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저씨 팬의 서포트 >
[최소 1테라플롭스의 성능이 필요하다고 하네요.]
[1테라플롭스요? 상당하네요.]
[그런가요?]
[그럼요. 지금이야 그 수준을 한참이나 넘는 컴퓨터들이 개발되었지만 불과 2년 전에만 해도 그게 전 세계 1위의 슈퍼컴퓨터 성능이었는걸요.]
리차드가 팔짱을 끼고서 말했다.
[옛날얘기지만요. 지금은 1위가 35테라플롭스니까 컴퓨터의 성능은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셈이죠.]
[그렇다면 드림 퀘스트를 모아서 성능을 발휘하는 게 가능한 겁니까?]
[글쎄요. 1테라플롭스면 제 프로그램이 모든 드림 퀘스트를 제어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네요. 하지만 조금 무식한 방법을 쓰면 어떻게든 맞출 수 있을 것 같기는 해요.]
[무식한 방법이면 그게 뭐죠?]
[효율이 떨어지는 대신에 필요량보다 훨씬 많은 드림 퀘스트를 연결하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든 성능을 맞출 수도 있죠. 게다가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하는 것만으로 컴퓨터의 성능이 업그레이드되는 효과를 볼 수도 있고요.]
뭔지 모르겠다. 그저 가능하다는 것에 맥락상의 의미면 충분했다.
[그럼 몇 대 정도를 연결하면 됩니까?]
[드림 퀘스트 한 대가 1.4 기가플롭스니까 어림잡아 4,000대 정도를 연결하면 될 것 같네요.]
이론상으로 따지면 1.4기가 곱하기 4,000일 경우 4테라를 넘겨야 한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최대 효율에 대한 이론적인 부분이라는 말이었다.
여기서 계산기를 두드렸다.
‘55,000원이라고 치면.’
ZBox가 나오기 전에 망해버린 드림 퀘스트는 최근에 개당 45달러에 판매되는 중이었다. 어떻게든 재고를 처리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실정이다.
즉, 55,000원에 4,000대를 곱해봐야 비용은 2억 2천만 원이었다. 성능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거저먹기나 다를 바 없는 값이다.
대신, 돈이 아닌 다른 요소가 문제였다.
[4,000대를 구하는 게 문제군요.]
단종 된 상품이라는 거다.
그런 물건을 4,000대나 구한다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여기서 그라함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필요한 수량이야 저희가 어떻게든 해볼 수 있습니다만··· 정말로 이렇게 해보시려고요?]
[네. 저희가 꽤 급박한 상황에 직면했거든요.]
[혹시 지금 제작하신다는 애니메이션도 이 슈퍼컴퓨터로 제작되는 게 맞나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러자 저들이 화색을 띠었다.
[오! 콘솔을 이용한 슈퍼컴퓨터 제작!]
[거기에 그 슈퍼컴퓨터로 만들어지는 애니메이션!]
[이거야말로 우리가 꿈꾸던 거야!]
안성맞춤이나 다를 바 없는 저들의 반응에 나는 연신 퀘스트와 준비된 도우미가 떠올랐다. 일반적으로 이 조각을 찾기 위해서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하는데 나는 능력이라는 한 방으로 해결한 셈이 되었다.
‘···완전 개사기.’
실로 현실에서 +14 강화를 성공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치트키였다.
묘한 감흥에 빠지는 나를 저들이 재촉했다. 나 역시 우선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게 우선이라는 것을 절감하고 그에게 반문했다.
[며칠이나 걸리실 것 같습니까?]
[인맥을 동원하면 드림 퀘스트 4,000대는 이틀이면 구할 겁니다.]
[프로그래밍도 제가 제작한 걸 사용하면 문제는 없는데···]
[아무래도 설비 같은 게 문제거든요.]
이를 듣고 나는 돈다발이라는 패를 꺼냈다.
[한 달 안에 설치를 마치면 20만 달러. 2주일 안에 설치해주시면 10만 달러를 추가로 드리겠습니다.]
[헉!]
[정말이십니까?]
10만 달러.
한화로 1억 2,000만 원 수준으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큰돈이다.
‘이건 보너스야.’
퀘스트에 따른 보상이니 받고 퉁 친다는 알량한 생각은 않는다. 그건 이번의 능력을 내가 인식하는 나름의 표현에 불과하다.
‘이런 것 따위로 현실이 무슨 게임이라는 둥 착각하면 곤란해.’
담백하게 보면, 최적의 인재를 가장 필요한 순간에 딱 만난 셈이었다. 그런데 이런 이들에게 보상을 아낀다? 그건 자린고비나 수전노와는 비교할 수 없는 얼간이에 지나지 않는다.
‘굳이 보여주지 않아도 될 것들을 보여주고 자신들의 비밀마저 공유해줬어. 그러니 나도 합당하게 돌려주는 거야.’
이 돈이면 이들도 주점 운영보다는 자신들이 원하는 꿈을 향해서 더욱 열정을 불태울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것으로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의심되신다면 우리 회사에 한 번 방문해 보시는 것도 괜찮습니다. 어차피 필요한 비용을 받아서 하시려면 제대로 계약도 하셔야 할 테고요.]
욕심 같아서는 이참에 회사에 입사시키고 싶지만 그건 시도할 필요도 없었다. 이들은 지금 본 모습만으로도 너끈히 알 수 있다. 어딘가에서 자신들의 사업을 일으킬 타입이지 취업에 연연할 부류가 아니다.
[좋아요. 그렇다면 2주일 안에 어떻게든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정도 규모의 병렬 컴퓨터를 만든다면 제어를 위한 CPU들과 연산에 특화된 GPU, 냉방시설들이 또 필요합니다.]
[그건 해당 업체들과 계약할 때 저희 직원과 함께 가셔서 결제하시면 됩니다.]
돈이 많아지고서 곧잘 하는 생각이지만, 돈은 행복의 필수 조건이 분명하다. 살아가면서 생기는 번거로움을 거의 다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얼추 전부 다 해서 얼마 정도에 가능할 것 같습니까?]
[100만 달러는 필요할 것 같습니다.]
‘싸다!’
12억은 큰 금액이지만 슈퍼컴퓨터의 성능을 생각하면 이건 터무니없이 저렴한 수준이다. 일반적인 방법으로 제작하면 열 곱절 이상은 줘도 불가능할 테니까.
게다가 내가 골머리를 앓았던 가장 큰 이유는 수백억을 들여도 2주일 안에 설치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리차드 일행은 내게 비용 절감과 시간 단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거머쥐게 해주는 것이다.
[좋습니다. 합시다.]
또 하나의 오버 밸런스의 능력 각성과 더불어 사업상의 암초 하나가 해결됐다.
다음 날부터, 우리 건물에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의 학생들이 드나들었다. 이들은 27층 전체를 슈퍼컴퓨터의 공간으로 바꿔나갔고 컴퓨터를 제작하기 위해 도면을 들고 바쁘게 돌아다녔다. 청춘들의 열정을 보며 최종인 대표가 내게 소곤소곤 물었다.
“회장님. 진짜로 저들이 우리 슈퍼컴퓨터를 만들어주는 겁니까?”
“그렇다니까요.”
“진짜. 정말로 1테라플롭스의 성능인 게 맞습니까?”
“최대 4테라플롭스까지는 이론적으로 가능한데, 아마 효율성이 늘어나면 2.8테라플롭스까지는 내년 안에 가능하게 해줄 수 있을 거라더군요.”
“맙소사! 2.8테라플롭스라니!”
릭의 말에 따르면 이 정도 슈퍼컴퓨터는 세계 60위권 수준이라고 한다. 물론, 콘솔이라는 장비와 프로그래밍의 한계 때문에 다양한 것에 적용할 수는 없고 오직 렌더링에 특화된 슈퍼컴퓨터로 만든다고 했다.
제한적인 사용이지만, 나로서는 하나도 불만이 없이 쌍수를 들 부분이다.
‘이만해도 감지덕지하지.’
다목적 따위는 고려도 하지 않았다. 애니메이션만 잘 빠지게 나오면 대만족이다. 그렇게 고민거리가 해결된 마이코닉스의 직원들 역시 박차를 가하며 작품 완성에 치중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105. 아저씨 팬의 서포트
27층에 슈퍼컴퓨터가 만들어지는 동안 마이코닉스는 렌더 팜이 필요 없는 것들부터 진행하고 있었다. 함께하며 추이를 보고 있는 만큼 시시각각의 진행 상황을 나 역시 점검했다.
“스토리 북이 새로 나왔네요?”
“그렇습니다.”
한국은 애니메이션의 시장이 매우 협소한 나라 중에 하나다. 엄밀히 말하자면 일본과 미국. 거기에 10년 후쯤부터의 중국을 제외한다면 내수시장으로 제대로 먹고사는 애니메이션 시장이 없는 나라에 속했다.
‘내수시장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에서 세워진 기업이 마이코닉스지.’
그렇기에 제작비를 절감하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고 그 노하우가 여러 곳에 배어 있었다. 스토리 북이 바로 그 중 하나에 속한다.
“재미있게 잘 나왔네요.”
만화책으로 만들어낸 이것에는 채색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그저 펜 터치만으로 그린 그림에 대사를 넣었기에 ‘급조해서 대충 만든 만화책’이라고 보면 딱 좋을 정도다. 하지만 이게 있고 없고는 제작비 절감에 큰 차이를 보인다.
나는 이를 쭉 읽어 본 뒤 말했다.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촬영에 들어가는 거군요. 며칠이나 걸릴까요?”
“사흘이나 길어도 나흘이면 기본적인 촬영이 끝날 겁니다. 필요에 따라서 추가 촬영이 생길수도 있고요.”
마이코닉스 사옥 28층은 촬영을 위한 스튜디오로 구성했다. 그곳에는 몬스터 프레데터스와 신과 같이를 통해서 마다가스칼의 출연 계약을 마친 성우들이 모두 자리한 상태였다. 촬영 직전까지 다들 공통되게 보는 책은 다름 아닌 스토리 북이었다.
“알고 계시겠지만, 오늘은 기본적인 콘셉트를 위한 촬영입니다. 최대한 여러분의 캐릭터를 다양하게 보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마이코닉스의 시행착오와 노하우가 담긴 제작비용 절감 방법!
그건 애니메이션의 본격적인 연출이 들어가기 전에 성우들에게 연기를 맡기는 것이었다.
‘이를 직접 촬영하면서 그들을 통해 연출의 영감을 얻는 방법. 최종인 대표에게 설명을 들을 때도 특이하다 생각했었지.’
과연 무슨 차이가 있을까 싶었던 부분인데 실제로 보니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언뜻 생각하면 ‘이게 제작비 절감과 무슨 상관이지?’라고 여길 수 있지만 차분하게 되짚으면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사람이 더 싸게 먹혀!’
연기자에게 추가 비용을 지급하고 다양한 촬영을 하는 것이 1이라면, 애니메이션으로 여러 가지를 연출하고 그중에 괜찮은 것을 찾아내는 작업은 3의 비용이 든다.
‘즉, 3분의 1 값이니까 사람을 통해서 찾아내는 쪽이 낫다 이거지. 그래도 우리와 함께하는 성우들 대부분은 형편이 좋지 못하니까 어찌 보면 서로 윈 윈 할 수 있는 좋은 전략이 된 셈이고.’
성우라고 하지만 실상 저들 대부분은 소규모 극단에서 연기하는 연극배우들이다. 꿈을 위해 가난한 삶을 극복하고 있는 사람들이었기에 우리의 추가 요구에 흔쾌히 오케이 사인을 했다. 캐릭터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고 1년 치 수입과 비슷한 개런티를 받게 되기 때문이었다.
이들 중에는 처음부터 눈여겨보았던 미래의 대스타도 있었다.
“에밀리도 왔네요? 오늘 촬영할 게 있던가요?”
그녀가 맡은 역할은 ‘쥐여우원숭이’인데 여우원숭이들의 스케줄은 내일부터였다. 이점이 의아해서 물으니 뜬금없이 뒤에서 한 여성이 내게 대답해주었다.
[에밀리가 다른 연기자분들이 연기하는 것을 보고 싶다고 졸라서 같이 왔습니다.]
돌아보니 에밀리의 어머니가 있었다. 보아하니 내가 했던 한국말을 알아들어서가 아니라 딸의 이름을 듣고 지금 상황에 맞춰서 한 대답 같았다.
[아, 그렇군요. 하긴 에밀리에게 공부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내 대답에 그녀가 눈을 조금 크게 뜨며 놀란 기색을 보였다.
[어머, 실례했어요. 그런데 원래 영어를 못 하시는 거 아니었나요?]
지난 만남까지는 분명히 내가 통역을 통해서 대화했었기 때문에 통역 없이 알아듣고 말하는 것에 놀란 것 같다. 나는 다시금 고액과외와 영어 단어 외우기에 들였던 시간을 회상했다.
‘인간의 욕심은 정말 끝이 없어. 내비게이션도 생겼는데 외국어 마스터 능력마저 얻지 못한 게 아쉬운 것을 보면 말이야.’
남들이 들으면 욕할 퍼부을 탐욕을 부리며 대답했다.
[그동안 공부를 열심히 했거든요.]
[그래도 그 짧은 시간에 새로운 언어를 익히시다니, 대단하세요. 역시 이런 기업을 운영하시는 분은 머리도 비상하시네요.]
멋쩍어 하는 사이에 그녀가 말을 이었다.
[요즘처럼 에밀리의 표정이 행복한 것을 본 적이 없어요. 그런 점에서는 회장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그런가요?]
[사실 에밀리는 애기 때부터 영아 산통으로 고생을 했거든요. 지금 허스키한 목소리도 그때 성대가 많이 상해서 그런 거고요. 그렇게 약했던 딸이라 어떻게든 끌어안고 키웠더니 학교에 갈 나이가 되어서도 제 곁을 떠나질 못하더군요. 병원에서는 그걸 격리불안 증세라고 했고요.]
‘그랬나?’
나야 미래에 인터넷 검색으로 본 화려한 모습들밖에 몰랐기에 전혀 알지 못하는 이야기였다. 처음 봤을 때부터 ‘대장님’이라고 하기에 마냥 에너지 넘치는구나, 떡잎부터 달라, 라고만 여겼는데 말이다.
[저 밝은 아이에게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병원에서 그러더라고요. 격리불안 증세를 치료하기 위한 여러 가지 요법들이 있다고. 그중에서 에밀리에게 가장 잘 맞던 치료법이 바로 코미디 연기였어요.]
‘연기를 시작했던 계기가 그런 거였구나.’
[설마 치료로 시작했던 연기를 직업으로 삼겠다고 말하게 될 거라고는 저희도 생각조차 못 했죠.]
누구인지 몰라도 참 능력 있는 의사였던 것 같다.
< 아저씨 팬의 서포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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