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211화 (211/577)

< 한국의 시선 >

나는 아는 사람만 아는 두 손을 하늘로 뻗는 제스처를 보였다. 태양빛에 대한 찬미의 자세였다.

“이 게임은 배경부터 스토리라인까지 전부 어두운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게 될 겁니다. 말 그대로 세기말이니까요. 하지만 그런 게임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유일한 존재. 거기에 아스테라와는 달리 주인공의 강력한 우군이 되는 존재. 이런 NPC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유저들은 암울한 분위기에서 유쾌한 힘을 받게 될 겁니다.”

실제로 원작에서 가장 큰 인기를 누리는 NPC가 바로 솔라리다. 그러니 토치니 아스테라니 하는 잡것들보다 훨씬 중요한 NPC라고 할 수 있다.

기획자들은 내 설명을 듣고도 솔라리에 대해서만큼은 의구심을 풀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있건 없건, 내가 말했으니 이 다섯 NPC는 무조건 존재하게 될 것이다.

‘내가 회장이니까. 오너가 꼭 넣으라고 했는데 누가 감히 뺄 수 있겠어?’

이게 바로 권력의 맛이다.

자주 쓰면 중독 돼서 아껴서 써야 하는 마약이기도 하다.

*

11월이 되면서 쏘우리스트가 압도적으로 북미 박스오피스의 1위를 차지했다는 희소식이 전해질 즈음의 일이었다.

“제목이 드래곤 소울?”

방정식 AD.

이제는 PD가 된 그가 기획안을 들고 내 사무실을 찾았다.

“네. 옛 용들을 물리치고 광휘의 시대를 열었지만, 고대의 용들은 멸망하지 않았고 세계에는 그들의 강대한 소울이 잠들어 있다는 설정을 토대로 지어진 명칭입니다.”

“설정과 똑같은 제목이군요.”

“가장 적합한 듯하여 그리 정했습니다.”

‘이건 마냥 아부로 보기에는 조금 그러니까, 오케이!’

긍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기획안을 읽었다. 그런데 적힌 설정을 확인하다 보니 영 석연찮은 느낌이 왔다.

“스타일이 디몬 메이 크라이처럼 느껴지는군요.”

“역시! 영상이 아니라 그저 그림과 글뿐인데도 바로 알아보시는군요.”

‘이런 멍청이 같으니라고. 이러면 참견을 안 할 수가 없잖아. 자율성 보장하다가 개박살 날 상황이니까.’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이야기한 것인데 방정식 PD는 칭찬으로 잘못 이해한 것 같다.

디몬 메이 크라이.

일명 ‘디미크’라고 불리는 이 게임은 작년 8월에 출시한 작품이다. 판매량이 저조해졌던 게임스테이션2의 판매량을 크게 치솟게 만든 효자 게임으로서 3D 액션 RPG의 방향을 제시한 걸출한 완성작이기도 하다.

수많은 3D 액션 RPG들이 바로 이 게임에 영향을 받았을 정도로 대단한 게임!

‘그냥 주인공이 검과 총을 같이 사용만 해도 디미크를 베꼈다는 말을 들을 정도니까.’

그러니 ‘디미크’의 냄새가 난다는 내 말을 방정식 PD가 ‘대박의 냄새가 난다’는 말로 오해할 수도 있기는 했다.

‘갑갑하기는 하지만 일리는 있었군.’

고딕 양식의 배경에 악마를 잡는다는 콘셉트, 쉽지 않은 게임이라는 공통분모도 함께 하니 마냥 방정식 PD가 방향성을 잘못 짚었고 멍청하다고 탓하기도 어렵다.

이는 어찌 보면 다행이기도 했다. 조금만 틀어지면 딱 ‘디미크’의 짝퉁으로 빠져들 수 있었는데 사전에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PD님.”

“네.”

“우리가 만들 게임은 디미크와는 완벽하게 정반대의 길을 걷게 될 게임입니다.”

“네?”

그제야 낌새를 눈치챈 그가 싱글벙글한 기색을 지웠다.

“디미크는 스타일리쉬 액션 혹은 익스트림 컴뱃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드래곤 소울은 전혀 스타일리쉬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 모든 게이머가 디미크의 스타일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대세가 된 장르인데···”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들이 간 길을 무조건 따라가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에게 차근차근 일러주었다.

“우리는 플레이어가 아닌 개발자이며 제작사입니다. 대세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흐름을 만들고 선도하는 위치에 있어요. 디미크가 나왔을 때는 다른 스타일이 대세였으나 그들이 성공하며 아류작들이 나왔듯이 우리 역시도 같은 일을 하면 됩니다.”

흔히 창의력과 도전정신을 벤처기업이나 중소기업에게 강조하는데 이건 틀렸다고 본다. 리스크가 큰 혁신적인 도전은 대기업에서 벌여야 옳다. 튼튼한 자본이라는 맷집이 있어서 몇 번은 실패해도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에 중소기업이 사활을 건 도전은 리스크가 어마어마하다. 실패하면 바로 폭삭 망하는 거다. 그러니 크면 클수록 안정보다는 위험을 감수하는 쪽이 사회적으로는 옳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이런 말을 하는 나부터도 사실은 거짓말쟁이니까. 남들 눈에 비칠 때나 혁신이고 도전이지 사실은 꿈속 미래에서 안전하게 성공한 루트만 따라 걷고 있잖아. 대신, 지금의 이 생각은 꼭 잊지 말아야지. 돼지처럼 뚱뚱한 공룡이 되면 그건 수치스러우니까.’

조소가 배어 나왔다. 말을 하고서 스스로 참 우습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반면에 방정식 PD는 내 설명에 큰 충격을 받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뒤이어 그는 바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아닙니다. 생각해보니까 제가 충분하게 설명 드리지 못한 것 같다 싶네요. 지금부터 전체적인 전투의 콘셉트를 설명해드릴 테니까 다시 기획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이번에는 절대 실망시켜 드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한없이 진지한 그에게 내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소울류 게임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현실적인 전투다. 검을 휘두르거나 달리거나 회피 동작을 하면 스테미너가 소모된다.

“활력을 모두 사용하면 별다른 동작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불편함이 난도를 증폭시키고 현실성을 부여합니다.”

또한, 전혀 스타일리쉬 하지 않고 졸병 수준의 몬스터와도 1대 1이 아닌 2대 1이 되는 순간, 전투의 긴장감이 부여된다. 검 한 번에 막을 형성하거나 32개의 초식을 날리는 등의 허구 없이 오직 실전과도 같은 동작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면 수적 열세는 전술적으로 무조건 피해야 한다.

“이런 부분에서는 몬스터 프레데터스보다도 훨씬 현실감을 부여하게 되는 셈이지요.”

스타일리쉬 게임과 비교하자면 한참이나 느리고 또 답답한 진행이다. 그러나 제대로 치렀을 때는 그만큼 보람차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내가 꼼꼼하게 방정식 PD를 이해시키는 중점 요소가 바로 이것이었다.

“주인공의 동작은 절대 화려할 필요 없습니다. 딱 절제된 동작으로 현실적인 이펙트만 주세요. 다만, 치명타와 낙하공격 딱 이 두 가지에만 특별한 쾌감이 느껴지도록 하는 겁니다.”

회사에서 최고의 이펙트를 자랑하는 김대익의 손에 이 게임이 들어간다면 내 예상을 한참이나 벗어나는 엄청난 연출이 생겨날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실패다.

손맛은 더 뛰어나겠지만 그랬다가는 소울류 특유의 게임성을 잃어버린다.

‘생각난 김에 김대익 사원의 작업도 확인하러 가봐야겠어.’

마음 한편으로는 불안하면서도 김대익을 이 프로젝트에서 빼지는 못했다. 이유는 보스의 공격 모션과 이펙트는 인상적일 만큼 화려할 필요가 있어서다.

방정식 PD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을 정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며 내 말을 들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이해한 거 같으니까 한동안은 소울류 보다 다른 것들에 시간을 쓸 여유가 생기긴 하겠어.’

한 시름 놓았다.

101. 한국의 시선

퇴근 후 우리 집 거실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흔한 일상은 소파에 앉은 채, TV를 보고 계시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태식아 사과 먹어라.”

아버지 옆자리에 앉아서 달곰한 사과 한 조각을 입에 문 채 뉴스를 보는 것. 이건 어떻게 보면 효도라는 이름의 비즈니스와도 같은 행위였다. 사춘기 때 생기는 거리감 때문이다.

‘무슨 다큐에서는 그 나이 때의 반항심은 독립해야 할 때라서 그렇다던데.’

인류학적으로는 신체적으로는 제 한 몸 건사할 나이가 왔고 부모의 품을 벗어나는 시기가 왔기에 이런 심리를 보이는 거라고 했다. 물론, 그런 식의 근본적인 사고방식보다는 취향과 성격 차이 때문으로 받아들여지지만 말이다.

하자고 하는 대로 따르던 아이가 자기주장을 대놓고 하게 되는 식이었다.

그런 면에서 오후 8시는 아버지와 내가 공감대를 갖고 TV를 선택할 수 있는 유용한 시간이었다.

‘뉴스가 하거든.’

한 시간 빠른 뉴스라는 슬로건으로 나온 이 방송은 우리 집안의 평화에는 아주 큰 역할을 해 주었다. 아버지는 매일 뉴스를 보셔야 하는 분이고 어머니와 태희는 다른 채널을 보고 싶어 한다.

즉, 한 시간 빠른 뉴스는 우리 가족 모두의 니즈를 채워줄 수 있는 혁명적인 역할을 한다.

그런데 오늘 방송이 문제였다.

‘아이고.’

훗날 두고두고 문제가 되는 바로 그것이 나오고 있었다. 향후 10년간 두고두고 패러디가 만들어지는 소스가 되는 원 방송이자 소위 말하는 ‘폭풍까임’을 당하게 되는 바로 그거다.

【일부 인터넷 게임의 폭력성이 초등학생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름하여 ‘묻지마 살인’식의 게임인데요. 이런 게임 때문에 현실에서까지 폭력 범죄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자막으로 딱 뜨는 메시지는 ‘잔인한 게임이 아이들의 폭력성을 키운다.’였다.

【청소년들이 요즘 인터넷에서 가장 많이 즐기는 게임 중 하나입니다. 활을 쏘아서 죽이거나 칼로 베어서 사람을 죽이는 잔인한 전투 게임입니다.】

뉴스의 화면에는 뉴 온라인이 집중 조명되면서 나왔다.

‘미래가 바뀐 건가? 미묘하네. 이게 지금 시즌에, 이 채널에서 나올 리가 없는데.’

훗날 MBS에서도 8시 뉴스를 하게 되지만 지금은 오직 SBC에서만 8시에서만 한 시간 빠른 뉴스를 방송한다. 즉, 내가 보는 건 SBC 채널이다.

‘원래 이 문제의 보도는 MBS에서 했고 2010년은 지나서 나왔었어. 너무나도 유명해서 이건 모를 수가 없을 정도였지. 그런데 벌써 나왔단 말이지? 저러다 알통 굵기로 보수와 진보마저 구분하려고 들면 대대로 망신일 텐데.’

아무래도 내가 성공 가도를 달리며 국내의 게임 산업이 훨씬 빠르게 성장했고 그 탓에 부정적인 시선 역시 더욱 빠르게 집중된 모양이었다.

계속되는 기자의 목소리에 집 안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가족은 팔짱을 끼고 슬쩍 내 눈치를 보았다. 한편, 나는 저게 얼마나 우스운 파문을 일으킬지 알기에 코미디를 보는 기분으로 감상했다.

【게임이 인기를 끌면서 최근 인터넷에는 이 게임을 따라 한 사진이 자주 올라오고 있습니다.】

‘조잡하네, 조잡해. 이거도 원래는 따라한 동영상이 올라오고 그러는 거였는데.’

지금의 피처폰으로는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리기 힘들다 보니 패러디라고 나오는 것들 대부분은 사진에 불과했다. 덕분에 뉴스에는 여러 가지 패러디 사진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출력되는 중이었다.

【초등학생들이 만든 것 같은 사진입니다.】

【아무 거리낌 없이 친구를 향해서 칼을 휘두르며 즐거워합니다.】

‘어쭈? 저건 우리 것도 아니네?’

뉴 온라인은 어두운 분위기를 많이 풍기는 덕분에 초등학생들에게는 인기가 별로 없다. 그 탓에 지금 영상에 출력되는 패러디는 뉴 온라인이 아니라 바람의 왕국이었다. 저러면 앞뒤가 맞지 않는 셈이 되지만, 게임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뭉뚱그리면 그만인가 보다.

‘어차피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다음에는 모자이크된 물건이 나왔다.

【고등학생들의 영상에는 실제 칼까지 등장했습니다.】

웃음이 나왔다.

‘학생들이 무슨 돈으로 제대로 된 코스프레를 하겠어? 게다가 한국의 지금 분위기는 그런 걸 하면 찐따 취급받고 그런다고. 그러니 그냥 제일 비슷한 칼을 들고 했을 뿐이야.’

나중에야 연예인도 ‘덕후입니다.’라고 말하며 인증하고 이것이 취향으로 받아들여지지만, 그건 적잖은 시간이 흐른 뒤의 이야기였다. 한국에서 장난감과 만화, 게임은 아직도 애들의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책을 읽씜척?, 라는 방송도 있었지.’

마치 책을 읽지 않으면 수치스럽고 부끄럽게 만드는 예능으로 기억한다. 물론, 독서는 좋은 취미이고 책을 읽으며 얻는 긍정적인 효과 역시도 매우 많다. 하지만 독서만을 강조하고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식의 방식은 달갑지 않다.

살면서 거듭 느끼게 되는 것은 ‘이것도 좋고 저것도 나쁘지 않다’와 ‘사람에게는 각자의 이유가 있다’였다. 개인이 다르고 성향에 차이가 있듯 각자의 선택을 존중해야 하는데 우리는 아직 국가주의적인 사고가 강한 것 같았다.

그러다 나 역시 인정하게 되는 지적이 나왔다.

【서울에 위치한 한 피시방. 게임에 한창 열중하고 있는 초등학생들에게서 입에 담기도 힘든 온갖 욕설이 튀어나옵니다.】

이건 반성하자.

‘솔직히 어른들의 잘못이 있어.’

초등학생들의 언어는 인터넷의 발달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전에는 욕설을 배워봐야 주변 친구들이나 중학교에 올라간 형들에게서가 고작이다. 반면에 인터넷이 생긴 이후로는 어른들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쉽게 욕설을 접할 수 있게 되어버렸다.

‘더 시간이 지난 후에는 어른들보다 훨씬 창의적인 욕설을 사용하는 초등학생들이 탄생하지만 그건 아직도 더 후의 이야기니까.’

지금 나오는 쌍욕들은 우리 같은 어른의 탓이 맞다.

< 한국의 시선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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