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157화 (157/577)

< 리얼 팜 >

그리 생각하며 걷던 중, 신선한 비린내가 물씬 풍겼다.

“오예! 고등어!”

지글지글 껍질이 구워지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우리 고여사님이 일찌감치 저녁준비를 하시는 모양이네.’

어머니께서 차려주시는 사랑 가득한 오늘의 메뉴!

나는 입맛을 다시며 현관문을 열었다.

“고등어 냄새 맞죠?”

“삼치인데?”

‘쳇. 내 후각은 병신이었어. 하여간 나라는 녀석은 미식 타입은 아니라니까.’

생선 냄새는 거기서 거기 같다.

“아들! 식사는 안 하고 왜 그리 인상을 쓰고 있어? 뭐가 마음에 안 들어?”

“응? 천만의 말씀! 우리 고여사님이 차려준 밥상이 마음에 안 들 리가 있을 리가요.”

구두를 벗고 안에 들어왔다. 저녁 식탁의 풍경은 99년에 막 전역해서 돌아왔을 때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부유해졌다고 무조건 한우를 굽고 바다 너머의 가재 요리가 나오지는 않는다. 삼치에 두부조림, 뭇국이라는 정겨운 집 밥상이다.

‘내가 좋아하는 메뉴이기도 하고. 맞다. 변한 점이 있으시기는 하지.’

어머니가 장을 보는 시간이 예전보다 절반 가까이 짧아졌다. 이전에는 할인하는 품목과 저렴한 음식 재료들을 찾느라 시간을 들이셨는데 현재는 크게 고민하지 않고 품질로만 고르시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메뉴 자체의 변화는 없지만, 지출은 2배 이상 늘었다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와 어머니, 나. 이렇게 세 식구가 의자에 앉아서 이제 막 수저를 들었을 때였다.

“나 왔어!”

현관문이 벌컥 열리며 존재 자체만으로 집안 분위기를 띄우는 여동생이 들어왔다.

“어!? 뭐야!? 치사하게 나만 빼고 다들 식사하고 있었던 거야!?”

막 돌아온 태희는 가방조차 벗지 않은 채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삼치를 노려보았다. 누가 보면 내가 맨날 반찬 뺏어 먹고 굶긴 줄 알 것 같다. 모 만화에 나오는 장화 신은 고양이의 눈빛과도 비슷했다.

“머··· 먹을래?”

“흥! 됐네요! 나도 앉아서 먹을 거라규!”

고개를 홱 돌리더니 제 책상 위에 책가방만 툭 하고 놓았다. 그리고 태희는 밥을 한 그릇 푸짐하게 떴다.

“어머. 얘는? 교복부터 갈아입고 와! 다 큰 애가 왜 이렇게 조신하질 못하니?”

대한민국 모든 어머니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등짝 스매싱이 이어진다.

“아! 왜 그러냐규!? 나 엄청 배고프다규!”

‘아이고. 얘가 또 학교에서 이상한 말투를 배워왔네.’

저건 또 어디서 나온 만화나 드라마일까? 하여간 학창시절은 묘한 방식으로 유형에 민감한 것 같다. 아침에 다르고 저녁에 다를 정도다.

“시끄러! 당장 가서 옷 갈아입고 와!”

“엄만 오빠만 이뻐 해!”

말은 저렇게 해도 후다닥 제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 모습을 보니 괜히 웃음이 나온다.

옷을 다 갈아입은 태희가 식탁에 앉고 나서야 시끌벅적했던 집이 조용해졌다. 어중간하게 찾아온 정적이 어색했는지 아버지가 평소에는 관심을 보이지도 않던 물음을 내게 하셨다.

“사업은 잘 되고 있고?”

“그···”

“그러엄! 오빠 사업 엄청 잘 돼!”

나에게 했던 질문이지만 괜히 나보다도 더 신난 얼굴로 태희가 대답했다.

그것을 어머니가 나무라신다.

“얘는. 네가 뭘 안다고 나서고 그래?”

“내가 왜 모르냐규! 오빠 회사 얼마나 유명한데? 학교 애들이 맨날 오빠 회사 얘기하고 난리라규!”

“학교 애들이 오빠 회사를 왜 얘기해?”

“오빠가 이번에 게임 하나 새로 출시했거든.”

“게임?”

“응. 그 막··· 뭐지? 아! 맞아. 농사하는 거야.”

“농사? 농사가 어떻게 게임이 돼?”

이 시대의 어른들에게 게임이라는 것은 그저 놀이일 뿐이다. 반면에 농사는 노동에 해당한다. 이 두 가지를 하나로 합쳐서 생각하는 건 부모님께는 생경한 발상이 틀림없다. 당연히 의문을 보이셨고 태희가 열심히 이야기해드렸다.

“현실에서 농사하는 게 아니라규! 컴퓨터로 하는 거야, 컴퓨터. 근데 게임에서 농사를 잘하면 현실에서도 채소나 고기 같은 걸 받을 수 있다나 봐. 요즘 애들 사이에서 완전히 난리야 난리.”

“에이~ 무슨 콤푸타 게임으로 고기를 받고 그러니? 그냥 애들끼리 하는 소리 아냐?”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나도 공부하느라 못 해봤단 말이야~ 여기 그 회사 싸장님 있잖아. 싸장님에게 물어봐. 내 말이 진짠지 가짠지.”

‘이제 막 오픈 베타 출시한 거라 돈은 한 푼도 안 되는데.’

바로 잡아줄 내용이 꽤 되지만 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넘겼다. 태희가 자부심을 느낄 정도고 여고에까지 소문이 날 정도이니 기분이 제법 좋았다.

그런 내게 가족들의 시선이 일제히 몰렸고 여동생이라는 대변인이 물러난 이제야 나는 대답할 수 있었다.

“상추를 키웠다고 상추를 받을 수 있고 그런 건 아니에요.”

“그러면?”

“게임에서는 퀘스트라고 하는 과제가 있거든요. 이걸 해내면 쿠폰을 하나씩 줘요. 이를테면 문화상품권의 역할을 하는 거죠. 이 쿠폰을 모아서 채소나 과일, 고기 같은 걸 신청할 수 있어요.”

“나는 또. 모니터 속에서 과일이 나오기라도 하는 줄 알았지 뭐니.”

옅게 웃으신 어머니가 질문하셨다.

“쿠폰으로 추첨해서 주기도 하니?”

“맞아, 오빠. 꽝이나 다음 기회에 같은 거 나와?”

“아니. 신청하면 무조건 줄 거야. 그런데 쿠폰을 모으는 게 쉽지는 않아.”

“아무리 그래도 게임을 하면 돈을 준다니······.”

지금까지 게임 골드와 아이템을 팔아서 굉장한 수입을 창출했지만 ‘아들이 하는 일이니까 그런 거겠지.’로 넘기시던 부모님이다. 그렇기에 피부로 와 닿는 농작물 배송이 더 크게 느껴지신 모양이었다.

문화충격을 적잖게 느끼신 듯 보였다.

“거봐. 진짜라규! 내 말 맞다규!”

신바람이 나서 콧대를 높이는 태희에게 어머니가 차분하게 말씀하셨다.

“그래. 우리 딸 아주 잘 났네. 아는 것도 많아서 안 먹어도 배부르겠다?”

“응? 아··· 아냐! 아니라규. 에헤헤~ 울 엄마가 차려준 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 그치?”

뺏길 뻔했던 밥그릇을 하해와 같은 아량으로 넘길 수 있었다.

역시 고 여사는 우리 집안 부동의 절대 권력자다.

“아무튼, 네가 만들었다는 게, 태희네 학교에까지 유명할 정도면 우리가 걱정하고 그럴 필요는 없겠구나.”

“당신도 참. 얘가 언제 우리 걱정이 필요하기나 했어요? 걱정할 시간에 걱정시키지 않을거나 고민해요.”

“흠. 흠. 그래도 내가 이 집 가장이고 애 아빤데··· 험.”

“당신도 배부른가 보죠?”

“···오늘 삼치가 유난히 더 맛있네. 그치 태희야?”

“응!”

반복해서 드는 생각이지만, 고 여사는 우리 집안 부동의 절대 권력자시다.

**

리얼 팜 테마파크는 본래 세종시의 부동산 차익을 생각하고 구상한 것이 시작이다. 적당히 구색만 맞추고 현상유지만 하더라도 훗날 크게 돈이 될 투자 상품인 셈!

이런 얄팍한 욕심으로 벌인 사업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리얼 팜의 오픈 분위기가 심상찮다.

【진짜 농장 리얼 팜, 동시접속자가 무려 22만!】

클로버 스팅의 신작, 리얼 팜이 출시 일주일 만에 동시접속자 22만 명을 달성했다. 이는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에서도 순위권 내에 들어갈 수 있는 동시접속자 숫자다.

베타 테스트 기간 동안 마의 숫자, 20만을 처음으로 넘긴 리얼 팜에 대해 전문가들은 ‘어린 연령부터 장년층, 여성과 남성 할 것 없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게임이기에 가능했다.’가 밝혔다.

또한, 게이머스 포럼이 그동안 노력한 컴퓨터의 보급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고 설명하고 있다.

정말이지 뜻밖의 대박이 아닐 수 없었다.

“분명히 올해 운수를 봤었으면 ‘끝장나게 대통!’이라고 떴을 거야. 얻어걸린 게 홈런이라니.”

가볍게 즐길 게임이 하나 필요해서 구색 맞추기로 기획한 게임이 리얼 팜인데 반응은 기대를 초월했고 그 결과, 테마파크 자체가 굉장한 대박이 나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대박이 나면 이익일까? 손해일까?’

아무래도 게임 관련 분야가 아니니 짧은 내 지식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이럴 때는 똑똑한 사람에게 물어보는 게 최고 아니겠는가.

플레지에부터 현실에 이르기까지 듬직하기 그지없는 그 이름 좌호법!

박경호 형에게 물어보자 시원하게 대답이 나왔다.

“무조건 이익입니다. 어차피 회장님이 구매하시려는 부동산은 수도권 근방이 아니라 유동인구가 적은 시골 아닙니까? 만약에 땅값이 폭등한다면 그냥 팔고 새로 지어도 될 일입니다.”

“그렇군요!”

여기서 능력자인 경호 형의 뛰어난 일 처리가 빛을 보였다. 그는 리얼 팜 테마파크의 토지 매입과 관련하여 내게 이야기했다.

“게임이 하도 대박이라고 그러기에 땅을 더 서둘러서 알아봤습니다. 회장님이 말씀하신 연기군에 아주 괜찮은 땅이 하나 있더군요.”

“어떤 땅입니까?”

“이번에 경매로 올라온 맹지입니다.”

‘경매? 맹지?’

해본 적은 없지만, 경매에 대해서는 미디어를 통해서 접한 적이 있었다. 또한, 이 경매로 땅이나 집을 아주 싸게 구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 덕분에 얼추 경매라는 것을 이해할 수는 있었다.

반면에 맹지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땅에 대해 나도 생판 모르는 정도는 아니다만.’

토지를 소유했다고 해서 모두 건물을 올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용도에 따라 분류해 둔 지목이 있어서 그 땅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가령 과수원이라는 지목이 설정된 땅에서는 과수원을 해야 한다. 만일 이를 이곳에 상가빌딩을 짓고자 한다면 해당 목적에 부합하는 지목으로 변경신청을 해야 한다.

그런데 맹지라는 지목은 아예 처음 들어본다. 이를 묻자 좌호법이 알려주었다.

“맹지는 도로가 이어져 있지 않아서 개발할 수 없도록 한 땅을 말하는 겁니다.”

개발을 할 수 없다는 건 가치가 떨어진다는 말과도 같다. 애당초 경매까지 올라오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좌호법은 이를 노려야 한다고 했다.

“이 땅은 오랜 시간 맹지로 있었고 쓸모없는 땅이라는 인식 때문에 결국 경매까지 올라온 땅입니다. 심지어 경매에 올라와서도 현재 5회 유찰이 되어 원래 가격의 17%만으로 구매할 수 있는 상황이지요.”

“아무리 저렴해도 개발을 할 수 없다는 소용이 없는 것 아닙니까?”

“바꿀 방법을 찾았습니다.”

리얼 팜이 잘나간다는 소식을 듣고 내가 흐뭇해하는 동안 그는 해당 지역의 지적도는 물론이고 답사까지 다녀왔다고 한다.

“해당 지역이 맹지가 된 이유는 토지와 도로 사이에 구거가 끼어 있기 때문이더군요.”

“구거?”

“하천이나 농사를 위한 수로를 말합니다.”

나는 모를 때는 착한 학생이 된다. 조용히 선생님의 말에 잘 귀 기울인다.

“확인해 보니 금강으로 이어지는 개천이 하나 있더군요. 더 이상 맹지가 아니게 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도로와 맹지 사이 하천 위로 다리를 하나 놓으면 됩니다.”

‘아하! 도로가 연결되지 않아서 맹지였으니 다리를 놓는 그 순간부터 맹지가 아니게 되는 거구나.’

게임 못잖게 현실에서도 마법을 부리는 좌호법이었다. 그리고 누구라도 혹할 만한 자료를 보여주었다.

“이번에 경매로 나온 땅에 대해 정리한 내용입니다.”

눈을 휘둥그레 뜨고 말았다.

[지목 : 맹지 / 감정가 : 1,226,784,000원 / 최저가 : 208,553,280원

토지면적 : 135,183제곱미터(40,892.8 평) / 보증금 : 208,553,28원]

대박이다.

“이게 정말입니까? 4만 평짜리 땅을 2억 대에 살 수 있다는 게?”

“그렇습니다.”

말도 안 된다. 원래 이 땅의 가치는 12억. 그것도 심지어 맹지일 때의 가치가 12억이다. 만약 지목 변경에 성공한다면 못해도 20억은 될 것이다.

그뿐이랴. 세종시가 발표되고 나면 못해도 평당 200만 원은 되리라 장담할 수 있다. 이를 적용하면 무려 800억인 된다!

‘그걸 고작 2억에 꿀꺽할 수 있다니. 이래서 부동산, 부동산 하는 거구나.’

이익이 너무나도 크기에 즐거운 만큼 걱정이 생겼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고 실제로 일을 주도한 사람이 눈앞에 있는 경호 형이다. 후일 서운함이 조금이라도 생겨서 관계가 틀어지지는 않을까 우려된다.

“이렇게 엄청난 땅이면 형이 몰래 사셨어도 됐잖아요?”

“제가 2억짜리 땅을요? 하하. 총군주 회장님. 그런 돈이 제게는 없습니다.”

“그래도 무리할 만한 곳이라고 봅니다.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정말로 땅값이 엄청나게 오를 테니까요. 형이 관심 있으시다면 양보할게요.”

800억은 물론 큰돈이다. 그러나 내게는 이와 흡사한 정보가 많고 훗날에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을 곁에 두는 편이 장기적으로 볼 때 이익이었다. 단편적인 지식을 실질적인 수입으로 만들어주는 능력자가 바로 좌호법 같은 이들이니 말이다.

“괜찮습니다. 저는 정말로 관심 없습니다.”

들리는 대답은 여전했다. 재차 권유한 결과 진심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했고 나는 미안함을 덜 수 있었다.

< 리얼 팜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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