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 부족 >
씨앗은 내가 준 거다.
이 스토리가 외부로 흘러가게 되는 일은 없어야 하는 게 맞다.
“거기에 하나 더. 채택된 작가는 무조건 신작 게임의 프로젝트에 참가해야 합니다.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을 시 상금 또한 지급되지 않는다는 것. 이를 확실히 알리세요.”
“예! 회장님.”
군대였다면 경례를 했을 만큼 딱 부러지는 대답이었다.
그리고 이튿날.
사내 인트라넷에는 ‘사내 공모전’이라는 제목의 글이 큼지막하게 올라갔다.
『<‘신과 같이’ 게임 시나리오 공모전>
새로운 이야기가 완성되는 첫걸음!
총상금 1,700만 원의 사내 공모전을 엽니다.
게이머스 포럼 및 계열사의 직원이라면 누구나 응시 가능합니다.
공모 부문 : 장편 게임 시나리오 ? 개인 시나리오는 안 되고 첨부된 기획안을 더욱 탄탄하게 만들 것.
※ 사내 기획이기에 공모전에 참가된 작품은 모두 회사 소유가 되며, 게임 제작을 위한 공모전이기에 게임 제작에 참여 거절 시 입상이 취소됩니다.』
공모전은 게임과 전혀 상관없는 그 어떤 부서의 소속이라도 참여 가능했다. 반응은 기대 이상으로 뜨거웠다. 다음날부터 회사 휴게실은 공모전에 관련된 이야기가 끊일 줄을 몰랐고 일주일간 많은 이들이 참여했다.
그러던 중.
“회장님. 이거 꼭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뭔데요?”
우리는 더 공모전을 진행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완벽한 공모 작품을 받았다.
“게이머스 포럼의 본토행티켓이라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초창기부터 회원들을 끌어들여 준 일등공신입니다.”
“여기··· 그 작가가 보낸 시나리오입니다.”
“오오~ 그래요?”
글재주가 있는 만큼 이 사람도 참여를 할지 모른다고 생각은 했었다. 그러나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게임의 내용으로 소설을 만드는 것과 게임의 시나리오를 쓰는 것은 다르다. 그런데 김정규 팀장의 반응을 보니 꽤 훌륭한 모양이다.
‘어디 볼까.’
공모전 시나리오를 읽어 내려가던 나는 정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거··· 완벽하게 신도시잖아?’
내가 영화 내용을 토대로 뼈대와 설정만 둔 정도가 아니었다. 그게 밑그림이자 손댈 구석이 많은 초기작이라면 이건 말 그대로 훗날의 대박 작품인 신도시, 그 자체였다.
‘꿈은 내가 아니라 이 사람이 꾼 거 아닐까?’
완벽하다. 심지어 그렇게 세밀하게 포인트를 짚어서 스토리를 엮는 와중에 오픈 월드 게임다운 작은 스토리들도 매력 있게 만들어졌다.
“아주 좋군요!”
다른 생각은 할 필요도 없다.
그냥 이거다. 하지만 1등 확정작이 나왔다고 해서 공모전을 바로 내려서야 쓰랴.
“공모전 동안 작품들은 다 받아두세요. 그리고 공모전이 끝나고 나머지 입상작들 역시 입상하고 상금 주시고요.”
그리고 바로 회의를 소집했다.
“다른 팀장님들 전부 회의실로 모이라 전해주세요.”
장담한다. 이 이상은 존재할 수 없다.
먼저 팀 꾸리고 느와르 게임 작업을 시작하자.
84. 사람 부족
작품이라 불리는 것 중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지는 것은 극히 드물다. 마찬가지로 대작 게임 역시 개발하는 데에는 몇 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 시간을 단축하면서 퀄리티는 유지하는 방법은 더 많은 사람을 투입하는 것이다.
돈이 추가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이 점에서 나는 마른 수건을 쥐어짜는 악덕 투자자가 회장이 아니다. 필요하다면 아낌없이, 시원하게 쓸 마음이 있었고 지금까지 그래왔다.
‘현재의 인력풀이 100% 가동하고 있다면 규모를 확장하고 늘려서 해결한다. 베리 심플!’
최신 게임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개발 구성은 기획, 프로그래머, 아티스트가 2:3:5 비율이라고 한다. 이번 신작 게임에 필요한 초기 인원 구성은 50명.
우리에게 필요한 인원은 최소 20명 이상이며 그만큼의 그래픽 아티스트를 구해야 한다.
‘채용하면 그만이지.’
이번 역시 그럴 예정이었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문제와 마주했다.
“회장님. 저희도 직원이 늘어나고 한 번에 많은 게임을 만들 수 있다면 정말 좋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신작 게임 개발을 위한 회의.
나는 간부들에게 ‘‘신과 같이’’에 대한 기획안을 공개했다. 그런데 당연히 열의를 불태워서 신작을 준비하자고 할 거로 생각했던 내 예상과 달리 길남주 실장으로부터 반대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사람이 없습니다.”
당황스러운 한 이야기였다.
‘사람이 없다고? 국내에 우리 회사보다 더 많은 개발진을 가진 회사가 없을 정도인데?’
넷젠과 크라비티, 클로버 스팅은 물론이고 팬더그램까지 합친 우리다.
그런데 사람이 없다니.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황당해하는 나에게 길남주 실장이 말했다.
“회장님도 아시겠지만 넷젠은 현재 업데이트에 최적화가 되어 있는 인원입니다. 현재 인원 구성은 추가로 게임을 제작하기 어려우며 이는 크라비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오케이. 인정해.’
그래. 두 게임사의 핵심 멤버들은 현재 게임엔진 TFT에서 열심히 엔진을 개발하고 있다. 당연히 거기에는 빼올 인원이 없다는 것도 이해한다.
‘그래도 남잖아?’
길남주 실장에게 물었다.
“그렇다고 해도 소규모 팀을 꾸릴 인원은 충분하지 않습니까?”
“가능은 합니다. 여기저기 여유가 남아 있는 인력을 빼면 소규모 팀을 꾸릴 수 있지요. 부족해진 인원은 신규 채용을 통해서 넣으면 됩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기존에 게임을 서비스 하는 곳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신작 게임 개발은 불가능합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기존에 서비스 하는 게임은 신규 채용으로 해결할 수 있는데 신작 게임은 신규 채용으로 해결할 수 없다?
‘왜?’
도통 이해 못 하는 내 시선에 길남주 실장이 대답했다.
“기존 서비스 게임은 신입을 채용한 것으로 충분히 활용 가능합니다. 이미 틀이 다 완성이 되어 있으니까 조금만 가르치면 써먹을 수 있죠. 하지만 신규 게임을 다룹니다. 그 틀을 제대로 만들어줄 경력자가 있어야 합니다.”
답답하다.
“그렇다면 경력자를 뽑으면 되지 않습니까.”
너무나도 간단한 해결방법이다. 경력자가 부족해서 그런 거라면 경력자를 뽑으면 될 일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이야기를 하는지 영문을 모르겠다. 그런데 여기서 길남주 실장이 단정적으로 말했다.
“안 뽑힙니다.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게임의 핵심을 맡길만한 중견 경력자들은 우리 회사에 지원하지 않습니다.”
‘왜? 업계 최고로 해주고 있잖아. 나 월급 아끼고 그런 사람 아니라고.’
우리 회사는 같은 경력이면 다른 회사보다 많은 연봉을 주고 뽑는다. 이는 내가 애사심이 두둑한 월급에서 나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우리 회사에 저들이 지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여기에는 내가 몰랐던 저들의 현실이 있었다.
“알 수가 없군요. 우리는 연봉도, 복지도 다 최고로 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지원하지 않는 겁니다. 회장님은 게임 엔진 개발이 완료되면 거기서 신작게임으로 이동시킬 계획을 가지고 계시겠죠? 하지만 그렇게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
그뿐만 아니라 지금 게임 엔진을 개발하고 있는 TFT 인원들도 엔진과 몬스터 프레데터스가 개발 완료 되는 시점에 절반은 퇴사를 준비하고 있을 겁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아닌 다른 회사에 있습니다.
“다른 회사?”
“직원들은 어쩔 수 없이 회사를 계속 옮겨 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회사는 진급을 할 수 있는 인원이 정해져 있으니까요.”
이해한다. 우리 회사에 들어온 모든 직원들이 평생 우리 회사만 다니리라는 것은 비현실적이니까. 이직률 0%의 회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게이머스 포럼에 소속된 개발자들은 지금 타 회사에서 가장 원하는 인재들입니다. 지금까지 밖에 내놓은 게임 중에 실패한 게임이 없으니까요.”
맞다. 매년 상당한 숫자의 게임이 개발되는데 끝까지 완성하지 못하고 엎어지는 비율이 30%다. 그리고 1개 정도가 짭짤한 수익을 내고 10%가 손익분기점을 넘긴다.
즉, 망하는 게임이 60%라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우리가 낸 게임은 모두가 저 10%에 들고 3% 이내에 들 만큼의 성공을 이뤘다.
타 게임사에서 눈독을 들이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
“그 게임의 대부분을 회장님이 오케이하고 승인하셨다는 것은 우리만 압니다. 외부에서는 모르죠. 그 때문에 우리 개발자들은 대부분 거액의 연봉을 제시받고 있고 흔들리고 있을 겁니다.”
‘내가 최고로 대우해주기는 하지만 지나칠 정도는 아니니까.’
우리가 많은 돈을 주는 것 이상의 뻥튀기 연봉을 제안하여 헤드헌팅을 시도한다는 이야기였다. 불패 신화는 나만이 아닌 개발자들의 공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부족하다.
“더 돈을 많이 주는 회사로 옮겨간다는 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본다면 우리 회사에 남았을 때의 연봉인상률이 더 높을 텐데요.”
“패키지 게임을 개발하던 시절에는 게임사가 계속 새로운 게임을 출시해야 했기 때문에 다양하게 기술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온라인이 대세가 되면서 한 게임사에서 하나의 게임만 계속 붙잡고 있게 되는 결과를 탄생하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한 게임사에 계속 있으면 기술이 다양하지 못하게 된다, 이 말이군요?”
“예, 회장님. 그래서 이직을 정도 이상으로 하지 않은 개발자는 오히려 몸값이 떨어지는 상황에 부닥친다고 보시면 됩니다. 여기에 굳이 연봉을 떠나서 개발자들 역시도 자신들이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이 싫어서 옮기는 경우도 많고요.”
‘그랬구나.’
“좋습니다. 우리 직원들이 이직하는 건 이해됩니다. 그런데 타 회사에서 중견 개발자들이 이직하지 않는 이유는 뭡니까?”
“연봉문제입니다.”
“연봉이요?”
‘아니. 돈 많이 주잖아. 그리고 우리 회사에 있다가 타 회사로 연봉 뻥튀기도 된다며? 그런데 왜 연봉 문제로 안 온다는 거냐?’
이런 내게 길남주 실장이 또 깨달음을 준다.
“타 게임사 중견 개발자들의 연봉이 얼마 정도 되는지 아십니까?”
“글쎄요. 3,000 정도 되려나요?”
“아뇨. 3,000이면 팀장급 개발자입니다.”
충격이다.
놀란 얼굴로 김강철 팀장을 얼굴을 보니 그는 아무렇지 않게 어깨를 으쓱였다.
사실이라는 의미였다.
“회장님. 우리 회사에서 연봉 3,000이면 어느 정도 개발자일 것 같습니까?”
나는 직원들의 연봉에 깊게 개입하지 않는다. 최고로 대우하라는 방향성을 짚어주고 회사가 안정적인 자원을 가지고 운영이 되고 있으면 그걸로 족하다. 내가 연봉에 개입하는 건 직원이 아니라 간부들뿐이다.
“글쎄요?”
“우리는 중견 개발자가 3,300만 원을 받고 있습니다. 엄청난 차이죠. 신입은 2,500만 원입니다. 타 사의 신입사원들이 1,200만 원에서 1,800만 원 사이로 받는 것과 비교하면 더욱 크게 느껴지는 액수입니다.”
“그런데 왜 안 온다는 겁니까?”
“경력자에게 연봉 제시를 할 때의 근거가 이전 회사에서의 연봉이기 때문입니다.”
헛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게임 개발자들은 이직이 잦은 직업입니다. 첫째는 설명해드린 대로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기 때문. 둘째는 이직을 해야만 연봉이 올라가는 현실 때문입니다. 2,000 정도의 연봉을 받는 중견 개발자들은 다른 곳에서 연봉을 더 올리고 우리 회사에 오는 것이 이득이라는 판단에 오지 않는 겁니다.”
같은 기간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같은 수준의 능력을 보이는 건 아니다. 그러다 보니 경력자에게 연봉 제시를 할 때의 근거자료는 이전 회사에서의 연봉이 된다.
이전 회사에서의 연봉이 2,000만 원이라면 우리 회사에서는 2,500~2,800만 원 사이를 제시한다. 바로 이점이 문제다.
게이머스 포럼의 기준으로 이 액수는 신입과 큰 차이가 없다!
‘이거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야. 제대로 생각하고 답은 마련해야 하는 문제다.’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해서 이직을 하는 부분은 해결 방법이 존재한다. 하지만 연봉에 관한 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그냥 중견 개발자면 무조건 3300만 원을 줘버려?’
아니다. 이건 절대 좋은 방법이 될 수 없다.
중견 개발자라고 회사에 그만큼 필요한 역할을 다 할 거라는 보장이 있는 건 아니니까. 직급이 실력의 잣대가 되지는 않는다.
“잠시 회의를 중지합시다. 우선 지금 길남주 실장님이 말씀하신 개발자 부족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신규게임에 관한 건은 보류하도록 하겠습니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 사람 부족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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