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시선 >
“누군가가 나를 해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저와 같은 게이머에게 느끼는 거죠.”
안쓰럽게 보는 저들의 시선을 느끼며 김요환 선수가 모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말에 반대쪽의 여성 패널이 우스갯소리를 던졌다.
“아. 우리 같은 사람은 게임도 안 돼요?”
좌중은 그 멘트에 웃음을 터트렸다.
다음 물음은 여성 MC가 했다. 김요환 선수가 아닌 다른 패널에게였다.
“그리고 이게 또 하나의 문제가 되는 것이, 이런 종류는 조직폭력배 쪽과 연결이 된다는 이야기가 있던데요, 선생님?”
“그것마저도 털어버리려고 다닌다는 거 말이죠.”
남성 MC가 거들었다. 그 말에 김요환 선수 옆자리의 남성 패널이 대답했다.
“돈이 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런 요소가 있기는 한데요. 그게 과거 오락실에서 형들에게 돈을 빼앗기듯이 게임에서의 아이템을 빼앗기는 등의 문제가 일어나고는 있죠. 현실 PK라고 해서 게임 때문에 상급생이 하급생을 때린다든지 어른한테 청소년이 맞는 일이 생기곤 하죠.”
두 눈을 감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역시, 진행자도 문제지만 이건 PD도 문제야.’
질문의 힘은 대답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것에서 강력함을 발휘한다. 얼토당토않고 수준 낮은 물음은 그래서 더욱 곤란하다. 저와 관련된 답변을 해야 하며 그럼으로써 답변자도 함께 질이 낮아져 버린다.
김요환 선수가 바로 그 처지였다. 더군다나 문답의 순서가 저렇게 되어버리면 김요환 선수는 사이버머니 1억에 조직폭력배, 현실 PK의 이미지를 몽땅 두르는 처지가 된다.
‘마이크를 확 뺏어서 내가 말해버리고 싶을 정도네.’
꼭 나한테 질문 해주기를 바란다.
간곡하게.
“그럼 여기서 한국 게임 산업연합회의 사무국장님과 전화 연결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보세요?”
- 아. 예. 예.
“지금 방송 보고 계시죠?”
- 예. 보고 있습니다.
“요즘 청소년들에게 게임문화가 보통 문제가 아니네요. 이런 부분에 대해서 게임 시간에 제한을 준다든가 하는 대책 같은 것이 마련되고 있는 겁니까?”
‘헐? 셧다운제가 여기서부터 이야기 나온 거였어?’
학생들의 수면권을 보장해줘야 한다면서 수면시간을 위해 게임에 대한 인권을 박탈해버린 정신 나간 제도. 이 제도는 그 목적부터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론을 근거로 하고 있다.
바로 수면에 대한 권리라는 저 수면권이 문제였다.
‘권리라는 건 이용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자유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 즉, 자야 할 시간에 게임을 한다는 건 수면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누리고 있는 것이라는 의미라고.’
그러니 셧다운은 그 권리를 막아서는 것과도 같고 ‘잠을 자라고!’ 하며 윽박지르는 강압성을 가졌다.
- 현재 게임에 몰두하는 자녀가 염려스러우시겠지만, 게임에 몰입하는 그 자체가 부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건 게임 속에서 자녀가 어떤 것을 체험하고 있느냐 하는 것인데, 그런 경험들은 현실 속에서의 다른 경험과 마찬가지로 어른들에 의해서 걸러질 필요가 있습니다.
“네.”
- 학부모들께서 자녀의 게임 지도를 도울 수 있는 여러 가지 교육적인 부분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수고스러우시겠지만, 학부모님들께서 자녀들의 게임 이용시간을 체크하신다던지 하는 방향으로···
“대응책으로는 너무 소극적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업체에서 우리 학부모님들에게 월급을 주시겠어요?”
기함할 노릇이다.
게임은 게임사에서 강제로 시키는 게 아니라 개개인이 자신의 판단으로 하는 거였다. 이는 마치 술에 중독되는 게 문제가 되어 가족들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하면 주류회사에 월급 달라고 하는 것과도 마찬가지였다.
‘헛소리라는 거지.’
어이가 아득하게 멀리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현장에서 학생들을 관리하는 교사의 입장에서 그동안 게임에 관련되어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학부모님들이나 학생들의 고통으로 책임으로 지어져 왔었거든요.”
그때 김요환 선수 옆자리의 남성이 또 기묘한 소리를 했다.
“그런데 이제 방향을 학부모나 학생이 아니라 게임업체에서 생산자들이 그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에 대한 방법이 교사나 학부모가 아니라 업체에서 나와야 하는 게 아니냐, 하는 생각을 해보거든요?”
그는 게임과 조폭의 연계니 뭐니 이런 것에 대한 문제점을 신랄하게 거론하면서 부정적인 의사를 거듭 보였다.
-그 부분에 대한 문제점은 저희도 잘 알고 있고요. 가장 중요한 건 게임에 대해서 자녀들을 지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툴을 학부모님들이나 교사분들에게 잘 적용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까부터 계속 학부모에게 책임을 지우고 계시네요.”
결국, 계속 제자리를 맴도는 대화가 이어지자 통화를 중단했고, 때마침 한 학부모가 마이크를 잡았다.
“학부모님들이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언제 엄마가 게임 내역들을 다 조사하고 앉아 있겠습니까?”
“그러게요. 계속 학부모와 교사들에게 책임을 이야기하니까 뭘 더 어떻게 할 말이 없네요.”
이런 와중에도 김요환 선수는 인상 한 번을 쓰지 않고 최대한 좋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나로서는 저런 식의 표정관리를 못 할 것이다.
“그렇게 말하기에는 이미 정도를 넘어선 것 같은데··· 학부모님을 대표하는 입장에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물론 학부모가 자녀들이 하는 게임에 관심을 가지는 건 당연하지만, 이미 아이들이 게임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이 구조에서는 한계가 있다고 봐요. 그러니까 게임을 하나의 산업으로 보고 그 산업으로 아이들을 게임으로 보내서 산업을 육성시키고 있는 틀이 문제에요. 그런 부분에서 구조의 틀을 바꾸는 작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쯤 방송이 진행되자 나는 확신이 들었다. 가만히 있으면 정상적으로는 나한테 마이크가 절대로 안 오겠구나 하는 예측이었다. 혹은 오더라도 오물이 한가득 내던지는 상황에 봉착할 게 뻔했다.
이럴 때는 치고 나가는 게 상수다.
“죄송하지만. 잠시 마이크 좀 주실 수 있겠습니까?”
학부모들 쪽과 마찬가지로 게임 중독자들에게도 한 개의 마이크가 배치되었다. 본래는 질문을 받으면 대답하기 위한 마이크이지만 나는 나서서 말문을 열어볼 요량이다. 잠시 후 마이크를 잡고 내가 말했다.
“잠시만요. 제가 얘기를 좀 해도 괜찮겠습니까?”
마이크를 잡고 말을 꺼내자 예정에 없었던 일이었기에, MC도 PD도 당황한 얼굴을 했다. 특히 PD는 나를 무섭게 노려보았고 김요환 선수는 이런 내 모습을 보고는 까무러칠 정도로 화들짝 놀랐다.
가볍게 웃어주고는 MC에게로 시선을 고정했다.
“지금 게임 중독자분께서 나서실 때는 아닌 것 같은데요?”
‘얼씨구? 학부모는 그냥 끼어들어서 말을 해도 되고 난 안 된다는 거야?’
형평성이 어긋나지만, 여기가 기울어진 경기장이라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게임 중독자가 아니라 게임업체의 관계자로 나서는 건 어떻습니까?”
저들이 다시 한번 당황한 얼굴을 보였다. MC가 은근히 PD를 보았고 그의 사인을 기다렸다. 이윽고 무언의 승낙을 읽었는지 내게 질문했다.
“게임업체의 관계자라면 어떤 게임의 관계자이신지?”
“뉴 온라인, 나그네로크, 그리고 아이템 현금거래의 장인 트레이더스 포럼을 운영하는 게이머스 포럼의 관계자입니다.”
게임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공부했다면 놀랄만한 규모의 게임회사다. 하지만 그런데도 놀라는 사람은 게임 중독자 쪽의 사람들과 학생들뿐이다. 이들이 얼마만큼 기본정보조차 알아보지 않았는지 여실히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내 답변은 기대했던 바를 이루어냈다. MC와 PD 간에 무언가가 오갔는지 내게 발언 기회를 주는 쪽으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까지 보시고 말씀하시는 거니까, 이 문제에 대해서 무언가 해결방안을 가지고 계신 거겠죠?”
“아닌데요.”
“네?”
“아니라고요.”
“그게 무슨···!”
장난치는 거냐며 발끈하려다가 꾹 참는 모습이었다. 이를 보고 내가 말을 이었다.
“애초에 문제가 아닌 걸 문제라고 하니까 해결이 안 나는 겁니다.”
“지금 게임이 사회적으로 일으키는 이 많은 문제를 보시고도 문제가 아니라고 하시는 겁니까?”
“역으로 질문해보겠습니다. 과연 어떤 것이 문제입니까? 게임 중독이요? 진심으로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뭐라고요?”
이런 멍청이를 봤나, 하는 표정의 진행자였다. 나는 그로서 대표되는 다른 이들과 시청자들에게 말했다.
“쉽게 말씀을 드릴게요. 아까 자녀분이 게임 중독에 빠져서 문제가 된다고 하신 학부모님?”
지목하자 학부모의 대표랍시고 나섰던 여성으로 시선이 모였다.
“자녀분이 하는 게임의 이름이 뭐죠?”
“게임 이름이요? 그거야 저는 모르죠.”
“자녀가 게임 중독에 빠져서 큰 근심거리가 됐는데 그 자녀가 빠진 게임이 뭔지를 모르신다는 말씀이시군요. 관심이 너무 없으신 거 아닙니까?”
“그게 아니라 언제는 저 게임을 하다가 또 얼마 안 가서 다른 게임을 하고··· 그래서 그래요.”
“알겠습니다. 모두 들으셨죠? 이게 바로 제 답변입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A라는 게임을 하다가 얼마 안 가서 B라는 게임을 하고 또 얼마 안 가서 C라는 게임을 한다고 하였습니다. 특정한 게임이 아니라 이것저것이죠. 왜 다른 게임을 할까요?”
“하나만 하면 지겨우니까 다른 걸 하겠죠.”
“그래요. 바로 그겁니다. 알코올 중독자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소주가 지겹다고 맥주 마시다가 또 맥주가 지겨워졌다고 위스키를 마시는 사례를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한 가지를 하는 게 지겨워서 그만둔다는 건 중독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
“중독 증세는 지겨움으로 끝맺음이 생기지 않아요. 학생들은 과몰입하는 거지 게임에 중독이 된 게 아닙니다.”
“그거나 저거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제가 듣기에는 그냥 말장난 같은데요?”
쉽게 수긍하지 않지만 내게는 상관없는 일이다. 이 방송이 어떤 식으로 진행됐는지 잘 아는 만큼 미리 준비를 많이 했다. 준비해둔 답변 중에서 상황에 맞게 골라서 써먹기만 하면 된다.
“그렇다면 시선을 옮겨봅시다. 왜 우리 아이들이 게임에 과몰입하게 되었을까요?”
“그거야. 게임이 몰입을 하게 만들어졌으니까 그렇죠.”
“단언컨대, 그건 틀렸습니다.”
“틀렸다고요?”
“네. 게임이 몰입하도록 만들어진 건 맞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과몰입하는 건 아닙니다. 아이들이 게임에 과몰입을 하는 건 그만큼 게임 외적으로 받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 말에 학부모 대표자 여성이 끼어들었다.
“학교만 다니는 아이들이 무슨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바로 그겁니다, 어머님. 어머님부터가 그런 생각으로 자녀들을 이해할 마음이 없으시니까 아이들이 과몰입을 하는 겁니다. 학교라는 감옥에 갇힌 기분. 자신과 맞지 않는 공부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기분. 그 모든 게 아이들에게는 스트레스입니다.”
“학교를 감옥과 비교하시는 게 타당하다고 보세요? 그리고 학생의 본분이 공부인데, 목숨 걸고 공부하는 게 뭐가 잘못이죠?”
모두가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에게 되물었다.
“죄송하지만 자녀분이 학교에서 몇 등 정도나 하세요?”
“네? 그건··· 왜 물어봐요?”
“성적을 알아야 공부에 게임이 얼마나 방해가 될지 생각할 수 있어서입니다. 자녀분이 몇 등정도인가요?”
“별로 대답하고 싶지 않네요.”
“감히 추측하건대, 대답을 못 하신다는 건 성적이 우수하지는 않다는 말씀 같군요?”
“그게 다 게임 때문이에요. 게임에 중독된 게 아니었다면 더 좋은 성적이었을 거예요!”
“아니죠. 게임이 아니었어도 딱히 성적이 오르지는 않았을 겁니다.”
“뭐라고요?!”
분기탱천하는 학부모 대표에게 내가 말했다.
“우리 회사의 게임 중에는 나그네로크라는 게임이 있습니다. 올해 매출액 1,000억을 바라보고 있지요.”
게임 이름을 말할 때에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1,000억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모두 놀란 얼굴을 했다.
“이 게임을 만든 우리 개발자들은 게임을 많이 했을까요? 적게 했을까요? 당연히 많이 했을 겁니다. 지금 어머님께서 걱정하시는 자녀보다 훨씬 더 많이요.”
“그럴테죠. 그래서요?”
“게임을 엄청나게 한 우리 개발자들은 전부 명문대를 졸업했습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말이지요.”
분명히 게임이 성적에 영향을 미치긴 할 거다. 하지만 이건 게임이라서가 아니라 공부할 시간을 빼앗아서 영향을 미치는 거다. 99점 받을 걸 97점 받는다던가 80점 받을 걸 75점 받는다던가 하는 정도의 영향이었다.
이제 팩트 폭행을 할 시간이다.
“즉, 게임을 해서 공부를 못하는 게 아니라 어머님의 자녀는 재능이 공부가 아니라서 공부를 못하는 겁니다.”
“이···!”
머리 나쁜 걸 게임 핑계 대지 마!
이런 말이었기에 학부모의 얼굴이 붉어졌다.
‘눈에서 불 나온다는 말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 거야.’
하지만 내친걸음이다. 나야 방송 나와서 더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도 없고 연예인도 아니니 더 부르건 말건 관심도 없다.
“학생의 본분이 공부라고 하셨죠? 맞는 말씀입니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지요. 하지만 수단과 목적이 바뀌었습니다. 대학에 가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자신의 미래 가치를 올리는 공부를 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 학생들이 하는 공부는 무엇입니까? 성적만을 위한 공부입니다.”
할 말을 다 해야겠다.
< 한국의 시선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