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201화 (201/577)

< Blue water >

‘그런데 이상하네? 메이저리티 리포트랑 던 아이덴티티의 순위가 왜 이렇게 낮지? 아무리 생각해도 저게 검은 정장의 남자들은 몰라도 다른 영화에까지 밀릴 급은 아닌데?’

자리에 앉아있는 형빈이에게 물었다.

“메이저리티 리포트랑 던 아이덴티티는 개봉하고 시간이 좀 지난 건가?”

“네. 개봉하고 3주 정도 됐고 지금은 점차 관객이 감소하고 있는 중입니다.”

‘오케이. 그 말은 이제 곧 저들이 가지고 있는 영화관에 여유가 생길 거라는 소리지.’

느낌이 왔다.

지금 당장이야 다음 작품을 준비했을 것이다. 하지만 준비한 그 영화의 성적이 좋지 못하다면 어떻게 될까? 답은 간단하다.

대체재가 필요하게 된다. 그 자리에 우리 영화를 넣는다면?

‘성공 가능성만 제대로 어필하면 훨씬 유리한 위치를 잡을 수 있게 될 거야.’

고양이의 목과 달아야 할 방울을 확보했다.

이제 남은 일은 ‘어떻게’라는 부분이다.

‘상영관을 확보하지도 못한 마당에 그런 유리한 위치를 어떻게 하면 잡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자··· 생각을······.’

고이고이 저장해둔 꿈속 기억을 훑었다. 기존의 영화들과는 다른 전략을 써야만 하니 색다른 전략으로 성공했던 영화를 되새기며 찾은 것이다.

‘영화의 홍보나 마케팅의 승리라고 부를 수 있는 영화가··· 있었지! 블랭키 위치랑 카라노말 액티비티!’

떠올랐다.

‘블랭키 위치’는 심령에 관련된 사이트를 개설하고 진짜 있었던 일처럼 여론을 꾸며서 성공한 작품이다. 안타깝게도 이 케이스는 Blue water와 맞지 않았다.

하지만 ‘카라노말 액티비티’의 전략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됐어! 이거야!”

“네?”

“고맙다, 형빈아. 네 덕분에 방법을 찾았어.”

“예?”

“수고했으니 가서 일 봐.”

“아··· 예······.”

흐뭇하게 웃으며 말하자 녀석은 얼떨떨해하면서 나갔다. 하지만 도움은 분명히 됐다. 기억이라는 공간을 자극할 만한 방아쇠를 충분히 당겨줬으니 말이다.

뒤이어 나는 곽지원 전무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무님. 윤태식입니다.”

- 예, 회장님.

“전무님께서 꼭 해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 맡겨만 주십시오.

듬직하게 대답하는 그에게 말을 이었다.

“두 가지가 모두 중요합니다. 첫째는 일단 심리학과, 혹은 그와 관련된 학과가 개설된 대학교들을 찾는 겁니다. 그리고 그 인근에 있는 독립 극장을 포함한 모든 극장과 해당 학과의 교수들을 알아봐 주셔야 합니다.”

- 심리학과 교수들을 말씀이십니까?

“네. 조금 엉뚱하게 들리겠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 알겠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두 가지입니까?

“아니요. 그게 합쳐서 한 가지입니다. 두 번째는 롱스게이트에 연락해서 배급 계약은 그대로 유효하게 할 테니 배급 방식을 우리에게 맞춰달라고 해주세요.”

- 지금 상황이 아무리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해도 그쪽에서 쉽게 받아들이지는 않을 텐데요?

“그러니까 전무님이 해결해주셔야죠.

- 네?

“전무님을 믿습니다.”

- ······.

아무리 곽지원 전무라도 이건 조금 당황스러운 모양이다. 왠지 그 모습이 눈에 그려지는 기분이라 미소가 그려졌다. 나는 힘을 실어주었다.

“잘 되면 배급사로 수익을 받을 수 있게 되는 일입니다. 그래도 정 안 되겠으면 다른 배급사를 찾겠다고 이야기하세요. 어차피 롱스게이트에서 이 영화에 미친 지분은 하나도 없잖습니까. 가만히 앉아서 돈 벌어가라는데 그것도 못 할 놈들이면 더더욱 함께하면 안 될 겁니다.”

- 알겠습니다.

통화를 마쳤다.

나는 두 다리 쭉 뻗고 몸을 소파에 기댔다.

‘이건 분명히 먹히는 방법이야.’

카라노말 액티비티의 흥행 전략은 바로 SNS였다.

인터넷을 통한 확산보다 빠른 소문이 없다는 것을 최대한 활용해서 일부 대학가에만 해당 영화를 상영했고 이후 빠르게 소문이 퍼져나가면서 더 많은 상영관을 확보하는 전략을 취했다.

물론 지금은 SNS가 활성화되지 않은 시기이니 같은 방법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살짝 변화구를 주는 것쯤은 가능하다.

‘핵심은 대학생이거든. SNS가 있건 없건 입소문이 가장 빠른 건 대학생들이라는 점은 바뀌지 않아.’

Blue water의 영화 카테고리는 공포다. 그러나 실상 이 영화는 공포보다 인간에 내재되어 있는 심리를 이용한 스릴러에 가깝다.

착안점을 둔 부분이 바로 여기였다.

나는 이를 최대한 이용할 생각이다.

*

곽지원 전무가 진행 상황을 착착 보고했다.

- 회장님. 롱스게이트가 대학가의 극장에서 상영관을 확보하는 것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몇 개나요?”

- 극장마다 1개의 상영관을 확보했고 총 60개가 조금 넘을 것 같습니다.

“아쉽네요. 그래도 100개는 확보할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확실히 준 메이저 배급사의 역량으로는 모자란 것들이 많은 것 같다. 그래도 롱스게이트 정도가 되니까 이만큼이라도 구한 것일 터다. 이보다 못한 배급사들은 10개도 구하기 힘든 상황일 터다.

- 녀석들 말로는 이것도 진짜 힘들게 계약한 것이니 이해해달라고 하더군요.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해당 교수들에게 선물은 다 보내신 거지요?”

- 네. 워낙 땅덩어리가 큰 나라라서 시간이 조금 필요하지만, 그래도 늦지 않게 전달될 겁니다.

블루 워터를 홍보하는 시작은 대학의 교수들이 될 것이다.

이 영화는 오락성이나 상업성으로 따지자면 빵점짜리 영화다. 그런 영화가 어떻게 그 높은 수익률을 달성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잘 묘사한 인간의 심리에 있다.

망망대해에 남겨진 인간의 생존 욕구와 이들의 공포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것에만 초점을 맞췄고 이 감정을 극대화하는 것에 성공한 작품이다. 이런 영화를 심리학과 교수가 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겠는가.

당연히 자신의 제자들에게 보라고 추천할 것이다. 그리고 영화를 본 제자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전파할 것이다.

‘60개는 아쉬운 숫자지만 사실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해.’

고작해야 상영관 60여 개지만 내가 승리를 자신하는 이유는 확실한 지표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카라노말 액티비티인데 이 작품은 이보다도 적은 숫자의 상영관으로 시작했고 그조차도 심야 시간만 확보했던 영화다. 그런 영화가 입소문을 통해 성공을 이루었다.

‘사람은 곧 돈이야.’

소문을 통해 영화를 보고 싶은 사람들이 늘어나고 그들의 요청이 쇄도한다.

‘거기까지 가면 게임은 끝!’

극장이 알아서 상영관을 내놓을 것이다.

***

윌터 브라운.

그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캠퍼스(UCLA)에서 영화학과를 전공하고 있는 학생이다. 쿼터제로 운영되는 이 학교는 특성상 여름 방학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쉴 틈조차 주어지지 않는 악명으로 유명했다.

그 때문에 최대한 여름에 많은 휴식을 취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이 여름 방학조차도 섬머 시즌 심리학 세미나를 위해서 반납한 상태였다.

‘인간의 심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캐릭터의 내면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들은 그저 껍데기일 뿐이야.’

여름 방학이 시작되면서 대부분 학생은 자신이 원하는 단편 영화들을 어떻게든 만들겠다면서 난리를 치고 있었다. 그러나 윌터 브라운은 그런 것보다 이 세미나를 통해 인간의 심리를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스트레스! 사회에 알려진 이 단어는 단번에 부정적인 느낌을 가져다줍니다. 하지만 과연 이 스트레스라는 것이 나쁘기만 한 것일까요? 우리는 이 스트레스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게다가 지금 열정적으로 강의하는 데이비드 교수는 세계 최고의 심리학자로 인정받는 이였다. 이토록 대단한 교수가 직접 강의하는 세미나보다 더 중요한 것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스트레스는 우리가 직접 치료하거나 제거할 수 있는 질병이 아닙니다. 무언가의 사건에 직면했을 때 우리가 모두 경험하는 상황일 뿐이죠.】

윌터는 노트북은 물론이고 케이리버의 스텔라까지 동원해서 녹음과 필기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다. 그만큼 데이비드의 강의에 몰두했다.

【이것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혹은 정서적으로, 더 나아가 어쩌면 영적으로 우리의 삶에 반응하면서 가지게 되는 경험 그 자체를 말합니다. 그리고 스트레스는 우리에게 도전을 제공하고 인생의 가치와 인내심을 배우게 해주죠.】

지금 배우는 내용은 영화 속 주인공과 주변 인물의 캐릭터들을 표현할 때 더욱 정밀한 표현을 가능하게 해주는 내용일지도 모른다.

‘경험을 통해 성장하는 것. 하지만 그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는 자만이 성장할 수 있는 법.’

스스로 생각한 것을 노트북에 적었다. 그러면서 이 짧은 시간에 다양한 것들을 떠올린 자신을 대견하게 여겼다.

‘나중에 내 진짜 작품을 만들게 되면 교수님에게 꼭 제대로 된 조언을 구해봐야지.’

지금은 비록 학생의 신분이지만 진짜 영화감독이 되었을 때를 생각하니 윌터의 눈이 몽롱해진다. 그러던 차에 데이비드 교수가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번 주는 주말 동안의 과제를 하나 내주도록 하겠습니다.】

벌써 끝이라니, 참으로 아쉬울 따름이다.

‘그런데 과제라고? 교수님이?’

이 수업은 계절학기와 비슷하지만 다르다. 게다가 데이비드 교수는 과제를 꼭 필요하지 않은 한 내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그런 교수가 과제를 주다니?

모든 학생이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들의 귀에 노교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리젠시 극장으로 가시면 블루워터라는 영화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해당 영화를 관람한 뒤, 그 영화 속 인물 중 하나에 집중해서 영화에 반영된 심리. 그리고 영화에서 반영하지 못한 심리를 보고서로 작성해서 가져오시면 됩니다.】

‘영화와 심리를 한 번에 경험하고 느낄 수 있는 과제!?’

그야말로 윌터에게 맞춤형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싶은 과제였다. 뒤이어 강한 호기심이 그를 자극했다. 도대체 블루워터가 어떤 영화이기에 저 데이비그 교수가 과제로 낸단 말인가!

그의 호기심이 왕성한 활동을 시작했다.

이럴 때는 모든 생각을 집어치우고 일단 영화를 먼저 보는 게 좋은 법이다.

UCLA는 웨스트우드와 맞닿아 있는데 리젠시 극장은 바로 이 웨스트 우드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극장이었다. 윌터는 블루워터의 상영시간을 먼저 확인했다.

‘상영 시간이 1시간 30분도 안 되나 보네.’

오후 3시 5분에 한 편이 시작하고 다음 시간이 오후 4시 55이었다. 고작 1시간 50분 만에 다음 회차가 시작된다는 건 영화가 끝나고 긴 엔딩크레딧을 다 올려준 뒤에 마지막으로 청소하는 시간을 합친 시간이 그만큼이라는 의미였다.

‘좌석에 사람이 앉는 시간을 생각하면 더 빠르겠어.’

포스터는 매우 단순했다. 그저 푸른 바다 위에 두 사람이 둥둥 떠 있을 뿐이다.

강렬한 느낌보다는 그저 상황에 초점이 맞춰진 포스터였는데 이것만 보더라도 윌터는 초저예산의 영화라는 것을 당장에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실망하기보다는 기대감을 가졌다. 영화보다는 이를 추천한 데이비드 교수를 믿은 것이다.

‘원래 대작들도 이런 저예산에서 시작하는 거라고.’

윌터는 팝콘과 콜라를 구매한 뒤, 상영관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내부의 관객은 몇 명이 있는지 손으로 헤아릴 수 있을 만큼 적었다. 홍보 자체를 했는지 안 했는지 의심되리만큼 사람이 없다.

‘덕분에 조용히 감상하고 갈 수는 있겠네.’

복작복작하게 많으면 많은 제대로의 재미가 있고 한가하면 한가하기에 누릴 수 있는 여유가 있기 마련이다. 그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영화를 관람했다.

이윽고 시작되는데 화질이 정말 조악했다.

‘저예산이라고 해도 너무 심한데? 이건 마치 캠으로 찍은 것 같은 수준······ 잠깐만. 캠!?’

그냥 캠이 아니라 여행용 캠으로 촬영한 것 같은 느낌이다. 그것은 영화적인 기법보다 정말 여행에서 추억을 남겨놓은 것 같은 질감을 전달하기에 훌륭한 방법이었다.

‘저예산 영화라서가 아니라 하이퍼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건가? 영화의 느낌보다는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이야.’

내용이 평화롭게 흘러갔다.

수잔과 다니엘은 호주로 스킨스쿠버를 즐기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너무나도 행복하고 잔잔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스릴러 장르에서 이런 분위기는 오히려 더욱 큰 고난을 예고하는 방법이다.

어느덧 그들은 호주에 도착했고 화면은 푸르고 아름다운 바다를 비추었다.

‘나도 스쿠버를 좀 배워볼까?’

극사실주의를 표방하는 만큼 어느새 윌터는 영화 주인공 다니엘에 몰입하고 있었다.

스크린에 비치는 깊은 바다는 실로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그러나 이러한 행복과 평화가 깨지는 건 영화가 시작하고 약 25분이 지났을 때였다.

‘어···?’

영화에서 가리키는 시간은 오후 세시.

수면으로 올라온 그들의 눈에는 배도, 사람도,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시야에 잡히는 것은 오직 푸른 바다와 넘실대는 파도뿐이다.

< Blue water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