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154화 (154/577)

< 긴급 공지 >

*

많은 연습은 실수를 확실하게 줄여준다. 그러나 없애지는 못한다. 그 경험이 첫 번째의 것이고 부푼 기대감과 그만큼의 부담감을 함께 가진 종류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얘네들 긴장한 모양이야.’

레이드 팀의 신규 멤버들이 이 상황에 해당했다. 개발진이 강화하고 정규 팀조차 어려움을 느껴서 전력을 강화했을 정도의 존재. 플레지 세계관의 최강 보스 중 하나가 지룡 안사락스다. 나는 저들의 발걸음이 무거워진 것을 느끼고 메시지를 보냈다.

- 구운몽 : 용이라고 해서 별다를 것은 없습니다. 지휘만 잘 따라주신다면 아주 손쉽게 사냥당해 쓰러진 지룡의 사체를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말 한마디로 심리적인 부담감을 덜어 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단지, 미약하게나마 긴장감을 완화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대인원은 안사락스의 안식처인 용의 협곡 던전 7층에 당도했다.

- 황성찬허좁 : 지금부터 각 조원들은 우리 조장의 지휘를 잘 따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 윤진수허좁 : 지금부터 각 조원들은 우리 조장의 지휘를 잘 따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두 친구의 말에 팀원들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답했다. 앞으로는 키보드를 두드리는 일 없이 모든 집중력을 다 사용하여 사냥에 전념할 것이다.

“가자.”

팀원을 아무리 보강해도 드래곤 레이드에서 불변하는 점이 있다. 탱킹은 오직 내 캐릭터만이 가능하다는 사실. 그 때문에 선두는 항상 내 차지다.

데스나이트로 변신한 내 캐릭터가 패기 넘치게 이동했다. 그리고 지진이 난 것과도 같은 거대한 진동이 들렸다.

모니터에 모습이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안사락스와의 거리가 가까워진다는 징조였다.

“나왔다.”

- 황성찬허좁 : 용 발견. 대기.

- 윤진수허좁 : 용 발견. 대기.

구운몽 캐릭터가 초록과 불굴이라는 2단 가속으로 신속하게 놈을 막아섰다.

‘중앙 광장과 사방으로 뻗은 통로. 이보다 좋은 위치는 없어.’

앞으로 우리가 안사락스를 사냥할 때 계속해서 애용하게 될 요충지역이라 확신하는 명당이다. 이곳에서 대치했다.

빛나는 칼이 굉장한 속도로 휘둘러지고 어지간한 유저는 일격에 사망시키는 발톱이 내게 날아들었다. 칼의 파공성과 으르렁거리는 소음이 미친 듯이 울렸다.

“어그로 획득.”

- 황성찬허좁 : 가스트 밀착!

- 윤진수허좁 : 가스트 밀착!

처음부터 끝까지 나보다 강력한 딜링을 할 수 있는 유저는 이곳에 없다. 즉, 내가 어그로 획득을 위해 진득하게 싸우지 않아도 된다. 그 때문에 ‘어그로 획득’이라는 말의 의미는 곧 ‘자리를 안정적으로 잡았다’ 와도 같았다.

여기서부터 어려움이 싹 텄다.

- 쿠아아아!

작렬하는 브레스에 느릿느릿 전진하던 가스트들이 몰살을 당했다.

“이놈이 오늘따라 유난히 가스를 많이 뱉어 대는데?”

“영자가 치사하게 손 본 건가?”

“괜찮아. 지금이야 충분히 혼자서 다 할 수 있다.”

익숙한 어려움이다. 나는 안사락스의 맹공을 홀로 버티며 가스트들이 부활하고 재차 전진하기를 기다렸다. 이를 보며 진수가 혀를 찼다.

“아··· 진짜 괴물은 이 녀석인데. 나도 구운몽을 돌리는데 왠지 이 자식이 할 때만큼의 포스가 안 나온다니까.”

“말해 뭐하냐? 어차피 여기 있는 사람은 물론이고 다른 서버 애들도 다 알아.”

잡담을 주고받는 이유는 아직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위협적인 페이즈가 나오기 전까지 베테랑인 친구들을 긴장시키는 일은 단연코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가스트의 독이 안사락스에게 걸렸다. 독이 묻었다는 한 마디에 진수성찬은 언제 그랬냐는 듯 빠르게 타자를 두드렸다.

- 황성찬허좁 : 가스트 성공! 격수 돌격!

- 윤진수허좁 : 가스트 성공! 격수 돌격!

드디어 대기하던 나이트들이 안사락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거대한 드래곤답게 때릴 곳도 넘친다. 머리뿐 아니라 몸통에 이르기까지 구석구석 제대로 칼집을 내주기 시작했다.

“좋아. 나이트 위치 안정적이고.”

- 황성찬허좁 : 1.5-

- 윤진수허좁 : 1.5-

다음은 신규 멤버들이 대거 포함된 엘프들과 매지션의 차례.

‘제발 실수하지 말고 자리 좀 잘 잡아라.’

성에서의 시뮬레이션과는 다른 점은 맵 구성이 다르다는 것이다.

안사락스의 레어는 넓어졌어도 탁 트인 외성 지역만은 못하다. 공간의 한계 탓에 꼬리치기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고 이는 즉, ‘엘프는 모두가 회복 마법을 받을 수 있는 위치’를 잡아야만 하며 이 포인트가 ‘매지션의 입장에서도 안전해야만 한다.’는 어려움이 생겼다.

“태식아. 이거 범이 쪽 라인이 불안한데?”

다른 곳에 비교해 통로가 구불구불하지 못한 곳.

그 탓에 매지션이 넓은 범위의 공격에는 피격이 될 위치였다.

‘문제는 딱히 이동할 만한 곳도 없다는 거지.’

신입이 자리를 잘못 잡은 것이 아니다. 그냥 더 이상 숨을만한 장소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 사실은 어쩌면 신입이 자리를 잘못 잡은 것보다 더 큰 문제라고 할 수도 있었다. 실수는 연습해서 바로 잡을 수 있지만 이건 우리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니 말이다.

“맵 때문이니까 그냥 트라이 하자.”

“알았음!”

그렇게 대화를 하던 중, 내 체력이 뭉텅이씩 날아가기 시작했다.

“다음 페이즈다.”

“오케이.”

- 황성찬허좁 : 페이즈 2! 매지션 회복 대기!

- 윤진수허좁 : 페이즈 2! 매지션 회복 대기!

진수와 성찬이에게 페이즈2 까지는 무난하기 그지없었다. 중요하게 오더를 내릴 일이 없는 편이라서 탱킹을 해야 하는 구운몽 캐릭터의 체력을 관리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그 때문에 변화하는 생명력을 보며 분석하기도 했다.

“이건 뭐랄까? 페이즈 2에서 갑자기 물리 공격력이 강해지는데 페이즈 3에 들어가면 반대로 평타가 약해지고 용언이 강해지는 것 같아.”

“느낌인지 아닌지는 체크해보자고.”

“오키오키. 딜량 계산해둬서 나쁠 건 없으니까.”

한편, 한가로운 우리와 다르게 ‘구도자의길’은 페이즈 2부터가 본격적으로 바빠지는 타이밍이었다.

- 구도자의길 : A! B 대기!

‘사람들’ 길드는 한 개의 단일 길드 개념을 가지고 있으나 게임 시스템상으로는 여러 개의 길드가 연합을 취한 형태였다. 그 탓에 길드원들의 체력을 회복시켜주는 ‘힐올’ 마법은 사용이 불가하다.

그 때문에 최대한 마나의 소모를 아끼기 위해 매지션들은 돌아가며 회복 마법을 사용하고 MP를 회복하는 시간을 제때 맞춰야 했다.

‘페이즈3에 돌입하면 안사락스는 땅속으로 숨지. 그때 MP를 재빨리 회복해서 돌아올 수 있는 매지션들의 마나만 소모하는 작전.’

정확하게 움직이기 좋은 위치의 매지션들만 골라서 MP를 소모하고 막힘없이 회전한다. 이런 판단력은 구도자의길을 따라갈 사람이 없었기에, 전적으로 맡긴 것이다.

그즈음이었다.

- 콰드드드···

한창 싸우던 안사락스가 땅속으로 숨고 말았다.

“다음!”

- 황성찬허좁 : 매지션들 버프 다시 돌려주시고! 마나를 많이 소모한 매지션들은 엠 회복하고 돌아와 주세요!

- 윤진수허좁 : 지금부터가 중요한 시기입니다! 안사락스가 더욱 화려한 공격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마 지금 MP를 회복하러 간 매지션들이 복귀하기 전에 안사락스가 먼저 나올 겁니다. 최대한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도록 2인분을 해주셔야 합니다!

침묵 속에서 바싹 긴장한 팀원들의 대답이 느껴졌다.

이윽고 땅 속에 숨은 지룡이 뛰쳐나올 준비를 했다.

쿠릉-. 쿠르릉-.

처음 등장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진동.

한창 새로 재정비를 하고난 뒤에야 안사락스가 여유롭게 땅 위로 다시 올라왔다.

- 황성찬허좁 : 지금부터입니다!

- 윤진수허좁 : 긴장하세요!

침묵과 마비를 비롯한 독과 브레스를 각오한 그때, 보스 몬스터가 용언을 사용했다.

- 안사락스 : 더럽고 미천한 놈들!

- 안사락스 : 감히 어디서 고개를 빳빳이 드느냐! 고개를 조아리거라!

녹색의 가스가 해당 범위에 노출된 팀원들 전부의 버프를 앗아갔다.

“아. 이 새끼 이거. 매번 버로우가 끝나자마자 캔슬 거는 거야?”

“이러면 중간에 버프를 다시 걸 이유가 없는데.”

3차 레이드 때부터는 어떻게든 조금씩 버프를 추가하는 방법을 구상해야 할 듯하다.

『혀가 굳어 말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거. 겁나 치사한 용새끼네.”

『다시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진수성찬이 ‘큐어’라고 채팅을 하면서 안사락스를 질겅질겅 씹듯 욕했다. 그러면서도 착실히 내게 큐어와 버프를 걸어주고 있는 것을 보면 이 둘은 정말 베테랑이다.

“다른 건 다 괜찮은데, 변신만큼은 안 풀렸으면 좋겠다. 너무 귀찮아.”

이를 들은 녀석들이 핀잔을 주었다.

“인마. 그냥 캔슬은 그 자체가 짜증 나는 거야.”

“너는 그나마 양반이라고. 다른 건 우리가 다 걸어주잖냐.”

“어. 그래.”

어차피 지금 진수성찬이 걸어줄 수 있는 버프라고는 민첩과 힘을 올려주는 것뿐이다. 이 정도까지 생색낼 정도는 아니라 하겠다. 그런데도 수긍한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고생하는 건 맞잖아.’

더 힘들고 덜 힘든 차이를 가지고 따지는 건 정말 유치하다.

- 안사락스 : 어리석고 나약한 것들. 감히 신성한 나의 안식처에 침범한 너희에게 공포가 무엇인지 알려주마!

“왔다!”

- 황성찬허좁 : 3

- 윤진수허좁 : 3

마비 독은 마비가 되기 전에는 독이기 때문에 큐어 포이즌으로 풀 수 있지만, 중독된 이후에는 리무브 커스를 통해서 풀어내야 한다. 이 말은 신속하게 대처하면 해독 포션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의미다.

『안사락스의 독에 중독되었습니다. 몸이 빠르게 굳습니다.』

『엔트의 가지[1]을(를) 사용합니다. 몸에서 독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낍니다.』

발 빠른 조치!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100%로 해독 성공이다.

“오~ 나이트들 엄청 빨라.”

“느낌이 좋다!”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하던 진수와 성찬이 감탄했다. 왠지 이번에 사냥에 성공할 것 같은 좋은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안사락스의 브레스로 초록색이 되어버린 던전 내에서 전투를 지속했다.

작렬하는 안사락스의 내려찍기.

- 황성찬허좁 : !

- 윤진수허좁 : !

화면 전체의 바닥이 전부 갈라지는 이펙트와 함께 공격 범위 안의 모든 멤버가 빈사상태에 이르렀다.

‘애매해서 신경 쓰였었는데 의외로 쟤가 멀쩡하네?’

처음에는 위태위태한 포인트에 자리를 잡았던 매지션이 이번 공격에는 기민하게 대응했다. 안사락스의 범위 밖으로 이동해서 공격을 피했고 그렇게 살아남아 엘프들에게 회복 마법을 걸어주고 있었다.

다들 제대로 집중해서 하는 것이다. 아울러 한 가지를 더 알았다.

“이거 확실하다. 페이즈 3는 페이즈 2보다 평타가 약해.”

“그래?”

“내 체력 보면 확실하잖아.”

페이즈 2에서는 간간이 매지션의 힐을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페이즈 3에 들어서면서부터 매지션의 회복마법이 필요 없는 회복능력을 보여준다. 체크해두면 추후 마나 소모량을 아낄 수 있을 것이다.

“괴물 같은 놈.”

“또 뭔 소리야?”

“다른 애들은 평타는 한 대도 맞을 일 없이 범위만으로도 죽어 나가는데 너는 혼자 물약으로 커버가 되냐?”

“억울하면 나처럼 강해지던가.”

“아! 억울하다! 나는 억울하다!”

그즈음 안사락스가 소환 패턴을 시전했다.

- [외치기] 대지의 장로 : 용의 안식을 방해하는 자에게 죽음을!

- [외치기] 대지의 장로 : 용의 안식을 방해하는 자에게 죽음을!

- [외치기] 대지의 장로 : 용의 안식을 방해하는 자에게 죽음을!

- [외치기] 대지의 장로 : 용의 안식을 방해하는 자에게 죽음을!

이럽션을 난사하던 중간 보스급의 몬스터들.

하지만 생각보다 허술했던 녀석들이다. 가볍게 밟아주기로 한다. 그때는 혹시 몰라서 나이트를 붙였었지만 이번에는 별 볼 일 없다는 것을 아니 엘프로 삭제할 요량이다.

- 황성찬허좁 : 엘프들 일점사로 장로 처리!

- 윤진수허좁 : 이후 전원 줄 대기해 주세요!

- 황성찬허좁 : 매지션들 위치 잘 잡으셔야 합니다!

- 윤진수허좁 : 한 방에 훅 갈 수 있습니다!

제대로 된 일점사로 깔끔하게 정리를 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을 때였다.

“이런 미친!”

“이 새끼들이 헤이를 쓴다!”

“차라리 이럽션을 쓰라고!”

공격마법이나 정직하게 쓸 줄 알았던 녀석들이 동시에 안사락스를 향해 마법을 걸고 자신들끼리도 사용하는 것이 아닌가.

가속 마법을 받은 다섯 마리의 몬스터들이 말 그대로 미쳐서 날뛰었다. 체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장로들은 곧 처리했지만, 문제는 안사락스다.

- 안사락스 : 하찮은 것들에게 죽음이 무엇인지 알려주마!

『안사락스의 독에 중독되었습니다. 몸이 빠르게 굳습니다.』

아뿔싸. 덩치도 큰 녀석이 배는 빨라져서 움직이는 바람에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젠장! 마비!”

- 황성찬허좁 : 4!

- 윤진수허좁 : 4!

『마비에서 풀려나는 것을 느낍니다. 다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대지의 장로에게 시선을 빼앗겼던 상황이기에 많은 멤버들이 해독의 타이밍을 놓쳤다.

“빨리! 빨리!”

나는 이미 풀렸지만 빠르게 해독하지 못하면 모두가 전멸할 위기.

‘젠장. 지난 트라이와 같은 구간에서 또 실패하는 건가?’

암담하다. 인원까지 늘려서 왔는데, 딱 하나가 꼬여서 이 지경이 돼버릴 줄이야!

바로 그때 구원의 손길이 내려왔다.

“나이스 타이밍!”

“오래 걸렸지만, 완전 환영한다!”

마나를 회복하러 갔던 매지션들이 복귀한 것이다.

- 황성찬허좁 : !

- 윤진수허좁 : !

축복처럼 리무브 마법이 우리에게 구원을 내려주었다. 그 결과 매지션들은 멤버들에게 걸린 마비를 해결했고 안사락스가 발작을 일으킬 때쯤에는 신속하게 이탈하여 놈의 공격 범위에서 대부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지룡의 발작 패턴이 레어를 진동시켰다.

“와아. 이건 진짜 다시 봐도 포스 넘치네.”

“낑겼으면 싹 다 죽어버리는 거라고.”

친구들과 공감하며 나는 생각했다.

‘우리도 이런 보스를 꼭 만들어야지.’

보스 몬스터라는 건 사냥하는 쫄깃함도 중요하지만 이런 분위기 연출 역시 필수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개발 중인 몬스터 프레데터스에 이 안사락스 같은 보스 몬스터들을 넣어야겠다.

그뿐만 아니라 한발 더 나아가서 비교도 안 되는 포스를 보여주고야 말 것이다.

< 긴급 공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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