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렵 토너먼트 >
그즈음이었다.
【안녕하십니까? 관객 여러분! 그리고 선수 여러분!】
스피커를 통해서 경쾌한 일본어가 들렸다.
【저는 이번 몬스터 프레데터스의 제1회 공식 수렵 토너먼트 속도왕전! 겨울맞이 사냥대회의 진행을 맡게 된 패미챔프의 기사 타쿠야 요헤이입니다.】
단숨에 자신을 소개한 그는 잠시 숨을 헐떡이는 퍼포먼스를 보였다. 그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이고··· 이거 대회 이름이 너무 길어서 몬스터 프레데터스의 난도만큼이나 말하는 것도 힘이 드네요. 관계자분들께 감히 제안합니다. 다음 대회부터는 글자를 조금 줄이는 게 어떻겠습니까?】
능청스러운 그의 말에 장내에 웃음이 퍼진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인 한 편 내심은 뜨끔했다.
‘맞아. 왜 저걸 눈치채지 못했지? 이름이 진짜 너무 길었어.’
웃자고 한 말이지만 말 중에 뼈가 있다지 않던가.
아마도 알게 모르게 불편함을 직접 느꼈고 그래서 나온 의견일 것이다. 차후 개선하도록 잘 메모해두자.
【지금 이 자리에 참석하신 관객분들 중에는 아마도 몬스터 프레데터스의 사람 간 빼 먹는 밸런스를 뼈가 시리게 경험하셨을 겁니다. 아까워서 실제로는 못했지만, 저 역시도 마음속으로는 몇 번이나 패드를 집어던졌으니까요. 저와 같은 심정의 분들이 다수일 거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요헤이의 말이 끝나자 객석 다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다고 소리쳤다. 장난스럽게 귀를 기울여 보인 그가 마저 진행했다.
【그러니 오늘 오신 분들은 이분들이 가진 모든 비법을 그대로 전수받고 가시길 기대해 봅니다! 참고로 저 역시 상급 난이도에서 계속해서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제발! 오늘 이후로 녀석들을 처참하게 무찌를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맞아!
- 무찌르자!
- 처참하게!
개중에 몇몇은 아주 악을 지르듯이 말하는데 그 모습이 이미 게임을 진행하다가 몇 번이나 고배를 마시고 원한이라도 가진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혹시나 아직 게임을 구매하지 않으셨고, 이번 대회를 관람한 뒤에 결정을 하시려는 분이 계신다면! 이 자리에 앉은 이상! 당신은 오늘 몬스터 프레데터스를 구매하시게 될 거라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그가 말을 이었다.
【대회를 시작하기에 앞서 오늘 대회의 방식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대회에서 사용하는 장비와 소모품은 이번 대회 규정에 따라서 정해진 것만을 사용합니다. 두 선수는 완전히 같은 장비와 소모품을 가진 채 시작하게 되며 사냥은 투기장에서 진행합니다. 그리고···】
뒤이어 종이를 넘기는 시늉을 하다가 확 던져버렸다.
【없군요! 규칙은 이것 뿐! 나머지는 모두 자유입니다.】
- 하하하!
【이제 토너먼트를 시작합니다!】
- 우와아아!
열화와 같은 환호를 등에 업고 두 명의 선수가 입장했다.
32강전은 상급 난이도의 가장 초반에 획득할 수 있는 방어구와 환두대도를 사용하는 것이 조건이다. 목표물은 수많은 유저를 무릎 꿇게 만든 악명 높은 몬스터, 플랑티르다.
- 아! 내가 저거 때문에 지금 몬스터 프레데터스를 봉인하고 있다고!
- 난 지금 일주일 째 저거 하나를 못 잡고 있어!
- 그래도 당신들은 저 녀석을 보기는 했네. 난 저 녀석이 나오는 곳까지 가보지도 못했는데.
야수계열의 몬스터로서 화염속성을 가진 샤벨타이거인 플랑티르.
이 녀석은 몬스터 프레데터스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만나는 속성계열의 몬스터였다. 고양이과 야수계열의 기본패턴을 보이는 데 게임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클리어하기 어렵다. 또한, 앞으로 다양한 야수계열 몬스터를 상대하려면 반드시 익숙해져야 하는 입문자 시험용 몬스터이기도 했다.
그래서 플랑티르는 유저들 사이에서 ‘플랑 교관님’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물론, 거르고 거른 나름의 실력자들인 참가자들이 상대하지 못할 리는 만무하다.
- 와아! 진짜 대박이다!
- 아! 저걸 저렇게 피하면 되는구나!
고양이과 야수계열의 가장 악명 높은 기술 중 하나는 삼단 할퀴기다. 이 모션을 선수들은 괜히 본선 진출자가 아니라는 듯이 과감하게 파고드는 회피 동작으로 무력화하고는 손쉽게 몬스터의 뒤를 잡아내고 있었다.
요헤이 역시 이 공략법을 짚어서 해설했다.
【이야! 체크 포인트! 보통은 저 무시무시한 공격에 겁을 먹고는 도망치기 바쁜데 오히려 파고드니까 역공의 기회가 쉽게 오는군요! 역시 본선 진출자들다운 멋진 플레이입니다!】
그리고 같은 모양새이되 다른 방식의 싸움을 선보였다.
【켄타 선수! 모든 공격을 근거리에서 회피하고 약한 단타 위주의 공격을 자주 성공시키고 있습니다. 서서히 플랑티르의 피를 깎아 나가는데요. 반면! 료 선수는 대조되는 강 공격으로 한 방을 노립니다! 과연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같은 장비, 같은 소모품을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32명의 선수들은 제각각 다른 방식으로 전투를 이끌어낸다는 것이 바로 이 몬스터 프레데터스의 매력이다.
대형 스크린으로 공방이 오고 갔다.
결과는 켄타 13분 38초, 료는 14분 2초였다.
이후의 기록 역시 대부분 14분 전후로 사냥이 마감됐다. 어디에나 그렇듯이 패자는 쓸쓸한 얼굴로 일어났고 승자는 쾌재를 외치며 당당한 얼굴로 다시 대기실로 이동했다.
【32강전이 마무리되면서 16명의 승자와 16명의 패자가 생겨났습니다. 승자와 패자라고는 하지만 정말 한 끗 차이로 누가 더 잘하느냐보다 누가 더 자신의 기량을 잘 뽑아내었느냐의 차이였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이런 게임의 특성이 그렇다. 잘 될 때는 2분 만에 사냥에 성공하기도 하는 반면에 잘 풀리지 않을 때는 10분도 넘게 걸리게 되는 게임이다. 그러니 패배한 선수가 꼭 승리한 선수보다 못해서라고 생각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래도 대부분은 더 잘하는 선수가 이기는 거지만.’
패배자에게는 아깝지만 잘 싸웠다는 정도의 말로 위로해줄 따름이다.
【이제 16강전을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사용 무기는 환두대도의 바로 다음 단계인 활과 방어구! 상대 몬스터는 스리커!】
8개의 스크린에 스리커의 모습이 띄워지며 객석 여기저기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 으악! 저 악마가 벌써 나오다니!
- 맙소사! 여기 선수들은 이걸 손쉽게 잡을 수 있는 거야?
- 이다음에는 뭐가 나오려고 그래?!
스리커는 그리폰이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몬스터의 생김새를 그대로 차용한 몬스터다. 속성은 번개이고 공격패턴 중에 뇌전을 쏘아내는 것과 스스로가 마치 벼락처럼 지상으로 내리꽂는 강력한 일격을 사용한다.
플레이어의 입장에서는 악마와 같은 난이도를 자랑하는 몬스터라고 할 수 있다. 몬스터 프레데터스의 제대로 된 난관인 셈이다.
‘게다가 차이점은 또 있지.’
비명을 지르는 관객들이 상대한 스리커는 하급이다.
반면에 대회용은 상급 스리커였다. 그 차이를 저들은 곧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 16강에 진출할 정도면 정말 대단한 실력자들일 텐데···
- 아악!
- 죽었어!
플랑티르 때는 더 나은 기록으로 승패가 갈렸다. 하지만 스리커에게는 사냥의 성공 여부로 판가름 나는 일이 속출했다. 공격을 허용하기 일쑤였고 출전자 일부가 몬스터에게 사망하기에 이르렀다.
【역시 악명 높은 몬스터답게 한 번의 실수가 죽음으로 이어져 버리는군요. 하지만 아직은 모릅니다! 투기장은 캠프에서 전장까지의 거리가 짧으니까 바로 정비해서 싸우면 충분히 만회가 가능합니다!】
요헤이가 나름대로 분전을 위한 멘트를 해주지만, 딱히 의미가 있는 말은 아니다. 대형 스크린에서 포악하게 움직이는 몬스터의 위용만 더욱 두드러질 따름이었다.
- 와 진짜 심장이 쫄깃하다는 게 이런 걸까?
- 내가 할 때는 그냥 ‘어렵지만 재미있다’ 이런 느낌이었는데, 이렇게 선수들이 플레이를 하는 걸 보니까 정말 굉장하잖아!
- 진행자가 괜히 한 말이 아니었어. 나 아무래도 오늘 이 게임을 구매해야 할 것 같아.
- 그런데 잘 할 수 있겠어?
- 흥! 해보면 알지!
한편, 나는 액션에 몰입한 저들의 반응을 주의 깊게 보았다.
‘극악의 난도를 보면서 혹시나 사기를 잃으면 어떡하나 했는데 오히려 전의를 불태우잖아. 지금의 한국은 조금 더 라이트한 게임이랑 노가다 족을 선호하는데.’
일본의 게이머들은 타 국가보다 더욱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훗날, 한국 역시도 게임을 잘한다는 이미지를 쌓고부터는 하드코어 종류를 섭렵하고 출중한 기량을 자랑하게 되지만 이는 나중의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향은 몬스터 프레데터스와 아주 잘 맞아떨어졌다.
- 이겨라! 이겨라!
- 저 무지한 몬스터들에게 인간의 위대함을 가르쳐주라고!
- 죽지 마!
- 죽여버려!
8강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대형이라 부를 몬스터들이 등장했다. 이때부터는 관객들도 그 긴장감과 전율에 침을 삼키게 된다.
- 저런 몬스터에 저 정도 패턴이라니. 믿을 수 없어. 이게 정말 한국에서 만든 게 맞아?
- 뭔가 농간이 있어. 복제 게임이나 만드는 후진국에서 이런 걸 만들 수 있을 리 없다고.
- 맞아. 기술력도 부족해.
- 글쎄? 지금 일본에서 가장 잘나가는 온라인 게임이 나그네로크인데 그것도 한국에서 만든 거잖아.
- 그건 대중성만 좋지 명작 게임의 반열에는 한참 미달이야.
MMORPG 중에서 명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게임이 몇이나 될까.
대부분의 명작 게임은 PC보다는 콘솔에 편중되어 있다. 이는 대다수 MMORPG가 스토리의 전달력보다는 그저 접속시간을 길게 끌기 위한 수단에 집착하는 경향을 가졌기 때문이다.
- 젠장. 자존심 상하기는 해도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해. 이건 한국에서 만든 게임이 맞아.
- 그것보다는 한국에서 이런 게임을 만들 동안 우리 일본은 뭘 했느냐를 생각해야 한다고.
- 맞아. 일본은 요즘 새로운 명작을 배출하지 못하고 과거의 영광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강해. 이러다간 한국의 게임에 먹혀버리게 될지도 몰라.
‘일본 게임계를 한국 게임이 먹어버린다?’
개발한 처지에서는 굉장히 고무적인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내 기대와는 다르고 저들의 우려 역시도 어긋나는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럴 일은 없지. 성공하는 건 우리 회사의 게임 일부일 뿐, 국내 다른 회사들은 생각을 고쳐먹을 리가 없으니까.’
변화는 필요에 따라서 선택하기 마련이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슬픈 일이지만 머지않은 미래에는 가만히 둬도 알아서 성장하는 자동 사냥 종류의 게임이 성행하고 그런 게임이 돈을 갈퀴로 긁어모으는 사태가 벌어진다.
그리고 여기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면 그 기능을 하나씩 덜어내며 본래부터 가능했던 게임의 면모를 야금야금 보여주며 소비자들의 호주머니를 노리는 대형회사들의 면모를 볼 수 있다. 즉, 그래도 됐고 충분히 돈벌이가 되니 변화할 필요가 없다.
‘고작 나 하나가 돌멩이 던진다고 쓰나미나 변혁이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소리지. 내가 만인이 흠모하고 물결을 선도하는 진짜배기 거물이 된다면 또 모르지만.’
이뤄질는지도 알 수 없는 멀고 먼 나중의 일일 것이다.
시간이 흘러 준결승인 4강전을 시작했다. 이때부터는 대다수 게이머가 구경조차 못 해본 몬스터인 드레이크가 등장했다.
그 위용에 여기저기서 탄성이 쏟아졌다.
- 저 몬스터는 얼마나 진행해야 만날 수 있는 거야?
- 아직 준결승인데 최종 보스 같은 녀석이 등장하는 거야?
애석하게도, 절대 아니다. 일단 이 게임의 최종 보스는 엘더 드래곤이다. 드레이크는 어디까지나 드래곤의 하위종으로 아직 더 강한 몬스터가 무궁무진한 것이 몬스터 프레데터스다.
하지만 스토리 중후반부에 나오는 묵직한 녀석인 만큼 드레이크는 살벌한 놈이다. 선수들 역시 완벽한 공략은커녕 익숙해지지조차 않은 상대기에 이때부터는 처절하게 발버둥 치는 광경이 펼쳐졌다.
- 이건 진짜 너무 강력하잖아!
- 잡을 수 있기는 한 거야? 이런 녀석을?
엄선한 게이머 중에서도 준결승에 올라온 기량의 참가자들.
그런데도 네 명 중 두 명이 사냥에 실패하고 말았다.
성공한 인원이 딱 둘 뿐이기에 시간을 잴 필요는 없었다. 저들이 결승 진출자였다. 기쁜 한편으로 입이 바짝바짝 마른 선수들을 보며 관객들이 수군거렸다.
- 결승은 더 강한 녀석이 나타나겠지?
-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 아! 그러고 보니···
- 왜? 뭐 예상가는 거 있어?
- 드래곤이 있잖아.
- 방금 그거 드래곤 아냐?
- 아냐. 저건 드레이크고 드래곤은 따로 있다고 들었어.
그런 기대에 부응하는 장면이 스크린에 나타났다.
【결승전의 몬스터는 빙룡 랭크라샤입니다!】
푸르고 시린 얼음을 깎아서 만든 정교한 조각상과 같은 자태.
두 개의 뿔과 매서운 눈. 거기에 미려한 곡선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두가 감탄할 수밖에 없는 드래곤의 모습이었다.
- 어··· 엄청나다.
- 몬스터를 보고 이렇게 감탄하게 되는 게 맞는 거야?
- 이런 멋진 디자인이라니! 사냥을 못 해도 보는 것만으로 감동하는 게임은 처음이야!
모두가 시선을 그대로 빼앗기고는 그 모습을 감상했다.
- 방금 봤어? 날개를 움직일 때마다 바람에 눈이 흩날리는 것까지 표현이 되어 있어!
- 그게 말이 돼? 그런 거 다 표현하려고 했다간 아티스트들이 다 앓아누울 걸?
- 아냐! 나도 그거 봤어!
실제로 당시 그래픽을 담당했던 아티스트들이 몸살에 고생했다. 다른 몬스터들은 몰라도 드래곤만큼은 세심하게 표현하도록 신경을 썼다.
< 수렵 토너먼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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