 똑똑하게 눈에 들어오는 단어가 있었다.

스쿨 오브 밴드.

‘이건 짐 블랙이 출연한 대박 히트 작품 중 하나잖아? 이게 지금 오디션을 준비하고 있었어?’

기존 에밀리의 필모에는 없었던 작품인데 일찍 오디션을 보면서 인연이 닿은 모양이었다.

‘이런 식이면 될 스타는 시점이 달라져도 알아서 성공한다는 뜻인가? 운을 타고나서?’

반쯤 안도하며 그녀에게 물었다.

[에밀리.]

[네. 대장.]

[이 영화 어떻게 생각하니?]

스쿨 오브 밴드를 보여주자 그녀가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그 영화는 별로 재미가 없을 거 같아요. 스토리도 그냥 흔한 영화들 같고··· 게다가 음악도 잘 해야 하면 오디션 준비도 엄청나야 하잖아요?]

‘마냥 운빨로 성공하는 건 아니구나. 성공할 작품을 피해 나가다니.’

결과론적으로 보면 실수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린 에밀리의 생각은 충분히 타당했다. 그만큼 스쿨 오브 밴드는 스토리가 별 볼 일 없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영화의 성공은 연출, 각본, 연기라는 세 가지 요소로 좌우된다. 그런데 이 중에서 스토리가 별로인 영화라면? 성공 확률은 대폭 감소한다. 그러니 상식적인 선택은 그 작품을 피하고 다른 오디션을 준비하는 거였다.

‘그런데 이건 결과적으로 성공한 거거든. 어느 정도냐면 나중에 재개봉까지 할 정도의 호응을 받아.’

스쿨 오브 밴드의 중심은 밴드도, 스토리도, 코미디의 강자인 짐 블랙의 원맨쇼도 아니다. 바로 동심을 잃은 어른들의 꿈이며 모두의 미래이기도 한 아이들의 꿈이었다.

영화는 밴드를 통해서 이들을 코미디 속에 훌륭하게 녹여내었고 그 덕분에 재개봉까지 하는 레전드 영화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러므로 에밀리의 성공을 견인해주려는 지금 내가 할 일은 분명하게 나온다.

이 작품에 출연하게끔 설득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스토리는 아주 중요한 게 맞아.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게 뭔 줄 아니?]

[감독!]

[···그래 그것도 중요하지.]

‘그게 뭔데요?’를 미리부터 염두에 두었다가 살짝 당황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다른 거야. 바로 메시지지. 영화가 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관객들에게 얼마나 제대로 전달되는가, 그리고 공감이 되는가거든. 이런 시각에서 볼 때 스쿨 오브 밴드는 메시지가 아주 훌륭한 영화란다.]

[에? 그걸 대장님이 어떻게 알아요?]

영특한 아이는 어른의 거짓말에 쉽게 넘어오지 않았다. 에밀리는 배역과 작품명, 장르만 적혀 있는 종이를 요리조리 뒤집으며 내게 되물었다.

‘···기특한 녀석 같으니. 어디 가서 사탕 준다고 아무 사람이나 따라가지는 않겠구나.’

예상치 못한 날카로운 질문이다. 아직 오디션을 진행 중인 영화가 그런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는지 알 방법은 현실적으로 없다.

그렇기에 논리적인 반문에 내가 선택한 대답은 비논리였다.

[에밀리. 나처럼 젊은 나이에 이렇게 큰 회사를 운영하려면 뭐가 제일 필요한 줄 아니?]

[몰라요.]

‘꿈 꿔서 초능력 얻는 거란다. 그게 대박이거든.’

이러한 진실을 말하지 않은 채 내가 떠들었다.

[바로 감이란다.]

[네? 뭐예요 그게?]

농담하느냐는 과장된 리액션에 내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진짜야. 감이 좋아야 성공할 사업을 선택할 수 있고 그것에 제대로 투자할 수 있어. 이런 내가 볼 때 스쿨 오브 밴드는 딱 성공의 감이 오는 작품이야. 그러니 나를 믿고 이 영화의 오디션을 같이 준비해 보는 게 어떻겠니?]

말하는 나도 잘 알고 있다. 설득력이 무진장 떨어진다는 것쯤은 말이다. 그런데 아이니까 어떻게 통할 것 같았다.

[아~ 음~ 아~ 알았어요~ 대장님이 우리 부모님도 꼬셔주셨으니까 믿고 할게요~]

[그래. 그래.]

그제야 그녀의 어머니가 뒤늦게 떠올랐다. 어린 에밀리와는 의문을 품는 게 당연해서 아차 싶었다. 하지만 고개를 돌렸을 때 내가 본 것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었다. 에밀리처럼 내 의견을 믿고 따라주겠다는 의미였다.

‘안목으로 어찌어찌 넘어간 모양이야.’

익숙한 광경이었다. 한번 실수하면 와장창 깨질 알 수 없는 선견지명, 그 결과는 성공한 게이머스 포럼과 영화계에서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지금의 나였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다.

‘오디션을 준비할 작품을 골랐으면 그다음에 할 건?’

휴대폰을 들었다.

“곽지원 전무님. 스쿨 오브 밴드 오디션의 일정부터 관련된 정보들 좀 구해주세요.”

- 오디션이요? 어떤 오디션이죠?

“코미디언 짐 블랙을 원탑으로 세우고 들어가는 영화입니다.”

- 알겠습니다.

에밀리의 도전을 지원하기로 한 이상 제대로 밀어주기로 했다. 이쯤 되면 나중에 할리우드 대스타가 되었을 때 아는 척해도 흔쾌히 인정해 줄 거라고 본다.

*

스쿨 오브 밴드의 배역은 이미 대부분 정해져 있었다.

‘하긴. 이런 영화는 배우를 뽑기보다 연주자를 뽑는 게 낫겠구나.’

현재 진행 중인 오디션은 배우로 들어올 역할들에 대한 오디션이었다.

밴드 자체를 담당하는 배역들은 전부 외부의 다른 프로그램을 통해 오디션을 보았던 아이들 위주로 캐스팅하여 추가 오디션을 진행했다고도 한다. 그래서 현재 남은 배역은 반장과 백코러스 정도였다.

‘이외에도 열 몇 가지 아역의 자리가 있기는 하지만, 그 역할들은 존재감이 미세먼지 급이야. 안 하는 것과 똑같지.’

에밀리에게 추천할 배역은 반장이 된다. 문제는 경쟁률이 살벌하다는 것!

곽지원 전무의 말에 따르면 대충 1000 대 1이라고 한다.

‘그래도 우리 회사에는 에밀리를 가르칠 좋은 선생님들이 있으니까.’

마다가스칼의 연기자들은 별다른 커리어를 가지고 있지는 않으나 실력만큼은 출중한 편이다. 그런데도 그들이 가난한 것은 아직 기회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 작품을 함께 하니까 이제 기회를 잡은 셈이지.’

부디 이를 시작으로 잘 풀리기를 바란다.

나는 그들에게 부탁해서 오디션의 준비 기간 동안 에밀리를 훈련시켰다. 아울러, 스쿨 오브 밴드에 대해 아는 만큼 반장 배역에 어울리는 몇 가지 연기를 중점적으로 알려주었다. 이른바 커닝페이퍼이자 족집게 강의라고 하면 될 것이다.

‘합격! 합격! 아자!’

그렇게 마다가스칼은 마다가스칼 대로, 에밀리의 오디션은 오디션대로 착착 준비가 되어갔고 스쿨 오브 밴드의 오디션의 날이 먼저 다가왔다.

새삼 내가 남 밑에서 일하지 않고 사업을 하는 게 참 잘하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배우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이건 배역 따낼 때마다 면접을 보는 셈이니.’

에밀리의 오디션은 총 3단계로 구성되었다.

1차는 시카고에서 카메라 테스트 겸 작가에게 통과하는 것.

2차는 뉴욕에서 감독에게 통과하는 거였다.

끝으로 3차는 이 영화의 투자배급사인 파라마운틴에 가서 상업적 가치를 판단 받는 건데, 사실상 오디션의 마무리는 2차까지라고 보아도 된다.

‘일단은 1차를 통과하는 게 중요하지.’

스쿨 오브 밴드는 작가가 짐 블랙과 3년간 이웃으로 살면서 그에게 딱 어울리는 이야기를 구상한 영화다. 그런 만큼 캐스팅에서 작가의 발언권이 꽤나 컸고 이는 곧 1차 오디션에서 큰 임팩트를 주면 준다면 2차와 3차에까지 좋은 영향을 준다는 의미였다.

< 아저씨 팬의 서포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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