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167화 (167/577)

< 좋은 집 >

“이번 주말에 다 같이 가구를 보러 가는 건 어떠니?”

“그것도 제가 알아본 곳이 있어요.”

집을 계약하고 가장 큰 고민은 어떤 가구를 집에 들이느냐다. 여기서 내가 오지랖을 부렸는데 이는 아직 우리 가족에게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실용적이면서도 가성비가 뛰어난 국내 브랜드들을 선호한다.

가성비가 좋으면 good인 셈이다. 반대로 태희는 ‘그런 건 아무것도 모르겠고 그냥 예쁘면 좋아’는 의견을 어필한다.

아버지와 나는 부러지지 않고 튼튼하면 오케이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부족하다거나 안목이 없다는 등의 것이 아니었다. 그저 고급 주택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떠올린 사람이 바로 이종국 디자이너다.

【가구 아티스트 이종국. 가구에 예술을 담다.】

지금은 아니지만, 나중에는 오만가지의 성공한 사람들이 우후죽순 나와서 자신의 이야기를 쭉쭉 늘어놓게 된다.

고민을 상담해준다며 책을 무진장 파는 작가부터 돈을 벌어주겠다며 투자금을 챙겨 자신이 부자가 되는 전문가, 유명해지기 위해 자신이 유명하다며 방송에 나오는 사람들 등등이다. 진짜와 사기꾼들이 난립하는 시기에서 꿈속 기억으로 2015년에 보았던 한 기사가 있었다.

【100년 명품을 꿈꾸는 즐거운 목수 이종국】

세계 3대 디자인 공모전 입상, 세계 디자인 공모전 우승경력 총 28회. 그런데도 경기도 변두리에서 조용히 디자인하던 그가 서유럽을 강타했다!

중세시절에 존재했던 뜻이 맞는 집단이 모인 길드를 창설하는 것을 꿈꾸던 그가 드디어 서유럽에서 인정받는 길드를 만들어냈다.

‘요 사람을 지금 찾아가면 딱 이라는 말씀!’

대학 시절부터 엄청난 공모전 수상경력을 보유했던 그였지만, 그의 삶은 그렇게 탄탄하지 못했다고 한다.

대기업의 스카우트 제의를 모두 거절하고 혼자 차린 공방.

하지만 한국에서 그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고 결국 변두리 지하실에 차린 작업실로 근근이 살아가게 된다. 결국, 그를 인정해준 곳은 한국이 아니라 서유럽이었고 그 이전까지 외면받던 그의 가구는 그때부터 없어서 못 사는 가구가 되어버린다.

‘사실 외면 받았다기보다는 그냥 장사 수완이 없었던 것 같다만.’

당시에는 읽으면서도 ‘그런가 보다’ 했었지만 나름대로 사업을 하다 보니 지금은 왜 실패했는지가 대충 보인다. 한국은 변두리에서 조용히 혼자 공방 차려서 성공하기 힘든 구조이고 이종국은 사업적인 마인드와는 거리가 먼 예술가 유형이다.

그래서 성공하기 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2017년에는 영국 왕실에서도 반년을 기다려야만 가구를 받을 수 있었던 장인이 지금은 파리만 날리며 고객 한 명만 들어왔으면, 하는 처지다. 그러니 함께 가서 눈 딱 감고 뭘 짚어도 훌륭한 그의 공방에 가는 편이 무조건 낫다.

“그런데 오빠. 강남 어디야? 어떤 집인데?”

“그건.”

“그건!?

“비밀.”

“아악!”

괜히 말해주는 것보다는 그날 직접 보고 나와 같은 감동을 했으면 싶다.

*

주말이 오기 전, 그간 뿌려두었던 씨앗 중 하나가 매우 탐스러운 열매를 맺었다.

【훠이~! 훠이~! 반지 전쟁 등의 해외영화 모두 물러서거라~!】

【한국 영화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영화]2002년도 대작 풍년··· 100억 들인 ‘성냥팔이 소녀의 강림’ 등 개봉!】

【2002년. 올해는 1000만 관객 돌파 영화가 탄생할까?】

올해에는 1억 관객을 달성할 수 있을까? 또 전국 1000만 명을 달성하는 영화가 탄생할 수 있을까?

올 들어 영화계가 이 두 가지 과제의 달성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해의 관람 열풍이 올해에도 계속된다면 사상 처음으로 ‘1,000만과 1억 명 돌파’라는 신기록을 낳을 가능성이 높다.

먼저 총관객 1억 명.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의 전국 총 관객 수는 8,500만 명에 달한다. 97년의 4,970만 명. 98년 5,007만 명. 99년 5,880만 명. 2000년 7,200만 명 등으로 연간 관객 증가추세를 고려하면 올해 1억 명 달성이 전혀 근거 없는 기대만은 아니다···

길게 이어지는 기사문을 읽으니 세상에는 게임 이외에도 다양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나한테는 게임이 더 크고 그때는 세상 전부였는데 말이지. 역시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세요 인가?’

일단 두 가지의 기대치 중에 1억 명의 경우는 달성한다. 정확히 한국 영화가 몇 명. 해외 영화가 몇 명. 이런 건 잘 모르지만, 아무튼 다 합치면 1억 명을 처음으로 넘겼던 해가 바로 2002년이다.

‘한국 영화만으로 1억 명을 넘기는 건 정확히 10년 뒤인 2012년이고.’

반면에 1,000만 관객은 어림도 없다.

‘가장 흥행한 가내의 영광이 590만이니까.’

굳이 이런 기사들을 보고 있는 이유는 하나다. 바로 내가 투자한 영화 중 가장 처음으로 개봉하는 작품인 ‘정의의 적’이 드디어 개봉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의의 적은 개봉과 동시에 화려하게 신고식을 하는 중이다.

【[국내박스오피스]‘공공의 적’ 1위 진입】

‘반지전쟁’이 4주째에 1위에서 밀려났다.

1위 자리를 빼앗은 ‘반지의 적’은 다름 아닌 감우석 감독이 4년 만에 내놓은 액션 코미디 ‘정의의 적’.

김계덕 감독의 ‘나쁜 남자’는 전국 50만 명을 돌파하며 4위.

흥행 ‘끝물’인 ‘해리 포커와 마법사의 돌’은 8위에 그치긴 했지만, 마침내 전국 관객은 400만 명을 넘어섰다.】

꿈속보다 월등하게 나은 현재의 기록!

‘급조해서 제안한 건데 성공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네.’

영화의 촬영이 끝나갈 즈음. 나는 정의의 적으로 수익을 더 낼 방법을 생각해보았다. 잘될 게임 더 잘되게 했던 것처럼 투자자로서 성공할 영화를 더 성공시킬 방법을 떠올린 것이다.

가장 쉽고 편하게 이룰 방법은 게이머스 포럼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었다. 수많은 가입자와 파급력을 두루 갖춘 만큼 홍보를 하면 제대로 효과를 볼 수 있다.

하지만 회사의 주인인 내가 개인적인 수익을 내기 위해서 회사에 이익이 되지 않는 행위를 불합리하게 사용하는 것은 전혀 옳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저 생각으로만 그쳤는데 우리의 젊은 피인 김형빈이 내 생각을 바꾸었다.

좌호법과 함께 일하며 그의 영향을 많이 받은 그가 훌륭한 통찰력을 보였다.

“회사의 오너로써 너무나도 훌륭하신 생각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바꾸시면 서로에게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게이머스 포럼과 클로버 스팅의 현재 가입 회원이 몇 명이죠? 중복 가입자까지 모두 포함해서요.”

“1,600만 명 정도지.”

“엄청나네요! 1,600만 명! 이건 그 자체가 바로 권력입니다.”

“응?”

다수의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는 집단은 그 자체가 재산이고 그 자체가 힘이 된다. 그건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이걸 힘으로 사용하는 게 잘못되었다고 판단하는 것 아닌가?

“회사의 이익과 상관없이 회사를 이용하는 것이 회장님의 기준을 벗어나는 거라면 회사가 이익을 보면 그만이지 않습니까?”

“그렇지.”

“게이머스 포럼의 사업 담당자와 만나게 해주세요. 그럼 회사에도 이익이 되면서 영화로도 수익을 더 낼 수 있도록 만들어내겠습니다.”

그렇게 김형빈과 김정규 팀장의 만남이 이루어졌고 둘은 즉시 정의의 적 배급사를 찾아가 배너광고 계약을 맺어왔다.

1월 1일부터 2월 28일까지.

2개월간 배너를 띄우고 총 8,000만 원.

‘맞다. 저게 있었지!’

게이머스 포럼은 이미 오래전부터 배너 광고를 해왔다. 그런데도 내가 이걸 생각하지 못했던 건 게이머스 포럼이 게임 혹은 게임과 관련된 것들의 광고만 해서였다.

게임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그 외의 것을 광고한다는 건 잘못된 거라는 나도 모를 이상한 편견 같은 것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이래서 사업은 도와줄 사람이 필요한 거야.’

김형빈의 활약은 거기서 끝이 아니다.

그는 고진환, 김유천, 이정택 같은 진짜 전문가들의 방식과는 다르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역량을 파악하고 그것을 활용하는 것에 재능이 있었다.

‘내가 댓글 부대를 운용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지.’

정확히 말하자면 댓글 부대는 아니다. 댓글이 아니라 게시판에 리뷰를 올리는 것이니까. 그리고 가장 심혈을 기울인 장문의 분석적인 고급 리뷰는 김형빈 본인이 작성했다.

<2002년 그 시작과 동시에 끝판왕이 등장했다. 정의의 적 아직도 안 봤어? (리뷰 : 어쩌면 스포일러?>

일단 이 영화는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을 이끌어 가는(당연한 얘기겠지만) 주인공과 악역을 초반부에 집중도를 가지고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직 이 둘이 서로를 만나기 전인 극 초반은 (스포일러로 인한 가림)

경찰로서의 의무감도 책임감도 없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경찰’ 주인공과 모범적인 남편이자 번듯한 전문직인 악역.

이 둘의 만남과 갈등은 경찰보다는 불한당에 가까웠던 주인공을 불편하게 보는 시선에서 점점. 그를 응원하게 만드는 어떻게 보면 이 시대에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다크 히어로와 같은 존재로 성장하게 해줍니다.

길게 이어지는 글의 마지막 메시지는 이것이었다.

<··· 이 영화의 그런 엔딩은 정말 ‘정의의 적’을 잘 표현한 마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정의의 적!’

어쩌면 영화 내부의 악당이 아닌 그런 사회의 부조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요?>

심영탁의 후배라는 인맥으로 접한 이 동생은 연극영화과에서 익힌 극작 솜씨를 최대한 발휘해서 정의의 적이 한국 사회를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가, 또 우리가 이 영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를 꿈보다 해몽 격으로 양산했다.

그 결과 ‘정의의 적은 사회적인 통찰과 해학이 있는, 꼭 봐야하는 영화’라는 인식이 인터넷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덤으로 그 글의 출처인 게이머스 포럼의 회원도 빠르게 늘어나는 중이고. 아쉬운 점은 과연 감독이 능력 이상으로 고평가받는 거다만 이건 나한테도 돈이 되는 거니까.’

하여간 엘리트들과는 다른 행보지만 그 역시 점점 내게 필요한 인재라는 것을 제대로 증명해주고 있었다. 직원이 이렇게까지 실력을 발휘하면 상관은 두둑한 급여로 보상해주는 게 마땅한 처사다.

‘성과에 따라서 보너스가 빵빵해질 거야.’

그의 활약이 참으로 기대된다.

이윽고 빼어나고 꼼꼼한 마케팅의 도움으로 새로운 이슈가 만들어졌다.

【날개를 활짝 편 정의의 적. 개봉 일주일 만에 전국관객 80만 명 돌파!】

[무비투데이] 감우석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던 영화 ‘정의의 적’이 개봉 열흘 만에 전국관객 160만 명 관객동원을 넘어섰다.

이날 영화 관계자들은 ‘정의의 적’이 현재 입소문을 타면서 점점 더 많은 관객을 몰이하는 중이라서 지금 분위기라면 400만 관객은 무난하게 돌파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마케팅의 힘은 과연 위대하다.

‘무시무시하구나!’

원래 이 영화는 300만 관객을 모집한 영화다. 이는 2002년 영화들 중 흥행 순위 3위에 해당하는 수치인데 이것이 더 대단한 이유는 19세 등급판정을 받은 영화이기 때문이다.

“형빈아.”

“네. 총 군주 회장님.”

‘젠장. 너는 플레지도 안 하잖아! 우리 길드도 아니고!’

이게 다 좌호법 때문이다.

“정의의 적이 400만을 돌파하면 우리가 얼마나 받을 수 있게 되는 거지?”

“약 21억 5,000만 원입니다.”

“그럼 11억 정도 버는 셈인가?”

“맞습니다.”

애늙은이처럼 헛헛한 웃음이 나왔다.

이 액수는 ‘도시로’에서 볼 수 있는 수익과 비교하면 한참이나 적은 수치다. 일단 비슷한 금액을 투자했다고 해도 영화에 대한 지분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어찌 됐건 이런 식으로 돈이 오가며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칩을 쌓아두고 한 판의 도박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유명한 도박장에서가 아니라 부루마불처럼 가짜 화폐를 쌓아둔 느낌이다.

‘돈은 돈인데 내가 본 적이 없는 돈이야.’

나는 투자금 10억을 내 눈으로 본 적이 없다. 그 돈은 그냥 내 계좌에 숫자로만 존재했었을 뿐이니까.

그런데 그 숫자를 어딘가로 보내주고 또 돈을 벌었다.

‘타이푼 같은 게임이랑 내 현실이 뭐가 다르겠어?’

실물로 본 적도 없는 것을 투자하고 또 돈을 벌지만, 실물로 볼 일은 없다.

게임과 현실이 다른 것이 대체 뭘까?

어차피 계좌에 숫자로만 존재하는 그 돈과 게임머니의 차이가 뭘까?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을 무렵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총군주 회장님!”

정신이 확 드는 호칭이다.

엉뚱한 생각에 혼자 너무 깊게 빠져들었던 모양이다.

< 좋은 집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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