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159화 (159/577)

< MP3 플레이어 >

이 제안은 현시점에서 파격이랄 수 있다. 그 때문에 누구도 하드를 메모리로 채용한 MP3가 성공할 거로 생각하지 못하는 시기였다.

‘심지어 최초로 선보인 와이팟 조차도 당시에는 다들 망할 거라고 했거든. 그런데 실제 결과는 완전 딴판이었지.’

대용량의 압도적인 승리!

그것이 훗날의 와플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되었다.

‘고작 30곡 100곡을 넣어봤자 쉽게 질려. 그렇다고 매일 새로운 음악을 담을 수도 없는 일이고.’

고객 편의성은 선택조건이 아닌 필수다.

이런 내 말에 양도준 사장이 우려를 표했다.

“그래도 크기가 문제입니다.”

“크기는 액정을 없애면 더 줄일 수 있습니다.”

“네? 액정을 없애라고요?”

“CDP도 액정 없는 게 많지 않습니까?”

“···어? 그러네?”

그가 눈을 껌뻑였다. 이제서야 액정을 없애라는 게 무슨 말인지 이해한 것이다.

‘2003년의 일이었지.’

꿈속 미래에 따르면, 당시 한국은 와이팟의 공세에 MP3 종주국의 힘을 잃고 추락해야만 했던 시기다. 여기서 케이리버와 쿠원은 전혀 다른 방법으로 활로를 찾는다.

케이리버는 최대한 와이팟을 추격하여 공습을 하는 것을 선택한다.

쿠원은 와이팟이 미치지 않는 틈새시장을 공략했다.

그 결과, 케이리버는 와플을 따라 하기에 급급하다는 평가와 함께 몰락의 길을 걸었다. 반면에 쿠원은 하드를 채택하고 사이즈를 줄이기 위해 액정을 없앴다. 여기에 리모컨을 단 결과 그들은 일본에서 와이팟을 제치고 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하고 만다.

‘이래서 실속은 쿠원이라는 거야.’

대중은 한국 MP3의 1인자가 케이리버였다 말하지만 업계의 전반적인 역사를 보자면 쿠원이 진정한 승자다. 이건 변명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양도준 사장은 내 말이 계속 불안한 모양이다.

“그래도 크기가 만만치 않기는 할 텐데요······.”

“내기할까요? 뭐가 더 성공할지?”

“예?”

“자금을 저희가 대겠습니다. 두 가지 모두 양산하세요.”

돈 낭비가 아니다. 어차피 두 가지 기술이 모두 필요하다.

결국, 플래시 메모리의 가격은 계속해서 내려갈 것이고 이후에는 하드보다 플래시 메모리의 시대가 오게 되니까. 물론, 양도준 사장의 눈에는 돈 많은 갑부의 패기로 보일 테지만 말이다.

“손해 보실 건 없다고 봅니다.  어차피 제 돈이니까요.”

“그렇···군요. 무엇을 내기로 건다는 말이신지···?”

“하드를 장착한 MP3 플레이어가 더 성공하면 앞으로는 제 조건을 그냥 따라주십시오. 만약 플래시 메모리를 장착한 MP3P가 더 성공하면 더는 제가 경영에 간섭하는 일이 없을 겁니다. 어떻습니까?”

“···약속하시는 겁니다?”

관심사였나 보다. 양도준 사장이 냉정함을 되찾고 내게 말했다. 나는 재차 확답을 주어 내기를 성립했다.

“좋습니다. 투자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우리 회사의 고진환 팀장을 내일 레이컴에 보내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실무진끼리 처리하도록 말이지요.”

“알겠습니다.”

들어올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의 그와 힘차게 악수를 했다.

이후 그가 떠나고 난 뒤 나는 의자에 앉아 길게 숨을 내쉬었다.

‘케이리버. MP3 시장으로의 진출이라······.’

정말 큰 무대가 열렸다. 더군다나 확장성도 대단히 크다. 케이리버를 확실하게 밀어주고 이를 기반으로 향후의 스마트폰 산업까지 이어지는 큰 그림을 그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다만, 너무 큰 규모의 시장이라서 살짝 부담됐다.

잘 해낼 수 있을까, 되물어본다. 그리고 웃고 말았다.

“질러라. 내가 못하면 누가 해내겠냐?”

객관적으로 보나 주관적으로 평가하나 나라는 놈은 꽤 잘 해내는 중이다.

도전.

해볼 만하다.

*

시간이 흘러 2001년 10월 23일의 날이 됐을 때, 와플에서 MP3P 시장의 진출을 예고하며 와이팟을 공개했다.

우리라고 가만히 있을쏘냐.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2001년 10월 25일.

레이컴은 자금이 없었을 뿐, 이미 MP3 플레이어를 양산화하기 위한 대부분의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런 까닭에 투자한 지 1개월도 되지 않은 시점에도 MP3 플레이어 양산형 모델의 시험품이 나왔다는 연락이 왔다.

“이게 플래시 메모리를 장착한 제품입니다.”

양도준 사장은 애시당초 케이리버에서 준비했던 상품을 보여주었다.

제품은 kFP-100.

삼각기둥의 형태에 목에 목걸이처럼 달 수 있는 고리가 있는 외형이다. 내가 꿈속 미래를 통해서 확인했던 제품의 디자인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물건이었다.

‘역시 좋아. 디자인은 깔 게 전혀 없단 말이지.’

케이리버가 등장하기 전까지 사람들의 인식 속에 MP3 플레이어는 투박한 외형을 가지고 있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중소기업들은 디자인까지 신경 쓰면서 제품을 만들 자본적인 여유가 없다. 반면에 자금이 넉넉한 대기업은 별반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 나중에, 중소기업들이 피 터지게 싸우면서 시장을 키웠을 즈음에야 하나둘 발을 들여놓는다.

‘시장이 커지면 막대한 자본금으로 파이를 빼앗으면 되니까. 개척한답시고 신경 쓸 바에는 그러는 게 편하거든. 하여간 남이 땅을 일궈놓으면 그것만 홀라당 삼키려는 못된 심보들이야. 이걸 똑똑하다고 할 수 있기도 할 테지만.’

아무튼, 케이리버는 투박하던 MP3 플레이어 시장의 판도를 바꿔버린다.

일반적으로 새로운 제품 생산을 준비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은 제품에 필요한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러나 양도준 사장은 순서를 바꿔서 가장 먼저 제품의 디자인을 고려했다. 그 후에 디자인에 맞춰서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디자인 중심으로 제품을 개발한다는 것은 그동안의 제품공정 순서를 뒤바꾼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때, 양도준 사장의 유명한 명언이 등장한다.

- 그냥 구겨 넣어.

개발자들이 사정하고 어려움을 제아무리 호소해도 먹히지 않으니 어쩌겠는가. 결국, 개발팀은 디자인팀의 의견에 맞춰 제품을 만들어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난관을 극복해야 했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마침내 성공하고 만다.

역대 모든 MP3 플레이어보다 가장 작은 제품.

파격적인 디자인인 삼각형의 모양이며 가볍고 조작이 간편하다.

그것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kFP-100이었다.

‘실제로도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용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 상징적인 제품이지.’

와이팟에 의해 몰락하기 전까지는 누가 뭐래도 국내 최고의 브랜드였던 MP3 플레이어다.

“훌륭합니다.”

나는 이 물건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부터 성능과 기대치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양도준 사장의 말을 끊고 질문했다.

“그런데 하드를 장착한 제품은 어디에 있죠?”

“여기 있습니다.”

고급스러운 은색으로 둘러싼 제품. 디자인은 내가 직접 해서 건넸고 그 과정 중에 약간의 소란이 있었다. 하지만 결과물은 모두가 만족했다.

‘애초에 잘나갔던 제품의 디자인을 표절한 거니까.’

훗날 LK전자에서 만들어낼 휴대폰이자 일명 ‘진태희 엉덩이춤’으로 유명한 샤이닝 폰의 디자인이었다.

‘생각보다 사용감이 괜찮네.’

샤이닝 폰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는 휠을 만져 봤는데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다. 중소기업이고 아직 시대가 시대다 보니 기술력의 문제가 있지 않을까 걱정을 했지만 별다른 문제점이 보이진 않는다.

이 HDD 타입 MP3 플레이어의 이름은 kH-10.

‘kFP와 달리 P를 뺀 이유는 휴렛 패키지 때문이지.’

글로벌 전자 회사인 이 회사의 약자가 바로 HP다. 심지어 이 회사는 현재 와이팟의 OEM 중의 하나였다. 즉, 제품명에 HP가 들어가면 소송을 당할 우려가 있고 저들은 그런 전적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럼 플래시 메모리 타입이 두 종류, 하드 타입이 두 종류로 총 네 가지의 모델을 한 번에 출시할 수 있게 되겠군요.”

“그렇습니다. 이게 다 회장님 덕분입니다.”

“제 덕분이라뇨. 다 레이컴의 여러분들이 노력해주신 덕분이죠.”

플래시 타입인 kFP는 128Mb와 256Mb 두 가지가 있었고 HDD 타입인 iH는 두 가지 모두 5Gb로 같은 용량을 보유했다.

그리고 일반형인 iH-10N 기기에는 액정이 없고 오직 리모컨의 액정에 의지하는 반면, 고급형인 iH-10X는 본체에 꽤 큰 액정을 포함하고 있어 진짜 샤이닝 폰과 비슷한 외형이었다.

“이대로 양산을 시작하세요.”

“저기··· 아직 유통에 관한 계약들이 안 잡혔는데··· 물량을 얼마나 준비해 둘까요?”

성공할 확신이 있으니 과감하게 지르기로 한다.

“모델별로 3만 대씩 준비하라고 하세요.”

“예? 3만대요? 합쳐서가 아니라 각각!?”

2001년 올 한 해, 10개월간 현재 1위인 쿠원의 KAUDIO의 국내 총판매량이 2만여 대다. 그런데 이제 막 개발한 MP3P를 전부 합쳐서 총 12만 대를 생산하라고 말했으니 양도준 사장이 놀라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반응이었다.

그는 자신이 혹시 잘못 들은 것인가 내게 재차 묻고 확인을 받으려 했다. 그 물음에 나는 당신이 제대로 들은 것이라며 강단 있게 말했다.

“모두 12만 대입니다. 시간 싸움이니까 최대한 빠르게 처리해야 합니다.”

“아··· 그게··· 네! 알겠습니다.”

이상하고 불안하게 여기는 모습이지만 자고로 돈을 대는 사람이 하라고 하면 해야 한다. 그는 대답하고는 고개를 휘휘 저으며 부리나케 어딘가로 움직이려고 했다.

재빨리 불러 세웠다.

“양 사장님. 어디 가십니까?”

“지금 제품 양산화 시작하라고 하셔서 얼른 전달을···”

“그건 다른 직원들에게 맡기고 사장님은 미국에 다녀올 채비를 하십시오.”

“네? 미국?”

“조금 오래 걸릴 수 있으니 한 달 정도는 비워도 되도록 준비하세요.”

“당최 무슨 말씀이신지······.”

영 갈피를 못 잡는 그에게 나는 자신에 찬 웃음을 보였다. 그리고 우리 회사의 능력자 중 한 명이자 영업의 달인인 김유천 과장을 불렀다.

‘그럴싸하기만 한 계획을 현실에서 이룩해내는 능력자들.’

지금까지 우리 회사가 이렇게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은 내가 알고 있는 단편적인 미래 지식을 놀라우리만큼 현실에 잘 접목한 각 분야의 인재에 있었다.

나는 안다. 직원들은 ‘사장님의 확신과 예측을 믿고 일을 추진했을 뿐입니다’라며 공을 내게 돌렸지만, 그들이 없었다면 작금의 게이머스 포럼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잘 부탁합니다.’

MP3 플레이어를 파는 일도 마찬가지다.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잘 전달해서 그럴싸하게 지시를 내리기로 했다.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어야겠습니다. 미국에 양도준 사장과 함께 미국에 다녀오세요.”

“미국이요?”

나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는 표정을 짓는 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김 과장님이 꼭 해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미국 시장은 세계의 그 어떤 시장보다도 먹을 것이 많은 시장이다. 하지만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만큼 충분한 걸음걸이를 가지고 있지 못하면 또 빠르게 도태되어버리는 시장이기도 했다.

그런 무대에 진출하는 만큼 지금까지와는 다른, 조금 더 직접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을 생각해내야만 했다.

바로, 미래를 알고 앞으로의 변화를 알고 있는 나만이 할 방법이었다.

“어? 왜요? 설마 미국 시장은 자신이 없다거나 뭐 그런 건 아니시겠지요?”

슬쩍 도발하니 그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신감을 보였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회장님. 전 세계가 제 무대라는 건 변함이 없습니다.”

“좋네요. 그럼 준비해 주세요.”

“다만.”

양도준 사장과는 달리 그는 걱정 대신 짙은 호기심을 보였다.

“미국의 어느 유통사로 가서 뭘 팔아야 하는 겁니까?”

“김 과장님은 이번에 우리 회사에서 출시한 MP3 제품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매우 뛰어난 제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 더 질문을 드리지요. 미국 시장에서 충분히 통하려면 어떤 제품이어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제품이 뛰어나야···”

내가 그를 제지하고 말했다.

“그런 종류의 교과서적인 대답은 뺍시다. 아니, 질문을 바꿔보지요. 제품이 뛰어나다면 반드시 성공할까요?”

김유천 과장은 내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인지 생각을 하느라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두 번째의 질문만큼은 그 대답이 확실하게 있겠지. 대놓고 드러내지 못하는 것뿐이고.’

이 질문의 대답은 ‘아니다’ 라서다.

‘와이팟도 동시기의 제품들에 비교해 특출하게 뛰어나지 않았어.’

와플 제2의 전성기이자 새로운 혁신의 시작이라고 불리는 와이팟.

그것의 성공은 뛰어난 품질 때문이 아니다.

첫째는 디자인.

와플의 제품들은 하나 같이 빼어난 디자인을 자랑한다.

‘하지만 디자인은 케이리버도 세계적으로 절대 밀리지 않는 상품이지.’

둘째는 유저 친화적인 인터페이스.

와이팟의 장점으로 꼽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굳이 사용설명서를 읽지 않더라도 누구라도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편의성.

‘우리 제품도 마찬가지고. 국뽕은 이런 데서 마셔줘야 한다고.’

얼토당토않은 자부심이 아니라 이유 있는 자신감이다.

다만 와이팟의 성공요인 세 번째는 케이리버가 따라잡기 어렵다.

‘제품의 생태계.’

와이팟의 생태계에 들어가게 된다면 굳이 음악 CD에서 듣고 싶은 곡을 추출하지 않아도 된다. 불법 다운로드나 공유를 위한 곳에서 열심히 찾아다니지 않아도 뮤직 스토어에서 쉽게 구매하고 와이팟은 물론이고 와플의 TV나 컴퓨터로 쉽게 음악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의외로 지금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요건 2년이나 지나서의 이야기거든.’

뮤직 스토어가 오픈하며 와이팟의 진정한 전성기가 시작되는 데 이 시기가 2003년이다. 반면에 2001년인 지금의 와이팟은 와플의 컴퓨터가 있어야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일명 ‘와플 마니아를 위한 음악 재생기’일 뿐이다.

그렇다면 케이리버가 지금 해야만 하는 것이 무엇일까?

‘브랜드 가치를 확보해서 경쟁력을 높여야 해.’

같은 제품이 나왔는데 하나는 유명 회사 것이고 나머지는 촌구석에 이름 모를 동호회에서 만들었다고 한다. 어느 것을 사겠는가?

와플과 케이리버의 존재감이 이것과도 같다.

당장 두 개의 브랜드가 가진 이름의 무게는 감히 저울질 할 수 없을 수준이다. 내가 굳이 김유천 과장을 이곳에 불러서 그가 해야 할 것들을 하나하나 상세히 설명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시애틀에는 마이크루 소프트가 있습니다.”

< MP3 플레이어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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