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래곤 소울 >
내가 기억하는 바로 정규 게임으로 개발해서 나온 게임은 모두 실패하게 된다. 외국에서 몇몇 게임이 성공했던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이들조차도 두타의 개발자들이 참여하거나 해당 개발자의 허락을 얻고 정신적인 후속작 개념으로 나온 것들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라졌지. MOS라는 장르와 LON이라는 게임을 우리 쪽에서 선점했으니까.’
꿈속 미래에서 나름대로 명성을 구가했던 그 게임들은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잘 팔리고 말고의 성공을 떠나서 나올지 말지조차 말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사용해 온 치트키를 쓰면 된다. 미래를 명확하게 안다는 점이었다.
‘대박 게임이 어떤 건지 명확하게 알고 있으니까 그 방향으로만 짚어서 가면 된다.’
물론 사람들은 나 빼고 다 바보가 아니고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다. 내 행보에 영향을 받아서 LON을 보고 두타의 관련 개발자들이 더욱 빠른 움직임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얼마나 빨라지던 나는 그보다 두 발자국은 더 내디딜 것이다.
그거면 된다.
“이제 이해하신 거로 알겠습니다.”
“예! 회장님.”
‘다음으로 뭘 해야 하더라.’
할 일이 많다. 그런 관계로 성주환 팀장을 내보내고 새로운 인물들을 사무실로 불러들였다. 오늘 만나서 대화하는 인물 중에 단연코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었다.
“오늘 종만씨와 여러분들을 이곳에 부른 이유는 새로운 게임을 개발하기 위해서입니다. 정확하게는 기획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신작게임이요?”
이종만.
운동과는 거리가 먼 전형적인 책상머리 스타일의 공붓벌레 형 남자. 하지만 나를 비롯하여 그를 아는 이들은 매우 많았다. 이름 대신 ‘본토행티켓’이라는 닉네임으로 말이다.
‘이 사람도 지금의 게이머스 포럼이 있게 만든 중요한 능력자라고 할 수 있지.’
든든한 심정으로 보는데 함께 들어온 몬스터 프레데터스의 방정식 AD가 내게 물었다.
“외람되지만 회장님께서 구상하시는 게임이 어떤 게임인지 질문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가장먼저 관심을 보이는 그는 몬스터 프레데터스에서 아트 디렉터의 역할을 담당한 인물이다. 하지만 본래 방정식의 포지션은 아트가 가능한 개발자다. 그래서 이번 신작의 PD를 맡길 요량이었다.
‘묵직한 판타지의 배경을 그리는 건 이만한 사람이 없기도 하고.’
한국은 점점 가벼운 아트에 익숙해져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감성을 자극하는 신파와 한 맺히는 정서에 묘하게 연연하는 탓에 전체적으로는 가벼우면서 가슴만 무거운 기이한 느낌을 준다.
이를 한국적인 특색이자 개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름 유니크한 방정식 AD가 제격이지. 무거운 중세의 분위기를 잘 살려달라고.’
질문을 받았으니 답변해줄 차례다.
내가 말했다.
“굉장히 어두운 분위기가 물씬 나는 시대. 그 시대의 종말을 바라보는 세상이 배경인 중세 판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세계의 종말이 아닌 시대의 종말입니다.”
“시대의 종말이요?”
이는 조금 다른 의미이기는 하지만 공룡의 멸종과 같은 주제다.
백악기를 풍미한 공룡이 멸종했다고 지구가 멸망한 건 아니다. 단지 공룡은 더는 지구의 주인으로 남을 수 없었고 다음 세대의 생명체가 주인이 된 것일 뿐이다. 달이 차면 기운다는 말이 있듯이 문명의 번성과 단절이라는 순환을 다루고 그것이 주제가 될 것이다.
‘나중에는 공룡은 죽지 않았다! 우리의 곁에 치킨으로 남았을 뿐이다! 공룡 치킨! 이라는 소리도 나온다지만. 공룡 세상에서는 털을 입힐까 말까, 공룡 디자인을 사실대로 바꿀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결국은 파충류로 찍었다고도 했고. 하긴, 털이 있으면 왠지 덜 무섭다니까.’
잠시 객쩍은 생각을 해보았다.
‘어쨌건! 보통의 게이머들은 그냥 세상의 종말처럼 느끼게 되겠지만 제작자들은 그러면 안 돼.’
착각하지 말라며 다시금 짚어줬다. 시대와 세계의 차이를 다시금 강조했다. 이를 듣고 메인 스토리를 담당하게 될 이종만이 눈을 빛냈다.
“굉장히 묵직한 이야기와 배경이 필요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흥미를 제대로 돋운 모양이다. 지금까지 작업해온 것을 그가 검토하듯이 내게 물었다.
“혹시 이번에도 염두에 두신 스토리가 있으십니까?”
물론이지만 전부 지시하면 직원이 창의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법이다. 나는 적당히 아울러서 말했다.
“있기는 합니다만, 무조건 ‘이렇게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방향성 정도만 제안하는 정도이니 너무 제가 말하는 스토리에 집착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는 몬스터 프레데터스와 샤이닝 로드를 개발하면서 얻은 깨달음이다.
이전에는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게임을 100% 그대로 재현해내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몬스터 프레데터스와 샤이닝 로드의 성공을 보면서 그 생각을 바꾸었다.
‘성공하는 게임은 기본적으로 성공할만한 특성을 가졌고 그걸 따라갈 필요는 있지. 그러나 그 필수 요소 외에는 각 개발자마다 특성이 존재하고 이를 맞춰주는 게 더욱 중요해. 이걸 못하면 같은 땅에 씨앗을 뿌려도 오히려 졸작이 탄생하게 될 수도 있는 거야.’
하나의 성공작이 나타나면 여기저기서 해당 게임의 아류작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 중에는 아류작으로 나와 당당하게 새로운 브랜드가 되는 게임이 있는가 하면 카피만 했을 뿐 쓰레기로 전락하고 만다.
나는 이 차이를 고민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자신들이 잘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고민 없이 남들이 잘하는 결과물만을 그대로 옮겨왔기 때문에 생기는 차이라고 여긴다. 그렇기에 리더는 직원들의 창의력을 위하여 나는 목적성을 강요하지 않는다.
방향성이면 충분하다.
“어떤 스토리를 생각하고 계시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알려드려야죠. 우리는 드래곤을 좋아하니까 우선 시작은 드래곤으로 시작합니다.”
말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건 무리가 있기에 미리 작성한 파일을 모두에게 하나씩 나눠주고 스토리에 관해 설명을 시작했다. 바로 예전에 언급한 바가 있는 데빌즈 소울의 응용판인 드래곤 소울의 이야기였다.
『드래곤 에이지.
빛은 물론이고 해와 달도 없던 시대.
옛 용들은 그들의 강대한 힘을 발판 삼아 세상의 모든 종족을 노예로 부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세상에는 태초의 빛이라 불리는 태양이 나타났고 태양으로 말미암아 달이 생겨났다.
노예로 부려지던 종족들은 직감한다. 드래곤이 가진 힘의 기원은 어둠이었던 바, 저들을 물리칠 힘은 태양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생명은 태양을 바라보기 시작하고 마침내 빛을 훔치는 존재들이 나타나게 된다.
이들은 각각 광휘의 왕, 불사의 왕, 불의 마녀 등으로 칭했으며 태양의 힘을 사용해 드래곤들과의 전쟁을 선포한다. 그리고 대전쟁의 끝에 승리하게 된다.』
꿈속 미래의 원작과는 사뭇 다른 스토리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후속작인 다크 링스와 데빌즈 소울의 스토리를 적당히 버무린 이야기가 드래곤 소울이었다.
굳이 이렇게 한 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내가 데빌즈 소울은 스토리를 잘 모르더라고. 원래 이거 만든 포럼 소프트가 스토리텔링을 며느리도 모르는 식으로 해버리잖아.’
악마의 게임으로 명성이 높아서 본 적도 있고 해보기도 했다. 그래서 어떤 분위기이고 대략의 윤곽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적당하고 대충 넘어가도 괜찮은 건 이용자이지 제작자가 아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알고 있는 스토리를 짬뽕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드래곤 에이지는 이미 끝이 난 상태로 시작을 하는 거군요.”
“아닙니다.”
“네? 전쟁에서 승리했는데 여전히 드래곤 에이지가 남아 있는 건가요?”
“아닙니다.”
“예?”
흥미만 가득 보이던 본토행티켓이 연거푸 돌아온 ‘아니오’에 당황했다. 당연히 추가 설명을 해주었다.
“드래곤 에이지 이후에는 광휘의 왕이 빛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광휘의 시대가 펼쳐집니다. 이를 샤인 에이지라고 하지요. 그리고 우리의 스토리는 바로 이 광휘의 왕이 이룩한 빛의 시대가 저물어가는 시점입니다.”
“그렇다면 주인공이 모험하는 목적은 그 빛을 살리기 위함이 되겠군요.”
시대의 시작을 듣자마자 게임 전체를 관통해버리는 본토행티켓이다.
“맞습니다.”
역시 신작의 스토리를 담당하기에 더없이 좋은 인재였다.
“다만, 우리의 주인공은 시대의 구심점인 태양 빛을 살리는 구원자가 될 수도, 반대로 그 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시대의 군주가 될 수도 있어야 합니다.”
한 가지가 아니라 두 가지 이상으로 나뉘는 엔딩.
이것은 게임의 볼륨을 높이려는 일종의 편법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엔딩을 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2회 차 이상을 플레이해야 하기 때문이다.
‘해당 게임의 플레이 타임을 뻥튀기함으로 볼륨감을 높이는 좋은 수단! 하지만 남용하거나 유치하게 쓰면 오히려 얕보이지.’
물론 이를 꼼수로만 볼 수도 없다. 원래 2회 차 이상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엔딩이라는 또 다른 목적을 부여함으로 조금 더 즐거운 다회차가 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졌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대는 어떤 시대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건 여러분의 일로 남겨드리고 싶군요. 제가 정해드릴 수 있지만, 시작과 끝을 알려드리고 나면 여러분의 자유가 사라질 것 같습니다. 그러니 자유롭게 원하는 방향의 새로운 엔딩을 추가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종만의 고개가 기분 좋게 끄덕여진다. 그 역시 내가 모든 것을 정해주는 것보다 자신이 스스로 방향을 정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 같다.
‘자신감을 갖춘 개발자라면 누구라도 비슷한 생각을 하겠지.’
하지만 절대로 빠져서는 안 되는 건 개입할 예정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드래곤 소울에서 이 요소들은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다섯 명의 NPC는 반드시 존재하도록 구성하셔야 합니다.”
“NPC요?”
포럼 소프트의 소울류 게임을 메이저로 올려준 NPC들로 나는 다섯 명을 꼽는다.
우선 오르카의 상급기사인 아스테라다.
다크 링스1에서 처음 만날 수 있는 NPC인데 그는 불사의 존재가 된 주인공에게 불사자의 사명을 알려주고는 망자가 된다. 이 필수 NPC에 개인적인 욕심을 더했다.
‘그 외의 스토리를 넣어서 아스테라를 더욱 생동감 있는 존재로 만들고 싶어.’
내 스토리라인에서의 아스테라는 그저 주인공에게 불사자의 사명만을 알려주는 존재가 아니다. 사명을 가진 수많은 존재 사이에서 세상을 구원할 존재는 오직 자신이라는 강한 프라이드를 가진 기사이고 이 운명을 강하게 믿는 존재다.
‘일종의 라이벌로서 주인공과 같은 사명을 품고 같은 길을 걸으며 모험 중간중간 마주치는 캐릭터지.’
하지만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운명의 존재가 자신이 아닌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게 된다. 그리고 처음의 모습과는 달리 진실을 인정하지 않고 점점 주인공에게 분노를 표출하기에 이른다.
이후 아스테라는 주인공이 선택하는 진영과 정반대의 진영을 선택한다. 종국에는 주인공과 사투를 벌이는 강력한 NPC로 재탄생하고 만다.
“아! 다른 게임들의 스토리를 부수는 캐릭터군요!”
‘응? 뭘 부숴?’
뭔 소리냐며 쳐다보니 본토행티켓은 이해했다며 말했다.
“다른 게임은 보통 그렇게 라이벌로 등장하고 전투도 하지만 결국 주인공의 친구가 되는데 드래곤 소울은 전혀 다르게 가는군요. 매력적입니다.”
“역시 회장님이십니다.”
‘하여간 이 충성경쟁이란.’
상급자를 우쭐우쭐하게 만드는 놀라운 스킬을 구사한다. 저러다가 내가 정말 타락해서 ‘맞습니다! 전부 다 내가 잘난 덕분이지요! 하하하하!’라고 하는 지경에 이르면 어쩌려고 저러는지 모르겠다.
“다른 캐릭터들은 또 어떤 것들인가요?”
‘직장생활이란.’
속으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
두 번째 NPC는 소울류의 중요한 히로인인 화염의 무녀다. 우리 게임에서는 광휘의 무녀인데 그녀는 플레이어가 광휘의 사명을 완수할 중요한 인물이 되는 과정을 서포트하는 NPC다.
셋째는 뒤통수의 왕이라 불리는 통수왕 토치다. 그는 계속해서 주인공을 함정에 빠뜨리며 짜증을 유발하지만, 이상하게도 토치의 함정에 빠지면 늘 희귀 아이템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얄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기연 제조형 NPC가 될 예정이다.
넷째는 플레이어와 같은 광휘의 사명을 가졌고 모험을 떠났으나 그 의지가 꺾이고 만 기사다. 그의 말투는 비관적이며 조롱이 가득하다. 하지만 주인공과 아스테라를 제외하고는 가장 사명에 근접했던 존재이고 그를 죽이면 훌륭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의 이 캐릭터가 가장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말한 모든 NPC에 좋은 반응을 보이던 기획자들인지라 서두부터 바짝 관심을 보였다.
“어둡고 칙칙한 이 게임의 유일한 긍정맨. 태양 숭배자 솔라리입니다.”
“긍정맨이요?”
굉장한 설명이 나올 줄 알고 기대하다가 우스꽝스러운 긍정맨이라는 표현에 애매한 얼굴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모르고 하는 소리다.
‘얘가 얼마나 인기 짱짱인데.’
< 드래곤 소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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