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다가스칼 >
‘좋아. 미국에 괜히 온 게 아니었어. 아주 적절한 타이밍에 잘 왔군.’
내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권한 있는 책임자로서 결정을 내려주면 된다.
나는 꿈속 미래의 완성형 마다가스칼을 되새기며 스토리를 다시 보았다.
어떤 스토리가 영화에 더 좋은지는 나 역시도 감히 장담할 수 없다. 현실이 게임이고 이번 일이 퀘스트라면 ‘완성도가 7점입니다. 코믹 요소를 개선하여 관객을 더욱 크게 동원할 수 있습니다.’라며 무슨 시스템이 알려주거나 대신 판단해줄 테지만, 그럴 리가 없잖은가.
하지만 그런 사기적인 요소가 없어도 꿈속 미래만으로 내게는 충분했다.
‘원작 이상이 아니라 원작만큼만 돼도 초대박이라고.’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알고 있는 정답지에 따라서 스토리를 구성했다. 그렇게 초안을 잡은 뒤 말했다.
“최종인 대표님.”
“네.”
“마다가스칼의 스토리와 기획, 연출 등을 담당하게 될 분들을 모두 회의실로 모아주세요. 지금 제가 가진 것과 같은 스토리를 챙겨서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내가 방문할 때부터 준비했던 것일까.
급하게 생겨난 회의였지만 이들 전부가 회의실에 도착하는 데에 들어간 시간은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살짝 당황하기는 했지만 서로 시간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아도 되니 좋은 상황이었다.
“이렇게 급히 불러 모으게 된 점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나는 마이코닉스의 직원들 면면을 마주하며 인사했다.
“지금 애니메이션 제작에 많은 고민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으실 수 있겠지만, 나름대로 틀을 잡아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소집하게 되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나도 딱히 미안한 얼굴을 하고 있지 않았고, 모인 직원들 역시 당연히 불편한 기색이 없었다. 사실 이건 정해진 물음과 답변 같은 요식행위와도 같다.
‘오너가 불렀는데, 그런 티를 내는 사람이 있을 리 없잖아. 이 정도 눈치는 기본이라고.’
단지, 불편한 심정을 애써 가리는 정도가 아니라 꽤 큰 기대까지 엿보이는 점이 부담됐지만 말이다.
‘본사에서나 자주 보던 표정인데 여기까지도 그 병이 옮았나?’
소원을 들어주는 무슨 신령도 아니고, 요즘 들어서 내가 무슨 회의를 하자고만 하면 다들 저런 얼굴이라서 회의하자는 말도 함부로 못 꺼내겠다. 이게 다 성공 불패의 행보를 이어나가고 있기 때문인데, 솔직한 심정으로는 기분이 좋은 반면에 걱정도 컸다.
한번 삐끗하면 사정없이 곤두박질칠 게 자명해서다.
‘이럴 줄 알았으면 꿈속 미래의 내가 수명만큼 다 살고 늙어 죽을 때까지의 미래를 아는 게 더 좋았을지도?’
실없는 생각마저 해본다.
어쨌거나 사람들의 착각은 잘 써주는 편이 좋다.
헛기침한 뒤 내가 말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저는 성공과 관련해서는 감이 꽤 좋은 편입니다.”
“예!”
이 말에 전부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그렇게까지 대놓고 동의하라는 건 아니었다고.’
내 얼굴은 내게 안 보이지만 아마도 얼굴이 붉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에라 모르겠다.’
뻔뻔해져서 철면피를 쓰기로 한다.
“그러니 제가 지금 짚어드리는 것을 토대로 영화를 제작했을 시 어느 정도의 러닝타임이 예상되는지 논의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네!”
‘저기요. 여기 군대 아니거든요?’
게임사에서 회의할 때보다 훨씬 각 잡힌 모습을 보여주는 마이코닉스의 직원들이었다. 업계 상 게임보다 애니메이션 쪽이 조금 더 군대 같은 상하관계가 있지는 않나,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스토리를 보시면 지금 1페이지부터 14페이지까지까지의 내용은 그대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34페이지의 열두 번째 줄부터 42페이지의 네 번째 줄까지···”
말이 이어질수록 펜으로 체크하고 종이를 동시에 넘기는 소리가 시원스럽게 들렸다. 두툼한 분량을 하나하나 짚으며 어떤 장면을 살리고 어떤 장면을 없앨지 결정하는 시간이었다.
일차적으로 말을 마친 뒤 권문수 부사장에게 물었다.
“이렇게 제작하면 런타임이 어느 정도나 될 것 같습니까?”
“정확한 것은 직접 제작해야 판단할 수 있겠지만, 현재 스토리상에 나오는 장면들로는 약 75분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마이코닉스의 창업멤버이자 국내 애니메이션 최고의 연출가답게 빠른 계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이인만큼 신속한 답변이었다.
“75분이면 적당하군요.”
“예? 극장판치고는 너무 짧은 느낌인데요?”
“맞습니다. 짧죠.”
“네?”
하지만 계산 능력이 빨랐을 뿐, 그는 지금 내가 짚어준 스토리에서의 구멍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이 부분에서는 박도연 메인 스토리 작가가 반응을 보였다.
“42페이지부터 88페이지까지 중간 스토리가 비어있군요.”
“맞습니다.”
바로 동물들의 외출이 탈출로 변모하고 그 탈출 소동으로 동물보호협회의 운동이 일어나며 결국 뉴욕의 동물원이 폐쇄되기까지의 연쇄 현상 과정이었다. 여기서는 작가의 영역에 끼어드는 것이라서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이 부분은 메인 작가님과 협의가 필요할 것 같군요.”
“말씀하시면 바로 적겠습니다.”
‘응?’
보통 메인에서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자존심이 엄청 강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녀는 굉장히 유연하게 반응했다. 혹시나 해서 확인차 물어보았다.
“제 마음대로 이야기를 만든 건데 그냥 바로 사용하신다고요?”
“아뇨. 그게 좋으면 바로 쓰고 아니면 가공을 해야겠죠. 하지만 이미 회장님이 주신 이 애니메이션의 기본 뼈대가 좋았으니 이번에도 좋을 거라고 기대하고는 있습니다.”
‘마냥 내가 성공한 회장이라서 그러는 게 아니었구나. 다들 타당한 이유가 있는 거였어.’
막연하게 믿고 따르는 분위기가 아니라서 왠지 안도가 됐다. 이런 식이면 내가 실수하더라도 말하지 못하고 넘어가거나 자신들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 하는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나는 마음 놓고 원작의 스토리를 최대한 상세하게 설명했다.
“이 부분에서 사자가 리더십을 발휘하여 동물들을 데리고 나가는 부분이 있는데, 이보다는 얼룩말이 낫다고 봅니다. 원래 ‘얼룩말은 길들일 수 없다.’ 이런 말도 있으니까요.”
“네? 그런가요?”
‘엥? 몰랐어?’
시기마다 유행어가 다르듯이 상식 역시 바뀌는 모양이다. 대충 10년만 지나면 초등학생들도 모두 아는 이야기가 바로 얼룩말인데 지금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생경한 모양이다.
‘하긴, 시간이 지나면 공룡도 새처럼 털이 붙고 태양계에서 명왕성이 퇴출당하기도 하니까.’
시대의 흐름을 잠깐 떠올려 보았다.
“인간은 말을 길들이고 오랜 세월을 함께 해왔습니다. 가장 흔한 방법이 야생마와 순한 말을 교배하는 방법이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4,000년이라는 시간 동안 인간과 야생마가 가까워졌음에도 얼룩말은 단 한 번도 가축으로 길러진 역사가 없다고 합니다.”
원작 스토리에서도 이런 생각을 다루고 넣은 건지는 모르겠다. 그런 인터뷰가 있었는지 그런 것도 모른다. 하지만 내 생각엔 그랬을 것 같다.
“유일하게 야생성을 그대로 간직한 말이라는 거죠.”
“그렇군요.”
대답은 했지만, 직원들의 얼굴은 ‘그래서?’ ‘그게 왜?’ ‘뭐 어쩌라고 한 소리인데?’ 같은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 부분에서의 네 마리 주연 중, 가장 자유와 외부에 대한 열망이 큰 존재는 얼룩말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이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죠.”
“아!”
“그 말씀이셨군요.”
코미디 프로그램에 나오는 반응이 한 박자 느린 복서 같았다.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의 기질이 가장 강한 얼룩말이 탈출을 강행한다, 그리고 동물원에서의 평화를 원하는 나머지 세 친구가 얼룩말 친구를 제자리로 돌리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이야기. 이것이 바로 중간에 비어있는 이야기의 중심이 될 겁니다.”
이후 어떻게 인간들에게 다시 잡히고 또 이들이 어떠한 방법으로 마다가스칼에 도착하는지 이런 설명들을 이어가면서 다시 한번 러닝 타임을 계산해보라 말했다.
인간 계산기인 권문수 부사장이 알려주었다.
“얼추 20분 정도 분량으로 처리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총 상영시간이 105분이 되겠군요.”
“105분이면 딱 좋네요.”
“아닙니다. 엄청 짧은 겁니다.”
권문수 부사장이 아니라며 내게 말했다.
“100분 정도의 상영시간을 예상하면 제작 분량은 160분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편집도 하면서 필요 없는 부분을 잘라내고 100분 정도의 알짜를 분류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지금 이 내용으로는 에누리 없이 딱 105분 정도의 분량만 건질 것 같습니다.”
편집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실제 상영에 사용할 장면은 90분 정도가 될 수도 있다. 이는 제작진 입장에서는 당연히 걱정되는 부분이다.
‘그런데 아니거든. 나는 완성본을 이야기 한 거라고.’
이럴 때 필요한 건 역시 책임자로서의 모습이다. 웃으며 내가 말했다.
“괜찮습니다.”
“괜찮다고요?”
“네. 잘라낼 게 적도록 제작하면 좋은 거지 나쁜 게 아닙니다. 대신 장면이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제 마음에 들 때까지 새로 만드셔야 할 겁니다.”
어차피 지금 구성한 장면들은 원작에서 상영된 것들이 99%다. 즉, 연출을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이지 장면 자체가 가진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니 애써 편집을 어찌할지 고민하기보다는 제대로 연출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낫다.
‘시간도 아끼고.’
일필휘지로 완성해내고 편집 없이 완성본이 나온다. 이런 판타지를 꿈꾸는 제작자가 얼마나 많겠는가. 바로 그걸 우리는 직접 해내는 거다.
‘독단적이기는 하지만, 이게 가장 빠른 길이야.’
불안해하지 말라며 거듭 강조했다.
“제가 확신을 가지고 있을 때는 곧잘 파격적으로 사업을 진행합니다. 덕분에 게임사에서도 여러분처럼 회사 일을 자기일 같이 걱정하는 분들이 우려를 표하고는 하지요. 그럴 때마다 제가 뭐라고 말한 줄 아십니까? 책임은 모두 내가 진다, 였습니다.”
강직한 어조로 말했다.
“여러분은 아주 좋은 기회를 얻는 겁니다. 왜냐고요? 제가 시킨 대로 해서 망하면 제가 책임을 지거든요. 여기에 추가로 하나 더 얹겠습니다. 망해도 제 돈이고 다 날려도 어차피 또 만들 돈은 충분히 있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제작하세요.”
‘보아라. 이게 바로 돈 지랄이다.’
부자만이 부릴 수 있는 패기를 마음껏 뽐냈다.
“그리고 여러분의 능력이면 성공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갖는 확신! 그 절반만이라도 스스로 믿어보시기를 강권합니다. 기회가 없었을 뿐 여러분은 충분히 성공할 수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어갔다 나올 수 없으니 마지막 말이 힘이 된 것인지 신뢰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회의실의 직원들은 홀린 듯이 박수를 쳤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했을 뿐이다.
“그럼 본격적으로 일을 진행하려면 여기 계신 분들끼리의 회의가 또 필요할 것 같으니, 저는 이만 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결과를 기대하겠습니다.”
“만족스러운 결과로 보답 드리겠습니다!”
“회장님!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연하지. 원래부터 뽀통령으로 성공할 사람들인데.’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나 때문에 성공하는 게 아니라 원래 그럴 사람이라는 사실이고 이를 알고서 함께한다는 선후의 차이였다. 하지만 아무렴 어떻겠는가, 저들 역시 좋은 환경에서 이른 시점에 성공하면 좋고 나 역시 이득을 같이 누리니 좋다고 본다.
‘물론 피해자는 있지. 원작자들인데··· 에잇! 이걸 따지면 세계적으로 미안한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라고. 아 몰라!’
일단 저들이 오늘 회의를 마치고 어떤 성과를 만들어낼지 그거나 기대하기로 했다.
*
한창 제작과정에 들어간 마다가스칼에는 한동안 내가 관여할 것이 없었다. 저들의 열정을 응원하는 정도가 전부라고 봐도 좋았다.
하지만 이것은 작품이라는 관점에서만 보았을 때였다. 자고로 상품은 그 자체의 퀼리티만큼이나 유통과 마케팅의 비중이 크다. 그러니 땀과 노력이 제값을 받도록 내가 해야 할 일은 마다가스칼을 최대한 많은 극장에 상영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배급사와 좋은 계약을 맺어야 하지.’
그동안은 곽지원 전무만을 보냈었지만 이번의 애니메이션은 영화와 달리 직접 내가 관여한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그를 혼자 보내고 뒤에서 구경만 하고 싶지 않았다.
이를 위해서 곽지원 전무와 최종인 대표를 대동한 채로 파라마운틴에 들렀다.
‘아쉬운 녀석이 발품 파는 법이야.’
영화에서 배급사가 가진 권력은 엄청나다.
파라마운틴이 아무리 애니메이션의 불모지와 마찬가지라 하더라도 그들이 가진 힘은 무시할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가 직접 파라마운틴으로 방문해야만 했다.
‘다운타운은 정말 멋있기는 하지만 교통은 정말이지 빵점이야.’
전 세계 최악의 교통체증을 자랑하는 도시 중 하나다. 그 탓에 마이코닉스에서 파라마운틴까지의 거리는 고작 7마일(약 11Km)이지만 무려 1시간이라는 시간을 거리에서 보내야만 했다. 이윽고 마침내 도착한 파라마운틴을 보며 최종인 대표가 혀를 내둘렀다.
< 마다가스칼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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