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214화 (214/577)

< Dynasty >

“성적과 대학교의 이름만을 위해서 공부하니까 발전이 없는 겁니다. 조금 전에 나그네로크의 개발자들을 예로 들었는데 이번에는 다른 게임인 뉴 온라인을 예로 들겠습니다. 이 게임은 올해 연 매출 1,500억을 바라보는 게임입니다. 참고로 사이버머니가 아닌 현금입니다.”

중요하니까 꼭 짚어준다.

“이 게임을 만든 사람들은 어느 대학을 졸업했을 것 같습니까?”

“어디 무슨 수도대라도 나왔나 보죠?”

“반대입니다. 고졸이거든요.”

“뭐요?”

“대학을 가지 않았습니다.”

집에서 연습했던 대사들이다.

“여러분의 자녀처럼 게임을 좋아했던 사람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게임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이룬 게임이 뉴 온라인입니다. 개발자분들의 연봉은 당연히 모두 억 단위죠.”

다른 이들이 끼어들 틈은 주지 않으면서 경청하기 딱 좋은 속도로 말했다.

“게임을 산업으로 육성시키는 구조가 문제라고요? 아닙니다. 가진 거라고는 인적자원밖에 없는 이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산업을 중독이니 뭐니, 늘 골칫거리로만 보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문제인 겁니다.”

- 짝짝짝!

분위기는 더 악화가 되어가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박수가 우렁차게 터져 나왔다.

둘러보니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인 게임 중독자 측 게이머들만 감동한 얼굴이었다. 이들만 손뼉 칠 뿐이지 나머지는 초상집 저리가라 할 정도였다.

‘역시 씨도 안 먹히는군.’

왠지 미래가 그려진다. 통짜로 편집 당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김요환 선수가 받을 마음의 상처는 얼추 치료되지 않았을까 기대해본다.

“아니! 그럼 학생들에게 ‘넌 공부 못하니까 게임이나 해라!’ 뭐 이러기라도 하라는 겁니까?”

“저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럼 대체 무슨 말을 하신 건데요?”

“당신의 자녀에게 더 관심을 가지고 그 자녀가 잘 할 수 있는 게 뭔지 들여다보시라는 말입니다. 게임에 특출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럼 게임을 더 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죠.”

손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훗날 음담패설을 하다가 공중파에 진출한 방송인이 여기저기 삿대질하는 손가락이 아니다. 안내하듯이 손 전체로 방향을 짚은 것이다.

“저기 앉아 있는 김요환 선수 보이시죠? 우리 회사 소속의 프로게이머입니다. 연봉은 자그마치 2억 5천만 원이지요. 혹, 이 중에서 연봉 2억 5천 넘으시는 분이 있다면 손 한 번 들어보시겠습니까?”

좌중을 훑었지만, 손을 드는 이는 없었다.

이쯤 되니 다들 할 말을 잃었다. 개중에 몇몇은 내가 한 말이 진짜인지 옆에 있는 학생에게 물어보는 사람도 생겨났다.

상식적으로 찾기 쉬울 리가 있으랴. 지금 시기에 한국에서는 연봉 1억을 넘기는 직업군도 몇 되지 않는다. 하물며 2억을 넘는 연봉을 가진 사람이 아침정원에 올 시간이 있을 리 없다.

그때, 정면으로 반박당하고 자녀에게 무관심하며 공부 못하는 것까지 인증하게 된 학부모 대표자 어머니가 내게 따지고 들었다.

“아까부터 자꾸 누가 연봉이 얼마네, 누가 얼마네 하시는데 그러는 당신은 얼마나 되는데 그렇게 당당해요?”

“저요?”

“네! 당신이요!”

“······.”

그때 최대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던 김요환 선수가 처음으로 무너졌다. 그는 이 질문이 그렇게 웃겼는지 입을 가리고 웃다가 나중에는 얼굴을 감싸며 최대한 몸의 흔들림을 막으려 안간힘을 썼다.

‘그나저나 이건 생각 못 했는데.’

낮춰 말하자니 거짓말이고 사실대로 하자니 이것 역시 곤란하다. 에둘러서 표현했다.

“저는 연봉이 크게 중요하지 않은 위치라서···”

“왜요? 말하기 창피한 연봉인가 보죠? 그렇게 잘나가는 몇 사람의 연봉만 이야기하면 우리가 다 수긍할 거라고 생각하셨어요?”

이 어머니는 내가 연봉을 말하지 못하니까 드디어 약점 하나 잡았다. 뭐 이런 표정을 짓고 표독스럽게 몰아세웠다. 하지만 이건 방향을 잘못 잡아도 한참 잘못 잡았다.

“이거··· 참···”

“대답조차 못 할 정도인가 보네요?”

“제가 오너입니다.”

“···네?”

“게이머스 포럼의 주인이 저입니다. 그리고 저희 게이머스 포럼 그룹의 올해 예상 총매출액은 1조 8천억 원입니다.”

“······.”

이전의 매출액을 이야기할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술렁임이 일었다.

MC도 PD도 당황한 얼굴을 보이는 건 덤이었다.

“1조?!”

“방금 조였어? 억 다음에 있는 그거?”

물론 이 매출액에는 케이리버라는 엄청난 규모의 함정이 있지만, 매출 자체로는 사실이다.

“그리고 제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처럼 저 역시 게임에 빠져 사는 한 사람이고 게임에 제대로 몰입한 덕분에 게임으로 돈을 벌 방법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이건 순도 100%의 거짓말이다.

내가 이렇게 벌 수 있었던 건 꿈을 잘 꿔서이고 게임에 빠졌기 때문이 아니라 미래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내뱉은 말에 불과하다.

그래도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것이 있지 않던가.

괜히 찔리는 마음도 들었지만 그래도 이 선택은 잘 한 것이라 믿는다.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우시고 싶은 마음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아까는 ‘얼마든지 떠들어봐라, 이 중독자 새끼야.’였다면 지금은 다른 의미에서의 침묵이 내려앉았다. PD와 연신 사인을 주고받던 MC도 이번에는 제법 주의 깊게 듣는 분위기였다.

“더 가까이에서 자녀들을 지켜봐 주세요. 지금처럼 게임 중독이 문제라고 말씀하시면서 정작 자녀분이 몰입하고 있는 게임이 뭔지도 모르는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방송 관계자들 입장에서는 전혀 달갑지 않은 분위기이겠지만 은근히 내 말에 동조하는 학부모들도 생겨나는 분위기다.

“게임은 절대로 아이들을 망치는 도구가 아닙니다. 마약처럼 중독되는 물질도 아닙니다. 폭력성? 게임이 폭력성을 불러일으킨다면 영화도 모두 폭력물일 겁니다. 오히려 게임을 통한 자극은 스트레스의 해소로 범죄율 감소로 이어진다는 연구결과가 캐나다에서 발표되었죠.”

언변의 힘일까, 1조 8천억 원을 버는 그룹 회장의 힘일까.

“게임을 적이라 생각하지 마시고 한국을 대표하는 하나의 산업으로 여겨주셨으면 합니다. 우리 회사의 매출액인 1조 8천억 중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용은 90%가 넘습니다. 사실 대부분 금액을 외화로 벌어오고 있다는 말이죠.”

답을 알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하고 싶지 않다.

“게임은 우리나라를 병들게 하는 질병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부강하게 해주는 보약입니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내가 나서서 했던 말들이 너무 강했기 때문일까.

이후의 진행은 매우 소극적으로 변했고 결국 MC들도 게이머를 중독 환자로 몰아세우지 못한 채 방송은 끝을 맺었다.

102. Dynasty

【게임 규제는 아직 깊이 생각해 봐야할 문제】

【자녀 방의 TV와 게임기, 학교 성적에 악영향】

아침정원이 방송된 이후 인터넷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제법 시끌시끌했다. 게임과 관련한 기사들이 나온 것은 물론이고 정치, 사회, 경제, IT와 생활 전반에 이르는 온갖 분야에서 말이 나왔다.

‘어쩌라고.’

나는 개의치 않았다. 국내 시장에 연연하지 않는 지킬 수 있는 소신이자 자신감이기도 하다. 하지만 위에서 화끈하게 일을 벌이면 직원들이 난처하기 마련 아니겠는가.

고진환 부문장은 내가 방송에 나가더라도 저런 폭탄을 던져버릴 줄은 조금도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다. 그러다 나중에 기사화된 내용을 보고는 놀라서 사태를 수습하는 중이었다.

“회장님. 미리 언급해 주셨으면 파문이 크게 일지 않도록 저희가 대처할 수 있었을 텐데···”

“거, 뭐 대단한 일이라고 미리 얘기하고 갑니까?”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엄청난 일을 터트리신 건 맞지 않습니까?”

사실 생각했던 것보다 일이 커지기는 했다.

당금 한국의 사회적 분위기는 게임에 대해서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부정적인 효과를 먼저 떠올린다. 그렇기 때문에 기사 대부분은 내가 했던 말 중에 자극적인 부분만을 인용해서 공격을 시작했다.

【돈이면 다 되는가? 돈으로 학부모를 무시하는 기업 게이머스 포럼】

【게임. 한국 수출의 중심인가? 마약인가?】

마치 윤리를 저버린 채 이익만을 따지는 기업으로 만들고 있었다.

‘예상했던 부분이지.’

흔히 하는 착각이 기자가 진실만을 보도하고 정직하다는 거다. 그러나 사실은 다르며 설혹 진실일지라도 어디를 강조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왜곡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건 진짜 생각할수록 웃기네. 이렇게 집중포화를 맞고 악마 취급을 받는데 오히려 국내 매출은 늘어났단 말이야.’

사회적으로 시작된 비판에 게이머들이 대항하기 시작해서 생긴 일이었다. 덕분에 마치 게이머스 포럼이 대항의 깃발을 높이 세우고 유저들을 대표하는 중심축이 된 듯한 모양새마저 이루어졌다. 그 결과로 뉴 온라인과 나그네로크의 유료이용자가 무려 10%나 상승했다.

고무적인 성과였다.

‘그래 봤자 해외 매출과 합치면 늘어난 티도 안 나는 수준이지만, 감정적으로는 충분한 도움이 돼.’

즉, 지금의 분위기는 조금도 불안해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근심 가득한 고진환 부문장에게 말했다.

“스트레스 받지 마시고 대충 대응하세요. 방송에서도 얘기했듯이 우리의 매출은 90%가 해외에서 나는 상황이고 한국을 떠나면 한국이 손해지 우리의 손해가 아닙니다. 애국심은 있지만 부당함까지 감수할 까닭은 전혀 없습니다.”

“그래도···”

“걱정하지 마세요. 한국을 떠나도 한국 법인 하나 정도는 만들어 줄 테니까.”

자기 집에서 출퇴근할 수 있는 거리를 벗어나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이니까 이런 말을 해줘야 안심할 거다.

“언론이 저러는 거야 ‘광고비 좀 줘’라며 떼쓰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런 데에 휘둘려서 돈 주고 그러면 버릇 나빠집니다. 그러니 우리 쪽에 호의적인 기사를 내는 언론에만 선물 조금 보내주고 나머지는 무시하세요.”

“알겠습니다.”

슬슬 정치계에서 똥파리들이 들러붙을 때가 되어가는 것 같다. 어쩌면 다른 회사들에는 이미 붙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들의 수법 모두가 내게는 부질없는 짓에 지나지 않는다.

‘첫째, 내수 시장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는 수익 구조이고 둘째, 국내에 상장한 회사가 하나도 없지.’

케이리버는 조만간 나스닥에 상장될 예정이며 나머지 회사들은 아직 추가 자금이 딱히 필요하지 않기에 당장 상장할 필요가 없었다.

‘한다고 해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나스닥에 상장할 수 있는 신뢰도를 가지고 있고.’

즉, 언제라도 국내를 떠날 수 있고 그것에 아쉬움도 없는 회사가 매년 세금만 1,000억 단위로 내고 있다. 이런 우리를 세무조사니 뭐니 하는 거로 괴롭힌다면 작정하고 들이받아 버린 뒤 미국 기업이 될 요량이었다. 나를 도발한 정치인의 정치생명은 완전히 끊어버리고 말이다.

‘말만 많은 말 잔치에는 더 신경 쓰지 말자.’

고진환 부문장에게 이러한 뜻을 전달한 뒤 해야 할 일을 시작했다.

“이미진 팀장님. 넷젠의 신작 개발에 대해서 보고 받을 거니까 준비하라고 연락하고 이른 시일 내에 미국 지사에 갈 수 있도록 준비해 주세요.”

- 네, 회장님.

‘신과 같이’의 게임 그래픽은 ZBox의 성능을 최대한 활용하여 훌륭한 수준으로 만들고 MOS는 시간이 지날수록 워드Ⅲ에서의 지분을 늘려가는 중이었다.

‘드래곤 소울이야 이제 겨우 기획 콘셉트를 잡아가는 중이라 내가 더 볼 게 없고.’

남은 건 넷젠에서 개발하기로 한 신작뿐이다.

회의를 시작하자 묘한 주제어가 나왔다.

『프로젝트 - Dynasty』

‘다이너스티? 내가 말한 게임이랑 이런 이름이 어울리나?’

의문점이 떠올랐지만 바로 물어보지는 않았다. 이야기를 듣고 질문해도 늦지 않다.

곧 길남주 대표가 말했다.

“회장님이 말씀하신 극한의 자유도와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대해서 정말 많은 고민을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내린 결론이 바로 이것입니다.”

화면이 다음으로 넘어갔다.

“유저들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자유도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거대한 성을 스스로 만들 수 있고, 그 성을 거점으로 영지를 확보해서 영주가 되는 시스템!”

‘성? 영주?’

“여기에 아무리 자신들이 지은 성이라고 해도 힘이 없다면 빼앗기게 되는 현실과 같은 방식이야말로 극한의 자유도가 아닐까 합니다.”

‘아이고.’

확신어린 목소리를 들으며 내심 앓는 소리가 나왔다.

한국 게임사들의 고질적인 문제 중의 하나가 바로 저것이다. 공성전에 너무나도 크게 집착한다는 거다.

‘플레지의 성공 구도에 왜 저리도 연연하냐고.’

한국 개발자들에게 종교적인 수준으로 박힌 고정관념.

그것은 피 터지는 공성전을 만들어줘야만 게임이 성공한다는 믿음이었다.

< Dynasty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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