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220화 (220/577)

< 느낌 따라 >

‘이렇게 올라오라는 거였군. 오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가도 대부분 도망가기 딱 좋은 위치인데?’

장사를 할 마음은 있나 싶었다.

올라가다 보니 저 너머에 뭐가 있을지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만약 게임이면 어떤 NPC를 배치하는 게 좋을까, 무협이면 은퇴한 기인이 좋고 스릴러라면 선한 인상의 사이코 패스, 몬스터 프레데터스 같은 종류면 배불뚝이 사장이나 말하는 고양이가 나와도 좋을 것 같았다.

‘판타지면 도둑 길드일지도 모르고. 하지만 현실이라면! 쳇.’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도착한 가게는 반전 없는 가게의 면모를 보였다.

옥상 구석에 마련된 초라한 간이주점이 전부다.

‘테이블은 아예 있지도 않구나.’

어디서 주워온 건지 알 수 없는 것들을 어떻게든 이어서 만든 바(bar).

낡고 어울리지 않는 제각각의 의자들, 게다가 그 바는 일자형이나 원형도 아닌 이상한 곡선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어느 것 하나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나름 반전이기는 하네. 보통의 술집이랑은 비교하기 초라할 정도의 술집이니까. 그런데 묘하네. 왜 여기서 강화 성공의 느낌적인 느낌이 오는 거지?’

알고 보면 특별한 비밀을 찾을 수 있는 그런 곳일까, 흥미를 지우지 않고 술집을 다시 살폈다. 그러다 의외인 점을 발견했다. 선뜻 들어서기 어려운 위치인데도 손님이 제법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즈음 점원이 내게 물었다.

[처음 오셨습니까?]

[예. 처음입니다.]

가게에 왔으니 우선은 주문부터 하기로 했다.

[맥주는 어떤 것들이 있죠?]

[저희는 버드와이저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버드와이저는 미국에서 그냥 ‘맥주 주세요.’라고 말하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흔한 맥주의 포지션이다. 한국에서 고깃집 가서 맥주 달라고 하면 나오는 그런 것들과 같은 포지션인 셈이다.

‘숨겨진 은퇴 셰프가 요리하는 초절정 맛집의 가능성조차 사라졌군.’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럼 그거로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때 점원이 묘한 웃음을 보였다.

[처음 오셨으면 오늘 정말 좋은 시간에 맞춰서 오신 겁니다. 운이 좋으시네요.]

‘응?’

[잠시 후 시작합니다.]

‘뭐가?’

호기심을 안겨준 채 그는 맥주를 가지러 갔다. 그리고 받은 맥주를 내가 시원하게 들이키고는 조금 전의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물어보려고 할 때였다.

손님들이 무언가를 외치기 시작했다.

[스페이스 오페라!]

[스페이스 오페라!]

[스페이스 오페라!]

‘무슨 사이비 종교집단에 온 거였나?’

혹시 모르니까 여차하면 바로 튀어나갈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즈음 가게 주인이 나섰다.

[이렇게까지 열광해주시니 제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두꺼운 안경을 쓴 가게 주인은 가게 점원과 비슷한 연령의 젊은 사내였다. 파는 술의 종류도 고작 하나고 가게 역시 이 모양인데 나이까지 어리다.

‘친구들끼리 추억 삼아서 하는 술집인가 보네.’

이런 곳에 왜 강화 성공의 느낌이 온 것일까.

잠시 후 나는 그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본래는 10분 정도 후에 하려고 했지만, 여러분의 성화에 못 이겨서 지금 바로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스페이스 오페라 제3탄입니다!]

아직 완전히 어둠이 깔리지 않은 시간.

점원들은 재빨리 천막을 쳐서 빛을 차단했고 어둠이 깔리자 한쪽 벽으로 한 줄기 빛이 날아갔다.

“오호라!”

낡은 간판만큼이나 초라하기 짝이 없는 옥상의 허름한 주점.

그런 주점에 아주 특별한 무언가가 존재했다.

‘특수효과로 콘텐츠를 만들어서 보여준다?’

사람들이 외쳤던 ‘스페이스 오페라’는 이 가게에서 상영하는 특별한 쇼의 이름이었다. 특이했던 바의 구조는 별들의 움직임과 우주선의 동선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도구에 가까웠다.

빛을 내는 별들의 모습과 우주선의 주변을 날아다니는 운석의 표현이 너무 사실적이라는 것에 한 번 놀랐다. 가장 대단한 것은 바를 타고 움직이는 우주선이 앉아 있는 손님과 바에 올려진 술잔, 술병을 인식한다는 점이다.

이런 엄청난 공연이 고작 이런 초라한 술집에서 운영이 되고 있다니.

이건 내가 꾼 꿈이나 기묘한 능력만큼이나 말이 되지 않을 정도다.

‘술집 매상으로 저런 영상은 때려죽여도 못 만든다.’

다른 사람들은 마냥 ‘우와’하며 볼 수 있을 테지만 조금 전까지 영상 제작과 관련해서 스트레스를 받았던 나는 다른 단가부터 떠올랐다.

장담하는데 백날 맥주를 팔아봤자 30초짜리조차 제작할 비용조차 못 얻을 것이다. 그렇다고 남들이 제작한 영상을 틀었다고 생각하기에는 영상과 가게의 구조가 정확하게 일치한다.

그 순간, 확신했다.

나를 이곳에 인도한 퀘스트의 종착역.

고민을 해결해 줄 핵심 NPC는 바로 저 사장이었다!

‘물어보자!’

나는 당장에라도 다그쳐서 캐묻고 싶었지만 그 마음을 꾹 참았다. 내 사정이 급하다고 다른 이의 멋진 공연을 방해해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이윽고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던 공연이 마침과 동시에 주점의 젊은 사장을 찾아갔다.

[윤태식이라고 합니다.]

[흐헉!]

너무 갑작스럽게 다가갔나 보다. 화들짝 놀란 그를 보고 나는 반걸음 물러서며 다시 소개했다.

비로소 그가 되물었다.

[네. 그런데··· 무슨 일로?]

[오늘 본 공연인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것이 정말 감명 깊었습니다. 벅찬 마음에 꼭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그런데 스페이스 오페라를 보니까 제작을 하면 할수록 손해가 나는 공연이 아닌가 싶던데요.]

젊은 사장이 웃으며 대답했다.

[아. 그거요? 괜찮아요. 애초에 이걸 하려고 술을 파는 거거든요.]

[네?]

[저희의 목적은 주점이 아니라 처음부터 영상이라고요. 별에 관한 콘텐츠로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었거든요. 그런데 이걸 꾸준히 만들어 낼 돈이 없으니 어떡하겠어요? 이런 허접스러운 주점이라도 차려서 돈을 벌어보는 거죠.]

특별한 콘텐츠를 개발해서 주점의 수익을 올리려고 하는 거라고 오해를 했는데, 오히려 반대였다. 그리고 내 관심을 끄는 부분이 바로 저 영상이었다.

나는 다시금 단가에 대해 거론했다.

[스페이스 오페라의 수준을 보니까 이런 주점에서 아무리 팔아도 영상을 제작할 돈에는 어림도 없을 거 같은데요?]

[오~! 그걸 바로 알아보시는 거 보면 이쪽 업계에 계신 분인가 보네요?]

[그런 셈이죠.]

그가 기분 좋게 반응했다.

[톰! 릭! 여기 좀 와봐!]

부름에 두 명의 사내가 반응했다. 같은 또래이자 점원으로 봤던 인물들이었다.

[영상 관련 업계의 관계자이신가 봐. 우리 영상에 관심이 많으신가 본데? 같이 이야기해보는 게 어때?]

[정말입니까? 반갑습니다. 토미입니다.]

[저는 리차드 테일러입니다. 릭이라고 불러주세요.]

[네, 저는 윤태식입니다.]

반갑게 맞이해주는 그들은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고 영화나 영상 같은 문화산업에 관심이 많은 공통의 성향을 가진 이들이었다. 사장인 그라함은 물론이고 점원들까지 전부 미래의 꿈을 위해 힘든 현재를 이겨나가는 중이라고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이름에 끌려서 왔는데, 이런 대단한 공연을 보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것도 극장도 아니고 이런 옥상 주점에서 말이죠.]

[그게 바로 인연 아니겠습니까?]

진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업계 관계자시라면 어떤···?]

[혹시 GF라는 회사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GF? 토미 너 들어봤어?]

[아니. 못 들어봤는데?]

인지도가 아직 부족한 만큼 추가 설명이 필요했다. 이래서 내가 미국에서는 GF 대신 케이리버부터 들이미는 것이다.

‘게다가 주점 운영이랑 영상제작을 동시에 하는 만큼 바빠서 게임은 못 즐길 수도 있고.’

자주 겪었기에 차분히 나를 소개했다.

[게임과 MP3 플레이어를 주력으로 하는 회사입니다. 요즘은 애니메이션을 추가로 제작하고 있고요.]

[와! 굉장한 회사네요!]

순수하게 놀라고 감탄하는 모습이었다. 이를 보며 나는 처음부터 궁금했던 진짜 본론에 들어갔다.

[이런 질문이 혹시 실례되지 않는다면, 특수 영상을 전부 직접 제작했는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물론이죠.]

단박에 끄덕이는 모습이었다. 자부심이 가득 있어서 거짓이 아니라는 사실을 크게 느낄 수 있었다.

[장비의 비용이 상당했을 텐데요?]

[그건 저희만의 비밀인데···]

[음······.]

딱 듣고 싶었던 부분에서 심각한 얼굴로 주저하는 릭과 톰이었다. 조금 더 친분을 다지거나 술을 마시게 하고 물어볼 걸 그랬나, 생각할 즈음 가게 주인인 그라함이 성큼 나섰다.

[뭐 대단한 비밀이라고 숨기고 그래? 그럴 정도가 아닌데?]

[그라함! 우리가 이거 개발하려고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한 지 벌써 잊었어?]

[설마 있었겠어? 그런데 사실 까놓고 보면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잖아. 이렇게 말이 통하는 분이 온 것도 인연인데 그냥 알려주자.]

잠시 실랑이가 오가더니 이내 릭이 마음을 굳혔다. 잠시 후 내게 따라오라고 손짓하며 먼저 이동했다.

허접한 옥상의 주점과 달리 상당히 신경 쓴 것 같은 작은 구조물. 릭은 그 내부로 나를 안내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특별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드림 퀘스트?]

일본의 6세대 콘솔 게임기인 드림 퀘스트.

‘우리 회사도 모를 만큼 게임을 안 하는 사람들이 정작 게임기는 이렇게 많이 깔아두고 있다니?’

그것이 무려 16개 연결되어 있었다.

[역시 바로 알아보시는군요. 맞습니다. 이게 바로 우리만의 비밀무기죠.]

[스페이스 오페라와 이게 관련이 있다는 겁니까?]

[네. 일종의 병렬 컴퓨터개념이라고 할까요? 드림 퀘스트는 마이크루의 OS는 물론이고 다이렉트Z까지 지원하기 때문에 병렬로 만든 뒤, 이렇게 제 노트북과 연결해서 이용하기가 용이하거든요. 이를테면 개인용 슈퍼컴퓨터인 셈이죠.]

그 말에 번개처럼 ‘이거다!’ 싶었다.

‘우리도 이걸 많이 연결하면 렌더 팜으로 활용할 수 있겠구나!’

느낌이 괜히 이곳으로 인도한 게 아니었다. 정말이지 마법의 내비게이션처럼 딱 원하는 장소에서 바라는 답변을 얻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시나요?]

[아, 미안합니다. 제가 마침 슈퍼컴퓨터를 구매할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런 방법으로 그게 가능할까 해서 잠깐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 말에 모호한 답변이 돌아왔다.

[병렬연결이야 어렵지 않지만, 그걸 제대로 활용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건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그렇군요.]

고민하는 내게 토미가 물었다.

[게임회사이면서 애니메이션도 제작하는 거라면 렌더 팜의 용도로 필요하신 모양이시네요?]

[맞습니다.]

그들도 비슷한 용도로 이를 개발한 만큼 내가 어떤 상황인지 쉽게 유추한 모양이었다. 이런 내 반응에 그가 말을 이었다.

[렌더 팜으로 활용하는 건 이에 대응하는 프로그램만 잘 만든다면 딱히 어렵지 않을 겁니다. 혹시 원하는 성능의 수준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성능이요?]

[기왕 공개한 거 이렇게 만나게 된 것도 인연이니까요.]

이들은 인연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도움을 원하신다면 부족하지만 제가 만든 프로그램을 지원해드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요.]

[다만, 아무래도 제가 개인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개발한 거라서 연결해야 할 콘솔이 60개를 넘어간다면 효율성이 엄청 떨어지거든요.]

[그렇다고 새로 프로그램을 개발하려면 시간도 만만치 않고요.]

[잠시만요!]

번갈아 가며 말하는 저들을 멈춰 세웠다.

‘내 역할은 딱 여기까지야. 이제부터는 실무진끼리 나눠야 해.’

나는 당장 최종인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표님. 저 윤태식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렌더 팜의 성능이 얼마나 됩니까?”

- 성능이라고 하시면?

잠시 휴대폰을 얼굴에서 뗀 뒤 릭에게 물었다.

[릭. 성능은 어떤 걸 기준으로 말씀드리면 되죠?]

[어느 규모의 플롭스를 원하는지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알겠다며 이를 전달하자 최종인 대표가 말했다.

- 6기가플롭스입니다.

“추가로 필요한 렌더 팜은요?”

- 최소 1테라플롭스는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문외한인 내가 듣기에는 무슨 공룡이름 같은 단어들이었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는 그거면 다 잘 통하는 모양이다.

< 느낌 따라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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