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181화 (181/577)

< 마이코닉스를 품다 >

마다가스칼이다.

전 세계에서 5억 3,200만 달러의 흥행 수입을 올리며 시리즈 화에 성공한 작품.

나아가 TV 시리즈로도 방영하여 엄청난 인기몰이를 한 애니메이션이었다. 뾰로롱보다 먼저 제작해야 하는 이유는 마다가스칼이 2005년에 개봉하기 때문이다.

먼저 치고 들어가야 한다.

“배경을 굳이 뉴욕으로 잡으신 이유가 있나요?”

모른다.

‘원작이 그렇다더라.’

하지만 이렇게 대답할 수는 없으니 적당히 둘러댔다. 뭐든지 자주 하면 는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있어 보이게 껴맞추는 일도 이제는 꽤 익숙해졌다.

“요즘 뉴요커가 대세잖아요.”

“글쎄요. 제 생각에는···”

“아무튼!”

전문가의 식견이 반론을 제시하였으나 내게는 먹히지 않는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으므로 용납하지 않겠다!

“이 영화를 만들어낼 자신이 있다면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까 개발자들을 섭외해 주세요.”

확고부동한 내 모습! 기세의 승부!

최종인 대표가 얼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예. 그런데 저희가 정말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도 되겠습니까? 극장판이면 TV에 들어가는 것보다 훨씬 많은 예산이 필요할 텐데요?”

“얼마나 차이 납니까? TV 판을 제작했을 때와 극장판을 제작했을 때 말입니다.”

“TV 판으로는 20억이면 50부작 정도를 제작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극장판은···”

여기서 살짝 긴장했다.

극장판은 TV보다 퀄리티가 훨씬 올라가게 되니 비용도 당연히 증가한다.

‘미국의 그 꼬맹이들 나오는 애니메이션도 저예산이라고 하면서 900억이나 들여서 만들었다니까. 역시 천조국은 돈 세는 단위부터가 달라.’

호언장담하는 것과 달리 최종인 대표가 몇백 억을 말하면 나는 ‘깨갱?!’하고 꼬리를 말아야 한다. 모양새가 빠지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그때 상대가 말했다.

“80억. 못해도 70억 정도가 들어갈 겁니다.”

‘에게? 겨우?’

결단코 적은 돈이 아니다. 그런데도 가볍게 느껴지는 것은 세상만사가 상대적으로 평가되기 때문이었다. 몇 백억에 비하면 80억은 거저나 다를 바 없었다. 나는 내심 쾌재를 부르며 ‘괜히 겁먹었잖아? 이 정도쯤이야 얼마든지 가능하지!’하고 생각했으나 이를 2초 만에 뒤집었다.

‘아니야. 이 사람이 말하는 금액은 국내용이 틀림없어. 높게 쳐 줘봐야 아시아 정도에나 통하는 퀄리티일게 분명해. 마다가스칼은 세계를 무대로 봐야 하는 만큼 그래서는 곤란하지.’

내 바람은 할리우드와 경쟁할 수 있는 퀄리티의 애니메이션이다. 지금 말하는 수준으로 개발해서는 1998년도에 개봉했던 버그라이프 보다도 못한 작품이 나올 게 불을 보듯 뻔했다.

돈 아꼈다고 좋아할 게 아니라 명품을 만들기 위해 채근하고 아낌없이 더 투자해야 할 때였다.

“한 가지 물어보겠습니다.”

“예, 회장님.”

“만약 우리가 작년에 나온 애니메이션인 쇼렉 같은 걸 제작한다면 얼마의 예산이 필요하겠습니까?”

“쇼렉이요?”

최종인 대표의 표정이 더할 나위 없을 정도의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불가능해요.”

그는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영화를 한국에서 만들어서는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아니요. 제가 원하는 대답이 아닙니다. 저는 얼마가 필요한지를 물었습니다.”

“정 그리 물으신다면··· 아마도 150억은 있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하네요.”

확신 없는 그에게 대답을 재차 종용했다.

“제작한 적이 없으니 확실할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확신은 필요합니다. 재확인하지요. 150억이면 쇼렉과 같은 퀄리티의 애니메이션을 제작하실 수 있겠습니까?”

이제야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아는 눈치다. 최종인 대표가 우물쭈물한 기색을 버리고 다시 대답했다.

“200억입니다. 약간의 초과가 생길 수는 있지만, 최대 200억 이내면 제작해낼 수 있습니다!”

‘200억! 역시 확 뜨는군. 하지만 그대로 이 정도는 감당할 수 있어.’

미국이라면 어림도 없는 금액이다. 물론, 한국에서도 빠듯한 예산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그 정도는 내가 어떻게든 해낼 수 있었다.

“좋습니다. 영화의 전체적인 스토리라인은 제가 드립니다. 이를 각색해서 제대로 된 작품. 세계를 놀라게 할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봅시다.”

“정말입니까!? 회장님. 이건 무조건 손해가 날 겁니다.”

그의 우려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예전에는 이런 반론을 많이 들었지만, 요즘은 게이머스 포럼의 누구도 반론하지 않습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아! 혹시 다 퇴사를···!”

‘아니라고!’

무게 좀 잡으려고 했는데 이 눈치 없는 남자가 분위기를 깨버린다. 내가 항명한다고 모가지를 뎅겅뎅겅해버릴 리가 없잖은가!

잠시 이마를 짚었던 내가 준비해둔 말을 마무리 지었다.

“투자 금액이 전액 손실이라고 하더라도 모든 책임을 제가 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회사에서는 실패에 대해 조금도 걱정하지 않아요. 어떻습니까? 실패해도 책임지지 않는 기회를 놓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하겠습니다!”

“예, 그러셔야지요.”

물론, 조건은 있다.

“대신 영화는 확실하게 제작하셔야 합니다. 영화가 실패해서 생기는 손실은 제가 책임집니다. 그러나 퀄리티 부족으로 제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개봉이 미뤄질 겁니다.”

나의 판단 기준은 꿈에서 본 미래의 그 작품이다. 수준 미달의 잣대가 아주 엄격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새겨들으시라.

“계속 미뤄진다면 마이코닉스는 새로운 대표를 찾아야 하는 불행한 운명을 마주하게 되겠지요.”

기호지세!

최종인 대표는 이제 호랑이 등에 올라탄 기분을 느낄 것이다. 호랑이 덕분에 대한민국 애니메이션계에서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위세를 부릴 수 있겠지만 언제 호랑이가 자신을 덮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항상 느껴야 한다.

‘잘 해내리라 믿습니다.’

이미 어려운 상황에서도 목표를 달성할 인물이다. 아낌없는 지원이 더해지면 멋지게 해낼 것이고 나태하게 기회를 날려버리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파이팅 해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신과 같이’의 그래픽 팀은 교육이 다 끝나면 배경 작업을 위해 뉴욕의 사무실로 장기 출장을 가셔야 합니다. 해외 장기 출장이 가능한 인원들로 배정하세요.”

이 말에 최종인 대표가 내게 소리쳤다.

“회장님!”

‘깜짝이야. 왜?’

기습 호통이라 당황했다. 얼떨떨해하는 나에게 최종인 대표가 웃으며 말했다.

“게이머스 포럼은 우리 개발자들에게 정말 꿈의 회사라고 생각합니다!”

‘엥?’

나도 모르게 얼빠진 얼굴을 해버렸다. 그 사이 최종인 대표는 신바람 나는 얼굴로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

내 일과는 대부분 한량과 비슷하다. 게임개발이 얼마만큼 둘러보다가 몇 마디 해주고, 근무 시간에 플레지를 포함한 여타 게임을 플레이했다. 명상으로 미래를 엿본다는 핑계로 푹 자고 말이다. 여기에 끼니마다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는 일상이었다.

물론, 영화 투자 등등처럼 미래에 대박이 될 상품을 선점할 때는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선다. 하지만 모아서 보면 ‘다사다난했구나’ 싶을지라도 일과 전체 비중으로 보자면 이 사례는 드물었다.

‘업계 사람들만 만나도 충분하다 보니까 옛날 인연은 거의 돌아보지도 않게 되었고. 여기에 꾸준하게 운동을 해주면 여가랄 게 거의 없거든.’

이런 내가 오늘은 사적인 일로 외출을 했다. 바로 마이코닉스에서 겪은 보안과 안전 문제를 보강하기 위해서였다.

‘슬슬 경호 인력이 필요하기는 할 때지. 자고로 싸워서 이기는 것보다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고니까.’

예전에 본 다큐멘터리에서 촬영현장이 나온 적이 있었다. 그때 감독이 한 멘트가 자신이 배고파야 한다는 거였다. 감독이 배가 고파야 스태프들의 끼니를 건너뛰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마찬가지로 나는 내가 싸워서 지지 않을 수 있다는 이유로 직원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내가 직접 가는 곳이 어디던가.

미국이다. 총기 소유가 합법인 나라이며 영화 속에서는 고속도로 역주행부터 백악관이 백 번은 넘게 무너졌다가 다시 세워지는 곳! 여간해서는 죽지 않는 경찰이 악당 때려잡겠다고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무자비한 세상!

‘···일 리가 없지만, 아무튼 혼자 깡다구를 자신할 필요는 없지.’

이를 위해 군대의 옛 인연을 호출했다. 만나기로 한 장소는 스타박스 강남 1호점이었다.

“캐러멜 마끼아또 하나랑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 주세요.”

한국인들은 커피를 사랑한다. 하지만 본래 한국인들이 사랑하던 커피는 거무죽죽한 아메리카노가 아니라 자판기 커피로 익숙한 믹스커피였다. 그랬던 한국의 커피 문화가 2000년대에 이르면서 점점 흙탕물과도 비슷한 맛의 아메리카노로 변해가고 있었다.

스타박스 강남 1호점은 변해가는 한국의 커피 맛을 선도해나가게 될 커피전문점이다. 이곳에서 나는 오랜만에 아주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진짜 오랜만이네? 98년도에 마지막으로 봤으니까 4년 만인가?”

“네.”

이름은 최준우.

나보다 1살 어린 이 친구와 만난 곳은 최전방 GOP다.

과거의 나였다면 100번 싸워서 99번은 질 만큼 터미네이터 같은 녀석이다.

‘1%의 가능성은 내 자존심!’

부른다고 재깍 달려올 정도이기에 당연히 같은 부대로 여길 수 있겠으나 실은 전혀 다른 부대였다.

‘just 땅개였던 나와 달리 이 친구는 우리 사단 수색대였거든.’

그런데도 이런 친분이 생길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소초가 가진 특이성 때문이다.

바로 땅굴!

1971년 9월 25일 북한군 총참모장에게 내려졌던 ‘속전속결 전법을 도입하여 기습전을 감행할 수 있게 하라.’라는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북한이 만들었던 땅굴은 20여 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최전방 소초 중 일부에는 혹여나 그런 땅굴을 추가로 만들어내는 것을 감시하기 위한 땅굴감지기가 설치되어 있는데, 우리 소초가 그 감지기를 보유한 소초였다.

다른 부대는 어떤 은어를 붙였는지 모르겠으나 우리 부대에서는 땅굴감지기를 청진기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 ‘청진기’는 사단 수색대에서 파견 나온 수색병들이 사용하는데 그때 맺은 인연이 바로 눈앞의 최준우였다.

이 친구가 내가 부소초장으로 근무할 때 우리 소초에 파견 나왔던 수색병이다.

“군대 전역하고 그동안 지냈냐?”

알면서 하는 물음이었다.

꿈속 미래를 통해서 그나 나나 변변찮게 살았다는 사실을 대충 기억한다. 오늘 당당히 부른 이유도 내 곁이라는 최고의 직장을 소개해주기 위해서였다.

“경찰에 들어갔었어요.”

“경찰? 오? 잘 어울리는데?”

이 친구는 사단 최정예라 불리는 수색대대 내에서도 끈기와 체력으로 유명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했던 것이 사격 실력이다.

‘전국체전에서 속사권총으로 은메달이었다지.’

입대하기 전부터 사격했었던 특이 케이스. 게다가 전국체전에서 메달까지 땄던 실력이니 그 사격 실력은 따로 말해 무엇할까.

“그런데 왜 과거형이냐?”

“얼마 전에 잘렸거든요.”

“잘려? 경찰이면 공무원 아니야? 공무원이 왜 잘려?”

IMF 한파가 불어 닥치면서 꿈 많던 학생들이 꿈을 버리고 공무원을 선택한 이유. 바로 철밥통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직업군에서 잘리다니?

“일이 있었거든요.”

“무슨 일인데?”

잠시 후 얇지만 아주 길게 한숨을 내쉰 최준우가 속사정을 꺼내 늘어놓았다.

이 녀석이 군대를 전역하고 선택한 경찰은 일반적인 경찰이 아니라 바로 경찰특공대였다고 한다. 속사권총 메달리스트, 수색대 출신. 거기에 뛰어난 집중력과 정신력 그리고 끈기까지 갖춘 준우는 경찰특공대가 완전히 자신의 천직이라고 느끼고 지냈다.

그러다 1년 전에 자신의 팀장과 술을 마시고 느지막하게 나오던 무렵, 남성 아홉 명이 여성 세 명의 입을 가리고 후미진 골목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고 말았다. 누가 보아도 좋은 의도로 집에 데려다주는 그림은 아니었다.

여기까지 들으면 결과를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9대 1로 떡실신을 시켰다?”

“그럴 리가요. 형님. 현실이 영화인가요. 같은 경찰특공대 팀장님도 있으니 9대 2였고 그놈들 중에 세 명은 여자를 붙잡고 있었으니 6대 2였죠. 각각 3명만 맡으면 되는데 불량배 정도는 식후 운동도 아니고요.”

그렇게 숫자와 덩치만 믿은 양아치들은 채 2분도 되지 않아서 모조리 바닥에 쓰러졌다.

여기서 끝났으면 정의의 사도로 활약하고 엔딩이었을 텐데 문제는 그 이후에 발생했다고 한다. 딱 봐도 여자들은 그냥 잠든 게 아니라 마취약을 통해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그냥 불량배가 아니라 인신매매범으로 보이는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그런데 네가 왜 쫓겨났냐? 잘 했는데.”

“범죄현장에서 현행범이라고 잡은 그놈들이 오히려 우리를 폭행으로 고소했고 위기에서 도와준 여성들은 증언이고 뭐고 그대로 도망가서 잠수를 타더라고요.”

“뭐?”

위험한 일과 결부되는 것이 두려웠을 테지만, 듣는 나로서는 어깨가 축 처지는 이야기였다.

“그래도 그렇지. 그 새끼들 인신매매 범이었다면서?”

“그게 팀장님이랑 저는 그냥 예상한 거지 확실한 게 아니었습니다. 또 그놈들 정보를 확인해봐도 관련 이력 같은 게 전혀 없어서 입증할 수 없었고요.”

“여성을 납치하는 현장에서 놈들을 잡았는데 입증할 수 없다, 반대로 그걸 도와주려던 네 폭행은 확실하게 입증할 수 있다, 그래서 잘렸다?”

“네. 바로 옷 벗으라 그러던데요?”

“도움받은 여자들은 찾아가 봤어?”

“아뇨. 찾아볼 수도 없었어요. 못 찾아가게 하니까. 나중에라도 증언해줬으면 좋겠지만······.”

녀석이 소주를 입에 털었다. 그럴 가능성은 없다는 것쯤은 잘 알기에 속이 쓰린 것이다. 나 역시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이래서 그냥저냥 살게 된 거였군.’

당황하면 실수하고 자신부터 보호하려 드는 것은 동물의 본능이다. 여기에 인간은 수치심이라는 요소가 더 있기에 지금과 같은 사례가 발생한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이런 사고를 방지할 만한 제도적인 준비가 아직 부족했다.

그 때문에 심심치 않게 이와 같은 일이 생기고 이슈화되는 것이라고 본다. 아울러,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거나 나중에라도 고칠 용기를 내는 일은 생각보다 찾기 어렵다. 아닌 사람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흔치는 않다.

< 마이코닉스를 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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