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198화 (198/577)

< 후속작 >

지금 보이는 저 의기양양함은 결과가 나오면 방방 뛰는 쪽으로 바뀔 게 틀림없었다.

적잖은 수입을 볼 수 있는 복권이지만 가위바위보 게임처럼 친구들과 유희로 삼은 이유는 나나 녀석들 모두 돈에 궁하지 않아서였다. 내가 벌어들이는 수입은 더 계산해봐야 머리만 아플 정도고 진수나 성찬이 역시 꿈속 미래가 빈곤하게 여겨질 만큼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러니 스포츠 복권 정도로 친구 사이에 의가 상할 일은 없었다.

“다 입력했으면 저기 편의점 보이지? 거기 알바한테 주면 알아서 뽑아 줄 거야. 누가 갈래?”

“내가 가겠음~”

오랜만에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는 얼굴로 진수가 용지를 챙겼다. 그리고 녀석이 다녀오는 사이에 호프집에 사람들이 들어찼다.

“슬슬 사람들이 많아지는데?”

“다들 일찍부터 월드컵을 보겠다고 난리를 치는 거지. 세계인의 축제 아니냐?”

지금은 7시.

경기는 8시 30분에 시작한다. 한참 전으로 봐도 괜찮은데 이미 한산한 느낌이 다 사라진 것이다.

먹고 수다를 떨며 지내다 보니 어느덧 경기가 임박한 8시 20분에 이르렀다. 주점 내부는 월드컵의 열기가 들끓었고 경기가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는 스크린을 보는 모든 사람이 애국자로 변모했다.

‘살면서 대한민국이라는 단어를 이 시기만큼 많이 외칠 일이 또 얼마나 있겠어?’

오후 9시 1분.

대한민국의 선제골이 들어가자 주점은 물론이고 일대에서 ‘와-!’ 하는 함성이 울렸다. 대한민국이라는 구호 역시도 쩌렁쩌렁하게 퍼져나간다.

그리고 1대 0으로 전반 전 경기가 끝나자 주점의 사람 몇몇은 편의점으로 달려가서 BE the Reds가 적힌 빨간 티셔츠를 사서 입었다.

바야흐로 붉은 물결의 효시가 걸린 것이다.

“말도 안 돼! 우리나라에서 저런 슈팅이 나오다니!”

“대한민국 역사에 길이 남길 슈팅이었다. 진짜.”

어설프게 넘어온 크로스를 다이렉트로 걷어차는 슈팅은 국내는 물론이고 아시아의 선수들이 해내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었기에, 이 슈팅은 정말 오래오래 화자 될 일이었다.

‘그래도 전 세계적 이슈는 후반전에 터지는 골이지.’

후반 8분.

대한민국은 폴란드를 향해 두 번째 골을 넣었으며 이것으로 월드컵 역사상 최초의 승리를 확신할 수 있게 된다.

상대 팀의 골을 빼앗아 그대로 중거리에서 날린 슛은 폴란드 골키퍼의 손에 닿았음에도 강력한 힘으로 골문을 열어버리며 캐논 슛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그리고 오늘의 슛으로 전 세계에 코리아라는 이름을 제대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 대~한 민! 국!

치킨 먹는 것조차 잊고 몰입했던 사람들이 더는 참을 수 없는 듯이 우렁차게 외쳤다. 점점 내부가 붉은 옷으로 가득 차올랐다.

한편, 두 친구는 망연자실했다.

“으아! 그냥 언제나처럼 태식이를 따라 할걸. 아이고 내 돈!”

“헐··· 축구는 과학인데··· 하지만 공은 둥글지··· 그런데 저 자식은 죄다 맞춘다···?”

“성찬아. 정신 차려! 혹시 몰라 여기서 갑자기 폴란드가 1골을 넣어버려서 역전의 발판을··· 헉!”

말을 하던 진수는 순간 분위기가 싸늘해짐을 느꼈다. 주변을 둘러보니 대한민국의 첫 1승이라는 기대감으로 가득 차서 응원하던 모든 사람이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디서 부정 타게 헛소리를 지껄이느냐는 강력한 압박이었다.

‘인마. 말도 분위기를 봐가면서 해야지.’

그렇게 진풍경이 펼쳐지며 경기는 막바지에 이르렀다. 어느덧 10시 30분이 되며 대한민국이 첫 승을 달성했다.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고, 거리 전체에 붉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친구가 되어 있었다.

‘온 국민의 친구화, 가족화가 되었던 시기였지.’

오죽하면 일부러 미녀들 옆에 자리를 잡았다가 한국이 골을 넣거나, 승리했을 때 미녀들과 자연스럽게 포옹을 하는 사람들이 생겼을 정도였다.

“복권은 날렸지만 그래도 이겼으니까 기분은 좋다!”

“그런데 집은 어떻게 가냐?”

“당연히 택시를 타면 되는데··· 도로가 엉망이다!?”

기쁨에 취한 사람들은 경기가 끝났음에도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붉은 물결은 주점을 넘어서 모든 도로를 채웠고 승리의 행진으로 이어졌다. 당연히 자동차로 이동을 한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아 몰라!”

“걸어가자!”

“대~한 민! 국!”

여기에 알싸하게 취한 우리도 끼어들었다.

‘다 알고 있으면서도 축제는 즐거운 거지. 재밌잖아.’

어깨동무하고 기분 좋게 걸어갔다.

그런데··· 이거 당첨금은 얼마나 되려나?

94. 후속작

2,000원을 걸고 했던 스포츠 복권이 안겨준 두툼한 돈다발의 크기는 1,600만 원이었다.

“우리나라의 규모가 확실히 작기는 작아.”

한국 팀의 모든 승패를 알고 걸었음에도 4강까지 모든 수익을 합쳐야 이 정도다. 물론, 가외 소득이라는 면으로는 넘칠 정도의 공짜 돈이다. 아울러 나라 전체가 축제 분위기이고 즐거운 시간을 만끽했으니 이것으로도 충분했다.

게다가 잘 모르는 복권 배당보다는 내가 확실하게 아는 미래 정보에 집중하는 편이 훨씬 현명하다.

“도시로에서는 입금이 됐습니까?”

“네, 회장님.”

억 단위로 팍팍 늘어나는 잔고!

내게는 투자의 귀재라는 명성이 자연스럽게 따라붙은 지 오래다. 이런 마당에 승률을 몰라서 스포츠 복권을 더 못한다고 징징거리면 그야말로 꼴불견이다.

나는 금액을 헤아리며 곽지원 전무에게 물었다.

“이미 투자가 예정된 영화에 투자하게 되더라도 약 15억 정도가 남는군요. 그렇다면 전무님께서 꼭 해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다음 달에 하버드에 입학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에게 이 기획안을 보여주고 함께 사업을 해보겠느냐고 이야기해 보세요.”

총알이 장전됐다. 다시금 더 큰 미래의 성공사업에 숟가락을 들이밀 때였다.

바로 케이스북이다.

“일전에 말씀하셨던 그 신입생인가 보군요? 마커 주크버그라고 하셨던 게 기억납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입학 시기를 착각해서 나중으로 미뤘던 그를 이제 만날 때가 되었다. 이런 내 반응에 곽지원 전무가 되물었다.

“그 친구가 입학한 뒤에 만나는 게 좋겠습니까? 아니면 그 전에 만나는 게 좋겠습니까?”

“알고 있는 건 이름뿐인데, 그 전에 만나는 게 가능합니까?”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사람이 있는 곳에는 늘 돈이 돌기 마련이지요. 그리고 돈을 좇으면 사람 역시도 좇을 수 있습니다.”

‘오옷!’

미국이라는 커다란 땅덩어리에서 달랑 이름 하나로 사람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여기에 꽤 있어 보이는 멘트도 했다.

‘기억해 뒀다가 나도 써먹어 봐야지.’

원래 좋은 건 같이 쓰고 나눠 쓰고 돌려쓰고 그러는 거다.

나는 믿음직한 그의 모습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요. 마커 주크버그를 찾아서 회사를 만들도록 하세요. 15억은 1차 투자금이며 이후 3년간 50억을 더 투자할 겁니다. 조건은 지분 35%. 곽 전무님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믿습니다.”

“저 역시 자신이 있습니다. 맡겨주십시오.”

불필요한 겸양은 없었다.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그의 모습에 기분 좋게 웃고 말았다.

*

축제의 시간을 마음껏 즐겼으니 다시금 일에 치중할 때였다. 케이스북 같은 개인적인 투자가 아닌 사업 진행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그 첫째 안건을 고진환 팀장이 가져왔다.

“커진 회사의 균형을 위해서 새로 구성한 조직도입니다.”

지금까지의 게이머스 포럼은 지주회사 겸 유통회사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에는 다소 불편한 조직구조를 가졌다. 그가 가져온 것은 이에 대한 개편안이었다.

원년 멤버 이자 출중한 능력을 자랑하는 인물답게 두말할 나위 없이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좋네요. 이렇게 진행하세요.”

“예, 회장님.”

고진환 팀장의 저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는 첫 번째 직장이 게이머스 포럼이었고 우리 법인의 창립멤버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가르쳐주거나 노하우를 전수할 선배가 없었기에 스스로 익혔다고 할 수 있었다.

‘정말 혼자서도 잘해요의 표상이야.’

내친김에 지금까지 묵묵히 고생한 팀장급의 친구들을 이참에 모두 진급시킬 생각이다. E3에서의 성공과 더불어 회사 규모가 급격하게 커졌으니 당연하게 벌이는 인사 조처였다.

지금까지는 고작 10개 정도의 팀으로 운영하였으나 이제는 약 30개의 팀으로 세분된다. 당연히 각 팀을 묶을 상위의 그룹이 필요하고 그 자리에는 이사라는 직함과 함께 저들을 올릴 작정이다.

‘이런 식으로.’

『인사발령공고

수    신 : 전직원

발행내용 : 인사발령(승진)

시행일자 : 2002년 7월 3일

1. 관련 근거 : 게이머스 포럼 사내 인사규정 제12-00012호

2. 위 관련 근거에 의거 아래와 같이 승진되었음을 공고함.

···』

누군가는 과장으로, 누군가는 차장으로, 또 누군가는 팀장으로 승진하는 장문의 공고다. 이번에 승진하는 인원은 무려 50여 명이니 게이머스 포럼의 창업 이래 가장 많은 숫자의 승진 인원인 셈이다.

클로버 스팅 등을 관리하게 될 게임사업 부문장에는 김지애 이사를.

사내의 인사, 총무 모든 것을 본격적으로 총괄하게 될 경영지원부문은 고진환 이사를.

넷젠 등의 게임사와 아이코닉스 등의 협력 아티스트들을 연결하게 될 게임지원 부문장으로는 김정규 이사를 발령했다.

‘각각 1%의 지분 역시 배당해주고. 말만 가족처럼 여긴다는 건 의미가 없지. 이런 실물이 딱 들어와야 일하는 맛이랑 기분이 나는 거거든.’

추가로 김유천 과장은 해외사업팀을 본격적으로 구성하여 해당 팀의 팀장으로 배정했다. 그는 이제 게이머스 포럼에서 진출한 모든 국가의 사업을 지원한다. 문자 그대로 한국에 발 디디기 힘들 예정이다.

‘표현이 무슨 유배를 보낸 것 같지만, 비행기 마일리지는 무진장 쌓이겠지.’

실제로도 이 발령에 가장 좋아한 건 당사자인 김유천 팀장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거창하게 표현해서 ‘조직구조 개편’일 뿐이지 실상 업무 자체에는 크게 변한 것이 없었다. 고진환 이사가 있는 경영지원부문만 엄청 고생하게 되는 정도가 가시적인 변화라고 보아도 좋다.

하지만 대표에서 회장으로 직함을 바꾸며 유·무형의 가치가 생겼듯이 직원들에게도 충족감을 주었으리라 생각한다.

소파에 앉아서 느긋하게 생각하는 그즈음이었다.

“회장님. 회의시간 되셨습니다.”

“아. 벌써 그렇게 됐나요?”

잠시 기지개를 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할 회의는 매우 중요하다.

‘어떻게 준비를 해서 왔으려나?’

꽤 오래전, 넷젠의 간부들이 굉장히 섭섭한 얼굴로 날 찾아온 일이 있었다. 뉴 온라인도 이제 꽤 자리 잡았으니 자신들도 후속작을 내고 싶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준비해서 가져온 기획안은 내가 몽땅 잘라버리고 다른 게임들처럼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서 주지도 않으니 속상하다는 얘기였었지.’

가장 먼저 나와 함께했던 사람들인데 이제는 뒷방 노인 신세가 된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무리 그래도 여전히 우리 회사 매출 탑인데 그런 생각을 할 리가 없잖아.’

어쨌거나 저들의 말도 일리는 있었고 시기상으로도 후속작을 작업하기에 좋을 때였다. 나는 넷젠이 원하는 대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주기로 했다. 그것도 힘 빡 주는 엄청난 대작으로 말이다.

“회장님 오셨습니까.”

회의실에 들어서자 초창기의 넷젠을 보는 듯 열정 넘치는 얼굴들이 나를 반겼다. 뉴 온라인이 예상보다 훨씬 대박을 치면서 매너리즘에 빠지지는 않았나 싶었는데, 역시 개발자들은 개발해야 흥이 나는 모양이다.

뜨거운 기운에 힘입어 나 역시 기대를 키웠다.

“자. 어설프게 시간 끌고 할 필요는 없겠지요? 다들 바쁜 분들이니까 바로 전체 스토리부터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스토리는 이번에 ‘신과 같이’를 안정적으로 기획한 본토행티켓이 맡았다. 작가로서 가진 그의 역량은 실로 비범할 정도라서 이런 인재를 플레지 게시판에서 만난 것이 행운이라고 여길 정도다.

‘내가 가진 아이디어라는 구슬을 줄줄이 꿰는 걸 보면 참 신기하단 말이지.’

수십 번이고 생각하는 바지만 재능 있는 사람은 세상에 참 많았다. 이를 드러낼 기회와 타이밍을 잡기가 어렵고 말이다.

“익숙해야 접근성이 용이한 법입니다. 그 때문에 스토리의 기본 골자는 흔한 판타지의 방식을 채용했습니다.”

길고 방대한 내용이 있지만 최소한으로 요약하자면 이러했다.

< 후속작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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