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200화 (200/577)

< Blue water >

“예, 회장님. 실제로도 그렇지 않습니까?”

과거 아크록스를 개발하고 내게 스카우트 되었던 성주환 팀장.

그는 우리 회사로 온 뒤 팀장의 역할을 수행한 일이 없었다. 한참이나 후배인 김무곤 팀장은 클로버 스팅에 관련된 다양한 캐주얼 게임을 계속 지휘했지만, 그는 그저 중견 개발자와 마찬가지의 역할을 맡았다.

여기서 부끄러움을 느끼고 자신의 위치에 불안해한 것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간단하지.’

팀장이라는 직함에 어울리는 일을 맡기면 된다.

머릿속의 다양한 미래 지식을 훑기 시작했다.

‘뭐가 좋을까.’

처음 그를 스카우트할 때에는 스타 드래프트를 능가하는 RTS 게임을 개발하려고 했다. 그러나 말이 쉽지 이 장르는 ‘이렇게 해서 뛰어난 게임을 만들어 봅시다!’라는 열의로 뚝딱 이루어지지 않는다.

‘RPG랑은 달라.’

미래에 성공하는 게임들을 알고 있으니 그것과 최대한 비슷한 게임을 만들어 보자, 이런 생각으로 부딪치면 RPG는 얼추 예상했던 성공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RTS는 이것 이상의 개념이 필요했다.

‘그러니 방향을 바꿔서 괜찮은 프로젝트를 맡겨야 한다는 건데··· 아! 그게 있었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일거리도 대박 많은 것이고 시기상으로도 기다릴 때라서 주춤하고 있던 건데, 일하고 싶어 하는 일꾼이 있으니 바로 맡기기로 작정했다.

“팀장님.”

성주환 팀장을 불렀을 뿐인데, 그의 얼굴에 긴장이 감돌았다.

상급자가 아무리 편하게 말을 하라고 했어도 자신의 속마음을 이렇게 다 드러내면 대부분 좋지 못한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는 표정이다. 하지만 나는 여타의 꼰대랑은 다르니 상관없다.

“저랑 이참에 새로운 장르를 하나 개발해보실 생각이 있으십니까?”

“커흡!”

너무 긴장했다가 한순간에 그 긴장이 풀린 모양이다. 기침까지 했다. 뒤이어 목소리를 가다듬고 성주환 팀장이 말했다.

“어떤 게임을 말씀하시는 건지요?”

“룰은 간단합니다.”

A4 용지에 펜을 들어서 사각형을 그렸다.

여기에 ‘ ?’ 그림을 표시하였다.

“이제 뭘 의미하는 겁니까?”

“길입니다.”

“길이요?”

“유저들이 훗날 라인이라고 부르게 되는 거지요.”

“죄송합니다. 저는 도저히 회장님이 무엇을 이야기하시려는 건지······.”

난색을 보이는 그에게 웃으며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었다.

“지금 못 알아들으시는 건 너무 당연한 겁니다. 일단은 설명을 들으세요.”

“예, 회장님.”

알고 나면 참 쉽다. 그러나 발견하고 발상하기가 어려운 것이 세상의 모든 발명이다.

“세 개의 꼭짓점이 모이는 곳. 바로 여기가 양측 진영의 본진입니다. 그러니까 서로 대각선의 방향으로 마주 보고 있는 셈이지요.”

“네.”

“본진에서는 일정 시간마다 병사들을 생산하고 병사들은 자동으로 세 갈래의 길을 따라 적진을 향해 전진합니다. 그리고 유저들은 하나의 영웅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러면 최소 3명. 양 팀으로 나누면 6명 이상이 플레이하게 되겠군요.”

“맞습니다. 하지만 라인이 세 개라고 3대 3이 되는 개념은 시시하지 않습니까?”

“아!”

그는 조금 부끄러운 얼굴로 얼굴을 붉혔지만, 괜찮다. 저 설명 하나로 여기까지 유추한 것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우리는 5대 5의 개념으로 게임을 만들 겁니다.”

“네? 그러면··· 라인이 세 개뿐이니 두 명, 두 명, 한 명이 되는 거군요?”

“아닙니다. 그건 각 팀의 재량에 따라서 전략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두는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전략에 도움 되도록 길과 길 사이에 중립 몬스터를 배치합니다. 사냥 후 재화를 획득할 수 있게 말이지요.”

“아하!”

성주환 팀장은 이제야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확실히 안 모양이다.

“팀 대 팀으로 전략을 짜서 플레이하는 RTS군요.”

“바로 그겁니다.”

“역시 회장님이십니다. 그런데 이 게임에서의 승리는 어떤 방식으로 차지하는 겁니까?”

“당연히 본진에 존재하는 컨트롤타워를 파괴하는 쪽이 승리입니다.”

누군가는 ‘MOBA’라는 명칭으로. 또 다른 이들은 ‘AOS’라 부르는 장르.

그러나 실상은 명확하게 정해진 명칭이 없는 장르가 바로 이것이다.

‘한국에서는 AOS로 유명했지. 하지만 이제는 내가 정한 명칭으로 바뀌고 이게 세계에 통용될 거다. Multiplayer Online Strategy Game으로 말이야.’

다중접속전략게임.

줄여서 ‘MOS’다.

“적당한 사양에 맞춰진 전략게임의 형식을 취하는 게 좋겠군요.”

근심이 사라진 지 오래다.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머리를 팽팽 굴리던 성주환 팀장이 내게 물었다.

“회장님. 이 게임을 제가 만들어내도 괜찮겠습니까?”

“이런. 만드시라고 설명한 건데요.”

“감사합니다! 지금 당장 제가 하는 업무를 인수인계한 뒤에 바로 엔진 작업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어허! 무슨 큰일 날 소리를 하고 있어? 엔진 제작이라니. 떽!’

단호히 말했다.

“아뇨. 이건 우리 엔진으로 바로 개발하면 안 됩니다.”

“네? 안 된다니요?”

“두 달 뒤에 무슨 게임이 나오죠?”

“그때면 9월이니까··· 워드래프트Ⅲ 인가요?”

“맞습니다.”

그는 오리무중이라며 내게 물었다.

“워드래프트Ⅲ랑 지금 개발에 들어갈 게임이 무슨 관계라도 있는지······?”

“엄청 큰 관계가 있습니다. 지금 설명한 게임은 워드래프트Ⅲ 유즈맵으로 제작할 테니까요.”

“아······.”

성주환 팀장이 단박에 시무룩한 얼굴로 바뀌었다. 기껏 새로운 게임을 개발하나 했더니 남이 만들어 놓은 게임에 고작 맵을 제작하는 일이라는 말을 들어서다. 큰 충격을 받은 그에게 내가 웃으며 말했다.

“팀장님. 실망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엄청 실망하신 얼굴인데요?”

“괜찮습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제가 팀장님의 실력을 의심해서 이러는 게 아니라 오히려 팀장님을 믿고 맡기는 겁니다.”

이렇게까지 말을 해줘도 그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 같다.

‘하긴 국내 최고의 게임 개발사에서 팀장으로 있는데 고작해야 남이 만든 게임의 유즈맵을 제작해야 한다니 이해가 안 되겠지.’

하지만 남은 이야기를 들으면 곧 알 수 있을 것이다.

“팀장님. 워드래프트Ⅲ가 전 세계에 얼마나 팔릴까요?”

“스드는 물론이고 그 이후에 나온 메피스토까지도 엄청나게 팔렸으니··· 한 300만 장은 팔릴 것 같습니다.”

그의 예측은 틀렸다. 구체적인 수치를 무당처럼 나서서 말할 수는 없지만 워드래프트Ⅲ는 800만 장이 넘게 팔린다. 그러나 300만 장을 가정하고 말해도 이야기를 계속하기에는 문제가 없었다.

“맞습니다. 큰 실수만 하지 않으면 300만 장은 너끈하게 팔릴 게임이죠. 그런데 이용자는 얼마일까요. 과연 300만 명만 할까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불법복제로 하는 사람까지 계산하면 그 열 배는 될 겁니다.”

“좋습니다. 최소 3,000만 명은 하겠군요.”

“예.”

“이제 생각해봅시다. 아직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장르의 게임을 그냥 우리의 신작으로 출시하는 게 유리할까요? 아니면 재미있는 유低各? 찾는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게 유리할까요.”

“······그렇군요!”

짧은 사이에 근심, 경악, 환희, 실망, 놀람이라는 감정의 굴곡을 보이는 성주환 팀장이었다.

“이 게임은 결국 우리 손으로 다시 만들어 내야만 합니다. 하지만 그 전에 우리 게임에 익숙하게끔 사람들에게 전파할 필요가 있는 거지요. 이해하셨습니까?”

“예!”

“아주 좋습니다. 그러면 일단은 가셔서 하던 작업을 인수인계하세요. 그리고 아직 출시 된 워드래프트Ⅲ를 기다리는 동안 연습 삼아 스타 드래프트의 유즈맵부터 비슷하게 구성하는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필요하거나 꼭 데리고 가고 싶은 이가 있다면 명단을 작성해서 김강철 팀장님에게 전달해주세요. 무조건 된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타당한 이유라면 최대한 반영하겠습니다.”

“예! 회장님!”

그렇게 게이머스 포럼의 품 안에서 새로운 장르가 태어나기 시작했다.

95. Blue water

무더위가 극성인 2002년 7월 여름. 미국에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케이스북을 선점하러 떠난 곽지원 전무였다.

“투자계약은 잘 된 건가요?”

- 주크버그 학생이 아직 결정을 못 내리고 있습니다. 관심은 보이는데 이제 막 입학하는 자신이 그런 투자를 받아서 사업해도 맞는지를 계속 고민하는군요.

“그렇군요.”

다른 학교도 아니고 하버드다. 그가 처음 케이스북을 시작했던 것 역시 사업으로서가 아니었다. 같은 하버드 학생에게 제의받고 학교 내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 시작했지 않던가. 그러니 처음부터 큰 투자를 받고 벌인다는 건 부담되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청춘인 그에 비교해 곽지원 전무는 노련한 이였다.

- 하지만 거의 넘어온 것이 느껴집니다. 재촉하지 않고 시간을 조금만 더 주면 충분히 설득될 겁니다.

빼어난 언변으로 없던 꿈도 자신의 것인 양 심어줄 수 있는 만큼 그는 자신의 기량을 유감없이 선보이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계속해서 수고를···”

- 아! 그게 아닙니다. 지금 연락드린 건 투자했던 영화의 개봉 때문입니다.

“투자했던 영화요?”

- 네. 기억하십니까? 회장님이 전에 투자하신 영화 중 Open Sea를 배급사에서 Blue water라는 개봉명으로 변경했었는데요.

“물론입니다.”

- 그 영화의 배급사인 롱스게이트에서 연락을 받았는데, 원래 개봉하기로 약속했던 극장들이 등을 돌렸다고 합니다.

‘엥? 그게 뭔 소리야?’

당연히 성공할 것이라 믿었던 터라 느긋하게 전화 받는 중이었다. 나는 목을 이리저리 비틀며 이완하고는 물었다.

“미국에서 영화 개봉을 약속했던 극장들이 등을 돌렸다? 이게 이토록 순식간에 일어날 만큼 쉬운 일입니까?”

- 아니요. 쉬운 일이 절대 아닙니다. 다만 이 영화의 편집 완료시기와 개봉 시기를 처음에 잘못 잡는 바람에 극장 측에서 등을 돌려도 문제가 없게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재빨리 기억을 되새겼다.

꿈속 미래에서의 블루 워터는 2004년 8월에 개봉했다. 지금은 2002년이니 2년을 앞당긴 셈이다. 바로 여기서 본래에는 존재하지 않았을 문제와 부딪친 모양이다.

“그렇다면 올해 개봉을 못 하는 건가요?”

- 아마도 8월 말이 되어야 어떻게 될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이고. 그러면 안 돼!’

8월 말에 개봉한다는 확언이 아니었다. 그즈음이 되어야 계획을 짤 수 있게 된다는 소리였다. 이건 Blue water에 치명타로 작용한다.

‘제목 그대로 영화 내내 푸른 바다 위에 있는 작품이라고. 그런데 이게 가을에 개봉하면 무슨 공감대를 형성하겠어?’

Blue water는 무조건 여름이어야만 된다. 내년으로 개봉 시기를 미루는 한이 있더라도 여름에 개봉해야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

해결 방안이 필요하다.

“알겠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연락을 드리도록 하죠.”

- 네. 회장님.

느긋하게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나는 곽지원 전무와 통화를 끊은 뒤, 곧바로 김형빈에게 연락했다.

“형빈아. 북미 박스오피스 자료 뽑아서 내 사무실로 가져와라.”

- 현재 차트 말씀이신가요?

“어. 그리고 개봉 예정작들도 같이 가져와.”

- 알겠습니다.

신나게 머리를 굴려야 할 타이밍이었다.

약 한 시간이 지났을 즈음, 형빈이가 사무실로 자료를 가져왔다.

2002년 7월 5일부터 11일까지의 북미 박스오피스.

1위는 검은 양복의 남자들Ⅱ.

2위는 닥터 디즈.

3위는 릴리와 시티치.

4위는 메이저리티 리포트.

5위는 마이클처럼.

6위는 던 아이덴티티.

보다가 새삼 놀랐다.

‘생각보다 대작이 엄청 많은데?’

1위는 물론이고 3위부터 6위에 있는 영화들 역시 한국에서도 꽤 유명한 작품들이었다.

‘릴리와 시티치는 실제로 언제 한국에 들어왔는지는 잘 모르겠어. 하지만 저 외계인 같이 생긴 인형은 엄청나게 많이 봤지. 5위에 있는 마이클처럼은··· 생판 모르겠네.’

여기서 내가 초점을 맞춘 쪽은 배급사였다.

“헐리우드 메이저 배급사들이 꽉 잡고 있구나.”

쇼니에서 2개, 디쥐니에서 1개, 20세기 울프에서 2개, 애니버설 픽쳐스에서 1개다.

심지어 7위부터 10위까지 더 확장시켜도 위너가 3개에 파라마운틴이 1개로 메이저 배급사를 제외하고는 단 하나의 영화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상황이 힘들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군.’

이러한 정황을 알고 나니 돌아가는 판세가 얼추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다행인 점은 블록버스터들 중에 장르가 겹치는 영화들이 없다는 점이었다.

< Blue water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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