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3 >
【안녕하십니까, 저는 GF의 윤태식이라고 합니다.】
이제 고작 그의 인사가 나왔을 뿐인데 여기저기선 질문 공세를 퍼붓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에 빌 게이트의 입고리가 부드럽게 올라갔다. 윤태식 역시 옅게 웃으며 말했다.
【하긴 저희 소개가 중요한 장소는 아니겠죠? 네. 거기 기자님. 질문 하세요.】
젊은 남성의 지목을 받은 기자는 질문을 생각하고 손을 든 것이 아니다. 어차피 많은 사람사이에서 처음으로 지목을 받을 가능성이 작기 때문에 머릿속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일단 손부터 들어 올렸던 것.
[어··· 그···]
눈이 핑핑 돌면서 열심히 머리를 썼지만 당황하면 더 생각이 안 나기 마련이다. 버벅거리면서 별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아직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 보이시네요. 나중에 기회를 다시 드리도록 하고··· 거기 여성분 먼저 질문을 해주시겠습니까?】
‘응? 나?’
그 다음으로 지목을 받은 사람은 바로 로렌즈 제인이었다. 앞서의 남자처럼 멍청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그녀가 얼른 말했다.
[이 게임은 얼마나 완성이 되었습니까? 또 출시는 언제쯤으로 예상하십니까?]
【샤이닝 로드는 100% 완성한 상태입니다. 지금 이 콘퍼런스가 끝나는 시점부터 행사장에서만 구매 가능하고 정식 출시는 다음 주가 될 것입니다.】
100% 완성이 된 작품이 이제야 공개가 되었다는 사실에 극장 전체가 술렁였다.
‘대단한 자신감이야.’
일반적으로 이제 막 기획이 시작되는 단계에서도 공개하는 세상에서 완성이 되고서야 공개를 하다니 말이다. 물론 실제 샤이닝 로드의 사정을 알지 못하기에 발생한 오해였지만 윤태식의 입장에서는 나쁠 것이 전혀 없는 기분 좋은 오해였다.
윤태식이 다음 기자를 지목했다.
[그렇다면 지금 시연으로 보여주신 건 정식으로 발매하는 게임과 완전히 같다는 말씀입니까?]
【맞습니다. 지금 보신 것 그대로 출시될 것입니다.】
‘세상에! 필립 선배의 말이 옳았어! 물론 그는 놀리려고 한 말이었겠지만 나한테 기적이 일어난 거야!’
로렌즈는 이 순간 게이밍 스테이션이나 닌텐두가 아니라 ZBox로 오게 된 자신이 행운아라고 생각했다. 이 전의 아쉬움은 이미 저 멀리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아마 다들 나가자마자 게임을 사려고 하겠지?’
그녀는 어느새 콘퍼런스가 끝난 뒤에 어떻게 하면 가장 빨리 이 게임을 구매할 수 있을까로 생각이 가득 차고 있었다.
그녀가 그런 고민을 하는 동안 질문은 계속해서 이어졌고 어느덧 마지막 질문마저도 끝이 났다.
【뜨거운 반응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희가 올해 출시할 게임은 샤이닝 로드만이 아니라 몬스터 프레데터스라는 다른 게임이 또 있으니 콘퍼런스가 끝난 후 저희 부스도 구경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 하루는 정말 바쁘겠어.’
이렇게 완성도가 높은 게임을 만들었음에도 한 해에 하나만 출시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게임이 있다고 한다. 행사 기간 내내 정신없게 바쁠 테지만 그녀는 기뻐했다.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즐거움이기에 그렇다.
이후 ZBox의 콘퍼런스는 모두 그저 들러리에 불과했다. 이날 중요한 것은 GF라는 신생 게임사와 샤이닝 로드라는 게임이었다. 콘퍼런스가 끝이 나자마자 관계자들 전부가 샤이닝 로드의 E3 한정판을 사기 위해 달려가는 모습이 그걸 확인시켜준다.
그야말로 주객전도.
하지만 지켜보는 마이크루는 그저 즐겁기만 하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인기게임이 탄생하였고 또 ZBox가 없었던 관계자들이 그 자리에서 샤이닝 로드를 플레이해보기 위해 ZBox를 함께 구매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앗싸 1등!’
다른 사람들과 달리 로렌즈는 게이밍 스테이션은 물론이고 닌텐두와 ZBox까지 모든 콘솔을 보유하고 있었다. 덕분에 가볍게 샤이닝 로드만 구매하면 되었기에 경쟁이 극심해지기 전에 구매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샤이닝 로드 패키지를 챙긴 채 GF의 부스를 찾았다.
[다행이야. 멀면 어쩌나 했는데.]
E3가 진행 중인 이곳 로스앤젤레스 컨벤션 센터는 2만 평이 넘는 엄청난 규모의 행사장이다. 게이머스 포럼의 부스가 멀리 떨어져 있으면 상당히 고생해야만 한다.
‘하긴, 당연한 거겠지만.’
사실 이러리라고 예상은 했다. 분위기를 보아선 ZBox의 야심작이 분명한데, 그런 게임사의 부스를 극장과 먼 곳에 준비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러며 둘러보는데 생각 밖에 모습이 펼쳐졌다.
[신생 회사라더니 뭐가 이렇게 커?]
일반적으로 신생 게임사는 돈이 없다. 그러니 아무리 대박 날 거라 예상하는 게임이라고 해도, 좋은 부스를 준비하기는 어렵다. 반면에 GF라는 회사는 돈이 많은 모회사를 보유하고 있는지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규모의 회사들과 어깨를 마주할 정도의 규모의 부스를 가졌다.
‘그래. 그렇게 엄청난 게임을 만들고 작은 부스를 가진다면 말이 안 되긴 하지.’
굉장한 인파가 몰리게 될 것인데 작은 규모로 했다가는 짜증만 커질 뿐이다.
‘그런데 사람이 없어도 너무 없잖아? 웬 동양인 하나만 앞에 앉았고.’
소개를 보니, GF는 이번에 총 3개의 게임을 공개하는데, 모두 시리즈의 첫 작품이다.
애초에 E3에 참가하는 것도 올해가 처음인 회사.
이런 회사의 부스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아무리 재미가 있어도 홍보가 제대로 안 되면 소용이 없는 법이지. 좋아. 내가 힘 좀 써봐야겠어.’
캘리포니아의 모든 게이머가 읽는 일간지인 데일리 it의 기자가 바로 그녀였다. 로렌즈 제인이 게임 기자가 된 이유가 성공할 가치가 있는 게임을 찾아서 그 게임이 조용히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으니 이번에는 정말 열의와 성의를 다하고자 마음먹었다.
[어라? 스크린에 의자가 있어?]
마치 극장처럼 미리 세팅해 놓은 모습이다. 일단 무언가 보여주려는 것 같으니 그녀는 텅 비어 있는 내부의 의자 중에 하나를 골라서 앉았다.
‘트레일러를 콘퍼런스가 아니라 여기서 공개하려고 하는 거구나.’
그녀의 생각은 윤태식의 생각과 그대로 일치했다.
하나의 게임사에서 세 개의 게임을 공개하는 건 생각보다 부담이 많이 되는 일이다. 애초에 이제 막 개발을 시작한 ‘신과 같이’는 크게 상관없었지만 샤이닝 로드와 몬스터 프레데터스는 자칫 한 쪽이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가져가면서 다른 하나가 외면받는 일이 생길 수도 있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트레일러를 공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잠시가 지났을 즈음, 모든 좌석이 꽉 차버렸다.
‘쳇. 독점기사를 낼 수 있나 기대했는데.’
조금 전에 콘퍼런스에서 봤던 게임계 관련 종사자들이 이 자리에 모였고 그런 그들이 자리를 잡으니 뭔가 있나 보다 싶어서 일반인 관람객들도 자리를 잡은 상황이었다.
물 건너간 독점의 기회가 아쉬웠지만 콘퍼런스에서 너무 진한 냄새를 남겼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지금부터 몬스터 프레데터스의 홍보영상을 시연하도록 하겠습니다.】
샤이닝 로드의 발랄한 분위기와는 이름부터가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하지만 아까의 그 강렬한 기억 때문일까, 로렌즈 제인은 아기자기한 몬스터들이 나오는 게임 영상이 펼쳐지리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전혀 다른 것이 나왔다.
‘어? 어?!’
처음으로 콘솔에 도전하는 게임.
당연히 회사의 모든 역량을 다 쥐어짠 작품이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게임사에서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지는 게임은 게임 내부는 몰라도 전체적인 틀이 유사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건 다른 장르였다.
[드래곤!]
영상은 초반부터 많은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세상에··· 그래픽 봐.]
[이 정도면 영화 아니야?]
‘샤이닝 로드와는 완전히 달라.’
서양의 게이머들은 인게임 내부의 자유도를 상당히 중요시한다. 그래서 아까 샤이닝 로드의 자유도에 흠뻑 빠졌던 것인데 몬스터 프레데터스는 샤이닝 로드와는 또 다른 자유를 느끼게 해주고 있었다.
[와아아!!]
[이건 진짜 믿을 수가 없다!]
[GF라는 게임 회사 처음 들어보는데 사실 어디 유명한 회사가 이름 바꾼 거 아냐?]
로렌즈 제인이 그토록 원하는 게임이 바로 이곳에 있었다. 이미 영상은 끝이 났음에도 그녀는 떨려오는 전율에 아직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 게임도 혹시 체험판을 할 수 있는 건가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그녀는 주변에 보이는 직원에게 질문을 던졌고, 직원은 웃으면서 한쪽을 가리켰다.
‘아!’
이미 주변은 많은 관람객이 줄지어서 이 게임의 체험판을 체험해보기 위해서 대기를 하고 있었다. 적잖은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게 뻔해 보였다.
‘그래도 꼭 해볼 거야.’
그녀는 조용히 줄을 서고는 이미 플레이 중인 관람객의 플레이와 반응을 놓치지 않고 유심히 지켜보았다.
[이거 몬스터 주제에 머리까지 쓰네. 또 죽었어.]
[혹시 지금 준비된 게 이 몬스터 하나뿐이라서 클리어 못 하게 만든 건 아닐까?]
그들의 말에 그녀는 내심 부정했다.
‘게임을 완성단계까지 끌고 와서 공개하는 회사야. 몬스터를 고작 한 마리만 만들고 못 깨게 만드는 잔재주를 피울 리가 없어.’
그리고 드디어 그녀의 차례가 찾아왔다. 그녀는 다른 관람객들을 대신해서 꼭 첫 번째 스테이지를 깨겠다는 다짐을 하며 컨트롤러를 잡았다.
[오! 여자다. 다음 차례 금방 오겠는데?]
말을 꺼낸 사람을 향해 로렌즈의 얼굴이 획 돌아가자 남자는 조용히 고개를 돌린다.
‘흥! 게임이 남자들의 전유물인 줄 알아? 내가 꼭 클리어하고 만다!’
이미 앞에서 체험한 사람들의 실패과정을 다 지켜봤다. 숲이 우거진 정글. 생각보다 다양한 지형지물을 이용해야만 클리어할 수 있게 만들어진 것이 분명하다.
[아! 저게 저렇게 이용되는 거였어?]
유심히 봐야만 이용할 수 있는 요소.
넝쿨이 가득한 나무를 쓰러뜨려서 몬스터를 옭아 메면 그것이 곧 덫이 된다. 아무것도 모르고 돌격하던 곰은 그 넝쿨에 묶이면서 속수무책으로 공격을 허용하게 되는 것이다.
‘대체 어떻게 이런 게임을 만들어 낸 거야.’
기대와 흥분 속에서 10분이 지났다.
[설마?]
[맙소사! 여자가 해냈잖아!?]
로렌즈 제인이 곰과 사투를 벌인 시간이었다. 결국, 그녀는 곰의 등에 칼을 꽂아 넣으면서 승리를 이루어냈다.
‘웃기지도 않아. 게임에 남녀가 어디 있다고 저런데?’
그녀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다음 스테이지로 향했다.
‘이 넝쿨만 잘 이용하면 다음 스테이지에 뭐가 나와도 문제없어!’
하지만 그런 그녀의 생각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사막이라니······.]
두 번째 스테이지는 모래가 가득한 사막이었다. 당연히 넝쿨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번 상대는 곰처럼 둔한 동물이 아니라 모래 속에서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유영하는 상어에 가까운 괴물이었다.
‘안 돼!’
사막에 들어갔다가 나오기를 반복하는 괴물 앞에 그녀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잘 싸웠지만 패배한 결과였다.
[좋아. 내 차례야.]
선발주자의 행보는 후발주자에게 좋은 지표가 된다. 로렌즈 제인의 넝쿨 공략법 덕분에 첫 보스 몬스터인 곰은 불가능한 괴물이 아닌 약간 어려운 정도로 격하됐다. 그러나 사막의 상어가 문제였다.
[뭔가 공략방법이 있을 거 같기는 한데······.]
[아니야. 이건 분명히 깨지 못하게 만든 거라고.]
로렌즈의 실패 이후로 많은 사람이 도전했지만, 여전히 역부족이었다. 공격한 뒤에 모래 속으로 숨어 들어가니 도저히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어려우면 게임이 아무리 재미있다고 해도 사는 건 고려해봐야 할 것 같은데?]
누군가가 불만을 이야기하자 그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나도 동감이야. 가능성이 보여야 계속 시도하지.]
[게임은 스트레스를 풀려고 하는 거지 스트레스 받으려고 하는 게 아니잖아.]
아무리 잘 만든 게임이라도 부정적인 의견은 당연하게 생겨난다. 게다가 현존하는 게임 대부분 유저 편의에 맞춰서 쉽게 엔딩을 볼 수 있는 부류가 대다수였다.
로뼉? 제인처럼 어렵기에 해볼 만하다며 불타오르게 이들의 수는 아직 적었다.
‘이런 분위기는 게임사에 상당히 불리할 텐데.’
이미 우호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기에 GF의 입장에서 고민하는 그녀였다. 바로 그때 코스튬 플레이어들이 움직였다. 곳곳에 배치되어서 있던 게임 속 헌터 복장의 동양인들이 근무 중에 게임을 하고자 줄을 섰다.
[아! 또 실패했어! 아 진짜! 나는 열 받아서라도 이 게임 사서 올 클리어 하고 말 거야!]
그렇게 점점 분위기가 과열될 즈음이었다.
드디어 코스튬 플레이어 중 한 사람이 자리 잡았다.
[설마 이 사람들이라고 뭐 다를 게 있겠어?]
[에이. 그래도 여기 직원인 거 같은데, 게임을 좀 알지 않을까?]
[코스튬 플레이어가 뭔 직원이야? 이 행사 때문에 그냥 잠깐 고용한 거겠지.]
‘혹시 이 회사에서 준비한 비장의 무기라거나 그런 건가?’
로렌즈는 숨을 죽이며 동양 무사의 복장을 한 남자의 플레이를 지켜보았다.
[어? 활이다! 활을 들었어!]
활. 사람들이 이렇게 반응하는 이유는 활을 선택했던 사람들이 모두 허망하게 리타이어 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상식에서 활은 안전거리에서 최대의 딜링하는 무기다. 그 때문에 활을 선택한 사람들은 당연히 익숙한 대로 최대거리로 벗어나서 쏘아보려 했다. 그런데 몬스터 프레데터스의 화살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형으로 날아갔고 거리가 멀수록 데미지가 낮아지고 말았다.
활이라는 무기의 특성도 시답잖은데 거리를 벌리면 몬스터의 패턴이 더 난해해졌다. 거리를 두면 둘수록 돌진기술과 점프 공격이 잦아진 것이다. 그 탓에 활은 맞추기 어렵고 맞으면 바로 위기가 찾아오게 되는 최악의 무기였다.
그런데 저 어려 보이는 동양인은 뜻밖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활을 들고 돌격을 해?]
[원거리 무기를 들고 왜 붙어서 싸워?]
로렌즈가 내심 탄성을 질렀다.
‘그랬어! 거리가 멀어서 몬스터가 날뛴다? 붙으면 되잖아!’
< E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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