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195화 (195/577)

< E3 >

코스튬 플레이어의 사냥법에 의물을 품었던 관전자들의 태도는 점점 환호로 바뀌어 갔다.

마치 사과를 깎듯이 반시계방향으로 곰의 주변을 돌면서 계속해서 공격하는 궁수의 모습은 그동안 답답했던 게이머들의 마음에 강력한 탄산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와아! 이게 이렇게 플레이하는 거였구나!]

[나도 다음번에 활 들고 해봐야겠다!]

[저 사람이 된다고 우리도 되는 게 아니야.]

[그런데 이렇게 보니까 이 게임 진짜 멋지지 않냐?]

[계속 리타이어 할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현실감 넘치게 싸우는 게임은 처음 본다.]

[좋아. 나 오늘 바로 ZBox 산다!]

[맞아. 이 게임 하나만 보고라도 살 가치는 있을 듯.]

다른 사람들은 이런저런 대화라도 하고 있는데 로렌즈 제인은 멍하니 연습생의 플레이를 뚫어지라 보고 있었다.

‘정말 대단해.’

그는 절묘하게 회피하고 최대한의 공격했다. 그리고 주변 환경을 사용하지 않아도 쉽게 스테이지를 클리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임에도 일부러 굳이 주변 환경을 이용하는 여유까지 보여주었다.

‘게임사에서 이런 상황을 의도하고 전문 게이머를 투입한 거야.’

일반 게이머처럼 숨겨두었다면 오히려 상황이 안 좋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코스튬 플레이어 복장을 하고 있기에, 주변 게이머들이 훨씬 더 그들의 플레이에 몰입했다. 사람들은 점점 그들의 플레이에 감탄하는 것을 넘어서 응원을 시작했다.

[좋았어! 첫 스테이지 클리어다!]

[마의 스테이지 사막에 돌입! 이 사람이라면 상어를 잡을 수 있을 거 같아!]

[동양 코스튬맨! 상어를 무찔러라!]

[무찔러라!]

[여기도 봐! 링 소드를 선택한 코스튬 플레이어도 곰을 잡았어!]

링 소드.

환두대도의 영문명으로 본래의 몬스터 프레데터스에 등장하는 일본식 카타나를 빼고 넣은 무기다. 나름 멋스럽게 꾸며 놓았기 때문에 부스 내부에서도 선호도가 높은 편이었다. 그렇기에 몇몇 사람들이 자리를 옮겨서 다른 플레이를 보고자 했다.

반면에 로렌즈 제인은 움직이지 않았다. 활에 흠뻑 빠진 것이다.

‘모래 속으로 들어가는 상어는 주변을 돌면서 잡는 게 불가능할 텐데 어떻게 하려는 걸까?’

곰과는 전혀 다른 공략방법이 필요하다. 그녀는 그 공략을 보고 싶었다.

[저런 게 있었구나!]

[저러면 나오는 거였어!]

모든 문제는 정답을 알고 보면 별 것 아닌 법이다.

모래에 숨은 상어를 공격하는 방법!

‘진동이야.’

이는 상어가 목표물을 찾는 방법을 공략하면 됐다. 맵 여기저기에 돌멩이들이 있었는데 그걸 주워서 아무 곳으로나 던지면 상어가 해당 위치의 진동을 통해 사냥꾼을 느끼고 공격하러 나오는 것이다.

너무나도 간단해서 알고 나니 허탈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러면 난이도가 너무 쉬워지는 거 아냐?]

그토록 무섭다가도 쉽게 공략당하는 모습에 의아해하던 무렵, 상어가 또 다른 패턴을 보였다. 일종의 학습 시스템이 있어서 몇 번 이상 이 행위를 하면 상어는 더 같은 방식을 사용하지 않았다.

[지금 저거 봤어?]

[어! 모래를 뱉어내는데?]

같은 패턴에 네 번을 당한 상어는 이제 밖으로 나온 뒤에 시야로 헌터를 찾아내고 이후 모래를 뱉어 플레이어를 경직시켰다. 그 뒤 돌진하는 패턴을 보이니 모래에 맞아 경직에 걸리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 게임 보면 볼수록 대단해. 같은 수법에 똑같이 당하지 않게 만들었어.]

[뭐야 그럼 저건 쓸모없는 공략이네?]

[아니지 그래도 처음에는 당하니까 해야지.]

이제 헌터는 돌을 던져 유인한 뒤에 모래를 피하는 것으로 공략법이 바뀌었다. 타이밍이 틀리면 맞고 잘 맞추면 상어를 공격할 틈이 만들어진다. 물론 코스튬 플레이어는 처음에 일부러 맞아주면서 해당 공격의 위험을 알려준 이후로는 모래를 맞지 않았다.

[오! 또 클리어 했어! 이 일본인 진짜 대단하다!]

[일본사람이야? 난 한국 게임이라서 당연히 한국인일 거로 생각했는데?]

[무슨 소리야? 한국인이 이렇게 게임을 잘하겠어? 일본인이겠지.]

[아니야. 한국이 게임 하는 건 진짜 잘 해. 너는 스드도 모르냐?]

[한때 꽤 인기 있던 게임인데 잘 알지. 요즘 한국에서 스드를 잘 하고 있다는 거도 알긴 하는데··· 한국에서 그거 말고 잘하는 게 있냐?]

[맞아. 그냥 그거만 잘 하는 거야.]

[그런가?]

게이머스 포럼이 이제 기지개를 켜고 있는 것처럼 한국의 프로게이머도 이제야 태동기가 시작된 셈이기에 세계의 게이머들 사이에는 별반 알려진 바가 없었다. 관심도 오늘에야 막 생길 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코스튬 플레이어들을 당연히 일본사람들로 여겼다.

이때부터 저들의 플레이가 더 공격적으로 바뀌었다. 현재 플레이 중인 연습생들은 영어를 할 줄 몰랐지만 ‘재패니즈’라고 하는 국가 명은 알아들었다. 아울러 분위기가 자신들을 일본인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지했다.

문제는 그게 아니라고 말하려고 해도 당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그 감정이 게임에 고스란히 묻어났다.

[역시 게임은 일본인이 잘해. 엄청 화려하네.]

[그냥 어려운 게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계속 보니까 진짜 다양하게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이잖아?]

사람들은 점점 그들의 플레이에 매료되었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게이머들은 점점 늘어만 갔다. 결국, 연습생들이 모든 스테이지를 클리어할 때쯤에는 부스가 꽉 차서 움직이기도 힘들 정도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코스튬 플레이어들 진짜 최고다!]

[진짜 대단하다.]

로렌즈 제인은 상황 모두를 보며 간단히 메모했다.

‘전원이 모든 스테이지를 클리어했어.’

그녀는 자신이 직접 플레이를 해보았기에 몬스터 프레데터스가 지금까지의 게임과 비교해서 상상을 넘을 만큼 어렵다는 점을 잘 알았다. 그렇기에 미리 준비된 이들이라고 해도 실패하는 자가 나올 줄 알았는데 모두가 클리어한 것이다.

게이머들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연습생들에게 박수를 보냈고, 연습생들은 쑥스러운 얼굴로 일어나서 인사를 하고는 스크린의 앞으로 이동을 했다.

【지금 플레이 한 게이머들은 저희 GF의 프로게이머들입니다. 멋진 플레이를 보여준 우리 선수들에게 다시 한번 박수를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느새, 부스의 메인 자리로 나온 윤태식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즈음 엉뚱한 질문이 들렸다.

[GF는 국적과 관계없이 프로게이머를 뽑는 겁니까?]

【실력만 있다면 국적이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다만 현재 저희 게임단에 소속된 선수들은 전원이 한국인입니다.】

모두가 한국인이었다는 말에 장내가 소란해졌다. 그만큼 연습생들의 플레이가 모두에게 충격적이었고, 그런 사람들이 게임으로 바로 떠올리기 힘든 국가의 사람들이라는 것이 더크게 다가온 것이다.

[조금 전 선수들 덕분에 이 게임의 공략법이 다 알려져 버렸습니다. 아직 출시도 안 된 게임의 공략법이 다 알려졌는데 문제가 없겠습니까?]

의도치 않게 질의응답 시간이 만들어진 상황이다.

그러나 윤태식은 준비했다는 양 당황하지 않고 대꾸했다.

【문제라니요? 그런 일은 절대 없습니다.】

[어째서죠?]

【지금 보인 5개의 스테이지는 전부 데모 버전일 뿐입니다. 정식 출시가 될 때는 지금과 달리 훨씬 큰 맵을 사용하게 될 것이고 지금처럼 가까운 곳에서 함정이나 지형을 이용한 공격방법들이 몰려 있는 일은 없을 겁니다.】

지금도 어려웠는데, 정식으로 출시하면 더 어려울 거라는 말이었다. 로렌즈 제인은 참으로 영리하다며 생각했다.

‘지금처럼 공략법을 알려주지 않으면 엔딩을 보는 사람 자체가 없을 수도 있었겠어.’

전략적인 공개였다.

【정식 출시 때에는 더 다양한 몬스터. 그리고 넓은 맵. 다양한 아이템과 다양한 환경을 즐기실 수 있을 테니, 많은 기대 바랍니다.】

[더 다양한 몬스터라고 하셨는데, 몇 종류의 몬스터로 출시가 될 예정인가요?]

【총 41종의 보스급 몬스터와 16종의 일반 몬스터가 등장할 예정이며, 정글, 설원, 사막, 화산, 해안, 요새, 투전장 등의 맵을 경험하시게 될 겁니다. 참고로 41종의 보스급 몬스터들은 각기 다른 종입니다. 똑같이 만들어서 이름만 바꾼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네요.】

보스급 몬스터의 숫자만 41종이라는 말에 사람들의 입이 벌어졌다. 심지어 게임사에서 흔하게 사용하는 ‘복사+붙여넣기’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종이라니.

‘미쳤어! 게임 특성상 몬스터 하나를 개발하는 것에 엄청난 아이디어가 필요한데 41종이나 개발했다고?’

물론 41종이 전부 다른 공략을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종의 튜토리얼 개념으로 비슷한 패턴을 가진 몬스터가 있을 거고 거기서 발전한 몬스터로 상위 하위의 호환 몬스터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를 고려해도 이는 놀라운 일이었다.

이는 비단 그녀만의 생각이 아니다. 자리에 있는 모두가 벌써 게임이 기다려지는 마음에 전율을 느꼈다.

[그럼 이 게임은 언제 출시를 하게 됩니까?]

【현재 몬스터 프레데터스는 완성단계에 돌입했으며, 저희 GF의 게임출시는 해당 영상을 보시면 마지막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극도의 관심을 보일 때가 최고의 홍보효과를 볼 수 있을 때다. 윤태식은 이때를 노리고 마지막 노림수를 준비했다.

바로 ‘신과 함께’였다.

샤이닝 로드, 몬스터 프레데터스와는 확연하게 다른 장르의 영상이 별안간 나타났다.

「어릴 적 내 아버지께서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지.」

「‘크게 성공하기 위해서는 큰 희생이 뒤따르는 법이다. 자신의 길은 그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는 거다’라고 말이야.」

LA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배경. 그리고 마피아와 경찰. 이런류의 게임에는 이미 엄청난 유행을 가지고 있는 게임 GTI가 있어서 아류작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과는 어딘지 모르게 다른 냄새를 느낄 수 있는 게임이었다.

무언가 미묘하면서도 남자의 마초적 본능을 깨우는 느낌의 영상이 스크린을 차지하면서 짧지만 아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흐······.」

로렌즈 제인이 지금 있는 곳이 로스앤젤레스다. 그녀는 이곳으로 오던 도중에 보았던 지형지물을 그대로 빼다 박은 것 같은 배경을 보았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해야 할지 안타까워해야 할지. 시대적으로 많이 부족한 지금의 그래픽 덕분에 사람들은 이것이 영화가 아니라 게임이라는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 뒤로 퍼지는 자욱한 담배 연기 사이에 권태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살려는 드릴게.」

「Undercover Story : In Los angeles」

「GF present」

몬스터 프레데터스가 언제 출시하느냐에 관심을 두고 영상을 보던 사람들. 그들의 뇌리에 새로운 게임이 들어섰다.

[지금 우리가 뭘 본 거지?]

[신작 게임 홍보 트레일러잖아.]

[무슨 게임이 이렇게 죄다 영화 같아?]

[몰라. 그런데 이거도 진짜 재미있겠다. 그렇지?]

[당연한 소리! 그러니까 얼른 언제 출시하는 지나 보여 달라고!]

[쉿! 지금 나오나 봐.]

캐주얼한 느낌의 캐릭터가 스크린의 끝에서 달려 나오더니 바닥에 피켓을 박았다. 그리고 그 피켓에는 「2002. 05. 24 Now!」라는 날짜가 적혀 있었다. 샤이닝 로드의 출시일이었다.

다음은 딱 봐도 조금 전에 열심히 플레이했던 몬스터 프레데터스의 헌터가 달려왔다. 그가 땅에 깊숙이 박은 피켓에는 「2002. 10. 05 Coming soon~」이 보였다.

마지막은 정장 차림의 터프한 조폭이었다. 그는 어깨에 걸치고 있던 「Undercover Story : In Los angeles is being developed」가 적힌 피켓을 땅에 박으려다가 내팽개치고는 화면 밖으로 나가버렸다.

‘연출 봐봐. 이 회사 정말 어마어마해.’

이제 한창 개발에 들어간 게임의 출시날짜를 명확히 잡느니 그냥 개발 중으로 기다려 달라고 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아울러 세 개의 게임을 기억하게 하느니 두 개의 게임 출시를 확실하게 인지시키는 것이 낫다는 전략이었다.

로렌즈 제인이 직감했듯이 게이머들은 GF전략대로 ‘10월 5일’을 강하게 인식했고 그들은 당장 판매한다는 샤이닝로드로 먼저 눈을 돌렸다.

‘안 되겠어. 이러다가는 내 기사보다 이슈가 먼저 날 거야!’

그야말로 순식간에 일어난 폭발적인 반응이다.

로렌즈는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음을 느끼고 빨리 기사를 쓰기 위해 움직였다.

‘내가 미쳤지. 기사를 써서 묻힐 뻔한 불쌍한 게임을 살려? 아이고! 그냥 여긴 이제 뭘 하든 되는 게임사야. 살리기보다 그 위를 타기라도 하면 다행이라고!’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리고 앞다투어 기사가 나오며 미국을 달구었다.

【2002년 5월 24일.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전 세계가 주목하는 게임사가 탄생했다.】

【샤이닝 로드부터 몬스터 프레데터스 그리고 언더커버 스토리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게임을 한 번에 공개한 괴물 게임사 GF.】

【혜성처럼 등장한 이 회사는 과연 어디인가?】

일파만파로 퍼지는 소문은 점차 범위를 넓히며 일본과 유럽까지 퍼져나갔다. 웃긴 점은 GF가 존재하는 한국이 가장 늦게 해당 게임의 가치를 알아보고 그제야 부랴부랴 기사를 내놓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 E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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