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169화 (169/577)

< 새로운 기로 >

‘이때가 죽이는 타이밍이었지. 국내 최고의 알짜기업을 최소한의 돈으로 호로록할 수 있는 기회가.’

신문을 넘기면서도 마냥 웃게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현재의 카이닉스는 먹기만 하면 대박일 만큼 완벽하게 하락한 상태다. 삼키기만 한다면 아닌 말로 세계 최고의 부자를 넘볼 수 있을 정도로 급성장할 수 있다.

그런 산업이 바로 반도체다.

벌써 2002년이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세계는 점점 더 빠르게 발전한다. 어제까지 하이테크였던 것이 오늘은 그저 그런 기술이 될 수 있는 시대다. 그리고 반도체 없는 첨단기술이 몇 가지 분야나 될까.

‘카이닉스를 거머쥔다면.’

내 회사에서 만든 집에서 자고 일어나서

내 회사에서 만든 컴퓨터로 업무를 보다가

내 회사에서 만든 영화관에서

내가 투자한 영화를 본다.

수많은 사람에게 나라는 존재와 영향력을 끼치는 것.

이게 가능해진다.

이런 상황을 상상하니 무언가 뜨겁게 치밀어 오르는 느낌이 있었다.

엄청난 기회와 이익이 부른 욕망이다. 세계 최고가 주는 흥분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를 꾹 눌렀다.

“아서라 아서. 먹다가 입 찢어진다.”

애써 고개를 저었다.

반도체 업계는 매년 조 단위의 투자를 해야만 하는 산업이다. 내가 제법 커졌다고 해도 저 바닥은 소위 말해서 사이즈가 다르다.

‘아무리 우리 회사가 커지고 상장을 한다고 해도 이건 무리야. 뭣도 모르고 삼키려 들었다가는 내 배가 터지지. 당장은 방법이 없어. 여태 그래왔던 것처럼 미래 예측을 통해 충분한 이익을 보는 정도밖에는.’

물론 그래도 아쉽기는 하다.

우리 회사를 전부 합친 것보다 더 큰 덩치를 가지고 있는 회사가 카이닉스니까.

‘타이밍은 환상적인데.’

시간이 지나면 텐션의 가치가 카이닉스의 몇 배나 되는 덩치를 가지게 되겠지만 현재 시점으로서는 어림도 없다.

“사람 욕심이라는 게 정말 끝이 없기는 하구나. 왕년과 비교하면 진짜 용이 됐는데도 이러는 걸 보면.”

웃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오늘은 진수와 성찬이를 만나서 오래간만에 고기를 먹었으며 주거니 받거니 술을 마실 생각이다. 그렇게 퇴근하고자 엘리베이터에 올랐을 때였다.

도중에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어? 대표님!”

“어~ 진호야. 오랜만이다.”

스타 드래프트의 송진호 선수다. 회사에 소속된 직원들은 이제 익숙하게 회장님이라는 호칭을 하고 있지만, 게임단 선수들과는 자주 보지 못해서일까. 예전 호칭이 더 익숙했는지 대표로 부르고 있었다. 나야 아무래도 상관없으니 괜찮고 오히려 미안함도 들었다.

‘그만큼 내가 신경을 써주지 못하고 있었다는 얘기거든.’

지난 기간 동안 내가 관여한 거라고는 연봉 상승에 대한 건을 결재해준 것과 새로운 선수를 모집하겠다는 의견을 묵살한 것, 김요환과 송진호와 계약을 다시 한 정도였다.

‘김요환은 팀원 전체가 함께 가는 게 아니라면 다른 팀을 선택할 사람이니까. 게다가 기존멤버들이 하도 최정예라서 딱히 버릴 선수가 없기도 했고.’

이외에는 사업하고 플레지하고 개발에 참여하는 등등 굵직한 일들 위주로 움직였다. 만약 하루가 72시간이었다면 모르겠지만 24시간은 정말 짧다. 어쩔 수 없이 우선순위를 정할 수밖에 없었고 회장이라는 직함에 어울리는 선택지로 스타 드래프트는 올라오기 어려웠다.

개인 취미에서는 플레지가 꽉 잡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아무튼, 오래간만에 봐서 그런지 더 반갑네.’

송진호 역시 마찬가지인지 웃음이 가득했다.

“이 시간인데 아직도 집에 안 갔어?”

“물론이죠! 연봉도 올랐는데 더 열심히 해야죠! 올해는 제가 요한이 형 잡을 거라고요!”

‘응. 미안하지만 안 될 거야.’

올해만이 아니라 그냥 앞으로 쭈욱~ 못한다. 정확하게는 ‘그렇게 비칠 것’이다. 굵직한 곳에서는 지고 아닌 곳에서는 이길 테니까.

‘2등도 잘하는 거야.’

물론 이런 이야기를 대놓고 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 열심히 해봐라.”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그의 등을 토닥여주는 것뿐이다.

“어? 대표님, 지금 불가능한 도전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그쵸?”

‘이 자식. 은근히 눈치가 있네?’

하긴, 스타 드래프트는 눈치와 전략이 중요한 게임이다. 그 수많은 사람 사이에서 이인자라는 위치를 잡은 선수가 눈치 없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런 거 아니야. 넌 할 수 있어. 유 캔 두 잇! 잘 해봐!”

“아닌 것 같은데······.”

“어허!”

“알겠습니닷! 저기 그런데요, 대표님.”

“응? 왜?”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 모습이었다. 나는 퇴근하려던 걸음을 멈추고 잠시 내려서 그와 대화를 나누었다. 잠시 후 송진호 선수가 말했다.

“멤버들이 다들 불안해해서요.”

“불안? 뭐가 불안한데?”

월급이 밀릴 이유가 없다. 대우 역시도 업계 최고다.

회사의 규모가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는 시절부터 데리고 있던 게임단이고 내가 얼굴만 안 비쳤다뿐이지 이들을 버릴 리도 만무하다. 그런데 어떤 점이 불안하다는 것일까?

“올해 스톰에서 새로운 게임을 출시한다고 하던데요. 거기에 우리 회사에서도 새로운 전략 게임을 개발한다면서요?”

스톰의 출품 기대작은 워드래프트Ⅲ.

우리가 제작 중이라는 새로운 전략게임은 아크록스를 개발했던 성주환 팀장의 차기작이다.

“그거 때문에 다들 종목을 새로 갈아타야 하는 건지··· 그게 아니라면 우리는 다 그만둬야 하는 건지··· 그런 것들 때문에요.”

현재는 스타 드래프트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한 시기다. 하지만 그런 만큼 선수들은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선수의 수명은 게임과 직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물론이고 세계 그 누구도 알지 못할 것이다.

스타 드래프트의 질긴 생명력을. 민속놀이 취급을 받을 만큼 꾸준하게 사랑받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호언장담했다.

“걱정하지 마. 성적만 꾸준히 낸다면 앞으로도 계속 스드로 프로선수 생활을 하게 될 거다.”

“진짜요?”

“내가 게임 쪽에서는 예언가급으로 통하는 거 알잖냐. 스드는 조금도 걱정할 필요 없어. 그냥 너는 요한이 이길 궁리나 해.”

턱턱 두드리며 기운을 팍팍 내게 힘을 실어 주었다. 비로소 송진호 선수의 불안감이 사라졌다.

“대표님! 그럼 오랜만에 한 판!?”

“어디서 쪼렙이 중간 보스 건너뛰고 최종 보스부터 사냥하려고 들어? 요환이부터 이기고 와.”

“···화가 나는데 할 말이 없어!”

“당연하지. 내가 잘하잖아. 승률 100%라서 나도 한 번쯤은 지고 싶더라.”

“우와 시발···”

“뭐 인마?”

쥐어박으려고 하는데 인사하며 냅다 피하더니 홀라당 도망을 치고 말았다. 그 모습에 그만 웃고 말았다.

‘그나저나 워Ⅲ란 말이지.’

우리가 발표하는 게임은 그냥 구색 맞춤용에 불과하다. 반면에 스톰에서 올해 출시한다는 전략게임은 급이 다르다.

‘워드래프트Ⅲ.’

이 게임은 스톰에서 만들어낸 최고의 역작이라고 부를 만하다.

스드는 한국에서만 성공했지만 이건 전 세계에서 성공하는 게임이니까.

‘특히 중국에서 대박 성공을 일으키지.’

게임 자체를 우리가 수입해서 유통하게 된다면 참 좋겠지만 워드래프트Ⅲ는 이미 내정자가 있는 게임이다. 게다가 이들은 외부 회사에 온라인 유통을 맡길 회사도 아니다.

‘뭐, 유통 못 했다고 사실 크게 아쉽지는 않아. 국내 판매량은 성공적이긴 하지만, 스드에 비하면 만족스럽지 못하기도 하니까.’

워드래프트Ⅲ의 국내 총판매량은 40만 장이다.

엄청난 성공이지만 600만 장이라는 스드와 비교하기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맞다. 그러고 보니 강재호와 두타가 있었지.’

우선 강재호다.

워드래프트의 상징적인 인물이자 전설.

중국에서 연예인 부럽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외국인 신분으로 올림픽 성화까지 나르는 워드래프트의 레전드다.

‘워Ⅲ가 한국에서 인기가 없었던 덕분에 해외의 팀에 소속되어 고생을 꽤 많이 했다지.’

그가 중국에서 가지게 될 인기를 생각한다면 꼭 잡아야 한다.

‘그리고 두타.’

워드래프트나 스타드래프트는 사용자가 직접 제작한 맵인 유즈맵이 있다. 이를 이용해서 전혀 다른 장르의 게임을 즐길 수도 있었다.

‘따지고 보면 맵 제작 자체가 게임엔진과 같은 역할이라고 할 수 있지.’

아무튼, 그렇게 제작된 두타는 세계 최고의 게임으로 성장하게 된다.

‘두 개의 게임이 모두 다 말이지.’

두타 온라인과 두타에서 파생된 레전드 리그.

둘 다 엄청난 인기를 누린다. 이 역시 내가 거머쥘 수 있는 탐스러운 열매 중 하나에 속한다. 단, 현재 시점에서는 별반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참 뒤의 얘기를 벌써 생각해서 뭐해.”

아주 잠깐 ‘이걸로 카이닉스를 잡을 만큼 돈을 벌 수 있을까?’라는 발상을 해봤지만, 역시나 무리라는 결론이 나왔다. 자고로 모든 일에는 시와 때가 있다. 게임 역시 시대를 너무 앞서가면 유저들에게 외면을 받아서 망하게 된다.

두타가 여기에 속하니 아직은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진수성찬이 있는 간석동의 사무실로 이동했다.

*

“이야! 소고기 스멜~!”

“역시 회장님은 고기도 다르구먼!”

오래간만에 사무실에서 녀석들을 데리고 나와 고깃집을 찾았다. 치킨과 삼겹살이 아닌 무려 소고기 되시겠다.

‘그나저나 이 녀석들 말하는 모양새 보소.’

나만큼은 못해도 돈을 빵빵하게 버는 친구들이 아니던가.

지금 게임아이템 장사는 한창 물이 오른 상태라서 두 친구가 매달 내게 보내주는 돈이 8,000만 원이었다. 돈의 규모가 그 정도로 커지면 욕심을 부릴 만도 한데, 이 둘은 여전했다. 여전히 짜장면에 짬뽕, 맥주에 과자다.

“누가 들으면 너네는 엄청 가난한 줄 알겠다? 삼시 세끼 소고기를 챙겨먹어도 충분히 여유가 넘칠 놈들이.”

“에이~ 번다고 헤프게 쓰면 망한다더라.”

“그러면 나는?”

“너는 뒤지도록 써도 못 망할 만큼 부자잖아.”

진수의 말에 성찬이가 거들었다.

“옳소! 강남 부자!”

“회사도 집도 강남에 있는 부자!”

이번에 고급 주택으로 이사하고 그 집을 본 충격이 이마저만이 아닌 모양이다. 그런데 사람이라는 동물은 정말 쉽게 잘 적응한다. 처음에는 감탄이 저절로 나올 만큼 집이 웅장했는데 이제는 그냥 ‘내 집이려니’ 하게 된다.

차이점은 아무리 화려한 곳에 가도 ‘우리 집 거실만도 못한데?’라거나 ‘조금 좁네.’라는 정도로 평가 기준이 바뀐 정도를 들겠다.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그때 두 친구가 소주와 쌈을 먹으며 말했다.

“크으~ 젠장 부럽다. 그래서!”

“너 부러워서 우리도 강남 갈란다.”

“우리 고 여사님이 요리 잘하신다.”

“그게 아니라 우리도 강남에 이사하는 쪽으로 결정했다고.”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그려~”

2002년 초반.

지금 구매하면 잠실의 30평대 아파트도 2억 정도면 구매할 수 있다. 이게 몇 년 만 지나면 무지막지한 가격의 아파트로 변화하는 거다. 그런데 진수와 성찬이는 내 반응을 보고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오오! 야, 진짜로 가자. 쟤 낌새 보니까 강남 땅값 오를 건가 봐.”

“백퍼 인정. 아닌 거면 우리 말렸을 텐데 가만히 있잖아. 이거 무조건 가야겠네.”

“헐. 뭐냐? 지금 나 떠본 거였냐?”

“흐흐흐.”

“이름하여 태식이 사용법이라고 해다오.”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는 모습에 웃고 말았다. 그렇게 낄낄거리며 술과 고기를 먹는데  진수와 성찬이가 내게 말했다.

“그런데 너 오늘 표정이 왜 그러냐?”

“발바닥에 가시 박혔냐? 등이 가려워? 은근히 신경 쓰는 게 있는 모습인데?”

“일은 무슨. 그런 것 없어.”

대충 둘러대는 데 친한 친구라서 그런지 통하지 않았다.

“뭔데 그래? 무슨 업계 비밀 같은 거냐?”

“그런 거면 자세히 말하지 말고 대충 말해봐. 나는 오래 살고 싶다고. 막막 킬러 온다고 우리한테 무슨 CD 건네주고 혼자 튀면 안 된다!”

“맞아. 주인공만 살지 친구들은 죄다 죽더라고. 가만 보면 범죄자보다 주인공이 더 나쁘다니까.”

“뭔 개소리야?”

“영화에서는 자주 그러더라. 예를 들면 007!”

“빵!”

“으악! 좋았어. 태식이 너 안 했지? 걸렸다!”

“에라이!”

두런두런 오가는 대화 속에서 나 역시 내심 인정하면서도 아쉬워하는 카이닉스의 이야기를 꺼냈다.

“사고 싶은 게 생겼는데 사지를 못 하고 있어.”

“엥? 사면되지. 너 돈 많잖아.”

“진수 이 짜샤. 얘가 지금 가진 돈으로 안 되니까 그러는 거 아니냐. 그냥 사면 되는 거라면 얘가 이러겠냐?”

“그건 그렇네. 그럼 우리가 돈 빌려줄까? 나 통장에 돈 되게 많다~”

“헐··· 야. 태식이가 못 사는데 우리가 돈 빌려주는 거로 되겠냐? 어림도 없지?”

“맞아.”

어림도 없다는 내 말에 진수가 물었다.

“도대체 뭘 사고 싶길래 윤태식 회장님이 엄두를 못 내는 거야?”

“카이닉스.”

“카스는 맥주지! 우리나라 맥주는 맛 선전이 없다니까. 그저 목 넘김만 강조···”

“짜샤! 먹는 거 말고 카이닉스라잖아!”

“엥?”

같은 말인데 진수는 계속 못 알아듣고 성찬이는 알아들은 기색이었다. 그러다 뒤늦게 둘 다 기업의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고 매우 놀랐다.

“뉴스에 나오는 그 회사?! 이런 미친놈이!”

“윤태식 너 이 부러운 새끼! 도대체 얼마나 부자인 거냐?”

남자들의 대화라는 게 그렇다. 흥분하면 욕이 태반이다.

“얼마나 부자냐니. 돈 없어서 못 산다니까?”

“그래. 그 못산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부자다 인마.”

“우와··· 나도 요즘 돈 좀 모았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레베루가 다르네. 근데 그거 얼마나 하는데?”

한 손을 펼쳤다.

“대략 5조 정도 될 거다.”

“조······.”

말 그대로 천문학적인 액수다.

< 새로운 기로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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