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190화 (190/577)

< E3 >

4월 한 달이 지났다. 영화 도시로는 전국 관객 270만을 돌파하면서 여전히 흥행몰이하고 있으며 가정의 달인 5월은 그야말로 도시로의 달이 될 것이라고 모두가 예상하고 있다.

그동안 TS 자산 운용에서는 가내의 영광에 10억, 삼일절 특사에 10억, 연애수첩에 3억을 투자하면서 본격적으로 영화계의 큰손이라는 이미지가 생기기 시작했다.

‘더 많이 투자했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딱 10억까지만 받으니 괜히 아쉬워.’

별수 없다. 투자자와 돈은 많은데 마땅한 영화가 드물기 때문이니까.

즉, 투자할만한 영화는 투자하겠다고 덤비는 사람들이 많기에 숟가락을 아무나 들이밀 수 없다. 그나마 10억이라도 내게 계좌를 열어준 것을 좋게 보아야 옳다. 앞으로 우리와 손을 잡고 잘 해보자는 배려이기 때문이다.

“조만간에 나머지 잔금 받겠네요?”

내 물음에 곽지원 전무가 대답했다.

“네. 대략 7억이 조금 넘게 될 것 같습니다.”

“그것 밖에 안 됩니까?”

“밖이라니요. 회장님, 무려 170% 이상의 수익입니다.”

‘하긴, 맞는 말이지.’

고작 반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의 수익률이 무려 170%.

이건 정말 대단한 수익률이다.

‘통이 너무 커져서 그런가? 이제 이런 것도 다 작아 보이네?’

설피 이렇게 생각했다가 곧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욕심이 많아져서가 아니라 애초의 기대수익이 그 이상이었기에 생긴 오류였다. 영화의 투자 수익금 분배에 대해 잘 알지 못했을 때 나는 20억 넘게 수익을 볼 수 있다고 여겼으니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아쉬워. 이게 다 앉아서 돈 버는 사람들 탓이야.’

영화 흥행수익이 350억 정도이고 그 중 제작비의 30%를 투자한 나름 큰손이 나였다. 그런데 손에 들어온 돈은 17억이다. 이게 다 극장에서 떼먹고 투자배급사에서 떼먹고 영화 제작사도 벌어야 하다 보니 뭉텅뭉텅 줄어든 결과였다.

물론, 이건 철저하게 내 관점으로 본 것이다. 이 아쉬움을 보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투자자가 아니라 영화 제작에 직접 참여하는 거라고 본다.

‘여하간 돈 벌기 힘든 세상이야.’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말이 괜스레 나온 게 아니었다. 돈 넣고 불려서 뺄 수 있는 지금도 남들이 보면 배 아플 정도의 늘어진 팔자 아니던가. 그런데도 다른 좋은 방법이 없는지 머리를 쓰게 된다.

미국에서처럼 한국에서도 제대로 벌 방법이 무엇인지 잠시 고민하다가 불현듯 생각이 스쳤다.

“우리가 구매한 판권 있잖습니까?”

“684부대요?”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일단 12억으로 영화 제작 준비과정부터 들어가지요?”

“네, 회장님.”

순 제작비 82억에 마케팅 비용까지 합하면 약 110억 원이라는 엄청난 거금이 들어간 영화. 여기까지만 말을 꺼내도 곽지원 전무는 무슨 의도인지 알아들었다.

“그렇다면 영화사와 투자사를 알아봐야겠군요.”

그가 한바탕 일할 시간이 왔다는 제스처를 보였다. 나는 적당히 만류하며 웃었다.

“깊게 고민하지 마세요. 이런 영화는 제가 보기에 ‘정의의 적’을 만든 감독이 제일 잘 만듭니다. 거기에 투자와 함께 제작 의뢰한다고 해서 협의하세요.”

해당 회사는 투자배급과 영화 제작을 동시에 하는 회사다. 그러니 우리가 50% 거기서 50%로 투자해서 제작하자고 하면 충분히 둘 다 재미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추가금을 더 마련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일단 7억으로 시작한다손 해도 50억 정도가 더 필요하다.

‘가장 편한 방법은 게이머스 포럼을 통해 투자하는 거지. 이러면 50억쯤은 일도 아니니까. 그런데 이건 순수하게 전부 내 호주머니로 오는 게 아니니까 보류해두자.’

정 방법이 없으면 고를 선택지로 남겨두고 다른 방도를 찾아보았다.

의외로 그 답은 쉽게 나왔다.

‘도시로가 이대로 쭉 흥행하면 대충 50억이 나올 테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 옵션을 그렇게 걸어버린 건 정말 최고의 한 수였어. 결국, 그것 때문에 영화 한 편을 더 찍을 수 있을 회사가 못 찍고 망하게 되겠지만.’

내가 이익을 더 취하는 바람에 자금 부족으로 ‘성냥팔이 소녀의 강림’은 한국 영화사에서 사라질 확률이 대단히 높아졌다. 하지만 이건 양심에 손을 얹고서도 매우 잘한 일이라고 자체평가를 내렸다.

어차피 그 영화도 망할 영화다. 작품 자체는 물론이고 배우들의 커리어뿐만 아니라 다양한 각도로 두고두고 회자하는 대형 망작이다. 그렇게 엄청난 손해만 끼치고 처참히 무너질 영화라면 더 찍기 전에 좌초시켜 버리는 편이 낫다고 본다.

‘망할 게임을 부활시켰듯이 어지간하면 손대서 흥행하게끔 하고 싶은데··· 어휴. 성냥팔이 소녀의 강림은 엄두가 안 나. 미래를 내가 안다고 하더라도 그건 총체적 난국이라고.’

나는 불가항력이라며 슬며시 올라온 미안한 마음을 저 멀리 날려 보낸 후, 곽지원 전무와 경호 형이 새로운 영화를 위해 움직이도록 지시했다.

2002년 4월은 그렇게 빠르게 흘러갔다.

2002년 5월 15일.

“진짜 수고하셨습니다.”

샤이닝 로드.

콘솔로 개발을 시작했다가 온라인 게임으로 수정하고 다시 콘솔로 돌아온 이 게임이 오늘, 마지막 테스트를 앞두었다. 2002년 E3를 고작 일주일 남겨두고 있는 아주 중요하면서도 아슬아슬한 시기였다.

‘미국에서 도움을 받지 못했다면··· 끔찍했겠네.’

다시 한번 과거의 책임자였던 김훈 팀장을 속으로 씹어준다.

“버그 현황은 어떻습니까?”

“내부 직원들로 테스트를 해본 결과로는 특이점이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버그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치명적이라 할 수 있는 버그는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테스트는 해보고 또 하고 돌아서 다시 해도 부족하지 않은 법!

“요즘 프로게임단에 연습생들 많은 거 아시죠?”

“네.”

“연습생들에게 일당 6만 원씩 주면서 2주간 테스트 계속 돌리도록 하세요.”

개발자들의 테스트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 그들이 게임을 개발하면서 알게 모르게 쌓인 상식들이 버그가 나올만한 이상한 행위를 막아버리기 때문이다. 반면에 프로게이머들은 게임에서 일반인이 상상도 못 할 행동들에 도전하는 것이 익숙한 사람들이다.

속된 말로 게임 폐인이고 유저 중에서는 하드코어에 헤비유저다.

‘우리 회사 소속의 게이머니까 밖으로 유출될 염려도 적고, 테스트도 성실하게 해줄 사람들이니까 딱 좋은 대상이지.’

아울러 연습생들은 언제나 적은 급여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내는 선수가 대부분이다. 업계 최고의 대우를 해주는 우리 회사 역시도 상대적으로 우대할 뿐이지 대기업 정직원 수준의 급여를 주지는 않는다.

‘착취만 하지 않아도 양반 소리를 듣는 업계이기는 하지만.’

이런 아르바이트가 연습생들의 숨통도 트이게 해줄 수 있으니 일거양득의 해법이다.

이러는 까닭은 그동안 시간과 열정을 쏟으며 만든 게임을 선보일 무대에 올라가기 위해서다.

“테스트는 이곳에 맡겨두고 우리는 미국으로 갈 준비를 합시다.”

우리가 이번에 E3에서 공개하는 게임은 총 3개다.

샤이닝 로드.

몬스터 프레데터스.

신과 같이.

이 중에 완성도가 높은 샤이닝 로드와 몬스터 프레데터스는 각각의 부스를 가지고 게임 체험이 가능하게 할 계획이고 신과 같이는 그냥 동영상과 콘셉트 공개 수준만 할 것이다.

사실 계획이 늦어졌던 만큼 우리가 부스를 가질 공간은 1개뿐이었는데 짱짱한 배경인 마이크루 소프트의 파워 덕분에 추가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본래의 미래에서는 돔3가 최고 찬사를 받았었다지? 하지만 이번엔 바뀔 거야.’

일본 최고의 프랜차이즈 게임, 미국 최고의 프랜차이즈 게임.

다 필요 없다. 올해는 우리가 만든 게임이 지배한다.

92. E3

한 번에 3개나 되는 게임을 공개하는 만큼 이번 E3 참가를 위해 LA에 함께한 직원의 숫자는 무려 20명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은 미국 땅을 처음 밟아본 사람들이다.

“여기 진짜 미국인 거 맞죠?”

“우와 이거 꿈꾸는 거 아니죠?”

다들 자신이 미국에 와 있다는 것을 잘 실감하지 못하는 것 같았는데 그중 가장 오버를 하는 인물은 김대익이었다. 이토록 극적인 반응을 보이며 감격해 하는 이유는 그가 꿈꿔온 최종 목표가 자칫 이뤄질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인정하는 게임을 만들자! 양키에게 한국의 맛을 보여주자! 정말 이거를 이루고 싶었는데··· 지금 순서가 이상합니다. 최종 목표를 초장부터 후려치고 시작할 거 같습니다!”

김대익이 말하고자 하는 게 뭔지는 나도 잘 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생각도 그와 같다. 하지만 아직 김칫국을 마시기에는 아무것도 한 게 없다.

“우리 아직 게임 공개도 안 했어요.”

“에이~ 상품이 대박인지 아닌지 꼭 뚜껑을 열어봐야 아나요? 대박 날 상품은 이미 냄새가 나는 거라고요~”

그가 패기 넘치게 웃었다.

‘제작자가 자신의 게임에 자부심을 가지는 게 좋은 거지.’

사실 나 역시도 공감하는 부분이니 어깨를 으쓱이며 동조할 따름이다.

“이제 다들 현지 직원들 안내에 따라서 숙소에 짐부터 풀도록 합시다.”

“예! 회장님!”

직원들은 모두 하나같이 미국에서의 일정이 기대된다는 얼굴을 하면서 자신의 숙소로 향했다.

직원들 외적으로 데려온 인원도 있었는데 그들은 바로 프로게이머 연습생이었다. 콘솔 게임에 재능을 보이는 이들 네 명은 앞으로 있을 행사 기간에 샤이닝 로드와 몬스터 프레데터스를 플레이하면서 게임성을 어필할 중요 홍보요원이 될 예정이다.

‘따로 와야 편하지 이거 같이 오니까 일이 많구나.’

숙소 배정을 마친 뒤 몇몇 직원들과 함께 그들을 찾았다.

“아직도 짐 정리를 안 하고 있으면 어떡합니까?”

“아!? 회장님?”

연습생들은 입고 있던 옷 그대로 침대에 널브러져 있었다. 가지고 온 캐리어는 아직 열지도 않은 상태였다. 이에 관하여 물으니 돌아오는 답변이 제법 넉살스럽다.

“어차피 필요한 것들은 그때마다 꺼내서 쓰면 되는 것 아닌가요?”

딱히 틀린 소리는 아니다. 미리미리 짐 정리를 해두는 것도 좋지만 모름지기 사람이란 다들 각자의 방법을 가지고 살아가는 법이니까.

‘귀찮아서 적당히 둘러대는 것으로 보인다만.’

이제 갓 성인이 된 연습생들을 보니 피식 웃음만 나온다. ‘너희가 커서 된 게 바로 나다.’라는 모 영화의 명대사를 해줄까 싶다가 그냥 말아 버렸다. 원래 ‘난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고 있어.’라는 태도만큼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드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한편, 녀석들은 무작정 해맑은 얼굴로 숙소가 너무 좋다는 말만 반복했다.

“완전 끝내줘.”

“우리 게임단 숙소도 이러면 진짜 좋겠다.”

‘내 앞에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숙소를 업그레이드해달라는 의미인가?’

하지만 이들의 모습을 봐서는 그런 계산적인 생각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다.

‘게임단 숙소는 차차 생각해 보기로 하고.’

객쩍은 생각을 접고서 본론을 말했다.

“앞으로 있을 행사 동안 여러분이 입고 있어야 하는 복장입니다.”

함께 들어온 직원들이 가방을 열었다.

일종의 코스튬이다. 당연히 디자인은 샤이닝 로드와 몬스터 프레데터스에 등장하는 방어구를 현실에 맞게 디자인한 것들이다. 당연히 보기에만 좋다. 막상 이걸 입으려고 한다면 사정없이 쪽팔려서 얼굴을 들지 못하게 되는 불상사가 일어난다.

‘게임 아이템은 딱 게임에서만 좋은 거니까.’

그런데 이건 어른들만의 생각이었나 보다.

“우와!”

“이거 진짜 멋있다!”

“와! 나 이런 거 진짜 입어보고 싶었어! JTV 보면 이런 거 입고 대회 나오잖아!”

‘그게 멋있냐!?’

잊고 있었다. 이제 슬슬 대기업들이 게임단들을 인수하기 시작하면서 슬슬 프로게이머 다운 유니폼이 정착하고 있다지만 아직은 해괴망측한 옷을 입고 참가하는 대회가 적잖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녀석들한테는 저 코스튬이 정규직 복장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어.’

팀 상징 유니폼이 아닌 방송사에서 원하는 복장을 갖추고 대회에 나가면 훗날 두고두고 흑역사로 남아 자료화면에 쓰이고 만다. 하지만 이 관점은 미래의 것이다. 프로를 꿈꾸는 한창 대의 청소년에게는 가장 멋진 옷이 바로 저 코스튬이었다.

< E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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