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샤이닝 로드의 긴급 수술 >
‘업데이트 불가는 온라인 게임에서 아주 치명적인 문제지.’
김훈 팀장을 재촉했다.
“문제를 해결할 방안은 있습니까?”
“코드를 새로 짜면 시간이 너무 많이 필요해서··· 혹시 콘솔로 다시 전환을···”
우물쭈물하는 기색이다. 마땅한 게 없다는 표시였다.
답답한 모습이지만 나는 화내지 않았다. 이는 마냥 자비로워서가 아니었다.
‘샤이닝 로드 하나 엎어져도 별 상관없지.’
팬더그램에서 이 문제로 끼친 손실은 ‘게임 엔진’과 ‘몬스터 프레데터스’, 개발 중인 ‘신과 같이’와 비교하면 손실이라고 보기도 민망할 정도다. 이들을 품음으로써 얻은 이익이 몇 배나 크다. 그러니 샤이닝 로드에 한해서는 얼마든지 받아줄 수 있었다.
하지만 대책조차 없는 건 이야기가 다르다.
“콘솔로 전환을 하면 자신은 있습니까? 기간은 얼마나 들어갈 것 같습니까?”
“그게······.”
“콘솔로 돌아가자는 생각을 무턱대고 하신 거 말고는 별다른 계획이 없다?”
가만히 김훈 팀장을 보자 그가 땀을 흘리며 침만 삼켰다. 그즈음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남자가 말했다.
“저기··· 정말 죄송하지만 제가 한 마디 꺼내도 괜찮겠습니까?”
직원이 많아져서 한 명, 한 명을 모두 알고 있기는 어려워졌다. 하지만 이름이나 다른 신상명세를 모른다는 것뿐이지 면식조차 있는지 헷갈릴 정도는 아니었다.
“처음 보는 것 같군요.”
“네. 올해. 대학원을 졸업하고 갓 입사했습니다!”
“이제 갓 입사를 했다고요?”
“네!”
당찬 목소리만큼이나 임팩트 있는 대답이었다. 이곳에 있는 인원들이 전부 간부이기 때문이다. 갓 대학원을 졸업하고 바로 치고 올라왔다는 의미가 된다. 나의 의문을 짐작했는지 김훈 팀장이 얼른 말을 덧붙였다.
“이 친구가 올해로 스물여섯인데··· 박사 학위까지 마친 대단한 인재라··· 바로 차장 자리를 줬습니다. 게임에 대한 포트폴리오나 이력들을 봐도 참신한 것들이 많았고요.”
저렇게까지 공부하고 왜 게임을 만들러 왔느냐는 내 시선에 그가 대답했다.
“좋은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 공부했습니다!”
그래. 간혹 이렇게 게임에 미친 사람들이 대작을 만들어 내곤 한다.
“이름이 뭐죠?”
“김현섭입니다.”
“좋아요. 김현섭 차장님. 어떻게 하면 샤이닝 로드를 살릴 수 있겠습니까?”
내 학벌이 뛰어나지 않기에 사람을 가방끈 긴 것으로 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사회 물이 한참 들어서일까.
‘은근히 기대하게 된다니까.’
선입견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러는 걸 보면 역시 인식과 편견의 힘은 대단한 것 같았다.
“전에 함께 게임을 만들던 선배가 농담 삼아 미래에 나올 게임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샤이닝 로드가 해당 게임과 상당히 유사한 특징들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이템의 제작. 그리고 클래스의 자유화. 그리고 요리 등 전투와 상관없는 것들에 대한 자유도입니다.”
자유도.
이는 서양은 물론이고 일본에서도 차츰차츰 추구하기 시작한 새로운 방향성이다. 물론 현시점의 일본은 일정 틀을 만들어두고 그 안에서의 자유도를 더 선호하지만 세월과 함께 변화를 보일 것이다.
“샤이닝 로드의 던전에 약간의 퍼즐 구성을 넣어주고 요리와 같은 제작 기능을 강화한다면 충분히 해볼 만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샤이닝 로드는 이미 그 틀을 짠 게임이다. 여기에 자유도를 활용한 콘텐츠만 확보한다면 서양은 물론이고 일본에서도 환호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일단 게임의 그래픽이나 디자인 같은 부분은 두말할 나위 없이 훌륭한 게임이니까.’
수긍하며 그에게 물었다.
“질문을 하나 하죠. 지금 상황에서 샤이닝 로드를 다시 콘솔로 돌린다면 얼마의 시간이 필요합니까?”
“원래 콘솔을 위한 코드로 준비했던 게임이라 크게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 많지 않은 시간이 얼마냐는 물음입니다.”
“일주일이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 정도라면 괜찮지.’
달가워하는 내 기색을 읽었는지 김훈 팀장이 설명했다.
“몬스터 프레데터스 덕분입니다. ZBox용으로 변경하면 사실 변경 자체는 오늘 중으로 끝을 낼 수도 있습니다. 일주일은 거기에서 오게 되는 또 다른 버그 같은 것을 잡기 데 필요한 시간입니다.”
“생각보다 훨씬 낫군요.”
“네!”
일단락 지어지자 눈에 띄게 안도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는 문제가 많을 것 같습니다.”
옛말에 신상필벌이라고 했다. 상을 받을 만한 사람은 상을 받고 벌을 받아 마땅한 이는 벌을 받아야 한다.
“김훈 팀장님은 수정을 완료하는 대로 샤이닝 로드에서 손을 떼세요. 앞으로 샤이닝 로드는 김현섭 차장이 지휘합니다.”
순간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얼굴을 하는 김훈 팀장.
그러나 이는 당연한 일이다. 폭탄을 터트렸으니 책임을 져야 한다. 오히려 이렇게 말랑말랑하게 처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그는 고마워해야 한다.
“게임의 개발이 완료되기 직전인 이제서야 그런 문제를 가져온 건 김훈 팀장의 명백한 잘못입니다. 그래도 샤이닝 로드가 성공했을 때 공개되는 팀장은 김훈 팀장님이 될 거니까 너무 상심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굳이 이런 사람에게 팀장 타이틀을 그대로 놓아두는 이유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내키는 대로 징계하면 김훈 팀장은 회사의 폭탄이 될 수도 있다.
샤이닝 로드를 날려버리는 폭탄 말이다.
‘실패하면 실패하는 대로, 성공하면 성공하는 대로 저 사람은 회사를 떠나게 되어 있어.’
선택지가 딱 하나라면 모를까, 어지간해서는 마찰을 줄이고 타인의 감정을 크게 자극하는 일은 삼가는 편이 좋다. 인간은 이성적이고자 노력하는 동물이기에 언제 돈키호테마냥 행동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샤이닝 로드는 클로즈 베타 테스트를 눈앞에 두고 새로운 게임으로 거듭나기 위한 과정으로 들어갔다.
***
김현섭 차장은 지난 회의 이후로 매일 같이 내 사무실로 출근을 하고 있다.
“회장님. 샤이닝 로드의 새로운 기획안입니다.”
작성한 기획안을 내가 읽는 동안 그는 초조한 얼굴로 대답을 기다렸다. 상급자이기도 했거니와 그간의 활동으로 내 안목이 비범하다는 소문이 자자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가장 중요한 건, 지난 이틀간 내가 ‘다시’라는 말만 했다는 것이다.
‘어쩌다 보니 테스트하는 식의 그림이 됐지만, 사실 이건 나로서도 모범 답안을 모르거든. 꿈에서의 샤이닝 로드는 그냥 종료해버린 게임이니까.’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실력파 인재 아니겠는가.
만들 줄은 몰라도 맛있는지, 맛없는지는 기막히게 분석하는 일반인처럼 나는 그의 기획안을 평가했다. 그리고 이를 단서 삼아 구상했고 사흘째인 오늘,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네요.”
김현섭 차장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렇지만 수정이 필요한 것이 몇 개 있군요.”
나는 직업군을 지목했다.
워리어, 매지션, 레인저, 요리사, 엔지니어 등의 부분들이었다.
“콘솔에서 이런 구성으로는 게임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줄 수 없다고 봅니다.”
직업군이 많고, 직업군 별로 할 수 있는 일이 다르다는 것은 경험을 다양하게 한다는 측면에서 장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콘솔에서는 장점보다 단점이 주목받을 것 같다.
“그러면 어떻게 할지···?”
“과감하게 메인 직업군을 삭제합시다.”
“네?”
“주인공은 그 어떤 직업도 다 할 수 있습니다. 단, 제한이 필요하겠죠.”
내가 생각한 변경 포인트는 직업과 상관없이 모든 아이템을 착용할 수 있으며 어떤 직업으로도 활동이 가능한 것이다. 대신 아이템의 착용을 위해서는 그에 맞는 능력치가 필요하다. 모든 스킬을 배울 수 있지만 스킬을 습득하려면 포인트가 필요하다.
‘지금은 신기하지만 나중에는 흔한 방식이지.’
이런 요소들이 꽤 많다. 너무나도 익숙해서 그게 최초에는 발명품이었다는 사실조차 잊은 아이디어와 물건들이 말이다.
“이러면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나 단시간에 큰 이익을 보기 위해서는 하나에 몰아주는 것보다 효율성이 떨어집니다. 즉, 플레이어가 원하는 방식으로 알아서 육성하도록 하는 거지요.”
“아···!”
“그리고 요리사, 엔지니어 같은 직업군은 보조 클래스로 넣으세요. 이것 역시 전부 익힐 수 있으며 포인트로 제한을 줍시다.”
반쯤 입을 벌린 채 고개만 끄떡 끄덕 하던 김현섭 차장이 질문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전부 다 키우고 싶은 사람도 생길 텐데요.”
“전부 키우게 열어두면 됩니다.”
“예?”
“레벨 업을 제한 없이, 무한히 할 수 있도록 합시다.”
어차피 레벨업 필요 경험치는 요구량을 일정 비율로 계속 늘려버리면 그만이다. 즉, 가능은 하지만 모든 클래스의 스킬을 다 익히기 위해서는 상상할 수 없는 노가다를 해야만 할 것이다.
‘이 무한 반복에 실망하는 사람도 많지. 그런데 사람 취향은 제각각이거든. 노가다가 없으면 게임을 하는 것 같지 않아 하는 사람도 상당하니까.’
일명 ‘마니아’라 불리는 층위가 여기에 속한다. 어려움에서 짜증보다는 극복하기 위한 시련을 느끼고 넘어섰을 때 짜릿함을 즐기는 열성 플레이어들이다.
다만, 이들의 입맛은 까다롭다. 불필요하게 전체적인 플레이 타임을 늘리거나 제작진이 강요하도록 만든 노가다 시스템은 굉장히 혐오하며 극명한 반응을 보인다. 그렇기에 우리는 마니아들이 좋아할 만한 자발적인 노가다를 만들어야 했다.
시스템의 끝을 보기 위한 노가다 말이다.
“워리어 계열은 요리사가 필수입니다. 요리 재료를 사서 요리를 해야만 하지요. 레인저 계열은 사냥한 대상이 동물형일 경우 사냥감으로부터 고기를 획득할 수 있게 합니다. 그리고 매지션 계열은 음식을 마법으로 만들 수 있도록 하세요.”
나는 감을 잡지 못하는 김현섭 차장에게 조언했다.
“이런 식으로 구성하면 유저들은 우리가 정한 틀 안에서 자신들의 자유도를 더욱 실험하게 될 겁니다.”
온라인 게임 유저보다 콘솔유저들이 이러한 요소들을 더 즐기는 법이다.
김현섭 차장은 유레카를 외치는 아르키메데스처럼 두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회장님. 존경합니다!”
‘뭘 이 정도를 가지고.’
처음에는 나름대로 뻘쭘했는데 회장 자리에 오르고 성공 가도를 달리다 보니 이제는 익숙하게 듣는 멘트였다. 가볍게 웃어넘겼다.
“새로운 기획안을 오늘 안에 작성할 수 있겠습니까?”
“네! 됩니다!”
그가 불타는 정열을 보였다.
며칠간 지켜본 바로 김현섭 차장은 정말 게임을 제작하기 위해서 살아온 사람이었다. 이보다 열의를 가지고 게임 개발을 즐기는 사람은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프로그래밍도 수준급이고, 창의성도 아주 좋아. 능력 있는 사람들은 세상에 정말 많다니까.’
노는 물이 달라져서 그런지 학벌은 물론이거니와 어느 하나 허투루 볼 직원이 없었다. 미흡하다 쳐도 각자 번뜩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이를 보다 보면 꿈속 미래의 내가 왜 평범하게 그냥저냥 살았는지도 이해된다.
익숙한 일을 하며 습관적으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열심히는 했으나 치열함은 부족했기에 발전 없는 현상유지만 한 것 같았다. 그리고 평범한 대다수가 이런 인생을 산다고 본다.
“좋습니다. 그럼 그렇게 진행해 주시고, 샤이닝 로드 플레이 영상은 어떻게 됐죠?”
“현재 다섯 개의 영상을 제작해서 마이코닉스 측으로 보냈습니다.”
“그래픽 소스들은요?”
“함께 보냈습니다.”
바람직한 일 처리였다.
“수고하셨네요. 알겠습니다. 나가서 나머지 처리해주세요.”
“예! 회장님.”
김현섭 차장은 꾸벅 인사를 하고 빠르게 사무실을 나갔다.
나는 기지개를 쫙 켜고 굳은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다.
‘요즘 들어서 너무 열심히 사는 건가 싶구먼~’
생각 같아서는 발 뻗고 눕거나 게임이나 한 판 즐겼으면 좋을 텐데, 아직은 쉴 때가 아니다. 뒷짐 지고 있지 말고 중요한 업무를 해야 한다.
나는 전화기를 들어 LA에 있는 최종인 대표의 번호를 눌렀다.
- Hello?
“대표님 접니다. 윤태식.”
- 아! 회장님!
“잘 지내시죠?”
- 덕분에 아주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직원들 모두 회장님 덕분에 호사를 누리고 있다고 좋아합니다.
“잘 적응하고 계신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만족스러운 대답이 들리니 기분이 좋다. 그렇게 안부를 나누고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 안 그래도 제가 전화를 드리려던 참이었는데···
“알고 있습니다. 새로 받은 파일 때문이시죠?”
- 네.
원래 이런 자료는 해킹이나 유출의 위험 때문에 절대 온라인으로 보내거나 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보다 조금이라도 빠르게 일을 처리하는 게 이득이라는 판단에 온라인으로 파일을 보냈다.
정확히는 우리 게이머스 포럼의 서버로 전송한 것을 확인하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이러면 유출의 위험이 조금이라도 줄어 들을 테지.’
< 샤이닝 로드의 긴급 수술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