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207화 (207/577)

< 수렵 토너먼트 >

방향을 제시해주면 일본의 게이머들이 공유하고 더 방대한 콘텐츠를 그곳에 만들 테니까.

“누가 어디에 제의하여 진행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개인이나 소규모 단체들이 미디어가 되어 정보를 전파해 나가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 역할은 여러 개의 사이트를 제작해서 뿌리고 적당한 시점에 해당 사이트와는 관계가 없다는 듯이 발을 빼는 겁니다.”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들려오는 두 가지 반응이 동시에 나왔다. 하나는 자주 들었던 감탄의 반응이고 둘은 눈을 질끈 감으며 내쉬는 한숨이었다.

소리의 진원지는 다름 아닌 내 친구 배추!

말로는 ‘여러 개의 사이트를 동시에 만들어서 뿌리고 빠져야 한다’에 불과하다. 구경하는 녀석은 결과만 보면 그만이니 쉽다. 반면에 그 여러 개를 정말로 만들어야 하는 쪽에서는 그야말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다.

‘파이팅~“

나는 일어나서 배추의 어깨를 툭툭 토닥이고는 회의실을 벗어났다.

방에 돌아오며 문득 나그네로크와 플레지가 떠올랐다.

‘성공한 게임과 실패한 게임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봐도 좋겠어.’

일본에서 성공한 나그네로크의 특징은 혼자 게임을 하다가 우연히 마음에 맞는 다른 유저를 만나며 친목을 형성하고 친밀감으로 소규모 길드를 이루는 데 있다. 여기서 느끼는 재미가 매우 크다.

한편, 한국에서 크게 성공한 플레지는 대규모 길드의 형태로 성장하고 유저가 길드에 귀속되는 형태다. 적당한 세력에 들어가지 못하면 최종 콘텐츠나 마찬가지인 레이드는 엄두도 내지 못하게 된다.

‘좋은 예시가 바로 가까이에 있지만 그걸 보는 눈이 없으면 알 수가 없는 거로구나.’

관점의 차이로 간단히 치부할 수 있으나 이는 성공과 실패를 가름하는 중요한 분기점이기도 하다. 이를 눈치채면 웃지만 놓쳐버리면 피눈물을 흘리게 된다. 그런 면에서 나는 꿈을 잘 꿨고 우리 직원들 역시 운이 좋았다.

미래의 실패 사례와 성공 요건을 안다는 건 그만큼 강력한 무기였다.

*

게이머스 포럼에서 최초로 임원이 된 이규환 시스템개발부문장.

나한테는 그저 일 잘하는 친구인 배추.

‘원래부터 그랬는지 나와 함께하며 각성한 건지 모르지만.’

근래에 이 녀석이 보이는 실력은 정말이지 대단했다. 특히 웹 사이트에서는 천재적인 감각을 타고난 것처럼 신들린 솜씨를 발휘한다. 아울러, 일 처리 속도도 경이적이었다.

“배추야.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제대로 들은 거야. 오늘 새벽에 웹사이트들 만들어서 일본에 지금 배포해 뒀어. 지금은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직원들을 관리자로 넣어뒀는데 괜찮은 사람이 나타나면 바로 양도하고 빠질 거고.”

“그것도 무려 25개 사이트를?”

“그래.”

기함할 정도의 속도가 아닐 수 없다.

사이트를 제작하자고 회의했던 시기가 어제 오전 11시다.

그리고 지금은 오전 10시이니 배추는 고작 23시간 만에 사이트를 개발했고 배포까지 완료했다며 보고하는 거였다.

‘이게 가능해?’

믿기 어렵다.

“그 짧은 시간에?”

“그동안 웹사이트를 쉽게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을 조금 해둔 게 있었거든. 게다가 25개라고는 해도, 그 형태나 디자인이 크게 다르지 않아서 제작 시간이 짧았던 것도 있고.”

‘캬! 브라보!’

어마어마하다. 아낌없이 손뼉을 쳐줘야겠다.

“서버는 어떻게 했는데?”

“일본에는 이미 서버를 대리로 해주는 곳들이 많아. 그거 몇 개 이용하면 어려울 것도 없지.”

“대박이다. 배추 너 진짜 완전 천재야!”

“됐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너 같은 괴물한테는 그런 말 듣고 싶지 않아.”

‘엥? 내가 왜 괴물이여?’

뭔 소리냐며 쳐다보는데 녀석은 더 설명해 주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배포한 사이트의 주소들을 파일로 다 정리해서 보냈고 이를 대화 중간마다 하나하나 확인시켜줄 따름이었다.

“친구끼리 겸손 같은 건 필요 없어. 디자인이 비슷비슷하다더니 이건 죄다 싹 다르잖아. 진짜 너님 짱짱이다.”

“보는 사람이 받는 느낌만 그럴 뿐이지 내부는 똑같아.”

어차피 이 사이트들을 이용하는 사람은 다들 나처럼 그냥 보는 사람들인데, 이런 사람들에게 다른 느낌이면 그냥 다른 거다. 아주 훌륭한 퀼리티라고 하겠다.

게다가 업로드된 자료들도 상당했다.

“각 사이트마다 조금씩 다른 자료들로 되어 있네?”

“그건 고진환 부문장이 했어. 지 퇴근할 때까지 일 더미를 던져줬거든.”

“그 아저씨가 원래 일을 스파르타식으로 하긴 해.”

“스파르타?”

‘아차. 그 영화 아직 개봉 안 했지? 그게 2006년이던가?’

헐벗은 남자들 300명이 판타지로 싸우는 한 편의 영화. 페르시아군을 상대로 한 용맹한 전사들이라는 콘셉트지만 적대국의 왕을 외계인처럼 묘사하는 등 사실적인 면은 포기한 작품이었다. 물론, 그만큼 캐릭터 성은 확실하게 부각했지만 말이다.

‘음~ 돈 될 것들이 아직도 부지기수로 널려 있구만.’

상식으로 알고 있는 미래 정보들에 다시 한번 감사의 기도를 올려본다. 그러는 내게 배추는 ‘저 자식 또 저러네.’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말끝마다 ‘회장님이 지시한 사항을 제대로 처리하기 위해서’라며 엄청 닦달했어. 여러 사이트들이 각기 다른 색깔을 가지게 하려면 시작부터 다른 자료로 시작해야 한다는 등 그랬는데 아마도 우리 부문 말고 여러 부문이 자료 만드느라 초토화 됐을 걸?”

배추가 말한 마지막 말이 특별하게 와 닿았다. 어떤 사이트는 집을 예쁘게 짓는 방법을 중심으로 잡고 있다면, 어떤 사이트는 그 집에 들어가는 재료에 관한 내용을, 또 누군가는 장비를 멋지게 디자인하는 방법이 중심자료였다.

이렇듯 다양하지 않은 것을 세분화해서 나누어 둔 정성이 엿보인다. 어찌나 꼼꼼했는지 동인지 사이트도 준비해뒀을 정도다.

‘이런 걸 우리가 만들어줘도 되는 건가?’

다양한 형태로 접했던 망가가 순간 떠올랐지만, 슬쩍 외면하기로 했다.

‘아 몰라. 난 책임 없···을 거야.’

알게 뭐랴. 그냥 우리 게임만 잘 팔리면 된다.

일단은 게임이 잘 알려지는 게 중요한 문제다!

그리고 이 모든 사이트에서 공통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 딱 하나 있었다.

『몬스터 프레데터스 제1회 공식 수렵 토너먼트』

『속도왕전! 부제 : 겨울맞이 사냥대회』

이벤트 홍보!

‘그리고 여기서조차 디테일을 또 나눴지.’

사이트 중에서 사냥에 특화된 커뮤니티에서는 이번 이벤트를 더욱 자세하게 다뤘다. 반면에 그렇지 않은 사이트에서는 그냥 간략한 일정 정도로 ‘이런 거 있으니 구경 가보삼.’이라고만 넘어갔다.

게임 회사가 의도적으로 만들었다고 여기기 어려울 정도의 깨알 같은 특색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회사 능력자들의 노력은 곧 빛을 보였다.

- 몬스터 프레데터스 동인지.

- 몬스터 프레데터스 하우징.

- 몬스터 프레데터스 장비 공략.

배추가 만든 사이트 25개 중에서 이 3개가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면서 빠르게 성장한 것이다. 이 가운데에서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사이트는 동인지였다.

‘···왜?’

알 듯 모를 듯 기분이 묘하긴 하지만 적당히 넘어가기로 한다.

어쨌건! 선발주자가 인기로 뜨겁게 불타오르면 후발주자 역시 따라오기 마련이다. 이러한 관심을 토대로 세 가지 사이트를 카피한 사이트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그 결과, 내가 의도했던 그대로 다양한 커뮤니티들이 만들어지며 활성화했다.

바로 그즈음, 제1회 공식 수렵 토너먼트가 시작되었다.

참가 지원 신청자는 무려 5,000명.

개중에서 추리고 추린 인원이 300명이고 어쩔 수 없이 예선전을 진행해야만 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대회는 예선기간 1주일, 본선 기간 1주일이라는 긴 시간을 진행하는 대규모 대회로 탈바꿈 하고 말았다.

자고로 물 들어올 때 노 젓고 바람 불 때 불 피워야 크게 활활 타오른다. 우리 역시 덩달아 움직였다.

“예선전은 하이라이트 영상 위주로 모아서 본선을 보기 위한 홍보로 만드십시오.”

“네!”

“충분히 인기를 누릴만한 몇몇 게이머는 특별히 잘 포장해주시는 것 잊지 마시고요.”

“알겠습니다!”

과거의 영웅은 탄생했을지 모르나 현대의 스타는 연출로 만들어진다. 우리는 이번 대회를 통해서 일종의 네임드를 만들어 낼 계획을 세웠다.

‘가자!’

해당 유저가 명성을 얻으면 또 누군가가 따라서 성공하고자 노력할 것이고 이 순환은 게임의 수명을 늘리는 데에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렇게 10월 19일. 사냥대회 예선전의 날이 밝았다.

99. 수렵 토너먼트

몬스터 프레데터스의 수렵 대회는 사실 일본에서 게임을 조금이라도 더 팔아보기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 여기에 마이크루에게도 ‘너희만 애쓰는 게 아니야. 우리 역시도 파트너답게 노력하고 있다고.’라는 생색을 내려는 의도도 있었다.

그랬던 수렵 대회의 규모가 본래 상정했던 것 이상으로 거대해지고 말았다. 자연스레 쟁점이 되었고 일본 게임 업계로부터 주목받을 정도가 되었다.

‘투자도 받았거든!’

먼저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이번 수렵대회를 지원하겠다는 게임 잡지사들이 앞다투어 연락해왔다는 점이었다. 우리가 입맛대로 고를 수 있을 정도였다.

‘패미챔프는 한창 잘 나갈 때는 1년에 300만 부 이상을 팔아치운 잡지사지. 지금은 100만 부 정도 나가려나?’

다양한 회사 중에서 굳이 패미챔프를 선택한 데는 일본에서 가장 많은 독자층을 보유했다는 배경이 있었다. 아울러 몬스터 프레데터스의 평가점수로 32점을 줬다는 점을 들겠다.

‘40점 만점에 32점이니까 인색한 편이었지. 솔직히 37점 이상은 받을 수 있는 게임인데.’

물론, 10점 만점으로 4명의 게임 기자가 평가하는 것이었으니 30점 이상이면 고득점 게임 축에 들어가기는 했다. 게다가 패미챔프는 자국인 일본을 제외한 국외의 게임에는 점수를 박하게 주기로 소문이 났을 정도다.

이를 모두 고려하면 한국 게임인 몬스터 프레데터스의 32점은 선방한 셈이다.

‘장사라는 게 그런 거지. 언제나 스마일로 공손하게.’

우리에 대한 평가가 좋지 못하다고 무조건 들이박고 싸우는 건 하수다.

이럴수록 친하게 지내서 우리 게임에 대한 평가를 앞으로는 좋게 내보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안녕하십니까? 패미챔프의 타쿠야 요헤이입니다.]

[반갑습니다. 이분은 게이머스 포럼의 윤태식 회장님. 그리고 이쪽은 몬스터 프레데터스 개발팀의 김강철 팀장님입니다.]

소개를 듣고 우리 쪽 통역사 역시 대답했다.

기껏 영어를 열심히 공부해놓고 일본에 오는 바람에 또다시 통역직원을 대동하고 다녀야 하는 신세다.

‘어디서 만국 언어 패키지 같은 게 팔았으면 정말 좋겠어. 꿈 한 번 좋은 것으로 꾸면 외국어 마스터가 될 것 같기도 한데.’

누가 들으면 배불러서 천벌 맞을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99마리 양이 있어도 한 마리 더 채우고 싶은 게 부자의 심리 아니겠는가. 어디서 초능력 하나 더 안 떨어지나 객쩍은 생각을 해본다.

그때 타쿠야 요헤이가 기쁜 얼굴로 말했다.

[오늘 이토록 굉장한 게임의 대회를 담당하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몬스터 프레데터스의 게임평가에 참여했던 기자 중 유일하게 만점을 주었던 사람이다. 그런만큼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착한 사람이니까 나도 잘해줘야지.’

그렇게 인사를 마치고 대기실에서 휴식하는 사이에 대회의 준비가 무르익어 갔다.

*

마이크루 소프트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아서 설치한 50개의 ZBox에는 다양한 게이머들이 자신의 실력을 뽐내기 위해서 자리를 잡았다.

퀘스트는 세 가지 몬스터를 사냥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

예선은 총 32명의 본선 진출자를 골라낼 때까지 진행했는데 여기까지는 별문제 없이 술술 이어졌다.

본격적인 이슈는 바로 그다음 주인 본선 무대에서부터 일어났다.

‘토너먼트라고는 하지만 PVP의 전투가 아니지. 같은 조건에서 몬스터를 누가 얼마만큼 빠르게 사냥하느냐가 목적이니까.’

한국의 e-sports에서 흔히 하는 형태로 무대를 꾸몄다. 다른 점은 규모가 다른 만큼 총 8개의 스크린이 띄워져 있다는 정도로 대형이라는 정도였다.

각각의 화면에는 경기 중인 8명의 플레이어를 객석에서 편하게 볼 수 있도록 세팅했는데 어느덧 객석은 관객들로 꽉 찬 상태였다. 무려 600석인데도 부족하게 여겨질 만큼인 것을 보면 이번 이벤트가 얼마나 성공리에 치러지는지 알 수 있다.

‘누가 몬스터 프레데터스를 고작 발매 3주가 지난 게임이라고 생각하겠어?’

잘 만든 게임과 멋진 마케팅의 콜라보가 이룬 성과라 하겠다.

객석에서 대회의 시작을 기다리는 관객들은 저마다 게임에 관한 가벼운 대화들을 나누고 있었는데 흔하지 않은 이벤트 덕분에 다들 묘한 기대감을 드러내는 중이다.

반면, 참가자인 선수들은 대기실에서 비장한 얼굴이었다. 나이 지긋한 노인들은 ‘고작 애들 게임가지고 무슨 난리냐?’라고 할 테지만, 이건 세상이 변해가는 것에 무감각해진 이들의 고리타분한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종합적인 문화 콘텐츠로서의 가능성을 젊은이들이 최선두에서 달리고 모두가 느끼는 현장이었다.

‘빌 게이트도 후원해 줬고.’

마이크루에서는 이번 행사에 사용하는 모든 기기를 앞으로 몬스터 프레데터스의 대회 전용기기로 기증하겠다고 선언했다. 역시 곳간에서 인심 나듯 부자들이 씀씀이도 후하다.

< 수렵 토너먼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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