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171화 (171/577)

< 무간계 확보 >

‘어느 쪽을 쓸 지는 잠시 킵해두고··· 우선은 어제 생각해뒀던 대로 케이스 북을 해결해보자.’

형빈이와의 대화를 마친 뒤 나는 내 사무실로 돌아와 김유천 과장을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회장님?”

“앉으세요.”

굳이 허겁지겁, 득달같이 달려올 필요가 없음에도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들어왔다. 언제 어디서든 준비된 직장인이자 총알같이 뛰겠다는 몸가짐이 물씬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차분해지기를 기다린 뒤 말했다.

“미국에 있는 사람에게 투자를 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미국에 투자를요?”

자신에게 맡기려는 일의 종류를 들은 그가 난색을 보였다.

“회장님, 문제가 있습니다. 저는 투자에 관한 것은 아주 기본적인 수준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지금까지 당신이 우리 회사에서 날아다니며 슈퍼맨처럼 해치운 일들은 뭐고? 라는 눈빛을 보내니 그가 설피 웃었다.

“저는 물건을 판매하는 것에 집중된 사람입니다. 성격이 다르지요.”

“그렇다면 혹시 믿고 맡길 수 있는 인재를 아십니까?”

“그야··· 한 명이 있습니다. 제 한참 선배인데···”

잠시 기억을 되짚은 그가 한 명의 인적사항을 읊었다.

그의 이름은 곽지원.

전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뉴욕. 그곳 최고의 투자은행 중 하나인 레이먼 브라더스 출신의 투자전문가였다. 한창 잘 나가던 그는 작년 911테러 사태 때 회사에 막대한 손실을 안겼고 그것을 빌미 삼은 경쟁자들에게 밀려버렸다고 한다.

911테러로 말미암은 실패는 능력 부족이라기보다는 재해에 휩쓸렸다고 보아도 좋으니 실력을 의심할 필요는 없었다. 더군다나 뛰어난 김유천 과장이 자신 있게 권할 정도이니 적어도 그와 비슷한 수준일 것이다.

문제는 그런 실력이 증명된 인재가 우리 회사에 오겠느냐는 점이다.

‘레이먼 브라더스면 신입 초봉으로도 억 단위를 받는 회사지. 그런 회사에서 치프급으로 있던 인사가 고작 우리 회사를 선택할 리가 있나?’

여기에 그가 재미난 대답을 해주었다.

“다른 회사는 싫다고 합니다. 거대 투자은행은 언제나 서로를 물어뜯을 준비를 하고 업무를 보는 곳이라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하더군요.”

‘굿 타이밍.’

고급인재를 구할 수 있다는 건 내게 엄청난 기회나 마찬가지다. 흔쾌히 승낙하며 말했다.

“만나보고 싶군요. 가능한 한 빨리요.”

“빨리요? 그게··· 그러시면··· 혹시 지금 잠깐 시간을 내주실 수 있습니까?”

“지금요?”

“네. 사실 그 선배와 마침 근처 커피숍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회장님 호출에 득달같이 달려온 마당입니다. 제게 시간을 일러주시면 선배에게 전하여 그때까지···”

이어지는 김유천 과장의 말을 끊고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외투를 걸친 뒤 문을 나서며 뒤에 있는 그를 불렀다.

“뭐합니까?”

“네?”

“같이 나가셔야죠.”

“아··· 예! 저도 어디에서 행동력으로는 밀리지 않는데. 이거, 회장님은 감당할 수가 없네요.”

멋쩍게 웃은 그와 커피숍으로 움직였다.

곽지원은 날카로움과 여유로움이라는 상반된 느낌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남자였다. 안경 너머의 눈빛과 외형은 냉철해 보이는데 웃음을 지으면 영락없이 사람 좋은 인상이 됐다.

그는 김유천 과장과 함께 온 나를 당황하지 않고 맞이한 뒤 차분하게 이야기를 듣고 되물었다.

“듣기로 게이머스 포럼에는 투자에 관련된 부서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들어가게 된다면 새로 부서를 만드시는 겁니까?”

나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당신은 게이머스 포럼이 아니라 TS 투자 운용으로 입사를 하게 되실 겁니다.”

“그건 또 어디죠?”

“얼마 전에 제 개인 자산을 운용하기 위해 만든 회사입니다. 곽지원씨가 오시게 된다면 제 개인 자산만이 아니라 회사의 자산을 투자하는 일도 추가하려고 합니다.”

익숙하다는 듯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회사 내부의 투자사로 운영하다가 홀딩스로 바꾸실 계획이시군요.”

‘응?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도통 모를 이야기였다. 말 그대로 무슨 의미인지 모를 말이다. 그러나 문맥상 의미는 얼추 알아들었으니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네. 맞습니다.”

뭔지는 나중에 알아보자, 하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런데 사업하며 여러 사람을 만나다 보니 생긴 감이 내게 신호했다. 눈앞의 곽지원은 이야기만 통하는 듯이 오갈 뿐이라는 점이었다. 그는 어딘가에 다시 소속될 마음이 없는 생각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이러면 시간만 날리는 셈이 된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회사의 대표자와 채용으로 대화를 나누시는 분치고는 그다지 채용에 관심이 없으신 분 같군요.”

“그래 보입니까?”

“그렇습니다.”

“어째서죠?”

‘너님이 보이는 태도가 그래 보여서 그러지 뭘 물어?’

느낌이 그렇다고 해봐야 말만 이상해지니 적당히 이유를 만들어서 내놓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당신을 채용할 수 있는 사람이 눈앞에 있는데, 연봉이나 조건들. 뭐··· 이런 것에 전혀 관심조차 보이지 않고 있잖습니까.”

그러자 사람이 바뀌었다.

“제가 입사를 하게 된다면.”

곽지원은 물렁물렁한 태도 대신 눈에 힘을 주고 내게 단단한 어조로 말했다.

“반드시 만족하실만한 성과를 낼 겁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저를 계속 붙잡기 위해서라도 제가 만족할 수 있는 보상을 해주실 겁니다.”

연봉협상 따위가 필요 없는 이유.

이를 말해주는 데 그야말로 자신감이 물씬 느껴졌다. 놀라운 것은 단정적으로 말하는 그의 어디를 봐도 허세나 자신을 포장하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곽지원은 ‘나는 무조건 성과를 낼 수 있다.’는 명제를 참으로 둔 채 확신하고 있다.

‘이 사람도 정치인 과인가?’

세상의 중심이 나이고 내가 하면 이룰 수 있다는 자존감. 그것으로 똘똘 뭉친 모습에서 전에 봤었던 권용민 강남구청장이 떠올랐다.

가만히 보면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는 말과는 다르게 패기 넘치게 성공하는 사람들에게는 실력과 그에 걸맞은 오만함이 패키지로 구성된 것 같았다.

‘웃긴 건 재수 없어 보이는 게 아니라··· 이런 타입이라서 더 고용하고 싶어진다는 거지. 일 하나는 똑 부러지게 할 테니까.’

내가 더 이야기하라며 무언에 제스처를 보이자 그가 말을 이었다.

“사실 김유천 저 친구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대화를 하고 있지도 않았을 겁니다. 회장님의 말대로 저는 올해 어딘가에 취업할 마음을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결국 이렇게 같이 대화를 나누고 있지요. 사람 마음이라는 건 변하기 마련입니다.”

“뭐···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회장님께 제가 질문하나를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는 가만히 우리를 보고 있는 김유천 과장에게 한차례 시선을 주었다.

“저 친구의 말을 들어보니 회장님은 완벽한 성공만을 선택하는 진정한 투자의 귀재라고 하더군요. 허언이 아니라는 사실은 저 역시 인정하는 바입니다. 그래서 알고 싶습니다. 도대체 그런 분이 왜 투자 전문가를 필요로 하시는 겁니까?”

감추고 말할 필요가 없다. 확 터놓고 직구를 날리니 나 역시 시원스레 속내를 밝혔다.

“투자의 귀재라··· 글쎄요. 저는 투자의 귀재는커녕 투자의 기본도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내 말을 들은 곽지원 눈썹이 꿈틀했다. 그러자 김유천 과장이 천만의 말씀이라며 말했다.

“회장님이야 너무도 당연히 이루시는 것이지만 제삼자가 보기에는 투자의 귀재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고작 2억을 투자한 넷젠은 지금 월 200억을 벌어들이고 30억에 구매한 미르의 전사2는 월 50억의 수익을 내고 있으며 40억을 투자한 텐션은 지금 400억이 됐습니다.”

남의 입에서 들으니 새삼스럽게 대단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뿐이겠습니까. 15억을 들인 크래비티도 지금 월 20억의 수익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여기에 케이리버까지 더하면··· 어휴. 입이 아플 지경이죠. 회장님은 지금까지 실패가 단 한 번도 없는 진짜 귀재이십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해야 하겠군요. 저는 성공했지만, 투자에 대해 무지합니다. 전문가처럼 차트를 분석한다거나 하는 방법을 통해서 수익을 내는 게 아니니까. 그러니 투자의 귀재 같은 것과는 다르죠.”

“회장님. 직원들이 투자할 만한 회사를 찾아낸 뒤에 회장님이 선택하는 것과 회장님이 선택한 회사를 직원들이 찾아가서 투자하는 건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그만 비행기 태워. 멀미 나겠어!’

대놓고 듣기 좋은 말만 하는 통에 낯이 뜨거울 정도였다.

이를 듣고 곽지원이 말했다.

“이 모든 투자를 회장님이 직접 지휘하셨는데 투자 전문가는 아니다··· 이런 말씀이시군요. 거참··· 감각이라니요. 하하하!”

처음에는 비식비식 웃다가 화통하게 바뀌었다.

“왜 웃으십니까?”

“그냥 이런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곽지원은 처음과는 다른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성공하는 선택만 하시는 회장님이 저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거절을 한다면 저는 어떤 사람이 될까요. 실패할 사람이 되지 않겠습니까?”

말하며 기억을 곱씹는 모습이었다. 여기서 두 가지를 알 수 있었다.

마음이 절반 이상 넘어왔다는 사실.

잘 나가다가 한 번의 실수로 고꾸라진 기억을 되새김질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채용이 끝났다, 결론 내렸다.

“그렇다면 저와 손을 잡으시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성공을 보여주십시오.”

“이거 갑자기 거절하기 엄청 힘든 제안이 되어버리는군요.”

뒤이어 그가 물었다.

“만약 제가 회장님과 일하게 된다면, 어떤 식으로 투자하시기를 원하십니까?”

“일단 자금의 절반 정도는 지원씨가 알아서 잘 불려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제가 원하는 곳에 투자해주시거나 제가 원하는 방향의 투자처를 찾아서 투자해주시는 것을 원합니다.”

“원하는 방향의 투자처라면?”

“간단합니다. ‘어느 지역의 어떤 분야를 투자하고 싶은데’라고 하면 투자할 만한 회사를 찾아주신 뒤 협의 후 투자하시면 되는 겁니다.”

“좋습니다. 실패하지 않은 투자의 귀재가 어디까지 성공할지 지켜보는 것도 제 업무의 가장 큰 재미가 되겠군요.”

악수를 청하자 그가 힘 있게 잡았다. 그리고 이러한 우리를 보고 김유천 과장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근로계약서]

다시 사무실에서 서류를 가지고 오거나 할 필요가 없었다. 신기가 있나 싶을 정도로 준비성이 철저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곽지원은 연봉 8,000만 원이라는 연봉으로 TS 자산운용에 들어왔다. 능력에 비교하면 저렴하기 그지없는 액수였는데 이는 우리 측이 아닌 곽지원 당사자의 요구였다. 그가 레이먼 브라더스에 있던 때의 연봉이 8억이었으니 10%만을 요구한 것이다.

‘대신 올해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보여주고 내년에 제대로 연봉을 올리겠다고 했지.’

시원스럽게 줄 만큼 이익 역시 막대하기를 기대해 본다.

83. 무간계 확보

곽지원은 입사와 동시에 TS 자산 운용의 전무 이사 자리를 받았다. 원래 이 회사의 창업 멤버인 경호 형이나 김형빈의 반대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둘은 오히려 잘 됐다며 곽지원씨에게 파이팅을 불어 넣어주었다.

여기에는 그간 말하지 않아서 몰랐던 속사정도 존재했다. 내가 벌이는 일들이 꽤 되는 만큼 두 명이 일을 처리하는 것에 버거움을 느끼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차에 투자 전문가가 들어왔고 나이 역시 가장 많으니 그냥 그대로 인정한 것이다.

‘자칫 불협화음이라도 있었으면 여러모로 정말 난감했을 텐데 운이 좋았어.’

적시에 인재가 충원되었다는 우연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그러면 무간계는 된 셈 치고.”

곽지원 전무가 입사를 하고 열흘이 지난 지금, 세 사람은 무간계를 찾기 위해 홍콩행 비행기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뭐든지 척척 해내는 능력자들인 만큼 무난하고 무탈하게 잘 마차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다른 거 더 없는지 기억이나 뒤져 볼까나~”

플레지를 즐기다가 졸면서 명상하는, 나만의 릴렉스 시간을 가져야겠다.

< 무간계 확보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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