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lue water >
‘어떡하지?’
육지까지의 거리는 40마일(약 64Km).
할리우드 힐스에서 롱비치까지 왕복해야 가능한 거리다. 결단코 수영으로 바다를 빠져나가는 건 불가능하다. 만약 자신이 저런 상황에 부닥친다면 어떤 기분일까.
‘이거··· 진짜 막막하다!’
적막하고 고요한 바다.
조금 전까지 푸르고 아름답던 바다는 변한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 바다는 푸르고 아름답지 못했다.
고요함과 짙푸름은 오히려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그리고 상황은 수직으로 하강하듯이 무섭게 곤두박질쳤다.
‘저건··· 상어?!’
가만히 있어도 공포가 넘실대는 바다에 새로운 악몽이 추가되었다.
해수면 위로 떠 오르는 삼각 형태의 지느러미!
윌터는 영화 속 주인공인 다니엘과 수잔을 통해서 바다에서 만나는 최대의 공포를 그대로 간접 체험했다.
사실 이 영화는 극단적으로 사실적이라서 어떤 면에서는 지루하기 짝이 없다고 볼 수도 있었다. 총 러닝타임 1시간 20분 중에서 두 명의 주인공만 등장하고 이들에게만 화면을 할애하는 시간이 무려 50분이다.
그만큼 지독하게 감독은 이 두 명에게만 시선을 맞추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관객들 역시도 심리적 압박감을 함께 체험할 수 있었다.
‘아! 저런!’
기상 악화.
마지막에는 상어의 공격까지.
영화는 구조대가 등장하고 그들이 구출하러 오는 사이 주인공들의 리타이어로 끝을 맺는다.
‘결국··· 다 죽는 거야?’
권선징악의 구도를 갖고 희망을 보여주는 작품과는 달랐다.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을 거로 생각한 것과 달리 블루워터는 반전이 없었다.
다니엘은 죽고 만다. 이를 본 수잔은 자살하며 끝을 맺는다. 이는 관람객 대부분이 불쾌해하고 화를 낼 정도의 뒷맛 씁쓸한 엔딩이다. 하지만 이후에 바다에서 떠오르는 수중 칠판에 적힌 내용과 이어지는 자막은 윌터의 이런 감정을 한 번에 날려 보냈다.
『누구든 우리를 도울 수 있는 사람에게.
우리는 98년 1월 25일 오후 3시경 바다에 버려졌다.
제발 우리가 죽기 전에 살려주기 바란다······.』
『고립된 망망대해에 남겨서 공포와 고통의 시간을 보낸 그들을 추모하며······.』
‘뭐야? 이거 실화였어?’
이런 극단적인 영화가 만들어진 배경이 정말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가장 뒤편에서 짜증을 내던 한 남성 역시도 마지막 내용을 보면서 일순간 입을 닫았다.
관람을 마친 윌터는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혼잣말로 ‘블루워터 실화. 블루워터 실화.’를 되새겼다. 이윽고 집에 도착함과 동시에 인터넷에 접속해서 관련된 내용을 찾아보았다.
“젠장. 정말로 진짜였구나. 전부 실화였어.”
이 영화는 거짓이 없었다. 모두 실화를 토대로 만들어낸 영화였다.
‘어쩐지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더라.’
애초에 블루워터의 감독이 원하던 느낌은 그것이 분명했다. 윌터는 묘한 숙연함과 막막함을 느꼈다. 묵직하게 자리 잡은 감정이 그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씁쓰레함 뒤로 퍼지는 무언가를 감지했다.
“대단한 영화구나.”
감독이 관련 된 내용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극히 일부였을 것이다.
부부가 스쿠버다이빙 도중에 버려졌다는 것. 그리고 발견했을 때는 저들의 짐만이 남아 있었다는 것.
이게 전부다. 윌터가 감탄하는 부분이 바로 여기였다.
주인공들이 처한 환경, 그들이 맞닥뜨린 두려움,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심리묘사는 모두 감독의 머리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과연 데이비드 교수가 과제로 내줄만한 작품이었다.
‘아참. 그런데 심리묘사를 어떻게 했더라?’
과제를 해야 하는데 너무 몰입해서 영화를 본 나머지 그들이 보여준 심리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기에는 충분한 내용이 없었다. 오직 그들의 감정만을 충실하게 전달받은 것이 전부였다.
한참 끙끙거리던 그는 차근차근 정리부터 시작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끔찍한 이야기 블루워터.
1998년 1월 25일.
아름다운 해변에서의 스쿠버 다이빙 체험을 하기로 한 부부는 평화롭고 행복한 감상에 젖는다.
하지만 그들의 그 행복한 순간은 결코 오래가지 못했다.
오후 3시.
다이빙을 마치고 그들이 수면위로 올라왔을 때 수면위에는 아무것도 없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과 함께 왔던 체험자들도, 그들을 태우고 왔던 배도, 그 어떤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막막하고 두려운 상황.
하지만 부부는 처음부터 두려움을 가지지 않았다.
그들을 두고 떠났다고는 하지만 곧이어 그들이 없음을 눈치채고 금방 배를 돌려 돌아올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꽤 오랜 시간이 흐르고도 배는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상황은 더욱 악화 일로를 걷는다. 상처에 모욕을 더한 격으로 그 바다는 상어의 출몰이 잦은 지역이었다.
시간이 더 흘러 밤이 되었다. 배는 오지 않았고 부부는 여전히 바다에 남아 있었다.
이튿날 오전 8시 55분경.
여행사 측이 그제야 부부의 실종을 깨닫는다. 그들은 급히 구조선과 헬기를 띄워 부부를 찾았다. 그러나 망망대해에서 구조대가 찾은 것은 이들 부부가 사용했던 스쿠버 장비와 수중 칠판뿐이었다.
‘누구든 우리를 도울 수 있는 사람에게.
우리는 98년 1월 25일 오후 3시경 바다에 버려졌다.
제발 우리가 죽기 전에 살려주기 바란다······.’]
나름대로 잘 정리한다고 한 내용이다. 하지만 윌터는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보고서로 제출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 그저 영화를 다시 복기한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두 시간 동안 쓴 게 고작 이거라니.”
쓸모없는 글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윌터는 파일을 삭제하려다가 멈칫했다. 이대로 지워버리기에는 작성하는데 걸린 시간이 아까웠다.
‘기왕 쓴 거 인터넷에라도 올릴까?’
혹시 또 모르는 일 아닌가.
누군가가 이것을 보고 영화를 관람할지 말이다. 물론, 영화를 보고 난 관객의 심정은 매우 암울할 테지만 블루워터는 이를 감수할 가치가 있는 작품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아까 영화 관람객 숫자가 너무 형편없기는 했어. 그런 취급을 받을 영화는 아닌데.”
윌터는 자신의 글에 한 문장을 추가했다.
『망망대해에 남겨졌다는 막막함과 고립감. 물리적인 공포를 뛰어넘는 심리의 공포를 체험하다.』
그리고 자신이 활동하는 몇몇 커뮤니티 사이트에 글을 남기고는 컴퓨터를 종료했다.
‘과제를 하려면 한 번 더 봐야겠네. 내일은 토요일이니까, 모레 보면 딱 좋네.’
그래도 이런 영화라면 두 번 보는 게 딱히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친구들에게 좋은 영화를 추천할 겸, 일요일에 보기로 계획했다.
바쁘게 토요일을 보내고 함께 영화 보기로 한 일요일 오후 1시의 일이었다.
늦잠을 자던 윌터는 휴대폰을 보았다가 깜짝 놀랐다. 부재중 전화가 11개에 문자 메시지는 15개나 와 있었다.
<헤이! 윌터! 오늘 같이 영화 보자고 한 날 아니었어?>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돼?>
<설마! 자고 있는 거냐!>
영화를 같이 보이러 한 시간은 오후 3시인데 웬일인지 친구들이 극성을 부리고 있었다. 몇몇 문자를 확인하였을 즈음에 누군가가 문을 쾅쾅 두들겼다.
“누구야?”
그는 부스스한 머리와 옷만 살짝 정리하고 문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낯익은 친구의 얼굴이 보였다.
“윌터! 나야 마이크! 뭐야? 너 여태 잔거야?”
오늘 함께 영화를 보러가기로 한 녀석 중 하나였다. 그는 극성을 부리는 마이크에게 뚱한 얼굴로 되물었다.
“어차피 세시 영화인데 급할 거 없잖아?”
“뭐야? 너가 보자고 해놓고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모르다니? 뭘?”
“블루워터 그거 지금 난리 났어!”
“잠깐. 잠깐. 난리라니? 이해되게 설명을 해봐.”
눈곱조차 떼지 않은 눈을 비비는 그에게 마이크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일단 문이나 좀 열지? 여기서 이렇게 설명하게 할 거냐?”
“알았어. 잠깐만.”
문을 열어주었다. 곧, 짜증 섞인 얼굴로 마이크가 들어왔다.
“멍청하기는.”
그는 윌터를 한껏 노려보고는 평소처럼 거실 소파로 자리 잡기보다 윌터의 방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내 방은 왜?”
“인터넷.”
마이크는 인터넷을 열고 블루워터와 관련된 글을 클릭했다.
미국 전역에서 올라온 다양한 글들이었다. 그중에는 굉장히 익숙한 글이 있었다.
“어? 이건 내가 쓴 글이네?”
“그래. LA에서 아주 유명인사가 되시겠던데? 너, 이 글 조회수 보이냐?”
“당연히 보이···어? 어억?”
금요일 저녁에 올린 글의 조회 수는 일요일 낮인 지금, 무려 500만을 넘기고 있었다.
“다들 난리 났어.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한 엄청난 수작 영화가 저예산에서 나왔다나 뭐라나?”
입을 떡 벌리고 있던 윌 리가 ‘아!’하며 끄덕였다. 블루워터는 잘 만든 영화이고 잘 될 필요가 있는 작품이었다. 기대만큼 되었으니 좋은 일이다.
“그런데 이걸 왜 보여주는 거냐? 우리가 영화를 보기로 한 거랑 무슨 상관인데?”
“어휴. 이 얼간아! 내가 너 때문에 진짜!”
“응?”
“생각이라는 걸 해봐! 미국 전역에서 난리가 났는데 스크린이 고작 60개다! 무슨 소리인 줄 아직도 모르겠어? 이거 스크린을 늘리기 전에는 영화표 구하는 것도 힘들어졌다고!”
“어? 그럼 안 되는데? 나 과제 못했다고.”
“그게 지금 할 소리냐? 으이구!”
주먹을 들고 부르르 떨던 마이크가 툴툴거리며 무언가를 꺼냈다.
“내가 인마! 아침부터 리젠시 극장에 가서 티켓 세 장 구해오느라!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아냐!”
“오! 신이시여! 마이크! 너는 정말 최고의 친구야! 그럼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네? 나 빨리 준비하고 나올게!”
“그 소리를 아까부터 한 건데··· 젠장. 듣지도 않고 가버리네.”
부산스럽게 맞이하는 그들의 주말 오후였다.
****
2002년 7월 말.
북미 전역 60개의 스크린으로 시작한 블루워터는 8월 초에 들어서면서 북미 전역 1,200개의 스크린으로 확장되었다. 그리고 8월 중순에는 북미 전역에 3,200개까지 스크린을 확장했다.
이 충격적인 공포물은 영화가 실화라는 사실과 함께 심리학자들의 극찬으로 미국에서 최고의 흥행을 만들어냈다.
‘브라보! 아싸! 지화자!’
나로서는 만세 삼창을 외칠 만큼 기분 좋은 소식이었다. 거대한 희소식과 함께 돌아온 곽지원 전무의 얼굴 역시 경탄과 뿌듯함이 혼재되어 있었다.
“그래서 블루워터의 현재 흥행 성적이 얼마라고요?”
“북미에서만 6,090만 달러의 수입을 올린 상태입니다.”
‘좋다!’
내가 알기로 이 영화의 흥행 수입은 621억 1천만 원이다. 달러로 정확한 수치를 산정하기는 어렵지만 지금 환율로 계산하면 5,100만 달러가 된다. 꿈속 미래에서는 2년 뒤에 개봉했었으니 환율을 더 낮춰잡아도 5,600만 달러 수준이다.
‘즉, 나는 무려 500만 달러 정도를 더 벌었다는 말씀! 내가 손대면 더 흥한다 이거야! 하하하!’
여기서 더욱 놀라운 사실이 있다.
첫째, 바로 아직 영화의 스크린이 다 내려가지 않았다는 사실!
둘째, 전 세계 수익이 아니라 오직 북미 수익이라는 것!
‘아이고 기분 좋아!’
입꼬리가 자꾸 승천할 정도로 올라간다. 경망스럽지 않게 무게 잡는 것이 고역일 정도로 흡족했다.
“우리가 벌어들일 수익은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정확하게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한국과는 정산 방식이 매우 달라서 계산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어차피 지금은 정확할 필요가 없어요. 대충 ‘얼마 정도 될 것 같다.’ 이렇게만 계산해보는 거죠.”
“그렇다면···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곽지원 전무는 바로 내 앞에서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렸다. 뭔지 모를 숫자들을 연신 누르고 빼고 곱하고 나누더니 머리를 긁적이기도 하면서 고민을 시작했다. 그렇게 약 5분 정도 지났을 즈음 내게 말했다.
“회장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그저 지금 나온 정보를 토대로 계산한 겁니다. 나중에 터무니없이 차이가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네.”
“3,333만 달러 정도의 수익이 예상됩니다.”
“3,333만 달러요?”
뭐가 이렇게 딱 3만 나오게 되는지 이것도 신기하다.
내가 되물었다.
“분위기로 봐서는 앞으로 벌어들일 수익이 지금보다 크게 늘어날 것 같지 않아 보이는데요. 그런데도 이 정도의 정산액이 가능합니까?”
“미국 극장과 한국 극장은 정산 방식이 달라서 그렇습니다. 블루워터는 초반에 관객몰이할 수 있는 만큼 다했고 그 덕분에 수익 대비 지분율이 높습니다.”
“오호라!”
“그리고 일단 이 금액은 제작자에게 줄 금액이 아직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산하고 나면 2,633만 달러 정도가 우리 손에 남겠군요.”
“맞습니다.”
한화로 계산하면 대략 316억이었다.
영화 제작비는 1억 5천만 원.
총 흥행 수익으로가 아니라 그냥 제작자 투자 수익률이 200배 이상!
‘대박이다. 이건 진짜 역대급이야.’
이게 말이나 되나 싶다. 이런 영화가 존재할 수 있다니 참으로 놀랍다.
< Blue water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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