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165화 (165/577)

< 좋은 집 >

“독점이라··· 잠깐만. 방금 케이리버라고 했습니까? 설마 그게 여기서 만든 제품이었던가요?”

“그렇습니다.”

길게 전후 사정 말할 것 없이 딱 잘라 대답했다. 그리고 직감했다. 그는 당장 널리 알려진 케이리버라는 이름. 미국에 깃발을 꽂은 위대한 국뽕에 크게 관심이 동했다는 것을 말이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대신 단순투자보다는 인터넷 방송의 개국까지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야겠습니다.”

충분히 가치 있는 투자다.

‘전폭적인이라는 말을 그렇게까지 강조하지 않아도 된다고. 어차피 내가 더 남는 장사니까.’

흔쾌히 승낙했고 거래가 성립되었다.

다음 날 강남구청 인터넷 수능강의의 담당자가 회사에 찾아와서 방송국 개설에 관한 설명을 하고는 본격적인 협업을 위한 교류를 나누었다. 아울러 노련한 정치가는 이를 제대로 활용했다.

【강남구청 인터넷 수능 강의로 교육 평준화에 나서다.】

【게이머스 포럼 게임이 아닌 교육에도 앞장서···】

【게이머스 포럼 강남구청과 함께 인터넷 교육방송으로 사교육 잠재우기에 나선다.】

대한민국 공교육 1번지로 통하는 강남구에서 지역적인 문제, 혹은 비용적인 문제로 교육에서 소외당하고 있는 학생들을 위해 나섰다.

강남구청은 사교육비 경감과 교육기회 균등을 목표로 강남에 소재한 게임 업체인 게이머스 포럼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새로운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 가겠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전국적으로 퍼져 있는 인터넷을 통해서 학원을 대신한 교육을 할 수 있다는 이 인터넷 교육 방송은 강남지역을 비롯한 전국의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높은 호응을 얻으며 대형 사교육업체를 비롯한 전국의 사교육업체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강남구청 교육방송의 강의는 ‘나눔의 정신’이라는 설립 취지에 걸맞게 강남구 거주자뿐만 아니라, 수험생 누구나 수강할 수 있도록 항상 열려있는 것이 특징이다. 연회비 1만 원이면 누구라도 시청할 수 있다는 것을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권용민 강남구청장은 퍼포먼스를 아는 사람이다. 이제 막 협의를 진행하고 있는 타이밍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발 빠르게 언론을 통해 자신의 홍보를 시작했으며 그 덕분에 게이머스 포럼의 이름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다.

그 덕분에 이제는 정말로 게임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게이머스 포럼이라는 이름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생각 이상으로 꿀인데?”

방송국 개국까지 지원에 들어가게 될 금액은 무려 30억. 절대로 적지 않은 금액이다. 하지만 이건 어떤 면으로 따져도 저렴한 액수다.

홍보 효과!

여기에 게이머스 포럼을 단순한 게임회사가 아닌 한국의 미래를 생각하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로 만들었으니 그 가치는 두 번 생각할 필요조차 없다.

‘처음부터 만드는 것이 아니라 클로버 스팅을 수정하는 방식으로 하면 두 달 정도면 개국할 수 있겠어.’

자고로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 는 말이 있듯이 관심과 이슈가 왕창 몰렸을 때 우리 역시도 제대로 이용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회사에는 공허한 애드벌룬을 띄우는 것 이상으로 괜찮은 상품들이 넘쳐흐른다.

“좋다, 좋아!”

80. 좋은 집

2002년 1월부터 강남 인터넷 수능 강의를 오픈한다. 원래 역사라면 그냥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서 이용했을 이곳은 클로버 스팅을 수정하는 방식을 선택했기에 사이트가 아닌 브라우저형으로 변경이 되었다.

“일이라는 게 참 신기하단 말이야. 이게 이런 식으로 연결될 줄 누가 알았겠어?”

처음 구청장의 요청에 따라서 인터넷 강의 사업에 투자한 이유는 이미지 개선과 케이리버의 상장에 도움을 주는 것. 딱 이 정도였다. 30억쯤은 광고비로 퉁 친다고 보고 말이다. 그런데 돌아가는 모습이 아주 재미있었다.

【두근거리는 새 학기 최고의 선물은? 바로 이것!】

【고등학생 자녀를 위한 선물 베스트 1위! 스텔라!】

이미 스텔라는 인터넷강의 소문이 퍼지기 전부터 해외에서 인정받은 제품으로 국내의 뜨거운 관심을 받은 물건이다. 여기에 ‘강남인강’을 듣기 위해서는 필수라는 소식까지 더해지자 출시를 하기도 전에 국내 MP3 플레이어 시장의 주인이 되어버렸다.

무려 출시 후 한 달 만에 국내 MP3 플레이어 시장의 80%를 장악하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그러나 세간이 떠들썩한 이 포인트는 내가 신기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었다.

‘이건 내 의도였으니까 당연한 거라고.’

나에게조차 새삼스러운 지점은 바로 PC 시장이다.

【없어서 못 파는 레오닌!】

【학원 보내는 것보다 컴퓨터를 사서 강남인강을 듣는 게 효율적!】

케이리버에만 집중하느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건 강남인강을 듣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제품이 바로 컴퓨터라는 사실이었다. MP3 플레이어보다 컴퓨터는 훨씬 보급률이 높은 상황이다.

하지만 많은 학생이 인터넷 강의를 핑계로 MP3와 컴퓨터를 교체하기를 부모님에게 요청했다. 과연 그 컴퓨터와 케이리버로 공부만 할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됐건 그 덕분에 판매율이 껑충 뛰었다.

여기에 본격적으로 시골에까지 ADSL이 전파되면서 날개가 돋친 것처럼 팔리게 된 것이다. 아울러 꽤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었던 유통 업체와 부품업체들은 레오닌을 전문적으로 제조, 유통하는 합작법인을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PC 쪽은 진출할 계획을 세운 게 아니었는데··· 어찌어찌 그리되어 버렸네?’

합작법인의 이름은 ‘레오닌 컴퓨터’. 대표는 구자영 씨다. 그는 애초부터 레오닌의 힘으로 성장했고 앞으로도 레오닌이 아니면 이런 이익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에 현재 분위기를 이끌어가기 위해서 게이머스 포럼을 끌어들였다.

그러며 우리는 가만히 이름만 빌려주고 20%의 지분을 얻었고 자연스럽게 2대 주주가 되었으며 매출액의 1%를 로열티로 받기로 했다.

“수입 중에 최고는 누가 뭐래도 로열티야. 이게 짱이라고.’

중국에 게임을 팔면서 느낀 거다. 미국에 특허 전문 회사라던가 특허 괴물들이 왜 존재하나 했더니 바로 이것만큼 좋은 사업아이템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2대 주주라고는 하지만 최대주주와 큰 차이도 없고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회사를 차지하는 것도 어렵지 않은 수준이다.

‘어차피 몇 년 안에 하향산업이 될 PC 회사를 차지할 마음이야 전혀 없지만, 아주아주 내게 유리하다는 말씀!’

인강 효과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PC의 보급률이 오름과 함께 자연스럽게 커지는 시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바로 게임 시장!

그 결과, 게이머스 포럼이 유통하는 게임의 월간 국내 매출이 40억 규모였던 것에 반해 이제는 50억 규모까지 성장했다.

이 모두가 인터넷 강의에 투자함으로써 나타난 다양한 분야의 수익 증대 효과였다. 덕분에 나도 두둑하게 성과급을 챙길 수 있었다.

‘내가 회사의 주인인데 성과급을 받는다는 게 참 기분이 묘하다만.’

어쨌거나 이번 성과급은 전액 이사하는 데에 사용할 예정이다.

*

“개인적으로 총 군주 회장님 정도의 기업가가 공동주택에서 거주하시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가요?”

“재벌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괜히 고급주택에서 생활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급 주택은 보안이 매우 뛰어나며 사생활 보호에 좋기에 괜한 일로 생길 염려가 줄어듭니다.”

회사에서의 업무와 관련된 일들을 이미진 과장이 처리한다면 윤태식이라는 개인의 일들은 대부분 좌호법이 처리한다고 보면 된다. 이번에 새로운 집을 구하는 과정은 전적으로 경호 형이 맡아서 처리를 해주고 있었다.

‘내가 재벌이라니. 참 멀게만 있는 단어였는데.’

싱숭생숭한 기분이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전역하면 뭘 하고 살지, 인천에서 아파트라도 장만할 수 있다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좋은 꿈을 꾸고 게이머스 포럼을 차렸으며 이제는 서울도 아닌 강남에서. 그것도 아파트가 아닌 고급 주택을 거론하고 있다.

사실 원래 내 목적은 무조건 아파트였다.

‘아파트에 대한 일종의 환상이 있다고 해야 하려나?’

어려서부터 내가 살아온 집들은 전부 빌라 혹은 다세대 연립주택이었기 때문에 아주 높고 또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는 꿈과 환상의 주거공간이었다.

그런데 우리의 좌호법이 그게 무슨 소리냐며 조곤조곤 질책했다.

내 파라다이스인 아파트가 무시당하다니!

‘흥! 대범하게 수렴해주마.’

나는 옳은 말에 귀를 잘 기울이는 사람이니까. 다만 신경 쓰이는 점은 있었다.

“고급주택이면 교통편이 불편하고 그러지 않나요?”

일반적으로 아파트를 선호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일단 주차가 편리하다는 점.

‘하지만 고급 주택도 이 못잖겠지. 아파트보다도 훨씬 주차가 편할 테니까 패스.’

다음으로는 아파트라는 특성상 세대가 많고 덕분에 인구 유동량이 높아서 주변 상권과 함께 교통이 발달한다는 점이다.

‘나야 차를 타고 다니면 상관없지만 태희가 불편할 거잖아.’

이제 대학을 다녀야 하는 새내기인데 교통이 불편하면 곤란하다. 물론 차를 한 대 사줘서 운전하고 다니면 이 문제는 가볍게 해결되지만, 이건 별로 내키지 않는다. 아직 면허조차 없을뿐더러 대중교통을 이용한 대학 생활은 또 그만의 장점과 추억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차를 사달라거나 부탁하면 또 이야기는 달라지지만 그런 모습을 전혀 보이지도 않으니 필요할 때까지 기다릴 예정이다.

그러므로 대중교통이 편해야 한다. 이 점에 대해 준비된 좌호법은 언제나처럼 시원시원하게 대답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현재 삼성동 고급주택단지에 좋은 매물이 나왔는데, 청담역까지 걸어서 5분이면 충분합니다.”

“그래요?”

주택단지는 전부 지하철과는 영 관계가 없는 지역에만 존재하는 줄 알았는데 좋은 곳과 아닌 곳이 있는 모양이다.

“한 번 집을 봐야겠군요?”

“지금 당장이라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가시겠습니까?”

“네.”

회장 좋은 게 뭐랴. 상관 눈치 볼 것 없이 내 스케줄은 내 마음대로다. 바로 움직였다.

삼성동 고급주택단지.

A부터 D까지의 라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라인별로 130평형대에서 160평형대로 다양하게 구성이 되어 있었다. 이곳에 고급주택단지가 형성되고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부유층이 살게 된 배경은 강남의 어느 지역보다 풍수지리학적으로 완벽한 땅의 기운을 가지고 있어서라고 한다.

‘나야 딱히 풍수지리를 믿는 건 아니지만.’

주택단지가 있는 곳은 경호형의 말대로 청담역과 매우 가까웠다. 대충 천천히 걸어도 10분이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을 정도다.

주로 자가용을 이용하게 되는 나 역시도 영동대로와 올림픽대로 그리고 강변북로로의 진입이 용이해서 교통의 요지나 마찬가지였다. 거기에 대형 마트부터 병원, 상권까지 흠잡을 게 없는 완벽한 입지 조건이라 하겠다.

또한, 4개의 라인으로 이루어진 단지 전체의 세대를 합쳐도 고작 28세대다. 골목마다 경비초소가 배치되어 24시간 경비가 이루어지는 데 안전함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고급주택이라는 게 이런 느낌이군요.”

“웅장하죠?”

정말 딱 그 표현이 맞는 것 같다.

솔직히 지금 사는 간석동에도 개인 주택은 꽤 있는 편이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사는 곳보다 확실히 좋은 환경의 집들이었다. 그러나 쓱 보고는 지나갈 뿐이지 그 집들을 보면서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여기는 진짜 다르다.

“주택이 아니라 저택이라고 불러야겠네요.”

“실제로 저택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직접 보는 거는 이런 거구나.’

고급 주택을 보지 않고 아파트를 샀었다가는 파워팰리스고 뭐고 무조건 후회를 했을 거다. 힘, 권력(power)과 궁전, 궁궐, 대저택(palace)을 합해서 만든 이름인 파워팰리스는 물론 한국의 부의 상징이다. 하지만 공용주택과 개인 주택은 확실히 그 느낌이 달랐다.

“어느 집이죠?”

“이쪽입니다.”

사전에 집주인 측과 이야기가 다 된 것인지 나는 아주 편하게 집을 구경할 수 있었다. 역시 일 잘하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몸과 마음이 두루 편하다.

“원래는 집주인이 이곳에서 계속 살 예정이어서 최근에 새로 공사까지 다 했다고 합니다.”

삼성동 고급주택단지에서도 가장 넓은 평형대라고 할 수 있는 160평형대의 주택은 우선 이 주변의 다른 주택들과 비교해도 훨씬 세련 된 느낌이 물씬 풍겼다.

경호 형의 말에 따르면 이곳은 은근히 텃세 같은 것이 심해서 처음 입주하는 사람이 공사를 하거나 하면 주변 집들의 항의가 엄청나게 들어온다고 한다. 이 주택단지의 초창기부터 살아왔던 집주인도 새로이 공사할 때 항의가 꽤 들어왔다니 깐깐해도 보통 깐깐한 게 아닌 모양이다.

“그런데 힘들게 공사를 해놓고 왜 판다고 합니까?”

“현재 집주인이 국내에서 최고라고 인정받는 건축가입니다. 이번에 중국에서 엄청난 조건으로 스카우트를 했고 덕분에 급하게 매물로 내놓은 거죠.”

‘어쩐지. 보는 눈 없는 내가 봐도 뭔가 세련된 게 남다르다 싶을 정도더라.’

국내 최고의 실력자가 남의 집이 아닌 자신의 집을 만드느라 최선을 다한 결과물인 셈이다.

‘정원부터가 예술이네.’

정원에는 작지만 범상치 않은 조각상이 있는 연못과 수로가 있었는데 겨울이라 물이 없었음에도 그 아름다움을 감출 수 없었다.

건물은 지하 2층부터 지상 2층까지 총 4개의 층이었고 지하 2층은 주차장이다.

< 좋은 집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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