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3 >
“샤이닝 로드를 플레이할 친구들은 왼쪽의 옷을 입고 몬스터 프레데터스를 플레이하는 친구들은 오른쪽의 옷을···”
‘이미 입고 있네?’
추가로 설명해줄 필요가 없었나 보다. 연습생들은 딱 보고 자신이 입어야 하는 옷에 손을 대고 있었다. 사실 한국에서부터 매일 열 시간 넘게 게임한 입장이 아니겠는가. 코스튬을 보고 어디에 등장하는지 떠올릴 수 없는 것이 외려 이상한 일이기도 했다.
‘왠지 짠하기도 하고.’
연습생들은 애초부터 스타 드래프트를 꿈꾸고 노력해왔다. 그런데 다른 게임을 하게 되어 주눅이 들지는 않는지 조금 신경이 쓰였다. 아르바이트를 좋아서 즐기며 하는 사람은 매우 적기 때문이다.
“어떻습니까. 게임 플레이하는 데 불편함은 없겠지요?”
“네! 문제없습니다!”
‘···괜히 걱정했네. 되게 즐기는 표정이잖아? 하긴, 이게 피아노 치려는 애를 노동판에 보낸 것도 아니고 스타나 샤이닝 로드나 게임이라는 카테고리에 있으니까.’
괜한 오지랖을 부린 모양이다. 어쨌든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나로서는 다행이었다.
“오오! 이거 봐라. 나 제트박스 프로게이머 같지?”
“나도 나도! 어때? 나도 좀 간지 나냐?”
“우리도 빨리 데뷔해야 이러고 방송에도 나가고 그럴 텐데!”
“두고 봐라. 내가 언젠가는 요한이 형도 잡고 진호 형도 잡아서 우승하고 만다!”
코스튬을 입고 직접 Zbox의 콘솔을 잡고 있는 모습을 아주 자랑스럽게 동료에게 보여주는 연습생들이다. 확실히 눈을 사로잡는 맛은 있는데 역시, 나라면 부끄러워서 저런 옷은 못 입을 거 같다.
‘안타깝게도 과거의 미래에서 너희들은 유명 선수가 되지 못한단다.’
내가 모든 프로게이머의 이름을 기억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유명 선수들은 4세대 게이머까지는 대충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이 중에 내 눈앞에 있는 이 연습생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들을 이번행사에 참가시키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어차피 스타 드래프트로는 성공하지 못 할 테니 미리미리 다른 경험을 통해 새로운 진로를 개발할 수 있게 해주려는 의도다.
‘절대로 성공 못할 거라서 무시하고 다른 것을 시키는 게 아니야.’
진심이다.
“회장님. 최종인입니다.”
문밖에서 들려온 목소리. 마이코닉스의 최종인 대표가 찾아왔다. 나는 옷이 망가지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열심히 폼을 잡는 중인 연습생들에게 말했다.
“손님이 오셨군요. 남은 기간 준비 잘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옷은 행사 때 입어야 하니까 숙소에서는 원래의 옷을 입으시고요.”
“네~!”
뒤이어 문을 열자 최종인 대표가 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코스튬을 힐끗 보고는 저들의 얼굴에서 다소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냉정한 아저씨 같으니.’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는 케케묵고 가슴 아픈 말이 떠올랐다. 코스튬에는 키와 비율도 한몫할 테고 말이다.
“회장님. 세미나실에 세팅이 완료 되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세계적인 게임 전시회이자 축제인 E3에 모일 게이머.
그들의 눈을 사로잡을 트레일러 영상이 상영준비 되었다는 말이었다. 이번 영상은 부족한 시간이었음에도 최종인 대표가 몇 번이나 밥상 뒤집기를 사용하면서 최고로 뽑아냈다는 소문이 있었다.
“당장 보러 가야겠군요.”
기대가 크다. 원래 실력 없는 사람들이 밥상 뒤집기를 하면 망하는 법이지만 진짜 실력자가 했을 때는 뛰어난 수작이 나올 가능성이 높은 법이다.
“다들 준비하고 세미나실로 갑시다.”
연습생들도 지금 우리의 대화가 무얼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들 또한 영상을 미리 봐둬야 하는 건 마찬가지라 그들을 챙겨서 이동했다.
“회장님 오셨다. 준비! 준비!”
내가 자리를 잡고 앉자. 세미나실의 불이 꺼졌다.
발랄하면서 생기 있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샤이닝 로드 먼저구나.’
액션 게임이지만 캐주얼한 느낌을 살린 샤이닝 로드에 어울리는 BGM.
그 음악에 어울리는 경쾌한 영상이 시작했다. 한 편의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아기자기함이 돋보였다.
“이야~ 확실히 전문가가 하니까 느낌이 확 다르네.”
“그러게요. 이거 진짜 분위기가 사는데요?”
“딱히 많은 걸 바꾼 것도 아닌데, 확 사네. 컬러 톤이랑 영상의 순서 정도만 편집된 건가?”
개발자들의 말을 들으면서 최종인 대표의 표정을 보니까 맞나보다. 정말로 그것만 변경했음에도 영상의 느낌이 확 변해버렸다. 이래서 영화는 편집이 중요하다고 하는 건가 보다. 고작 3분짜리 영상 몇 개를 확인했는데도 이런 차이가 나니 2시간 전후의 영화는 오죽하랴.
‘배우보고 영화를 고르기보다는 감독보고 고르라고 했었지.’
물론 알기만 할 따름이었다. 그 돈으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 내 타입이었으니 말이다.
다음은 분위기가 달랐다. 통통 튀는 애니메이션 대신 유명영화인 공룡 월드가 떠올랐다.
“이제 몬스터 프레데터스 나오나보다!”
“맞네! 확 달라.”
샤이닝 로드와는 다르게 꽤 많은 부분의 수정이 들어갔는데 이는 마이코닉스가 몬스터 프레데터스에 특별대우를 해준 게 아니었다. 현실적으로 샤이닝 로드의 개발자들이 몬스터 프레데터스 쪽보다 이런 경험이 많다는 걸 의미한다.
“대박이다 진짜. 이게 이렇게 만들어지네.”
“이거 영화로 만들어도 대박 날 거 같은데요? 이걸 누가 게임 영상이라고 하겠어요?”
게이머스 포럼의 엔진을 정말 최대한으로 활용해서 만들어낸 트레일러다. 거기에 국내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최고라 자부하는 최종인 대표의 손을 거쳤으니 완성도는 따져봐야 입만 아프다.
“진짜 내가 만들었지만, 이거 영상 보니까 하고 싶네요.”
김대익의 말에 바로 핀잔이 들어왔다.
“뭘 네가 만들어? 누가 들으면 너 혼자 다 한 줄 알겠다? 여기에 이 게임 안 만든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그런 소리냐?”
“아 왜요? 다 같이 만든 거니까 조금만 감정을 더 대입하면 제가 만든 거도 맞죠 뭐!”
“으이구.”
맞는 말이다. 그리고 개발자가 저런 마음을 먹어야 더 애정을 갖게 된다고 생각한다.
영상은 마지막으로 이번에 발표만 하게 될 신과 같이로 넘어갔다. 이 역시 충분히 흡족한 웃음을 짓게 만들 만큼 매력적이었다.
‘됐어. 이거면 무조건 전 세계의 게이머에게 게이머스 포럼이라는 이름을 제대로 각인시킬 수 있다.’
지금 우리가 가진 가장 큰 약점은 변방의 국가인 한국에서 온 게임사라는 요소다. 아직 세계에서 한국의 이미지는 복사의 왕국이니 이를 타파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최종 목표는 이번 행사로 전 세계가 우리의 게임을 기다리게 하는 것이다.
“이 영상을 보니까. 우리가 제대로 달려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대로 무사히 행사를 마치고 게임을 출시할 때까지 전속력으로 달려 봅시다!”
열렬한 환호와 강직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만큼 내일의 성과를 기대하는 열기가 퍼져 있었다.
***
대한민국의 게임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일명 빅5라는 업체가 생겼다. 큰빛소프트 역시 이때 생겨난 빅5의 게임사다. 하지만 그들은 통상적인 방법과는 다른 방식으로 올라왔다.
일반적으로는 자사의 게임을 성공 궤도에 올리면서 성공의 반열에 오른다. 반면에 큰빛소프트는 스타 드래프트의 유통 회사라는 점 하나만으로 그 자리에 올랐다. 그런 만큼 E3 행사장에 온 송만호 이사는 직원들에게 여느 회사와는 다른 교육을 강조했다.
“우리가 단지 게임 유통으로 큰 회사가 아니라 게임을 보는 눈이 좋은 회사라는 점을 세상에 제대로 알려야만 해. 알고 있지?”
“예!”
“알고 있습니다.”
이윽고 밝아온 E3 행사 첫날.
큰빛소프트는 국내에서 최대 규모의 부스를 대여하고 8개나 되는 게임을 끌어모아 공개했다.
“하나만 제대로 터져다오. 딱 하나면 돼.”
송만호 이사는 많이 바라지 않았다. 남은 7개가 쪽박 차도 단 한 개만 대박이면 짭짤하게 벌 수 있는 게 게임업계다. 스타 드래프트와 같은 행운이 일어나기를 그는 간절히 바랐다.
‘예상보다 사람이 많군.’
행사장을 직접 보던 중 그는 흐뭇해하다가 불쾌한 듯 이맛살을 찌푸렸다.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린 큰빛소프트의 야심작, 서바이벌 프로스트를 볼 때는 만족스러웠다. 그러다 김강철과 게이머스 포럼이 떠오르자 기분 나빠졌다.
‘김강철 팀장을 영입해서 개발하려고 했는데 게이머스 포럼 놈들이 얍삽하게 채갈 줄이야. 그것만 아니면 차선 대신 최선이 됐을 텐데.’
무슨 농간을 부린 건 아니었다. 단지 큰빛소프트가 막 움직이려고 할 때 게이머스 포럼은 이미 만나는 중이었고 그렇게 빼앗겼을 뿐이었다.
‘아니지. 덕분에 이규형 팀장이 이런 게임을 개발해 냈잖아? 좋은 게 좋은 거야.’
서바이벌 프로스트에 보내는 긍정적인 반응에 우쭐해진 그는 자부심을 가졌다. 나아가 기왕 이렇게 된 거, 자신들을 버리고 게이머스 포럼을 선택한 김강철 팀장의 얼굴을 한 번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인기도 없을 게임을 개발했을 김팀장을 어떻게 하면 좋게 돌려 깔 수 있을까?’와 같은 즐거운 상상을 하며 게이머스 포럼의 부스를 찾았다.
“게이머스 포럼의 부스도 이곳 페트리 홀에 있다고 합니다.”
“같은 홀이니 그거 잘 됐군.”
E3가 진행 중인 로스앤젤레스 컨벤션 센터는 2만 평이 넘는 규모를 자랑하고 사우스 홀, 켄티아 홀, 웨스트 홀, 페트리 홀 이렇게 총 4개의 홀로 나뉘었다. 그 탓에 운이 없다면 찾아가는 데만도 시간이 꽤 걸렸는데 송만호 이사는 다행하게도 고생을 덜 수 있었다.
‘이건 마치. 나더러 게이머스 포럼의 부스를 꼭 구경하고 오라는 것 같다.’
그는 기쁜 마음을 가지고 게이머스 포럼의 부스로 향했다. 그리고 부스의 위치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여긴 홀의 입구잖아! 제길. 우리가 그렇게 돈을 퍼다 바쳐도 안 준 자리를 이놈들에게 준 거야?’
게이머스 포럼의 부스 위치는 엄청난 로비를 해서라도 꼭 차지하고 싶었던 자리였다. 부스의 크기도 큰빛소프트의 180평을 한참이나 능가했는데 그런 크기의 부스가 무려 두 개나 됐다.
“말도 안 돼. 이렇게 큰 부스를 두 개나 차지하다니! 도대체 게임을 몇 개나 공개하기에 이러는 거야?”
얼떨떨한 심정으로 송만호 이사는 게이머스 포럼의 부스를 둘러 보았다. 그런데 별다른 게임이 보이지 않았다.
‘몬스터 프레데터스랑 샤이닝 로드? 언더커버 스토리(신과 같이 북미판)는 공개만 한다? 고작 세 개의 게임 때문에 이런 큰 부스를 빌렸다는 소리야? 이것들이 미쳤나?
송만호 이사로서는 입장에서는 망하려고 작정한 허세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 증거로 부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자신들의 부스만큼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한심하군.”
더 볼 것도 없었다. 망한 행사였다. 그는 생각보다도 터무니없게 추락하는 모습을 관람하며 저들을 동정했다.
‘하하하하! 너무 고소해서 애처로운 지경이군. 사람이 이렇게 없으니 나라도 자리를 채워줘야겠어.’
사람이 없다는 걸 이용해서 상대의 속을 긁어내려는 것이었지만, 어디까지나 겉으로는 게이머스 포럼을 위하는 마음처럼 포장했다. 그즈음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어? 송만호 이사님?”
송만호 이사가 환하게 웃었다. 이 자리에서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딱 마주 하고 싶었던 대상이었다.
“오~ 김강철 팀장. 오랜만이네.”
“큰빛소프트도 이번 행사에 참여한다고 해서 이곳에 계실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어떻게 여기까지······.”
말끝을 흐리는 김강철에게 함박웃음을 보이며 그가 말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같은 행사에 참여했잖은가. 자네가 개발했다는 게임을 외면해서야 되겠나?”
“아. 감사합니다. 그런데 죄송하지만 제가 지금은 좀 바빠서요. 여기 가장 앞자리에 이사님 자리를 따로 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어차피 사람도 없어서 미리 자리를 빼주고 말고 할 필요도 없어 보이는데, 마치 굉장한 배려를 해주는 것 같은 김강철 팀장이었다. 송만호 이사는 겨우겨우 웃음을 참으며 대꾸했다.
“그럽세.”
뒤이어 바쁜 척하며 황급히 떠나는 김강철 팀장의 등을 보며 미소 지었다.
“그래. 그렇게 바쁜 척이라도 해야 자존심이 덜 상할 테지.”
앉아서 김강철 팀장의 처지를 음미할 즈음, 안내방송이 페트리 홀 전체에 울렸다. ‘부스 내부의 스크린은 물론이고 외부에 보이는 모니터에까지 모든 연결을 완료했고 곧 몬스터 프레데터스의 트레일러가 상영한다’는 내용이었다.
“돈이 많기는 많아. 이렇게까지 오라지게 쓸데없이 퍼붓는 것을 보면.”
내부 스크린과 모니터 정도는 큰빛소프트 역시 보유했다. 하지만 홀 전체 관람객에게 하는 안내 방송은 족히 20억은 홍보비용으로 감당해야만 주어지는 조건이었다.
< E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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