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ague of New earth >
“아주 좋습니다. 곽 전무님 수고하셨습니다.”
“아닙니다. 저야 회장님이 시키신 것만 했을 뿐입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는 정말로 내가 시키는 것만 했다.
하지만 내가 시킨 일이 보통 일이던가. 그것들을 하나의 흐트러짐도 없이 모두 완수했다는 점이 그의 대단함을 보여준다. 곽지원 전무니까 해냈지 다른 사람에게 시켰다면 절대로 이런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으리라고 본다.
‘그런데도 모든 공을 전부 나한테 돌리는 것을 보면 사회생활을 많이 한 사람답다니까.’
패기 넘치는 청춘들은 알면서도 따라 하기 어려운 처세술이라 하겠다.
“롱스게이트에서도 이번 영화의 흥행을 보면서 정말 많은 걸 배웠다고, 회장님께 감사 인사를 꼭 부탁한다고 그러더군요.”
“전무님은 몰라도 게네는 고마워해야 마땅합니다. 자기들이 해야 할 역할을 우리가 다 해줬으니까요.”
마음 같아서는 배급사에 주는 비용도 빼앗아 버리고 싶지만, 이미 계약된 내용을 바꿀 수 없는 건 너무나도 당연하다. 아울러, 나라는 사람을 인식시켰고 존재감을 세웠으니 그만한 가치는 이뤘다고 본다.
대신, 다음번에는 국물도 없다. 내가 솜씨를 발휘한 만큼 확실하게 챙길 것이다.
96. League of New earth
성주환 팀장이 첫 MOS가 완성했고 이는 여러 스타 드래프트 유즈맵 사이트에 공유되었다. 하지만 대단한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하고 있었다. 이 점에 대해 그는 몹시 송구한 듯이 고개를 숙였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는데 자신의 능력 부족이라고 여기는 모양이다.
“믿고 맡겨주셨는데 죄송합니다.”
“죄송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이제 시작인 거잖아요.”
“그렇지만 생각보다 훨씬 반응이 저조 합니다.”
의기소침한 그에게 격려의 말을 전했다.
“성주환 팀장님. MOS가 왜 인기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잘 모르겠습니다.”
게임은 내 생각보다 훨씬 잘 뽑았다. 직접 플레이도 해보았는데 요구했던 바를 충실히 반영했고 기본적인 MOS 장르를 잘 살렸으며 시스템 역시도 빠짐없이 구성된 게임이었다.
그런데도 인기가 왜 없는 것일까, 이 부분에 대해 그저 한탄하고만 있는 성주환 팀장에게 내가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스드 유저들은 심심풀이로 유즈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한 판에 30분 이상이나 걸리는 이런 팀전 유즈맵을 선호하는 유저들은 매우 적을 수밖에 없지요.”
스타 드래프트는 국내에서 메가 히트를 한 게임이자 훗날 민속놀이라고까지 불리게 되는 대작이다. 수요층 역시 엄청나기에 유즈맵 역시도 상당수의 유저가 플레이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즈맵의 비율보다는 스타 드래프트 자체에 관심을 두는 보수층이 더욱 두껍다. 이 때문에 기존 게임의 틀을 지나치게 깨버린 유즈맵은 새롭게 배우려는 이들의 수가 대폭 줄어들게 된다.
‘결과가 알려주거든. 이 장르의 시초라고 불리던 게임 역시도 인기가 없었으니까.’
AOS 장르.
이 이름은 Aeon of Strife라는 게임의 이름을 줄인 말이다. 스타 드래프트에서 개발된 이 게임은 AOS의 기본적인 틀을 만든 작품이지만 딱히 큰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
그런데 왜 이 게임 이름이 장르를 지칭하는 말이 되었을까?
사실 해외에서는 AOS라는 이름보다 Defense under the Ancients like. 줄여서 DUTA like라는 명칭을 많이 사용한다. 우리식으로는 두타류라고 부르는데 두타의 성공으로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아류작들이 등장하게 된다.
‘바로 여기가 말장난이었지.’
개중에 한국의 두타라고 불렸던 게임이 두타의 그늘을 피하기 위한 방책으로 ‘우리는 두타를 따라 한 것이 아니라 AOS를 계승한 것이다.’라는 주장을 시작했다.
‘두타의 개발자도 AOS를 많이 차용했다고 했었고.’
덕분에 해당 게임의 인기보다 많은 인지도를 누리는 게임이 된 것이다.
내가 성주환 팀장에게 스드부터 MOS를 개발하게 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일종의 정통성과 역사를 창조한 셈이라서다.
이전까지 없었던 게임의 장르가 성공하면 그 이후에 나오는 게임들은 명확한 장르명이 자리를 잡기까지 매우 불행한 꼬리표를 달아야 한다. 돔 이후에 나온 모든 FPS가 돔 클론(아류작)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스타 드래프트에서 먼저 개발했고 이를 토대로 워드래프트Ⅲ에서마저 개발한다면? 우리는 누군가의 아류작이 될 일이 없어진다.’
본래의 미래에서 해당 장르를 개발한 이들에게는 굉장히 미안한 말이지만, 이제 그들은 우리의 뒤를 따라오고 아류작을 개발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상의 이야기를 성주환 팀장에게 해주자 그가 반문했다.
“하지만 그 문제는 워드래프트Ⅲ 역시 비슷한 것 아닐까요?”
“그건 두고 보면 알 겁니다.”
미래를 단언하는 식이기에 말을 아꼈을 뿐이다. 결과적으로는 절대 아니게 된다. 워드래프트Ⅲ는 스타 드래프트와는 다르게 일반 게임보다 스토리 모드나 유즈맵이 더 인기가 많았다.
‘오죽하면 게임 개발 툴이라는 별명까지 있었겠어.’
워드래프트Ⅲ는 유즈맵의 전성기라고 보아도 손색이 없었다. 나는 이를 재차 짚었다.
“워드Ⅲ의 베타버전은 확인해 보셨습니까?”
“네.”
“워드Ⅲ는 스드에 비해서 이런류의 게임을 훨씬 다양하게 꾸밀 수 있게 될 겁니다.”
거듭 강조한 뒤에야 성주환 팀장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비록 지금은 갈피를 못 잡고 자신감을 찾지 못한 상태지만 그는 뛰어난 개발자다. 나처럼 미래를 알지 못하더라도 출시될 게임의 가능성을 보는 정도는 충분히 해낼 안목과 실력을 갖춘 이였다.
‘워드래프트Ⅲ의 유즈맵이 다채로운 모습을 가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영웅의 레벨 시스템과 아이템이었지.’
RTS와 RPG의 결합이다.
“스드에서 만든 MOS와는 많은 부분에서 변경이 필요할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그렇다면 관련된 기획안 역시도 가지고 있으시겠죠?”
“네. 여기 준비해 왔습니다.”
그가 워드래프트Ⅲ MOS 리그 오브 뉴 어스 기획안을 내밀었다.
‘League of New earth. 게임 이름은 아마 LON으로 줄여서 부르게 될 것 같군.’
하나하나 꼼꼼하게 읽어 보았다. 그러다 보니 간질거리는 느낌이 나를 조금씩 자극했다. 분명히 훌륭하게 잘 쓴 기획안인데 무언가가 아쉬웠다.
‘그게 뭔지가 명확히 떠오르지 않지만 말이야.’
재채기가 나올 듯 나오지 않는 미묘한 기분이었다. 나는 재차 머릿속 기억을 되짚어가며 기획안을 다시 훑었다.
‘기본 골자는 내가 설명한 것과 완전히 같아. 그런데 무엇이 아쉬운 거지?’
지원 병력이 나오는 병영.
정해진 위치에 세워진 포탑.
수호자.
‘아! 그거군!’
한참을 보고 나서야 내가 왜 아쉽다는 생각을 했는지 찾아낼 수 있었다.
전투 중에 본진으로 귀환할 방법이 마련되지 않았다.
‘포탈이 없었구나. 이러면 라인에서 상대를 죽이는 게 더 손해가 될 수도 있지.’
초반에는 ‘영웅이 사망한 뒤에 부활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걸어서 본진까지 도착하는 시간’보다 짧다. 즉, 어설픈 타이밍에 상대를 죽였다가는 아이템을 사온 상대에게 그대로 패배할 수도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이점을 보완해야 한다.
“다 좋습니다만, 귀환 시스템은 반드시 추가해야 합니다.”
“귀환이요?”
“본진으로 돌아가서 아이템을 구매해오는 방식을 말하는 겁니다.”
“···아!”
원래 두타류에는 창고라는 시스템이 존재한다. 한국형에선 무적에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순간이동까지 할 수 있었고 북미형은 무적도 아닌 데다가 순간이동은커녕 걸어 다녀야 한다. 그리고 그 이후에 등장했던 끝판왕에서는 창고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 차이점 때문에 게임을 플레이하는 전략 자체가 바뀌지.’
어떤 것이 더 좋을지는 일단 제작해서 배포한 뒤, 업데이트로 계속 바꿔주며 반응을 보는 편이 수월하다. 그중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방식을 채용하면 되는 것이다.
‘시간이 아직 많으니까 부릴 수 있는 여유지.’
이런 식으로 6년 정도 끌다가 정식 게임으로 개발해도 전혀 늦지 않았다. 이조차도 본래의 미래보다는 한참 빠른 속도다.
“가능하시겠지요?”
“예. 이미 베타에 비슷할 스킬이 있으니 활용하면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워드래프트Ⅲ가 출시 된 후에 확인해 봅시다.”
“네! 회장님.”
우리는 아이스 스톰사의 신작을 다른 의미에서 기대하며 주시하기 시작했다.
어느덧 북미에서 블루워터의 간판이 내려가고 한국에서는 가내의 영광을 막 홍보할 즈음이었다.
드디어 워드래프트Ⅲ가 출시됐다.
한국에서 아이스 스톰이라는 게임개발사가 갖는 입지는 가히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전 세계에서 알아주는 네임밸류를 갖기도 했을뿐더러 국내에서는 세계 최고의 게임개발사라고 하면 저절로 아이스 스톰을 연상할 만큼 좋은 이미지를 선점했다.
아울러 스타 드래프트 300만 장, 메피스토 150만 장이라는 걸출한 성과마저 있었기에 워드래프트Ⅲ를 향한 국내 유저들의 기대감은 대단했다.
하지만 결과는 이에 미치지 못했다.
100만 장 이상은 너끈하게 판매할 수 있으리라고 자신했던 것과는 다르게 워드래프트는 초반 25만 장가량을 판매한 후로는 정체 중이었다.
‘게임 취향이 스드에 물들은 한국인과는 꽤 안 맞았거든.’
한국에서 상상한 워드래프트Ⅲ는 스타 드래프트 같은 게임에서 영웅이 추가된 게임이었다. 반면에 정작 나온 작품은 스타 드래프트와는 전혀 다른 방식이었다.
‘자원과 물량을 이용한 소모전으로 빠른 전투가 이어지는 스드와 달리 워드는 영웅과 아이템이라는 변수 때문에 함부로 소모전을 할 수 없거든.’
바로 이점이 일반 유저들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여기까지는 꿈속의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이고.’
게임 개발 및 유통하는 게이머스 포럼 회장으로서 이 시대를 보니까 다른 요인 하나가 더 보였다. 바로 한국인들이 기대한 가격보다 지나치게 비싸다는 점이었다.
스타 드래프트의 출시 가격은 33,000원, 메피스토2는 그것보다는 조금 더 비쌌지만 그래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반면에 워드래프트Ⅲ는 스타 드래프트보다 2만 원이나 비쌌다.
바로 이 요소가 판매 저하의 원인이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지금 성주환 팀장은 어두운 얼굴로 내게 와서는 보고했다.
“회장님. 워드래프트의 국내 판매량이 생각보다 훨씬 저조합니다.”
말끝에 ‘망했습니다, 망했어요.’가 생략된 듯한 반응이다. 하지만 그에게 보고받고 있는 내 얼굴에는 조금의 걱정도 생기지 않았다.
가격을 올린 아이스스톰의 전략은 과연 실패일까?
‘천만에.’
아니다.
국내 판매량은 저조했지만, 외국에서는 게임성을 인정받아 엄청난 판매량을 올렸다. 만약 아이스 스톰사가 스타 드래프트와 같은 가격으로 출시했다면 이와 같은 막대한 수익은 벌어들이지 못했을 게 뻔했다.
한국 유저들은 인정하기 싫은 부분이겠지만, 국내 시장은 매우 작으며 시장 논리에 따라서는 잠시 외면해도 될 정도의 규모이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일러주는 것도 일이라니까.’
나는 울상인 성주환 팀장에게 서류를 던져주었다.
“성주환 팀장님. 우리는 국내에만 집착하는 그런 회사가 아닙니다.”
“네?”
“보세요. 워드래프트Ⅲ 전 세계 판매량입니다.”
200만 장!
발매와 동시에 팔아버린 무지막지한 숫자다. 세계에서 활약하는 아이스 스톰을 보자면 나 역시도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자극을 받게 된다.
‘아직 갈 길이 멀어.’
샤이닝 로드가 대단한 흥행을 이어가고는 있지만, 아이스 스톰의 메인 게임들과 비교하면 빛이 바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200만 장을 보고 기함하는 성주환 팀장에게 말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못 해도 100만 장은 더 팔릴 겁니다.
“그 말씀은 저희 역시도 같은 무대를 봐야 한다는 말씀이신지···?”
“맞습니다. 한글판 외에 영문판과 독일어, 중국어판까지 총 4가지 형태의 맵을 제작하십시오.”
어차피 한글판을 개발한다고 해도 영문판은 쉽게 빠질 수 없는 관계다. 거기에 중국어판으로 수정하는 것도 텐션을 이용하면 딱히 어렵지 않을 것이다. 독일어판의 맵은 조금 천천히 개발해도 되겠지만 말이다.
“예, 회장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인원은 몇이나 더 필요하겠습니까?”
“2명에서 5명 정도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김강철 팀장님에게 이야기하고 지원받도록 하세요.”
“네! 회장님.”
다시금 의욕을 북돋아 주자 성주환 팀장이 힘찬 걸음으로 나갔다. 나는 뒷모습을 보며 피식 웃고는 의자에 몸을 느긋하게 기대며 생각했다.
‘어디 보자. MOS도 안정적으로 진행되는 것 같고.’
10억을 투자한 영화인 가내의 영광도 조만간 개봉할 예정이다. 블루워터와 달리 국내 영화는 별다르게 고민할 것이 없었다. 원래 개봉할 시기와 같이 개봉할 것이며 바뀐 거라곤 내가 개입하면서 생긴 투자 지분 정도였다.
‘즉, 알아서 확실한 대박을 내게 안겨줄 거라는 의미지.’
꿈속 미래처럼 52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다고 볼 때, 10억을 투자한 내가 받게 될 정산금액은 32억 원이 된다.
11월에 개봉할 삼일절 특사 역시 300만 명이 넘으니까 거의 두 배 정도의 수익률을 달성할 것이 분명하다.
“무간계 역시도 알아서 흥행할 테고.”
굳이 내가 나설 정도의 일은 아니니 형빈이에게 맡겨두면 순조롭게 굴러갈 것이다.
‘이러면 내가 신경 써야 할 우선순위는 몬스터 프레데터스와 쏘우 리스트가 되는군. 본래라면 쏘우 리스트도 아무런 걱정할 필요가 없는 영화인데, 블루워터에서의 사건을 돌이켜보면 아무래도 불안하단 말이지.’
< League of New earth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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