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기로 >
“전화가 오고 있습니다.”
김형빈의 말대로 열심히 휴대폰이 진동을 울리고 있었다. 화면에 나타난 이름은 [이종국]이었다. 가구가 마련된 모양이다.
“여보세요?”
- 네. 회장님. 저 종국라이프의 이종국입니다.
이름을 들어보면 무슨 보험회사 같은 느낌이지만 이 회사는 실내인테리어에 가까운 맞춤 가구 전문 회사다. 드디어 우리 가족에게 감동과 감격을 안겨줄 시간이 된 것이다.
“네. 다 끝난 건가요?”
- 그렇습니다. 지금 댁으로 배송을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네. 그러시죠.”
이후 김형빈과 영화 흥행에 따른 수입에 대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니 얼마 지나지 않아 가구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뭔지 모르지만 되게 좋아 보이는 것들이다. 하지만 얼추 아는 척을 할 수는 있었다.
“서유럽보다는 북유럽풍이려나?”
내 혼잣말에 이종국 디자이너가 다가와서 말했다.
“가구에도 조예가 있으신 모양입니다.”
“북유럽 가구는 우리에게 익숙한 자연 소재인 목재 등을 주요 소재로 사용하고 서유럽은 스틸 같은 것을 사용한다··· 정도에 불과합니다.”
‘라고 디자이너님이 말씀하셨죠.’
눈에 보이는 것들이 대부분 목재로 이루어져 있으니 그리 생각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2015년의 기사에서 옆에 있는 그가 했던 말이었다. 하지만 이 메시지가 마음에 들었는지 그는 밝은 얼굴로 친근감을 보였다.
“집 내부의 구조를 보니 서유럽적인 느낌보다는 북유럽의 느낌과 동양의 느낌을 적당히 섞어야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2층은 곳곳에서 서유럽의 감성을 느낄 수 있으실 겁니다.”
“그렇군요.”
지금 들어오는 가구들은 오로지 우리 집 만을 위한 가구다. 처음부터 집의 구조와 특성 그리고 재질 등을 꼼꼼하게 따져서 가장 효율적으로 공간 활용을 하면서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도록 디자인한 것이다. 그래서 내겐 가구디자이너보다 실내인테리어의 느낌이 강했다.
“적당히 가구들이 들어선 것 같은데 한 번 보시겠습니까?”
“방해되지 않겠습니까?”
집으로 들어가고 있는 모든 가구는 한 사람이 들어서 옮기는 경우가 없었다. 최소 세 명에많으면 여덟 명이 옮겼다.
하나하나가 매우 무겁거나 큰 가구라는 의미. 우리가 집에 들어서면 방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이유였다.
이종국 디자이너는 괜찮다며 말했다.
“이제 내부는 거의 끝났습니다.”
“그럼 한 번 볼까요?”
집만 봐도 환상적이던 이 공간이 어떻게 바뀌었을까.
지하 1층의 서재는 북유럽의 감성이 아주 듬뿍 담겨서 엔틱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강렬해졌다.
1층은 조금 더 동양적인 색채가 섞이면서 묘하게 신비한 느낌이 드는 것이 고풍스러웠다. 이를 보니 생애 처음으로 내 미적 감각이 뒤떨어진다는 점을 아쉬워하게 된다. 정말 좋은데 어떻게 좋은지 막상 표현을 못 하겠다.
그저 이 말만 나온다.
“진짜 멋지네요.”
“감사합니다.”
2층은 또 새로운 느낌이다. 서유럽의 느낌이 섞이면서 조금 더 젊은 사람이 지내는 곳이라는 걸 확 느낄 수 있었는데 그러면서도 절대로 가볍지 않았다.
‘역시 진짜 전문가는 달라. 나는 집만 보고도 끔뻑 죽었는데 여기를 더 엄청나게 만들어내다니.’
이종국 디자이너가 정말 대단한 점은 층마다 다른 테마를 이용했다는 것. 그러함에도 변화에 위화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니. 한 곳이 있긴 하네.’
서유럽의 감성을 듬뿍 담은 곳.
정확히는 프랑스 귀족의 느낌이 물씬 드는 장소가 있었다.
태희의 방이었다.
‘얼씨구. 몰래 면담하더니 이런 걸 주문했던 거였어?’
이종국 디자이너는 가구를 디자인하기에 앞서서 우리 가족들과 면담을 통해 가족들이 원하는 방향을 최대한 취합했다. 즉, 지금 태희의 방이 이런 것은 녀석이 강력하게 주장한 디자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공주 나셨네. 공주 나셨어.’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넘어설 수 없는 취향이라는 게 분명히 존재하는 모양이다. 가족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러던 중에 정말 이질적인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이게 왜 여기 있지요?”
“동생분께서 꼭 이걸 활용해서 만들어달라고 말씀하셔서요.”
태희의 책상.
태희는 책상도 의자도 늘 내가 먼저 쓰다가 내 것을 바꿀 때 이어받아서 사용했다. 그런 것이 미안해서 고등학교 입학 선물로 내가 책상을 사줬는데 그것이 새로이 디자인되어 이 방에 있던 것이다.
전문가의 손길이 더해진 만큼 과거의 단순한 형태가 아닌 아름다운 모습을 가지게 됐다 하여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우리 막둥이 엄마 말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해 - 오빠가]
내가 책상에 새겨놓았던 편지가 그대로 있기까지 하니까.
‘하여간 여자들이란.’
남자들이 쉽게 잊는 것을 소중히 간직하는 것 같다. 잠시 이를 보다가 이종국 디자이너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현했다.
“정말 마음에 듭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아뇨. 저도 회장님 덕분에 이 일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진짜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해보았습니다. 이 은혜 절대 잊지 않을 테니 필요하면 언제든 찾아주시면 됩니다.”
이전에도 충분히 아름다웠던 건물이었지만, 가구가 들어옴으로 이제는 진짜 생기가 도는 집이 되었다.
이후 우리 가족이 마주하며 보인 충격과 감동의 시간을 나는 사진으로 은근히 찍었다. 앞으로는 이런 식으로 일상의 모습을 남겨서 당시를 떠올리고 추억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일상을 통해서 잊었던 기억들을 이렇게 회상하는 것도 제법 괜찮을 것이다.
81. 새로운 기로
요즘 인터넷이나 신문은 계속해서 같은 이야기로 시끌시끌하다. 보통 세 가지가 주요 소재인데, 그중 두 가지가 나와 관계가 있는 이야기였다.
【케이리버 나스닥에 상장 준비하나?】
첫 번째는 단연 케이리버. 정확히 말하자면 레이컴이다.
【2002년 1월. 레이먼 브라더스에서 케이리버가 나스닥에 상장할 경우 자신들이 주관사로 적극적으로 움직일 의향 보여.】
꽤 그럴법하게 냄새를 풍기는 기사지만 사실 이것들은 미끼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 바로 케이리버가 상장을 하기는 이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미끼들이 후일 정말로 상장할 때 더 큰 거품을 만들어 줄 것이다.
그렇기에 계속 애드벌룬을 띄우며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케이리버의 전성기 총액이 4,000억대였지.’
내가 하는 모든 사업은 모조리 꿈속 기억보다 현실이 월등하게 커지고 훌륭하게 성공하고 있다. 그러니 지금 분위기라면 케이리버는 올해 나스닥에 상장하고 내년에는 6,000억의 자산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게이머스 포럼의 첫 게임인 뉴 온라인을 제작한 넷젠.
이 회사 역시 나스닥에 상장을 준비하고 있었고 크라비티 역시 국내 혹은 일본에 상장할 계획을 하고 있다.
이 세 개의 기업이 상장을 마치면 총 2조 원 가량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는 내 주식 재산의 가치가 5,000억을 넘어갈 수 있게 됨을 의미한다.
“우와··· 나 진짜 완전 쩔게 부자가 됐다!”
5천억.
참으로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지만 현실감이 없는 거액이다. 여기까지가 세간에서 떠드는 첫 번째의 이슈이자 IT 부문에서의 화재다.
두 번째는 문화·예술 분야!
여기에서 인기몰이는 ‘정의의 적’이 하고 있었다.
【‘정의의 적’ 200만 돌파, 한국영화의 자존심을 살렸다.】
개봉 12일 만에 200만을 돌파하면서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작품.
매일 매일 뉴스와 기사들을 보면서 가장 놀라는 점은 국내에서 가장 핫한 이야기 중 하나는 꼭 내가 그 중심에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믿는 신도 없는데 누군가에게 기도를 드리곤 한다.
제발 이렇게 잘 성공하다가 벌떡 일어나니 전역하기 직전이고 ‘아 제기랄 꿈!’이라는 말을 하지 않게 되기를 말이다.
‘물론 그런다면 더욱 노련하게 성공할 수 있을 테지만, 누가 알아? 20년 후의 내가 돼서 눈을 뜰지. 정말 그런다면··· 오오! 신이시여. 제발 그것만큼은 안 됩니다!’
늙어서 ‘내가 왕년에는’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치고 현재가 행복한 사람은 없다. 마찬가지로 내가 지금의 이 순간을 떠날까 봐 두려워하는 이유는 지금이 너무나도 즐겁고 만족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세상의 주인공이 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금 국내는 나와 관련된 뉴스들로 들썩이는 중이었다.
‘끝으로 마지막 뉴스!’
이것은 현재 한국에서 가장 핫한 이슈다.
분야는 IT라고 할 수 있지만 정확하게는 경제와 밀접한 내용이라고 보는 편이 옳고 실제로도 경제 관련 페이지에 매일 실리고 있는 내용이었다.
【카이닉스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카이닉스 매각. 그들은 왜 반대하는가!?】
【카이닉스. 대한민국 경제의 핵폭탄!】
【카이닉스 헐값매각 논란. 세계 최정상급의 기술력을 가진 기업을 미국에 넘기려는가?】
전 세계의 메모리 반도체 점유율 3위를 자랑하는 카이닉스.
이곳의 매각과 관련된 이야기가 세간의 화재였다.
‘맞아. 이 시기에는 국내 주식시장의 핵폭탄이라고 불렸지.’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의 13.7%를 점유하고 있으며 무려 세계 2위의 기업이던 카이닉스가 이런 꼴이 된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램버스 D램 사태로 인한 손실.
둘은 메모리 반도체 회사들의 치킨런!
이건 관련된 내용을 주장하는 사람들마다 의견이 다르긴 한데 그 중에서 내가 가장 신뢰하는 것은 램버스 D램을 통한 손실이다.
‘실제로 램버스 D램을 선택했던 회사들은 거의 다 망했으니까.’
램버스 D램 사태는 90년대 말, CPU 설계로 반도체 분야의 절대 권력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Outel이 선동을 하며 시작했다.
- 싱크로너스 D램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
- 앞으로는 그보다 10배 이상 빠른 램버스 D램의 시대가 올 것이다.
- 이제 우리는 램버스 D램을 지원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다른 반도체 개발 업체들에 ‘너희들을 모두 날 믿고 램버스 D램에 투자하면 된다’고 했다.
이 시점부터 앞으로 카이닉스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될 두 개의 회사가 다른 길을 걷는다.
‘카이닉스는 현재전자가 LK반도체를 인수하면서 탄생한 회사인데 이 시기에는 인수합병이 되기 전이니까.’
1위부터 10위 이내 대부분의 반도체 업체들은 당연히 Outel이 앞으로 램버스 D램을 지원하는 CPU를 만들것이라 예상하고 램버스 D램에 집중해서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위권의 업체들 중에는 단 두 곳.
오성전자와 현재전자만이 ‘램버스 D램? 그거 성능은 좋은데, 뭔가 이상하지 않아?’라는 그들만의 근거를 가지고 다른 길을 선택한다.
- 램버스 D램은 뛰어나지만, 시장에서는 DDR D램이 승리할 것이다!
이와 같은 확신으로 DDR D램을 연구하지는 않고··· 혹시 모르니까 ‘램버스 D램도 살짝 발은 담글···까? 그래. 살짝은 담가놓자고.’라는 태도로 연구했다.
‘생각해보면 오성 전자는 이상하게 정감은 안 가는데 늘 이기는 선택을 하는 것 같아.’
그리고 아는 이들에게는 충격과 공포인 2000년대가 됐다.
램버스 D램의 치명적인 결함이 발견되기 시작한 시기.
결국, Outel이 램버스 D램을 공식적으로 포기하기에 이른다.
미사여구 싹 빼고 표현하면 ‘망했어! 완전히 망했다고!’가 된다.
DDR D램의 완벽한 승리인 것. 여기서 희비 정도가 아닌 생과 사가 어긋나고 만다.
반도체 산업은 말 그대로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산업이다.
DDR D램을 선택한 오성 전자는 하이리턴으로 확고한 1위의 자리를 고수할 수 있게 되었다. 반면에 램버스를 선택한 기업들은 하이리스크로 줄줄이 도산을 했다.
그런데 여기서 DDR D램을 선택한 또 하나의 기업은 재미를 보지 못했다.
‘현재 전자는 불쌍해요~’
하이리턴이 있었는데도 망한 이유. 그것은 현재 전자는 DDR D램을 선택하면서 하이리턴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그들이 인수한 기업인 LK반도체가 램버스 D램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손해를 고스란히 현재 전자에서 감당해야 했기에 오성만이 승자가 되었다.
‘지금은 카이닉스에서 감당한다고 이야기 해야겠지만. 아무튼 현재 전자라도 DDR을 선택했으니 망정이지 그게 아니면 국내 메모리 반도체 기업은 오성 전자만이 살아남았을 거야. 아니지. 전 세계에 오성 전자만 남았을지도 몰라.’
아무튼, 이 일로 카이닉스는 5조 원에 달하는 손실액을 떠안고 심지어 메모리 반도체의 가격이 엄청나게 하락하면서 1,000원에 한 개를 팔면 300원을 손해를 보는 마법의 경제가 시작된다.
‘답이 없는 거지.’
결국,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6위였던 마이크로가 미국의 빵빵한 지원을 받으면서 꾸역꾸역 살아남아 지금 카이닉스를 노리고 있다. 이게 정말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라는 것은 카이닉스보다 기술력도, 점유율도 안 좋은 기업에서 카이닉스를 사는 셈이라서다.
내가 기억하기로 결국 카이닉스의 이사회에서 카이닉스를 살릴 제대로 된 사업계획서와 함께 대표와 핵심 이사의 퇴사를 걸고 매각을 막아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때 아마··· 얼마더라? 너무 충격적이어서 기억이 날 듯한데··· 맞아. 올해 말에 주식이 개당 100원대까지 떨어졌었지?’
100원대는 거래 불가의 시기이니 의미가 없는 금액이다. 220원이 최저점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 새로운 기로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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