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183화 (183/577)

< 미국으로 가자 >

“최종인 대표님. 채용 공고 올리셨죠?”

“네. 올렸습니다.”

애니메이터 혹은 그래픽 아티스트들을 추가 채용하기 위한 공고가 아니다. 아티스트들은 이미 섭외가 예정된 인물들이 있다. 지금 우리가 원하는 인물들은 아티스트가 아니라 성우다.

‘꿈속의 원작 몬스터 프레데터스에는 성우가 없었지만, 우리 버전에서는 넣어봐야지.’

이러한 작은 차이들이 모여서 더 높은 퀄리티의 작품을 만들어낸다고 믿는다.

나는 점검차 최종인 대표에게 질문했다.

“어떤 성우들을 채용해야 하는지 잘 아시죠?”

‘신과 같이’의 그래픽 개발이 어느 정도 완료되면 바로 마다가스칼 제작을 시작할 계획이다. 즉, 이번 몬스터 프레데터스에서 채용하지 않더라도 마다가스칼에 어울리는 성우가 있다면 그 사람과는 미리미리 접점을 만들어두자는 것도 주요 목적 중의 하나였다.

이 부분 역시 공고문에 표기했다. 게임에서 애니메이션 성우로의 확장이 충분하게 가능하다고 말이다.

“물론입니다만.”

최종인 대표가 우려를 표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걱정될 정도입니다. 아무래도 저희의 관심사는 마다가스칼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몬스터 프레데터스보다는 마다가스칼에 잘 어울리는 성우들을 더 유심히 관찰하지는 않을지 싶습니다.”

“괜찮아요. 전혀 상관없습니다.”

몬스터 프레데터스는 성우가 중요하지 않다. 솔직히 성우들이야 대충 감정선만 지켜줄 수 있는 수준이면 게임 자체로 밀고 들어갈 수 있다.

‘없어도 원작만큼의 인기는 떼놓은 당상이거든.’

반면에 애니메이션은 성우의 역할이 지대하다. 가히 영화의 배우들만큼이나 중요한 문제이기에 마다가스칼에 생각이 더 치우친다고 걱정할 이유가 조금도 없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것 같습니다.”

풍족한 지원과 열정 가득한 직원. 여기에 회장인 내가 직접 지켜보는 덕분에 우리 일정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갔다.

****

[에밀리]

13살.

한국 나이로는 15세인 에밀리는 2년 전에 처음으로 경험했던 연극을 통해 연기에 눈을 떴고 그 이후 배우의 삶을 꿈꾸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국이나 미국이나 부모의 마음은 자식이 가난하게 살 가능성이 높은 예술보다는 안정적인 삶을 선택하길 바란다.

그 탓에 에밀리는 배우와 연기를 꿈만 꾸고 있을 뿐이고 어린 나이에도 인생의 허망함과 불행함을 곱씹곤 했다. 한숨도 잦아지고 말이다.

하지만 이 정도에서 물러나기에는 아직 그녀는 젊었다. 어리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생기발랄하다.

‘아냐. 아냐. 아직은 그런 생각을 하기엔 일러! 나는 아직 기회를 얻을 시간이 많잖아? 해보는 거야!’

어린 에밀리는 한 걸음의 용기를 내었다. 부모님 허락이 없었음에도 직접 나서서 찾아보고 행동하기로 한 것이다. 부모님이 알면 난리 치시겠지만 이쯤은 각오한 채 몰래 인터넷에 접속했다. 그리고 혹시나 모를 오디션 공고가 있는지 찾아보았다.

그러던 중 【Gamer’s Forum Voice actor Audition】을 발견했다.

[게이머스 포럼? 그게 어디지?]

조금 전에 인터넷에 올라온 오디션 공고였다. 소녀는 그동안 들어본 적 없는 회사의 이름에 어쩌면 자신이 합격할 수 있는 곳이 아닐까? 그런 기대를 하게 되었다. 더불어 에밀리의 동심이 격려했다.

‘맞아. 이건 선물이야.’

스스로 결단한 타이밍과 오디션 공고의 발견이 모두 큰 인연이라는 생각마저 품었다.

[이 오디션을 봐서 당당히 합격한다면 아빠도 내가 이쪽 길로 나가는 걸 허락해 줄지도 몰라!]

세상 근심을 다 가진 양 한숨만 포옥 포옥 내쉬던 입에서 당찬 포부가 나왔다.

‘할 수 있어! 그래! 에밀리! 너라면 할 수 있어!’

그녀는 스스로 응원하며 조심스레 오디션 공고에 어떤 역할들을 찾고 있는지를 확인했다. 이것이 완벽한 인연이라면 자신에게 꼭 맞는 것이 있으리라는 알 수 없는 믿음을 품고 말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에밀리의 작은 판타지는 보답을 받았다.

【Role

Guild representative, Village head, Artisan, Quest manager】

길드 조합장이나 마을 촌장, 대장장이 같은 역할은 다 남자에 나이 들은 목소리가 필요했지만 퀘스트 매니저는 어린 소년 혹은 소녀의 목소리를 원한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고작 13살밖에 안 된 에밀리의 목소리는 어려도 너무 어리긴 하지만 그런 건 안중에 없었다. 부푼 기대감과 자신감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에밀리는 오직 희망으로 무장한 채 내용을 꼼꼼하게 읽었다.

[오디션 지원은 어떻게 하는 거지?]

공고에 나와 있는 담당자의 메일로 지원신청을 받는 것 같았다. 그녀는 시간을 끌 것도 없이 당장 지원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메일을 보내려는 순간에 깜짝 놀랐다.

[에밀리~ 방에 있니?]

[아? 응! 바··· 방에 있어!]

방문이 열린 것도 아니고, 딱히 나쁜 행동을 한 것도 아닌데, 그녀는 마치 컴퓨터로 나쁜 영상을 보다가 걸린 소년과 같은 얼굴이 되어 있었다.

[얼른 나오렴. 식사해야지!]

[알았어! 엄마! 금방 나갈게!]

들어오시면 어떻게 하나 가슴이 뛰었지만 다행히도 엄마의 호출은 여기서 끝이었다. 에밀리는 클릭 직전이었던 마우스를 콕 누르고서야 비로소 안도했다.

‘그래도 접수는 성공~!’

작은 난관을 훌륭하게 넘은 기분이었다. 에밀리는 입을 가리고는 한껏 웃었다.

***

[윤태식]

성우 지원서를 보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눈에 띄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한국이라면 나름대로 유명하지만, 미국에서 게이머스 포럼이라는 회사는 소위 ‘듣보잡’ 수준이니 말이다.

‘그래도 지금 놓친 사람들은 나중에 아주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될 거다. 초창기 멤버가 될 기회를 외면한 거라고.’

몬스터 프레데터스가 나오고 마다가스칼마저 개봉하면 우리 회사는 듣보잡이 아니게 될 것이다. 그때는 유명한 성우들의 열정 가득한 지원서들을 쌓아두고 고를 수 있게 되리라 기대해본다.

그러다 한 소녀의 신상명세가 보였다. 무려 88년생이란다.

“최종인 대표님. 88년생은 너무 어린 거 아니에요?”

“그렇긴 한데 어린아이가 노력하려는 게 가상해서 오디션의 기회라도 줄까 해서요.”

굳이 뽑으려고 서류 합격을 시켜준 것이 아닌 모양이다. 원래 이런 직업들은 오디션을 보면 볼수록 또 실력이 늘어난다고 하니, 꼬마 아가씨에게는 아마도 아주 귀한 경험이 될 것이다.

‘가만. 이름이 좀 익숙한데?’

Emily J Steen.

꿈에서조차 외국 친구는커녕 여행조차 가본 적이 없던 한국 토박이가 바로 이 몸이다. 이런 내게 왠지 익숙한 느낌이라는 건 꽤 유명한 인사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되짚어도 도통 생각나지 않았다.

‘에이. 익숙하지 않은 영문으로 이름을 봐서 그런가 보다. 원래 백인도 황인 얼굴 잘 구별 못 하고 황인도 백인은 다 비슷비슷하다고 보잖아.’

그러나 이런 내 생각은 오디션을 시작하고 약 두 시간이 지난 후, 산산이 깨어졌다.

‘이럴 수가! 엠마 스틴이었어!?’

한때 나름 삼촌 팬이라 자부했기에 이름을 보고 알아차리지 못한 내 자신을 강하게 질책해본다. 그리고 뚫어지라고 확인해보니 영화에서 보던 모습과 비교하자면 확연하게 앳된 모습이지만, 내가 기억하고 있는 얼굴이 꽤 살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몇 가지도 덩달아 떠올랐다.

2017년 할리우드에서 뽑은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여배우.

2017년 전 세계 여배우 출연료 1위.

바로 엄청 귀엽게만 보이는 저 금발 소녀에게 붙을 수식어다.

‘맞다. 엠마 스틴의 본명이 에밀리 스틴이었어. 에밀리 스틴이라는 배우가 이미 배우 목록에 들어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가명으로 데뷔했다고 했지.’

확실히 그 꽃 미모는 13세······.

‘아니지. 나는 한국인이니까 우리 나이로 말하자. 13세는 뭔가 위험해!’

15세의 어린 나이로도 가려지지 않는 매력이 돋보였다. 나는 망설임 없이 외쳤다.

“합격!”

더 볼 것도 없다. 무조건 통과!

그냥 국어책 읽듯이 읽어도 합격이다.

‘이건 매우 합리적인 판단이야. 절대로 로리콘이라거나 팬심이 아니라고.’

미래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에밀리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몸값이 비싼 여배우가 될 예정이다. 그런 이와의 접점! 황금 인맥! 이것들을 포기한다면 그게 멍청이다.

하지만 위대한 내 심모원려를 세상이 알기에는 아직 일렀나 보다.

내 말에 앞과 옆에서 의문을 표했다.

[시작해요?]

“회장님?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습니다만······.”

한국말이었기에, 의미를 알 수 없었던 소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지금 하면 되는지 묻는 분위기였고 최종인 대표는 나직하게 일러주었다.

그제야 정신 차리고 얕게 기침했다.

“일단 한 번 들어보죠.”

“알겠습니다.”

영어 문외한인 나를 대신하여 최종인 대표가 그녀에게 시작 메시지를 전했다. 곧 에밀리가 지문을 읽었다.

[아아~ 요즘 들어서 헌터들이 너무 많이 몰려온다니까요? 제발 월급만큼만 일하고 싶은데~ 왜 이렇게 퀘스트가 많은 건지 모르겠어요~]

역시 좋다. 무슨 말인지는 못 알아듣겠지만 외국어는 듣기가 좋으니까 됐어!

“합격!”

“회장님?!”

또다시 터져 나온 나의 합격 외침에 최종인 대표가 당황해서 얼굴까지 붉게 물들이고는 날 쳐다본다.

“자꾸 왜 이러십니까?”

“네? 왜요? 잘하잖습니까. 합격시켜도 되겠는데요?”

“진심이십니까?”

“네.”

안면에 철판을 쫙 깔고 대답했다. 대사가 찰진지 개떡 같은지는 솔직한 말로 모른다. 하지만 이건 확실하게 안다. 오늘 오디션을 보러온 모든 성우와 에밀리 스틴 한 사람을 비교했을 때 회사에 더 큰 이득이 되는 존재는 에밀리 스틴이라는 것이다.

“정 그러시다면······.”

결국 내가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채종인 대표가 에밀리 스틴에게 합격한 것을 축하한다고 말을 전달했다.

“You have passed. Congratulations.”

“Really?”

“Sure.”

“Yeaaaaaaaaaaaaaaaaaaaaaaaah!”

15세 소녀다운 감정표현. 에밀리는 그녀 특유의 귀여운 웃음을 보이면서 기뻐한다.

[그런데 아직 미성년자라서 우리와 계약을 하려면 부모님의 동의서가 필요해.]

한창 방방 뛰면서 좋아하던 에밀리는 이어서 나온 최종인 대표의 말에 급히 사색이 되어버렸다.

[혹시 오늘 오디션을 보러왔다는 사실을 부모님이 모르시니?]

[네.]

고개를 푹 숙이고는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소녀의 모습에 심사를 보던 모두가 안절부절못하게 된다. 최종인 대표에게 슬쩍 물었다.

“왜요? 부모님이 모르신대요?”

“네. 전혀 협의가 안 된 모양이에요. 회장님. 이거 부모님이 허락을 안 해주시면 저희도 곤란하게 됩니다. 그냥 불합격하고, 다른 성우를 뽑으시는 게 나을 것이라고···”

‘에이! 이 사람이. 황금 인맥이야!’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저는 에밀리로 결정했습니다.”

“부모님 허락은 어쩌시려고요?”

“받아야죠.”

“네?”

“제가 직접 같이 가서 받아 오겠습니다.”

“네에!?”

지금이야 반대한다손 쳐도 어차피 나중에는 배우의 길을 걸어서 엄청나게 대성할 소녀다. 즉, 가능성은 제로가 아니라 충분하다는 의미다.

대형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거기에 에밀리의 역할이 주어질 거라는 내용과 우리 회사가 결코 작거나 사기성을 가진 회사가 아니라는 점을 어필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 자식 칭찬에 귀가 팔랑이지 않는 부모는 없는 법이거든.’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대우도 최고로 해주면 결단코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제가 책임지고 부모님 동의를 받아올 테니까 대표님은 걱정 말고 기다리세요.”

그 말에 옆에서 듣던 김유천 과장이 내게 물었다.

“그런데 회장님은 영어가··· 조금···”

그래. 나 영어 못한다.

하지만 내게는 훌륭한 직원들이 있다.

“그러니까 김유천 과장님은 저와 함께 가셔야죠.”

“아? 아! 네.”

그렇게 내 전폭적인 지지를 통해서 퀘스트 매니저의 자리는 에밀리 스틴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우리가 찾아가서 부모님을 함께 설득해주겠다고 말을 했더니, 합격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신나서 깡충깡충 기쁨을 표현했다.

‘진짜 귀엽다.’

엠마 스틴은 마치 어릴 때의 태희를 보는 것 같아서 더 귀엽고 정이 간다.

< 미국으로 가자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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