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180화 (180/577)

< 마이코닉스를 품다 >

“어험. 그럼 집안의 가장인 내가 가장 먼저 한 점 먹어봐야겠지.”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잦은 타박을 하시지만, 지금만큼은 웃으며 첫 시식 소감을 기다리셨다. 크게 넣고 씹으신 아버지가 엄지를 보이셨다.

“맛있네! 구으뜨! 최고야.”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시작되는 우리 가족의 설 명절 식사. 큰 집에 화려하게 차려진 풍요로운 시간이었다.

“이 아빠는 더는 정말 소원이 없다. 우리 잘난 장남은 큰 회사를 운영하고 있지. 사랑스러운 우리 막내딸은 엄청난 대학교에 입학했지! 아빠는 정말 여한이 없다!”

“왜? 나한텐 맨날 우리 태식이는 장가 언제 가나? 언제 가나? 그랬으면서?”

“어험! 험! 사내대장부가 저 정도 위치에 올라가면 여자가 알아서 따라오는 법이야. 내가 가라고 안 해도 때가 되면 알아서 갈 걸 뭐하러 걱정을 하나?”

“오호~ 그러셔~?”

어머니가 오묘한 표정을 지으셨다. 아버지는 땀을 흘리며 애써 그 시선을 외면하신다. 그리고 오물오물 먹고 있는 동생에게 화살을 돌렸다.

“우리 태희도 빨리 졸업해서 멋진 수의사가 되어야지?”

“아빠. 여기는 6년제야. 졸업하려면 한참 멀었어.”

“뭐라? 6년제? 대학교가 뭐 그렇게 길어? 초등학교야!?”

“주변에서 얘기 들으니까 수의예과라는 게 처음에는 수의학을 배우기 위한 예비과정으로 예과라고 부르고 2년 지나서 본과에서 4년 하는 거래.”

“의예과라는 게 그런 의미였니?”

“응.”

몰랐다. 꿈 덕분에 나이보다 많은 경험과 기억을 가지고 있지만 오래 살았다고 모든 걸 알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사람은 자신의 관심사에만 매몰되어 살기 마련이다.

“그러면 남들보다 학비도 네 번이나 더 내야 하는 거네?”

“응··· 아마도 그렇겠지?”

살짝 소심해지는 태희의 말에 아버지가 화통하게 웃으셨다.

“음하핫! 뭘 그런 거로 목소리가 작아지고 그러냐? 우리 딸! 학비 그까짓 거 걱정할 거 하나도 없다!”

대찬 아버지의 말에 어머니도 당신이? 이런 얼굴로 아버지의 얼굴을 빤히 본다. 이에 아버지는 내 어깨를 턱턱 두드리셨다.

“태식이가 다 내줄 거야! 여기 돈을 아주아주 잘~ 버는 우리 장남이 있지 않느냐.”

“으이구! 이 화상아. 아버지라는 인간이 그게 말이야? 부끄럽지도 않아?”

“부끄럽기는. 자랑스럽지! 내 아들이 이런 능력 있는 게 자랑스러운 일이지 부끄러운 일인가!?”

말은 저렇게 하지만 그동안 태희 학비로 사용할 거라고 계속해서 돈을 모아오신 분이다.

식사 중에 웃음이 끊이지를 않았다.

“그래~ 우리 대표님은 사업이 잘 되어가고?”

“계속 커나가고는 있습니다.”

“맞아, 아빠! 오빠가 더는 대표님이 아니야.”

“응? 그게 무슨 말이니? 태식이가 대표님이 아니라니? 회사 잘 운영하는 우리 아들에게 그게 무슨 소리니?”

“내가 어제 같이 백화점 갔다가 들었어.”

“뭘 들었는데?”

“그래. 태식아 이게 무슨 소리니?”

한가득 부모님의 시선을 모은 태희가 크게 말했다.

“회장님이야!”

부모님의 얼굴에 순간 뜨헉! 하는 표정이 서렸다. 사실 회장이라고 해서 내가 대표가 아닌 건 아니다. 나는 여전히 게이머스 포럼의 대표이사를 하면서 회장이니 말이다.

‘게다가 회장이라는 것도 굉장히 추상적이고 애매한 그런 회장이라서.’

그러나 이러한 사정을 태희가 알 리 없었다. 나는 어찌 된 것이냐는 부모님의 물음에 간추려고 대답했다.

“관리하는 회사들이 많아지다 보니까 여기도 대표, 저기도 대표가 되어서요. 직원들도 호칭에서 애로사항이 좀 있었나 봐요. 그래서 회장으로 바꿨습니다.”

정말 별 것 아닌 이유다. 하지만 가족은 그 소소함에도 크게 기뻐해 주는 이들이다.

“이럴 수가! 우리 아들이!”

“우리 아들이 회장님이라니!”

대표일 때와 딱히 달라진 거라곤 호칭뿐임에도 아주 난리가 났다.

“요즘 오빠 회사 진짜 엄청 잘 나가. 오빠 때문에 어디를 가도 다 난리라니까?”

“왜? 왜 또 뭐가 있었어?”

“인터넷 수능 강의라고 들어 봤어?”

“아니.”

역시 우리 아버지다. 태연한 얼굴로 ‘못 들어봤으니까 빨리 설명해보렴.’이라는 의미를 팍팍 전달하신다. 덕분에 태희의 입이 갈비를 먹기보다 말하느라 바빠졌다.

“강남에 학원들 엄청 유명한 거 알지? 그게 학원 쌤들이 엄청 유명해서 그런 건데 그런 쌤들의 강의를 인터넷으로 들을 수 있게 만든 거야.”

“인터넷에 돈을 내고 학원 수업을 듣는다는 거니?”

“응. 그런데 이게 얼만 줄 알아?”

“말만 들어도 비싸겠네.”

“아니. 일 년에 만원이야!”

“뭐!? 그렇게 싸? 그거로 유지할 수 있어?”

“강남구청에서 쌤들에게 엄청 매달렸나 봐. 그래서 그게 가능해졌어. 여기서 퀴즈! 이거 만든 회사가 어디게?”

태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시 가족들의 시선을 감당하게 된다. 이 정도면 거의 조건반사의 수준이다.

“맞아. 오빠네 회사에서 만들었어!”

“태식아. 진짜니? 게임회사에서 그런 것도 만들 수 있어?”

“저희야 단순히 게임을 만들기만 하는 회사가 아니라 여러 가지를 하는 곳이라 딱히 어려운 일은 아니었거든요.”

“아이고! 잘했다! 잘했어! 그래.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게 사회에 좋은 일도 해야 하는 거야.”

누구보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진짜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건 돈이 안 된다고 생각하시나 보네.’

만 원이라는 말 때문에 봉사라고만 여기시는 모양이다. 이것도 다 돈 벌려고 한 일인데 말이다.

실제로 인터넷 수능 강의는 이번 2월 3일에 정식으로 오픈했는데, 이 강의를 저장하려면 케이리버가 필수라서 국내 점유율이 95%나 되어버렸다.

더불어 요즘 케이리버가 아닌 다른 MP3 매물이 중고시장에 엄청나게 쏟아지고 있었다. 다들 싸게 처분하고 케이리버를 새로 사기 위함이다.

“아람이가 오빠한테 고맙다고 전해달래.”

“걔는 왜?”

“이번에 수능 망쳐서 재수해야 하는데, 알잖아. 재수하려면 학원비가 얼마야? 그래서 재수 포기하고 대학 가려다가 이거 덕분에 재수를 선택할 수 있었데.”

‘글쎄다. 재수보다는 그냥 대학가는 게 나은 거 아닌가 싶은데.’

묘한 기분이었다. 나 때문에 재수하게 됐으니 말이다. 본인이 원하는 대학을 가기 위한 선택이니 내 책임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왁자지껄한 식사 시간이 흘렀다.

“자. 그럼 식사도 맛있게 했겠다! 우리 가족 오랜만에 드라이브다!”

2002년 설 명절.

우리 가족은 또다시 화기애애하게 한 해를 시작한다.

87. 마이코닉스를 품다

‘‘신과 같이’’나 ‘몬스터 프레데터스’처럼 내가 기획한 것이 게임으로 만들어질 때는 오히려 기획에서부터 해야 할 일들이 많다. 플레이어의 입장에서 꿈속 기억에 따라 중구난방으로 나온 소스들을 직원들에게 정리하라고 시키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아직은 게임을 직접 개발하기보다는 기획단계에서 확실한 콘셉트를 잡는 것에 치중하고 있었다.

‘마이코닉스 덕분에 그래픽 아티스트들을 대거 포섭할 수는 있었지만 그 사람들은 아직 GF엔진을 다룰 줄 모르지.’

GF엔진.

내가 게이머스 포럼을 만들고 가장 처음으로 시작한 최대의 프로젝트다.

2001년 7월에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2002년 2월 중순인 지금, 상당 수준의 완성도를 보였다. 이는 내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다.

‘빨리 빨리라는 민족 특성 덕분이려나?’

이 사람들은 내가 어떻게든 퇴근을 시켜보려 하는데 도무지 말을 들어 먹지 않는다. 툭하면 ‘지금 하면 1시간이면 끝날 것이 퇴근하고 내일 하면 다섯 시간은 걸립니다.’와 같을 말을 하며 야근을 감행한다.

그게 사실인지 어떤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내 개념에서 지금 해서 1시간인 일거리는 내일 해도 똑같이 1시간이니 말이다. 그렇기에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딱 하나뿐이었다.

든든하게 챙겨주는 것이다.

‘야근 수당이나 두둑하게 주자.’

아무튼, 그런 개발자들 덕분에 그래픽 부분은 아주 깔끔하게 만들어졌다. 거기에 물리 엔진은 카이스트와의 협약을 통해서 개발했는데 그쪽도 우리 개발자들 못지않게 열정적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노력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졌으니 내 예상보다 개발이 빨리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덕분에 마이코닉스는 운 좋게 시작부터 다루기 편한 엔진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쯤 한창 열심히 배우고 있겠군.’

설이라는 좋은 명절을 보내고 온 마이코닉스의 직원들은 이제 GF엔진을 다루기 위한 혹독한 교육 과정을 보내야만 한다. 짧은 시간 동안 최대한 배운 뒤 본격적으로 게임 개발에 들어가야 하니까.

그리 생각할 즈음이었다.

“회장님. 최종인 대표가 찾아왔습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한창 교육시간인 줄 알았는데 벌써 11시라니.’

시간의 흐름은 누구에게나 같지만 체감속도는 다르게 마련이다. 특히 잡생각을 하다 보면 싹둑싹둑 잘라서 띄엄띄엄 붙였나 싶을 만큼 빠르게 느껴진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수락하고 조심스럽게 최종인 대표가 들어왔다.

“바쁘실 텐데. 불쑥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지금은 딱히 중요한 업무가 없었어요.”

그런데 왜 온 걸까. 무엇 때문인지 짐작 가는 바가 없었다. 적당히 대화하며 묻기로 했다.

“GF엔진은 어떻습니까? 배울 만은 하시는지요?”

“네. 저는 우리나라에서 이토록 대단한 엔진을 만들 기술이 있었는지, 이를 실현할 곳이 있는 줄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그렇게 봐주시니 기분은 좋네요.”

과한 칭찬이다. 기실 기술은 예전부터 있었다. 단지 이것에 투자할 돈이면 온라인 게임을 만들어서 더 많이 버는 쪽을 선택할 뿐이었다. 그게 이익이니까.

당장 돈이 되지 않는 일을 굳이 맡아서 하려는 업체는 없다. 그래서 이런 일은 대기업이 해줘야 한다. 신생업체는 살아남기 바쁘고 버틸 체력과 여력이 있는 저들이 도전해야 옳다. 하지만 현실은 있는 자가 도전하기보다는 더 악착같이 쉽게 착취하는 길을 선택한다.

이기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슨 일입니까?”

“그게···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찾아왔습니다.”

“엔진이요?”

최종인 대표가 그렇다며 말했다.

“저희가 이 엔진을 활용해 보아도 되겠습니까?”

‘···뭔 멍텅구리 같은 소리야? 당신네를 왜 교육하는 건데?’

잘 사용하라는 의미로 이렇게 투자하고 있는 건데 지금 와서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는다. 이러한 내 시선을 그는 느끼지 못한 모양이다. 처음과 같은 태도를 견지하며 말을 이은 것이다.

“저희 직원들하고 이야기해본 결과 이 엔진만 있으면 지금까지 상상만 하던 풀 3D 애니메이션을 제대로 제작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회장님.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저희가 이 엔진으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한숨 나오네.’

이렇게 감이 없는 사람들이 있을까 싶다.

‘너님들이 이 엔진에 익숙해져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뾰로롱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라고요. 이 답답한 사람들아.’

속마음은 이렇지만 내색하지 않고 대답했다.

“얼마든지요. 그리고 이번의 ‘‘신과 같이’’는 물론이고 추가로 인원을 더 충원할 수만 있다면 바로 애니메이션 제작을 시작하셔도 좋습니다.”

“정말입니까?”

“당연히 정말이죠. 애당초 우리 엔진은 애니메이션은 물론이고 영화에서의 CG에도 활용할 수 있는 다용도로 개발을 진행한 겁니다. 마이코닉스를 인수한 근저에도 게임뿐 아니라 국산 애니메이션을 제대로 만들어보자는 취지가 있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진짜 제대로 된 애니메이션을 꼭 만들어서 보여드리겠습니다!”

이제 알았다. 최종인 대표는 눈치껏 착착 알아듣는 타입이 아니라 명확하게 짚어줘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앞으로는 이 점에 주의해서 이야기해야겠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말인데 3D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는 그래픽 아티스트들을 많이, 그것도 아주 많이 섭외할 수 있겠습니까?”

“많다면··· 어느 정도 말씀입니까?”

“최대한입니다. 기왕이면 국외에서 3D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있는 아티스트까지도 섭외해 주시면 좋고요.”

내가 하고 싶은 게 많다. 꿈속 미래의 아이디어들을 수용하기에는 현실적인 개발 기간이나 인력난이 심하다고 여겨질 정도다. 이런 내 말에 그는 흔쾌히 대답했다.

“가능합니다. 해외의 개발자 중에는 저와 인연이 닿은 친구들이 많습니다.”

“아주 좋군요.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최대한 많이 모아주세요. 이참에 극장판 애니메이션도 하나 제작할 거니까.”

“예? 극장판이요?”

부정적으로 답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간 한국에서 제작한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모두 쫄딱 망했기 때문이다.

‘아주 대차게 말아먹었지.’

그런 판에 극장판부터 만들자고 하니 혹여라도 실패하면 앞으로 ‘애니메이션은 포기합시다.’라고 말할 것이 겁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지금쯤 해주는 게 딱 좋다.

“제가 아주 좋은 소스가 생각이 났거든요.”

뾰통령이 제작되는 시기는 2003년이다. 아직 시간상으로 여유가 있다. 반면에 1년 빨리 나오나 늦으나 딱히 달라질 게 없는 뾰로롱과 달리 지금 내가 떠올린 애니메이션은 시의적절하게 신속히 제작해서 내보내야 한다.

“어떤 건데요?”

“뉴욕의 동물원이 망하고 어느 한 섬에 불시착한 뉴요커 동물들이 동물원으로 돌아가기 위한 고군분투입니다.”

< 마이코닉스를 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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