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215화 (215/577)

< 마다가스칼 >

‘역시 게임은 종합적인 문화콘텐츠야. 현실을 너무나도 잘 반영했거든.’

전쟁특수라는 말이 있다. 전쟁 시에는 무기, 식량, 의약품 같은 필수품의 사용량이 급증하고 여기에 따라서 특수(特需)가 발생하는 거다. 물자를 소비하는 교전국보다는 판매하는 제3국이 전쟁특수를 누리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러한 현실 논리는 게임에도 적용된다.

영주라는 게임 속 지위와 세금!

이를 거머쥐려는 수단이 바로 공성전이다. 즉, 큰 이익을 보려는 게이머들을 교전국으로 보고 이들이 싸우며 대량의 아이템을 소비할 때마다 게임사는 이익을 보는 구조로 생각하면 전쟁특수가 적절하게 들어맞는다.

‘현실의 전쟁이랑은 다르게 게임은 대리체험과 재미를 주기도 하고.’

아무튼, 이러한 수익 모델 탓에 한국 개발자들에게는 ‘공성전을 통한 대량 이익을 유저들에게 안겨줘야만 그들이 적대적으로 미친 듯이 싸울 테고 그래야 회사는 수입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박여 있었다.

나로서는 혀를 찰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이것도, 저것도 적당하게 다 필요한데 왜 극단적으로 매몰되는지 모르겠어. 종교집단처럼 이러면 곤란해. 다양한 개성이나 취향을 무시하면 안 된다고.’

공성전에 대하여 부정적인 언급을 했으나, 사실 공성전은 빠져서는 곤란한 중요 콘텐츠다. 단, 이 콘텐츠는 PVP 유저를 위한 엔드 콘텐츠가 되어야 하지 모든 유저들을 위한 메인 콘텐츠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렇기에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일은 책망하거나 나무라지 않고 방향을 제대로 잡아주는 것이었다.

나는 길남주 대표에게 질문했다.

“좋습니다. 그런데 성을 짓기 전에는 영주가 없는 겁니까? 그리고 영주가 되고 나면 무슨 이점이 생기죠?”

“성을 짓기 전에는 여러 개의 마을이 존재하며 마을마다 촌장 NPC가 영주의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영주가 생긴 이후에는 성에 인접한 마을들이 해당 영지로 변경되며, 촌장 NPC들은 촌장이자 가신과 같은 역할로 바뀝니다.”

그냥 ‘영주는 없습니다.’로 정리 가능한 대답이지만, 그가 이렇게 늘려서 설명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본디 말이라는 것은 오해의 여지가 많아서 때론 군더더기가 붙어야 이해하기 좋다. 눈빛이나 마음에서 마음으로 뜻이 통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말이다.

“그럼 영주가 가진 이점은 뭡니까?”

“세금입니다. 기존의 게임이 상점을 통한 세금으로 이익을 얻는 형태였다면 다이너스티는 토지를 이용한 세금으로 수익을 가지게 될 겁니다.”

“그렇다면 성은 어떤 방식으로 짓게 됩니까?”

“성은 골드로 토지를 매입하고 이후에 자재를 수급해서 짓는 형태를 가질 계획입니다.”

“토지를 먼저 매입하고 자재를 수급한다고요?”

“그렇습니다.”

“그래서는 곤란합니다.”

“네?”

이러면 돈 있는 놈들이 자재도 없이 일단 땅부터 사고 알 박기를 시전하면 방법이 없는 형태가 될 소지가 있다.

“땅만 사놓고 그대로 배 째라 하면 우리가 개입할 방법도 없고, 서버는 망해갈 겁니다.”

“아······.”

나는 미처 깜빡했었다는 그의 표정을 보며 말을 이었다.

“차라리 성을 단계별로 나눕시다.”

“어떻게 말입니까?”

“우선, 1차로 낮은 성을 지을 수 있도록 하고 자재와 골드 역시 적게 들도록 합니다. 그리고 이후에 더 높일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거지요. 여기서 토지의 매입은 의미가 없고 딱히 좋지도 않고 의미 역시 없으니 제외합시다.”

“어째서입니까?”

“대표님이 성주라고 해봅시다. 자재도 자재인데 토지를 매입하느라 엄청난 돈을 쓰셨겠지요?”

“네.”

“그런데 바로 수성전에 실패했다고 보지요. 이러면 토지를 매입한 돈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 통째로 다른 길드에 넘긴 셈이 되는군요.”

“맞습니다. 그러니 토지 매입은 지워버리고 자재 만 필요하게 하세요. 또한, 공성에 성공하든 수성에 성공하든 성을 수리할 때에는 반드시 자재가 들어가야 합니다. 없으면 수리 불가입니다.”

“그렇게 하면, 성을 차지했어도 이익이 크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맞다. 이익이 줄어든다. 그래서 다른 개발자들의 시각이 바뀌어야 하는 거다. 나는 이 점을 강조했다.

“그러니까 공성전 자체가 재미있어야 합니다. 수익 때문이 아니라 진짜 재미있어서 하는 콘텐츠로 만들어야 됩니다. 또한, 공성전에 도전하려면 공성 장비와 같은 것에 꽤 많이 투자하게끔 만들어야 형평성에도 맞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길드는 전투 인력과 생산인력. 이 두 개의 연합이 될 수 있도록 하세요. 생산자로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에게도 공성전이라는 이벤트가 자신들의 이야기가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예.”

뒤이어 ‘해당 길드의 생산인력들이 토지의 지분을 받고 영주를 유지하는 동안 성벽 수리를 위한 자재를 수급하도록 한다.’는 조언을 덧붙였다. 여기까지 듣자 길남주 대표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회장님의 고견에 따르면 더욱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겠습니다.”

새로운 구상이 머리에 떠올랐는지 흥미가 가득 보이는 모습이었다.

뭐든지 마무리가 중요한 법이다. 나는 처음의 지적과는 달리 인정과 격려의 이야기로 대화를 끝맺기로 했다. 넷젠에서 준비한 것은 아직 남았을 테지만 일단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본다. 나머지는 더 완성된 후에 보고 판단해도 된다.

“전체적인 구상을 보니까 제가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겠네요. 그럼 다음 보고 때에는 더 만족할만한 성과가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네, 회장님.”

길남주 대표가 나갔다. 나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쭉 기대며 천장을 보았다. 다이너스티와 관련해서 내가 할 일이 어떤 게 남았는지, 혹 다음으로 처리해야 할 안건이 무엇이고 스케줄에는 무엇이 있는지를 검토했다.

‘3분 요리처럼 딱딱 나오면 참 좋을 텐데 시간이라는 게 참 미묘하네.’

도깨비방망이처럼 뚝딱 완제품이 나오거나 시간을 몇 달씩 앞당길 수 있다면 지금 계획한 게임의 결과물을 바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동화에서나 가능하고 사업 역시 딱 하나에만 매달리면 그 프로젝트가 좌초되었을 때의 피해 역시 막대하기 마련이다.

그 때문에 역량이 된다면 다각화하고 다양화해야 옳았다. 개발하고, 서비스하며 투자도 하는 등의 일을 벌이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문제는 이러다 보니 돈은 벌리는데 쓸 시간이 없는 상태에 이른다는 점이었다.

지금만 해도 그렇다. 이번에는 미국에 가서 마다가스칼을 점검해야 하니 말이다.

‘꿈속 미래에서는 비행기라고는 탈 일이 없었는데.’

한국에 연연하지 않도록 글로벌하게 놀다 보니 이제는 비행기를 타는 일이 일상화되었다.

“언제 한 번 날 잡고 자체 휴가를 내야겠어. 밀렸던 게임도 진탕 해버리자.”

꼭 놀고야 말겠다는 각오를 단단히 새기며 나는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103. 마다가스칼

마이코닉스에 와서 새삼 감탄했다.

‘어마어마하게 근면·성실하시네.’

이들의 일 처리를 보면 누구라도 그들이 어떻게 뾰로롱이라는 캐릭터를 아이들의 우상으로 만들 수 있었는지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이지 이들의 노력과 열정은 대단했다.

마이코닉스는 게이머스 포럼이 보유한 모든 업체 중에서 가장 많은 업무량을 소화해내야만 하는 회사다.

발매된 몬스터 프레데터스에 추가될 몬스터와 관련 장비의 그래픽 처리.

‘신과 같이’에서의 배경인 현실의 LA를 게임 속에 그대로 재현하는 일.

새로 개발하는 드래곤 소울과 다이너스티의 아트,

이를 모두 담당하는 채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있다. 그런데 이토록 엄청난 업무량을 소화하면서도 마다가스칼의 캐릭터와 배경에 관한 모든 것을 완성해 놓은 상태였다.

‘속된 말로··· 진짜 개 쩌네.’

애니메이션의 뉴욕, 그 내부의 가상 동물원, 가상의 섬이라는 배경. 여기에 사자, 얼룩말, 하마, 기린과 같은 마다가스칼의 등장 동물들. 펭귄 특전대까지 만들어두었으며 각 캐릭터의 외모와 특성 역시 마음에 쏙 들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다.

새삼 경탄할 따름이다.

“도대체 이 많은 걸 언제 다 만드신 겁니까?”

최종인 대표가 수더분하게 대답했다.

“저희가 게임 그래픽을 주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본래부터 애니메이션을 꿈꿔온 사람들입니다. 게임 아트를 하는 중간 중간에 취미처럼 하다 보니 어느새 이렇게 됐더군요.”

‘맙소사.’

누군가에게는 게임 아트나 애니메이션 아트나 모두 일이겠지만, 지금 이 사람들에게는 ‘애니메이션을 하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게임을 다루다 보니 애니메이션에 관한 것들은 일이 아니라 힐링 타임!’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거룩한 능력자들을 대하는 시선으로 그들을 격찬하고는 말했다.

“이거 개발에 도움을 드릴 게 있을까 해서 왔는데 제가 없었어도 되었겠는데요? 앞으로는 미국에 드문드문 와도 괜찮겠다는 확신이 듭니다.”

“아이고. 회장님. 그런 말씀은 하지 마세요. 딱 정확한 타이밍에 오셨습니다.”

“정확한 타이밍이요?”

“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었는데 이즈음부터 아무런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의아할 따름이다. 만사형통으로만 보이는데 뭐가 문제일까.

“어떤 것 때문에 그러시는데요?”

“여러 방법을 다 동원해 보았지만, 도무지 이야기의 방향을 잡을 수가 없다고 해야 할까요?”

‘엥? 스토리를 말하는 건가?’

애초부터 애니메이션으로 시작한 회사고 나를 만나기 전에는 그것 외엔 전혀 생각조차 안 해본 회사가 마이코닉스다. 이들에게는 당연하게도 스토리를 다룰 작가들이 존재했고 그들에게 이해할만한 시놉시스를 준 마당이다.

‘그런데 스토리가 막힌다니. 말이 되나?’

꿈속 미래의 버젓한 완성품을 들었는데 전문가가 이를 못 살린다니, 믿기 어려웠다.

“스토리의 어디가 문제입니까?”

“그게··· 정확히 말하면 스토리는 나왔습니다. 그 자체로도 나쁘지 않고요.”

“그럼 뭐가 문제죠?”

“장면이 문제입니다.”

“네?”

“스토리로 뽑아낸 분량이 도저히 영화로는 제작할 수 없는 분량이라서요.”

‘대관절 이게 뭔 소리야? 내가 너무 짧게 얘기했나?’

듬성듬성 이야기한 게 문제인가 싶었다.

“얼마 안 되나요?”

“그게 아니라······.”

말을 얼버무리며 질질 끄는 모습이었다. 별로 윽박지르거나 한 적도 없는데 왜 저리들 조심스럽게 나를 대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대답을 들으려면 몇 분은 기다려야 할 것 같아서 먼저 말했다.

“알겠습니다. 일단 제가 스토리를 한 번 보도록 하죠.”

“네.”

후련한 얼굴의 그가 움직였고 비로소 나는 문제의 스토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반대였어. 너무 짧은 게 아니라··· 이건 너무 길다!’

TV 시리즈로 나올만한 스토리 분량.

영화 한 편에 담을 스토리가 아니라 못해도 10화 이상 분량의 TV 시리즈가 될 만큼 두툼하고 묵직하다.

‘애니메이션 영화 산업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건가?’

우선은 이 스토리를 대충이라도 다 읽어 봐야만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마이코닉스 버전의 스토리를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다른 문제와 마주했다.

‘지나치게 긴데··· 재밌네?’

군더더기가 마구 붙어서 쓸데없이 늘어놓은 게 아니었다. 내가 준 뼈대에 아주 맛있는 살코기를 붙여서 먹음직한 요리로 완성하기 딱 좋은 정도로 훌륭했다. 그래서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드는 스토리였다.

‘시작은 같지만.’

동물원부터 동물원 탈출기 등은 원작과의 차이가 없었다.

다만 중간 스토리부터가 문제다.

‘얼렁뚱땅 이야기했더니 바로 드러나 버리네.’

아무래도 얼추 기억나는 스토리를 던져주고 ‘이거면 충분하죠? 만드세요.’ 이런 방식이다 보니 마이코닉스 버전은 동물원을 벗어나 섬으로 가게 되는 이야기 부분이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원래의 마다가스칼에서는 동물원을 탈출한 것은 맞긴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탈출이 아니라 일종의 외출과 같은 개념이었다. 그걸 다시 포획해 온 뒤, 동물보호협회의 활동으로 동물원이 폐쇄되고 아프리카로 보내지는 것이 기본 스토리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인들에게는 동물 보호가 들이 영향력을 갖고 이를 행사한다는 인식과 사회적인 토대가 없었다. 그렇기에 마이코닉스에서는 ‘탈출한 동물들이 사람들을 피해서 다니다가 엉뚱한 배를 타고 여러 에피소드를 거친 끝에 마다가스칼에 안착한다.’는 어드벤처식의 스토리가 나왔다.

영화가 TV 시리즈 분량으로 확 늘어난 게 바로 이 부분 때문이었다.

‘탈출해서 모험까지 하니까 사건과 사고가 훨씬 잦아지는 게 당연해. 이로써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에 생각보다 많은 힘을 준 상황이야. 그런데? 재밌어.’

바로 그게 문제였다.

‘잘라내기에는 아쉬울 만큼 정말 잘 버무린 에피소드들.’

한 편의 영화를 만들려면 선택적으로 장면을 잘라내고 그 장면들을 이어서 적당한 분량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최종인 대표를 비롯한 마이코닉스는 영화판에 익숙하지 않았고 이번이 첫 도전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겁이 났을 것이다. 자칫 성공할 스토리를 자르고 미국에서 망할 스토리를 선택하는 실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런 고민에는 수학처럼 정해진 공식과 정답이 나오지 않는다.

오직 성공과 실패라는 최종잣대로 과정이 재평가된다.

< 마다가스칼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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