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시선 >
화면이 이어졌다.
【이것은 어린 학생이 몰입하고 있는 게임 속 남성 캐릭터입니다. 무차별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죽이고 다닙니다.】
두뇌 활동을 멈춰두고 보면 이상할 게 없다. 말에 따라서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생각하면 얼토당토않은 말이었다.
‘조금 전에 출력되고 있던 게임은 그게 아니잖아.’
확실하다. 카메라 앵글이 화면을 제대로 비추지 않았기에 흐릿하기는 했으나 나처럼 게임 관련업에 종사하거나 여러 가지를 플레이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저건 카트를 이용한 레이싱 게임인 크레이지 카트라는 게임이다.
남성 캐릭터가 무차별 학살을 할 수 있을 리 없다.
‘우와. 하다 하다 이제는 뉴스에서도 사기를 치네. 그런데 방송사도 다르고 시기도 다른데 어째 구도는 영 비슷비슷하다? 혹시 저 기자가 나중에 MBS로 이직하나?’
흐름이 유사하기에 다음 장면 역시 기대된다. 과연 뉴스 역사상 최악의 레전드로 손꼽히는 그것이 나올 것인가.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볼 즈음!
【20여 명의 학생들이 앉아서 게임에 몰입해 있는 또 다른 피시방입니다. 곳곳에 관찰카메라를 설치한 뒤, 게임이 한창 진행 중인 컴퓨터의 전원을 순간 꺼보았습니다.】
드디어 나왔다.
- 어? 어? 아 뭐야?
- 아! 씨X! 이기고 있었는데!
- 어떤 X같은 XX놈이야!
적나라한 욕설 부분마다 자막에서는 X로. 음성에는 ‘삐-!’ 거리며 가린 소리가 나왔다.
당연한 반응이다. 게다가 이기고 있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중에야 전투 중에 꺼지면 재접속해서 전투를 이어갈 수 있지만, 지금 나오는 게임들은 저렇게 튕기는 순간 패배가 되어 버린다. 운이 좋아도 무승부이니 플레이어의 처지에서는 기가 막힐 일이 아닐 수 없다.
【순간적인 상황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곳곳에서 욕설과 함께 격한 반응이 터져 나옵니다.】
침착하기 그지없는 기자의 멘트였다.
‘순간적인 상황변화라. 그보다는 상식적이고 반사적인 대응이 아닐까 싶은데.’
후일 조롱의 패러디가 나오는데 그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애들이 문제였으니 어르신들로 대상을 바꾸는 거다. 경로당에서 장기를 두고 있는데 지나가던 이가 그 장기판을 확 엎어버린다.
그 뒤에 ‘이런 호래자식!’으로 시작하는 욕설 뒤에 ‘순간적인 상황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라는 기자의 멘트를 써먹는다.
낚시꾼들이 한창 물고기와 씨름을 벌이다가 물고기가 이제 물 위로 올라오는데 누가 갑자기 그 낚싯줄을 끊어버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즉, 저 기자의 행동은 난동이고 깽판에 지나지 않는다.
‘전에도 황당했지만 다시 보니까 더 한심하네. 저런 걸 실험이랍시고 하다니.’
바짝 마른 웃음이 입을 비집고 나왔다.
그때 TV 화면이 뚝 꺼졌다.
‘응?’
고개를 돌려보니,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색한 표정으로 서로만 보고 계신다.
“커흠. 요즘은 뉴스도 볼 게 못 되네. 그치 여보?”
“사과 말고 다른 간식을 먹을까요?”
무슨 말이라도 하시는 모습이 아무래도 자식이 게임을 만드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으니까 이 뉴스를 불편해할 거로 생각해서 꺼버리신 것 같다. 나는 아니라며 말했다.
“그래도 뉴스는 봐야죠. 뉴스에서 이런 걸 보여줘야 저도 어떻게 대처할까를 생각하는 거 아니겠어요?”
“하지만······.”
“정말로 괜찮아요.”
부모님의 생각과 달리 나는 딱히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이 나라에서 게임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단지 내 예상보다 조금 빠르게 뉴스가 나왔을 뿐이지 상처가 될 일은 아니야.’
덧붙여서 한 가지를 반성하게 해주었다. 내가 지금까지 해온 일 중에 미처 잊어버리고 있던 초창기의 바람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한국에서 게임이 가진 이미지를 바꾸는 것.
‘게임만 열심히 만들어서 팔았지 이쪽을 소홀히 했었어.’
진짜 부자는 당신이 자는 중에도 돈이 불어나는 이를 말한다, 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재산의 규모는 물론이거니와 시스템 하나를 쥐고 있는 만큼 부자가 틀림없었다. 그러니 가속도가 붙은 돈벌이에서 살짝 방향을 틀어보는 것도 좋을 성싶다.
‘부정적인 이미지를 깨는 데에는 어떤 방법을 써야 할까?’
오늘은 잠들기 전까지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뜻이 있는 곳에는 길이 있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이 ‘간절하게 바라면 우주가 도와준다’는 행운론적인 발상이나 긍정적인 사고방식의 효과로 보지 않는다. 똑같은 일상에서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니 그와 관련된 요소가 발견되었다는 의미로 본다.
한국에서 게임이 갖는 부정적인 이미지 타파. 이를 위한 실천적인 행동.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의 해답 역시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게임 중독자들을 초청해서 함께 솔루션을 찾아보는 생방송 프로에 제가 출연했으면 하신다는 말씀인 거죠?”
- 네. 그렇습니다.
뜨고 싶어서 방송에 출연하려는 이들과 다르게 나 정도 되면 알아서 연락이 온다. 연예인도 아닌 만큼 고사하고 지금까지는 깔끔하게 무시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중에 하나가 마음을 달리 먹으려는 내 귀에 들어왔다.
플레지를 통해서 접촉해 온 이 방송은 다름 아닌 ‘아침정원’이다.
주부들이 매우 즐겨보는 방송으로서 국민방송 급이며 친숙한 진행자들이 나온다. 하지만 나 같은 게이머들에게는 다른 의미로 기억에 남았다. 바로 김요환 선수를 초청해서 제대로 망친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이것들이 정신머리가 있나? 내가 무려 회장인데 나를 초대하면서 게임 중독자로 넣는다고? 내가 빌 게이트랑도 만나고 세계에서는 꽤 인정받는 편인데 한국에서는 이런 취급이라니?!’
어처구니가 없을 따름이다. 진행자들의 잘못인 줄 알았는데 이건 아예 총체적인 난국으로 보인다.
그러다 문득 생각 하나가 스쳤다.
‘설마 게임방 전원을 내린 것처럼 이 방송도 확 당겨서 이번에 나오는 거 아니야?’
시기가 달라진 만큼 왠지 그럴 법도 했다. 나는 결정하고는 말했다.
“알겠습니다. 출연하도록 하죠.”
방송 출연 날짜와 시간 등을 확인한 후 전화를 끊었다. 뒤이어 창단 시절부터 지금까지 우리 게임단의 매니저를 맡은 박민희 매니저에게 전화 걸었다.
“민희씨. 저 윤태식입니다.”
- 네! 회장님!
한껏 긴장한 목소리라 들렸다. 회장 직함을 달기 전에는 나름대로 친하게 지냈는데 그 이후에는 한껏 경직된 모습을 보이는 그녀였다.
‘배경이 갖는 아우라 같은 건가?’
호칭은 물리적인 힘을 가진 것이 아님에도 보이지 않는 힘을 분명하게 가지고 있는 것 같다.
- 혹시 저희 쪽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아니요. 그런 일 없습니다. 혹시 김요환 선수에게 무슨 방송 섭외 같은 거 들어온 게 있나 해서요.”
- 섭외라면··· 아! 있어요! 다음 주에 아침정원에 출연하기로 했습니다. 홍보에 도움이 될 것 같기는 한데 조만간에 리그가 있어서 고민 중이었던 부분이죠.
‘예상대로군.’
프로 선수에게 방송 출연보다 중요한 건 대회에서의 성적이다. 게다가 자신에게 도움은 조금도 안 되고 손해만 보게 될 이런 방송은 더더욱 말이다.
“방송보다는 리그 준비를 하는 게 더 낫지 않겠습니까?”
-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김요환 선수가 반드시 출연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서···
“그래요? 김요환 선수와 지금 통화할 수 있을까요?”
- 넵! 바로 바꿔드리겠습니다. 요환아~! 회장님 전화!
달그락 소리와 함께 박민희 매니저의 큰 목소리가 들렸다. 어찌나 크고 다급한지 전화 너머로 들려온 소리임에도 귀가 따가울 정도다.
우렁찬 부름에 김요환 선수 역시 재빨리 화답했다.
- 전화 바꿨습니다.
허겁지겁 달려온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숨 고를 시간도 줄 겸 살짝 늦게 말했다.
“요환 씨. 방송에 나가신다고요?”
- 네.
“그 방송이 어떤지는 알고 있으십니까?”
- 게임 중독에 관한 토론을 하고 관련한 솔루션을 찾는 방송이라고 들었습니다.
‘아이고. 이건 그냥 그런 방송이 아니야.’
게임에서는 여우처럼 약삭빠르게 전략을 짜서 싸우는 사람이 이런 곳에는 순진한 모습을 보였다. 좋아하는 선수의 흑역사를 만들어주고 싶지는 않기에 우선 그를 진창에서 빼주기로 했다.
“이 프로는 게임의 긍정적인 방향을 찾아서 해결책을 만들려는 게 아닙니다. 김요환 씨를 초대한 이유는 김요환 씨를 게임 중독자의 대표자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 중독자에다가 그 대표라고요?
“방송의 취지를 짧게 줄이면 ‘게임은 악이고 그런 악을 처단할 방법을 찾자.’는 프로입니다. 이런 방송에 나가서는 좋을 게 하나도 없습니다.”
내 말에 잠시간의 침묵 후 그가 대답했다.
- 회장님. 죄송한 말이지만, 그런 거라면 더욱 나가고 싶습니다.
“왜죠?”
- 저는 한국의 게임이 더욱 발전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방송이 게임을 잘못 알고 있다면 그들에게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나 같은 사람은 게임을 통해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습니다.
단단하게 각오를 보였다. 그 말에 나는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사람이었지. 그래서 내가 팬이 됐었고.’
성공에 대한 집념보다 돋보이는 인간미. 그의 이런 점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현실은 바람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김요환 선수의 각오와는 다르게 아침정원에서는 그가 저런 말을 할 기회 자체를 주지 않을 것이다. 실패가 시작부터 보장된 도전이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목소리에 담긴 진한 감정 때문에 더 말릴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우리 같이 잘 해봅시다.”
-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장님.
김요환 선수는 같이 잘 해보자는 내 말의 의미는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
‘그냥 게임의 이미지를 바꾸자는 그런 의도라고 생각하겠지.’
그래서 더 괜찮다. 나도 나간다고 하면 깜짝 놀랄 것이 기대되니 말이다.
*
기다리던 일주일이 지나고 아침정원의 촬영 스튜디오 앞에 도착했다.
부담감 따위는 전혀 없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온다고 자랑하기에는 너무나도 커버렸거든~ 이게 무슨 일생일대의 도전도 아니고 말이야.’
느긋하게 관람 모드로 구경했다. 한 쪽에는 다수의 학부모와 학생들이 있었고 다른 한 쪽에는 나를 포함한 일명 ‘게임 중독자’들이 대기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런 우리를 보는 눈빛은 무슨 브라만이 불가촉천민이라도 보는 듯했다.
패배자, 인생 포기자를 보는 듯한 경멸 수준이었다.
‘기분이 조금··· 그렇다?’
나중에 유명해지는 인터넷 명언 중에 ‘이유 없이 너를 미워하는 이가 있다면 미워할 이유를 직접 만들어 줘라!’가 있는데, 확 실천해버릴까 싶을 정도의 시선이었다.
그즈음 스태프가 말했다.
“자. 자. 방송 시작하겠습니다. 학부모님과 학생들은 왼쪽, 게임 중독자분들은 오른쪽입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게임 중독자로 불리며
그냥 그게 당연한 줄 아는 거다.
이런 배경에서 어떤 식으로 방송이 진행될지는 불을 보듯 뻔했다. 예상했던 그대로 이어졌다.
“요즘 게임 중독이 사회적으로 큰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바로 이 게임 중독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방송은 시작부터 김요환 선수에 집중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저 게임중독자로 참여한 여러 패널과 인터뷰를 통해서 게임 중독이 얼마나 개인의 삶에 악영향을 끼치는가에 더욱 집중했다.
‘그래서 더 나쁘지.’
이렇게 악영향을 끼치는 게임으로 시선을 먼저 고정한 후에 김요환 선수를 그 대표자로 지목하려는 속셈이니까.
이윽고 진행자의 멘트가 이어졌다.
“그럼, 게임을 직업으로 삼고 계시는 분이 오셨으니까 이분에게 질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메인 MC의 시선이 김요환 선수에게 향했다.
“게임을 직업으로 삼는다고 하셨는데요. 그러면 거의 프로게이머와 다를 바 없지 않습니까?”
“다를 바 없는 게 아니라 프로 게이머가 직업 맞습니다.”
“그러면 김요환 선수의 사이버머니도 아까 저쪽의 게임 중독자분의 말처럼 1억이 넘겠군요?”
남성 진행자의 말에 여성 진행자도 거들었다.
“에이. 프로게이머니까 1억 이런 건 새 발의 피이지 않을까요?”
MC도 문제지만 방송 PD가 더 문제다. 김요환 선수도 이 황당한 질문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서 어색한 웃음만 짓고 있었다.
다행히 이곳에는 한국콘텐츠진흥원에 관련된 인물도 함께하고 있었고 해당 관계자가 대신 대답을 해주었다.
“이분은 그런 거랑은 다르죠. 여기는 승률로···”
“아 승률로요.”
그 말에 바로 이해했다는 듯 ‘아!’하며 남성 MC가 질문했다.
“그렇군요. 그러면 그런 위치까지 올라가는 동안 정말 많은 게임을 하셨을 텐데, 그런 위치에 오르고 나면 그야말로 현실에서처럼 누군가가 나를 해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같은 것도 느껴지고 그러십니까?”
내가 보기에는 블랙코미디였으나 다른 이들에게는 아니었나 보다. 우려 가득한 표정에서 나오는 진지한 걱정의 물음을 MC가 하고 순식간에 김요환 선수는 걱정을 한 몸에 받는 위치가 되었다.
< 한국의 시선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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