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196화 (196/577)

< 간단하게 복권 >

93. 간단하게 복권

유명해지는 데에는 하루면 충분했다.

E3 행사가 시작한 직후라고 보아도 좋은 이튿날, 북미의 게임뉴스와 매거진들은 발 빠르게 기사를 써내기 바빴다. 그리고 이들보다는 꽤 늦은 행사 종료 후, 세계적으로 엄청난 돌풍이 입증되었을 무렵에 콘솔 게임에 관심 없던 국내의 관련 업계 기자들이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불모지에 피어난 꽃 [샤이닝로드 : 메마른 대지】

아직은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봄의 끝자락이지만 게임계는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전 세계 최대의 게임쇼인 E3에서 수많은 게이머의 기대를 모은 최대 화제작이 발매되기 때문이다.

올여름, 게임업계를 평정할 것으로 기대되는 이 게임은 국내 게임업체인 게이머스 포럼의 콘솔 게임 데뷔작. ‘샤이닝로드 : 메마른 대지’다.

‘샤이닝 로드 : 메마른 대지’(이하 샤로)는 E3에서 처음 공개한 직후 행사장 내부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행사가 끝난 뒤로 게임센터에서 예약을 받았지만, 단 몇 시간 만에 미국 내 출시 예정 수량을 전량 매진했을 정도로 북미 게이머들이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타이틀이다.

마이크루 소프트의 Zbox용으로 개발된 이 게임은 콘솔 게임의 불모지라 할 수 있는 국내 개발사의 순수 기술력으로 탄생했으며 국내 게임업계의 자존심을 지켜줄 대작으로 평가된다.

한편 ‘샤로’의 영향으로 국내 콘솔 게임계도 큰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샤로’에 대한 기대감 덕분에 Zbox의 판매량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용산에서 게임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미자(34) 씨는 “Zbox의 판매량이 지난주(‘샤로’ 공개 전) 보다 5배가량 증가했다. 이는 우리 매장뿐만 아니라 다른 매장도 마찬가지다.”라며 “샤로의 효과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설명했다.

한국 마이크루 소프트 HED PR 매니저 신혁 차장은 “국산 Zbox 타이틀이 선전하고 있어 기분이 남다르다. ‘샤로’의 게임성과 그래픽은 세계 어떤 게임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을 만큼 훌륭하다.”며 올 하반기에 게이머스 포럼에서 출시할 또 다른 대작인 ‘몬스터 프레데터스’가 출시되면 전 세계에서 국내의 게임을 주목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이에 따른

대대적인 홍보 마케팅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 한국에서 콘솔 게임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고? 거짓말도 정도껏 해야지. 콘솔에 도전했다는 건 칭찬하지만 이건 아니다. 하여간 기자질 하기 쉽다니까.

└ 이제 PC게임의 시대임. 콘솔 시대는 끝난 마당인데 무슨 콘솔 게임을 만든다고··· 두 박자 느린 굼벵이~ 잘했으니까 엉덩이나 차. 팡팡!

└ 그래도 국내 게임이 북미에서 예약판매도 하고, 전량 매진이라는데 이 정도면 진짜 대단한 거 아닌가?

└ 노노~ 전량 매진이야 푸는 물량이 적으면 적게 팔고도 매진이라고 할 수 있는 거임. 한 1만 장만 예약판매 한다고 해도 전량 매진은 매진이잖슴?

└ 빙시들아! 다 속고만 살았냐? 내가 지금 LA에 살고 있는데 여기 지금 샤이닝 로드로 진짜 난리 났어! 북미 예약 판매 수량 100만 장임!

└ 난 북극인데 펭귄이랑 팀 먹고 곰들이랑 스드 대결 중이시다~ 캐삭빵 대신 서로 먹혀주기. 콜?

└ 100만장이 그렇게 난리칠 일인가?

└ 난리 칠 일이지. 지금 ZBox에서 100만 장 이상 팔린 게임이 몇 개나 될 거 같냐? 10만장 이상만 팔려도 성공한 게임인데 100만 장이 우습냐? 사실이라면 말이야.

댓글을 보며 마냥 코웃음 칠 수만도 없는 건 현 시점에서의 한국은 PC게임이 강세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전 세계의 게임시장은 여전히 콘솔이 강세지만 우리네 인식이 이러하였고 그 탓에 한국 게이머들은 기사에 별다른 신용을 보이지 않았다.

“이 바닥은 태생부터가 거짓말에 어그로 투성이라서 영 신뢰감을 못 주고 있구나.”

인터넷 뉴스는 접근성과 편의성으로 말미암은 파급력이 단연 압도적이다. 그만큼 사람들이 익숙해지는 건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신뢰감이라는 측면에서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었다.

‘점차 가속화될 어뷰징 기사들이나 기레기라고 불릴 언론을 생각하면 갈 길은 훨씬 멀고.’

지금도 보라. 우리 게이머스 포럼의 기사는 순도 100% 사실만을 말하고 있는데, 안 믿는 사람이 믿는 사람보다 더 많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정확하게는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그 이유는 냉정한 시장 논리에 근거한다.

“이 바닥에 연연할 만큼 내가 궁핍하지는 않거든.”

국내의 콘솔 게임 시장이 매우 작다.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전 세계로 볼 때 한국은 국가 자체의 게임 시장규모가 작은 나라다. 그러니 세계의 콘솔 시장에 이미 성공적으로 안착한 지금, 한국 유저들의 신뢰도는 별 효력도 없고 의미를 갖지도 않았다.

‘신뢰도를 크게 높이고 한국의 콘솔 시장을 키울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아.’

한국 특유의 정서를 이용한 마케팅.

소위 ‘국뽕!’이라고도 하는 애국심 마케팅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상품성 대신 감정에 호소하지 않아도 너끈히 팔고 있으니 변질된 신토불이 전략은 쓰지 않을 것이다.

100만 장.

E3 행사 당시에 판매된 수량이 약 5만 장이니 105장이라는 판매량으로 시작하게 된 셈이다.

북미 출시 가격은 60달러.

한화로 7만 원이다. 꽤 비싼 가격대로 출시를 했음에도 이만큼이나 팔리고 있다.

“105만 장이면 얼마지?”

기분 좋게 계산기를 두드렸다.

ZBox의 게임은 판매되면 그 수익을 5곳이 나눠서 받게 된다. 퍼블리셔가 45%, 소매상이 25%, 플랫폼이 12%, 개발사가 12%, 유통사가 4%다.

샤이닝로드는 플랫폼인 마이크루에서 유통까지 담당하기로 했으니 마이크루의 지분은 16%가 된다. 이를 토대로 계산하면 게이머스 포럼에서 장당 27달러, 팬더그램에서 7달러, 마이크루가 11달러, 소매상이 15달러인가 된다.

‘한화로 하면 421억 2600만 원 정도로군.’

105만 장의 수익은 게이머스 포럼 2835만 달러, 팬더그램이 735만 달러로 합계 3,570달러의 매출을 올리게 된 것이다.

샤이닝로드의 개발비는 30억이다. 마케팅에 들어간 비용을 포함하면 90억에 가까운 비용이 들어갔지만, 대부분의 홍보비는 마이크루에서 낸 돈이다.

“고로! 내 돈은 10억만 나갔다는 소리~”

콧노래가 저절로 나왔다. 마이크루 덕분에 70억의 마케팅 비용 중에서 우리가 지출한 금액은 고작 10억이다. 즉, 40억을 투자해서 400억이 넘는 수익을 내었고 앞으로도 이만큼은 더 벌어다 줄 것으로 전망된다.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완벽한 대성공이었다.

나는 고진환 팀장을 호출하고서 그에게 물었다.

“샤이닝 로드의 추가 예약은 들어갔습니까?”

“예, 회장님. 이번에는 출하량의 60%를 예약으로 받고 40%는 소매점에서 직접 판매하기로 했습니다.”

“물량은요?”

게임 판매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생각하면 ‘그냥 찍어내기만 하면 되잖아?’ 싶다. 하지만 불법 백업 시디처럼 그냥 굽기만 하면 끝나는 작업이 아니다.

시디가 안정적으로 데이터를 보관하는 내구성을 가져야 하고 배송에서의 안전을 위한 포장 역시 필수였다. 그러니 물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작업이 더뎌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회장님이 진작부터 많은 물량을 준비하도록 지시하셨던 덕분에 크게 무리가 가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2차는 시장에 얼마나 풀 계획이지요?”

“초기 물량의 절반인 50만 장입니다. 예약 판매로 30만 장을 다 채울 경우 추가로 50만 장을 더 출하하려고 합니다.”

예약판매가 매진이 난다고 해서 시중에 풀린 물량이 모두 매진이 난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도 일반적이라는 개념이 존재하기에 이를 근거로 계획을 수립한다.

‘예약에서 전량 매진일 경우 50만 장까지는 모두 팔아서 털어낼 수 있겠지. 이러면··· 헐? 205만 장이라고!?’

내가 예상했던 수치보다 훨씬 더 많이 팔려 나가고 있었다.

이건 말이 바뀐 게 아니다. 250만 장까지 판매되는 걸 기대했던 건 사실이다. 다만, 내가 예상한 건 약 4년간 팔리는 총 판매량이 250만 장 정도라는 의미다. 이렇게 단기간에 200만 장을 시도할 수 있을 거라고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않았으니 이는 기대 이상의 사태였다.

‘빠샤! 국내에서 아옹다옹은 꺼지라고 그래!’

역시 큰물에서 놀아야 크게 번다!

“현재 미국의 비디오 게임 점유율 중에서 ZBox의 비중이 얼마입니까?”

“게임 점유율은 현재 게임 스테이션이 80%, 게임 박스가 6%, ZBox가 14%입니다.”

“오호? 차이가 상당히 나는데요?”

“아무래도 게임스테이션이 한참 전에 출시했으니까요.”

게임 스테이션2는 2000년 3월에 출시했고 ZBox는 2001년 11월에 출시했다. 미국 내에서는 ZBox가 상당히 선방하지만 그래도 점유율에서는 큰 차이가 나는 게 당연하다. 그리고 꿈속 미래로 내가 자신하는 바로, 이 비율은 앞으로도 크게 좁혀지기 않을 예정이다.

“게임 보급률도 차이가 크겠군요?”

“그게··· 보급률에서는 ZBox가 차이를 크게 좁히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게임 점유율은 점점 격차가 더 생겨나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거 재밌네.’

ZBox는 마이크루의 엄청난 자본력을 바탕으로 다음 세대 게임기가 나올 때까지 단 한 번도 수익을 내고 게임기를 판 적이 없다. 그만큼 뛰어난 스펙과 가격 경쟁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초반에 무서운 판매량을 기록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러니까 게임기는 충분히 팔렸는데 팔리는 게임이 없어서 게임 점유율 차이가 이렇게 크다는 거였다? 기막히군!’

게임 점유율이 망한 콘솔에 게임을 내보냈으니 망한 것으로 보면 곤란하다.

전혀 아니다. 그렇게 망한 콘솔이라면 왜 100만 장이나 팔렸겠는가.

‘경쟁할 게임이 없으니 더 잘 팔리는 거거든.’

만약, 샤이닝로드가 게임스테이션에서 나왔다면 다른 대작들과 경쟁하기 바빠서 지금의 성적보다도 한참이나 초라한 숫자를 보여주었을 것이다. 많이 팔아봐야 30만 장일 정도로 말이다.

문득, 조금 전까지 읽었던 기사의 제목이 떠올랐다.

‘불모지에 피어난 꽃. 거 참, 누가 지었는지 제목 한 번 기가 막히게 뽑아냈네.’

기자가 생각한 불모지는 콘솔 게임의 불모지인 한국을 의미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불모지는 다르다.

ZBox다. 즉, 샤이닝 로드는 ZBox라는 불모지에서 피어난 꽃이었다.

“좋습니다. 미국 법인에는 계속해서 ZBox의 북미 쪽 판매량 추이를 확인하는 것과 일본, 유럽에서 얼마나 판매 가능한지를 보고하라고 전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ZBox가 국내에도 슬슬 보급된 거 같습니다. 대충 5만 장 정도만 출시할 준비를 해주십시오.”

“네, 회장님.”

고진환 팀장이 보고를 마친 뒤에 내 방을 나갔다.

‘210만 장. 이 고점에 딱 도달하면 전 직원에게 보너스를 제대로 줘야겠군.’

시원하게 10억 정도 돌리면 될 것 같다.

*

미국이라는 커다란 시장을 노리고부터는 퇴근 후가 더 바빠졌다.

“Too late.”

“죄송합니다. 오늘 회의가 좀 길어졌네요.”

퇴근 후 집으로 들어가는 내게 한 여성이 문을 열어주었다. 그녀는 최근에 내 영어 레슨을 담당하고 있는 리안나 킴이다. 늦게 퇴근한 덕분에 먼저 와서 수업 준비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Speak to English.”

리안나 킴은 영어를 배워야겠다는 내 말을 듣고 김유천 과장이 소개해준 선생님이다.

그녀는 한국계 영국인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로 런던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미국에서 대학을 마친 뒤 할아버지의 국가인 한국이 궁금해서 왔다가 그대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언어에 재능이 출중하기에 영국식 영어는 물론이고 미국식 억양에 능숙하며 불어, 독일어를 수준급으로 구사. 라틴계통의 언어 또한 아주 능숙하다고 했다.

‘진짜 파워우먼은 김지애 씨겠지만. 중국에서도 완벽하게 업무를 처리하고 있으니. 태연하게 중국어도 익혀놨어요, 라고 했잖아. 그 외에도 몇 개나 더 할 줄 안다고 했었고.’

언어의 달인이 가까이에 있었지만, 회사의 기둥이나 마찬가지인 그녀를 한낱 영어 공부를 위해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급에 맞지도 않고 회장의 횡포와도 같다.

‘리안나 킴도 만만치 않으시지만.’

그녀는 현재 서울 소재의 대학원에서 외국인들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강의와 유학을 준비하는 한국 학생들을 위한 토플 강의를 하고 있는데 그들 사이에서 미녀 교수로 유명하고 수업은 언제나 인기 절정이라고 한다.

이런 걸 보면 꿈속의 나와 현재의 내가 보이는 극명한 차이점 하나가 도드라진다.

당시의 나는 넘쳐나는 미남과 미녀를 모니터에서만 봤다. TV만 켜면 그 상자 안에는 매력과 개성 넘치는 사람들이 언제나 끼를 발산했다. 하지만 집에서만 가장 가까이에 있을 뿐 집 바깥으로 나오면 아득히 멀게 있는 이들이었다.

반면에 지금은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존재한다. 그리고 어느덧 나는 꿈속의 내가 남의 인생으로만 여겨질 정도로 지금의 삶에 익숙해졌다.

[이번에 미국에서 했던 발표를 꽤 잘 했다고 하던데요?]

[어차피 다 외워서 했던 건데요. 뭐.]

E3 행사에서 내가 했던 멘트들은 김유천 과장이 미리 준비해준 것이다. 예상되는 질문까지도 잘 정리해주었기에 딱히 어려울 게 없었다.

< 간단하게 복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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