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긴급 공지 >
페이즈 3에 들어가고부터는 팀원들 간의 호흡이 더욱 중요해졌다.
- 안사락스 : 어리석고 나약한 것들. 감히 신성한 나의 안식처에 침범한 너희에게 공포가 무엇인지 알려주마!
『안사락스의 독에 중독되었습니다. 몸이 빠르게 굳습니다.』
초 단위로 캐릭터가 죽기 십상인 마비의 독.
“리무···”
『마비에서 풀려나는 것을 느낍니다. 다시 움직일 수 있습니다.』
“베리 굿!”
메시지를 전달하라는 내 지시가 채 끝나기도 전에 발 빠른 반응을 보였다. 용 사냥으로는 잔뼈가 굵은 플레지 유일의 레이드 팀답게 한 번 경험한 패턴에는 노련하게 대처한 것이다. 그렇게 매우 위험하지만 제법 견딜만한 시간이 지나갔다.
다음 페이즈가 열렸다.
- [외치기] 대지의 장로 : 용의 안식을 방해하는 자에게 죽음을!
- [외치기] 대지의 장로 : 용의 안식을 방해하는 자에게 죽음을!
- [외치기] 대지의 장로 : 용의 안식을 방해하는 자에게 죽음을!
- [외치기] 대지의 장로 : 용의 안식을 방해하는 자에게 죽음을!
파푸니르와 마찬가지로 안사락스도 소환패턴을 사용.
그것도 중간 보스 급의 몬스터가 네 마리나 등장했다. 그와 동시에 단일 최강의 마법인 이럽션을 난사했다.
‘대지의 장로. 이름이 달라.’
여기서 내가 주목한 점은 용의 협곡에서 본래 나타나는 흑장로가 아닌 새로운 종류라는 점이었다. 비록 등장 멘트는 똑같았지만 이름이 다른 만큼 무언가 다른 점이 있을 것이다.
“나이트들이 소환 몹 전담. 엘프들은 안사락스랑 거리를 둬.”
“오케!”
이때는 명확하게 타깃을 곧바로 지정해줘야 한다. 그래야 우왕좌왕 하지 않고 화력이 쓸데없이 집중되어 낭비되는 일이 없다.
- 황성찬허좁 : 장로는 나이트가 잡을게요! 엘프들은 안사락스와 거리를 조금 더 벌려 주세요!
정석대로라면 근접 캐릭터인 나이트보다 원거리 캐릭터인 엘프들로 장로를 잡는 편이 낫다. 하지만 혹시 모를 패턴에 대비하기 위해서 변화를 주었다.
엘프가 버티지 못하는 불시의 공격이라도 나이트는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하게도 대지의 장로들은 체력이 높지 않았던 것 같다. 이럽션을 난사하는 위용과는 달리 어렵지 않게 옷자락만 남기며 죽어나갔다.
개발진이 준비해둔 한 수가 바로 그때 나타났다.
- 안사락스 : 하찮은 것들에게 죽음이 무엇인지 알려주마!
『안사락스의 독에 중독되었습니다. 몸이 빠르게 굳습니다.』
페이즈 3의 마비 독!
그러나 전방의 나이트들만 당한 수준을 넘어섰다. 지형지물을 통과하지는 않았지만 무려 화면 전체에 다다랐고 그 결과 매지션 4명을 제외한 전원이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야! 너부터 푼다!”
『마비에서 풀려나는 것을 느낍니다. 다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우선순위를 마법사들이 연신 해독 주문을 사용했다.
하지만 채 수습하기 전에 보스 몬스터의 연계기가 작렬하고 만다.
- 안사락스 : 쿠아아아악!
괴성과 함께 맵 전체가 지진이라도 일어난 양 흔들렸다. 천장의 종유석이 떨어지며 엄청난 속도로 생명력이 떨어졌다.
‘역시 발작 패턴이네. 젠장, 실패다!’
- 뽀작!
- 크억!
- 어억!
변신상태의 캐릭터들이 부서지고 비명이 울렸다. 뼛조각과 질펀하게 피를 흘리는 케첩 쇼를 정말 오래간만에 만들었다. 결국 생존한 이들은 나이트이며 최고의 레벨과 장비를 보유한 구운몽, 지옥검, 검. 이렇게 3명 뿐이다.
회복은커녕 마비를 풀기에도 부족했던 시간 덕분에 매지션들까지 공격 범위에 들어간 것이 치명적었다.
- 황성찬허좁 : 마을에서 정비 후에 회의할게요.
- 범 : 네. ㅜㅜ
- 지옥활 : 으아··· 탐색전이기는 해도 잡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 악마혈 : 4페이즈면 끝마무리까지 다 본 건데···!
- 구도자의길 : 마지막 패턴이 문제입니다. 그것만 해결하면 충분히 할 만 해요.
아쉬움의 한 마디를 저마다 레이드 팀은 마을로 복귀했다. 그렇게 우리 팀은 쓰라린 1패를 안고 치열하게 회의하며 오늘을 마감했다. 하지만 난공불락의 암담함보다는 다음번에는 기필코 잡아내고야 말겠다는 각오와 희망을 모두가 장담할 수 있었다.
파푸니르 때는 처음 탐색전에서 마지막 페이즈까지 가보지도 못했는데 이번에는 골인 직전까지 갔었기 때문이다.
- 구운몽 : 매지션의 숫자를 보강해야겠습니다.
- 구도자의길 : 저는 전체적인 전력을 보강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안사락스가 이 정도라면 파푸니르는 더욱 강력해졌을 테니 말이지요.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서나 미리 준비하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 구운몽 : 입이 무거운 지원자들을 확보해야 할 텐데요. 흔치 않을 것 같습니다만···
- 구도자의길 : 드래곤 레이드 팀의 지원자는 언제나 넘치는 상황입니다.
- 좌호법 : 총군주님. 명예와 업적을 모두 이루는 일입니다. 누구도 거절하지 않을 겁니다.
게임 내에서의 표현이니 무관심한 이들이 볼 때는 마냥 웃기게만 보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플레지에 푹 빠진 유저들에게 이곳은 살아있는 사회이자 하나의 세상이라고 보아도 과하지 않았다. 그런 곳에서 굳게 닫혀 있던 최상급의 대열에 합류하는 일인 것이다.
개인 스케줄, 레벨 다운, 비밀 엄수 등의 약속들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우리들 사이에는 넘칠 정도다.
- 구운몽 : 구도자의길님. 특히 추천할 만한 매지션이 있습니까?
- 구도자의 길 : 물론입니다, 총군주님. 우선은 전력 보강에 필요한 여덟 명부터 보고하겠습니다.
각각의 이름을 듣고 팀원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그리고 문제 없이 8명을 모두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 구운몽 : 나이트와 엘프 중에 추천할 사람은 없습니까?
- 지옥검 : 없을 리가 없죠. 추천할 사람은 무진장 넘칩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전 서버 통합의 최강 길드가 우리 아니겠습니까.
- 분노의활질 : 총군주님. 어떤 식으로 추천해야 할지, 어떻게 추려야 할지만 정해주시지요.
자신감과 자부심이 넘치는 말이었다. 결국 장비보다는 레벨과 신뢰도. 이 두 가지를 중점적으로 판단하여 그간 마주했던 믿음직한 유저들을 서로 추천하고 수렴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결과 레이드 팀원은 무려 30명이라는 비대한 규모로 확장되고 말았다.
우리는 여기까지를 마치고 게임을 마무리했다.
패턴을 파악했고 전력을 보강한 마당이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도전하지 않았다. 한 방, 한 방이 즉사기인 강력한 보스 몬스터인 만큼 공략법을 반드시 숙지해야 한다. 그 때문에 새로운 팀원들에게 용언의 종류와 대응법을 알려주고 단체 훈련으로 호흡을 맞췄다.
훈련 장소는 기단 성의 외성이다.
보안이 철저한 내성이 아닌 다소 취약한 외성에서 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30명이라는 숫자를 수용하기에 내성은 좁아서다.
“인원이 늘어난 만큼 지휘는 진수성찬, 너희 둘 다 하는 거로 가자.”
“오케바리.”
“빨랑 끝내고 때려잡자고.”
“오냐. 그럼 모의전 스타트 할게. 안사락스 발견!”
숙련된 조교들이 눈부신 속도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 황성찬허좁 : 용 발견. 대기.
- 윤진수허좁 : 용 발견. 대기.
우리가 시뮬레이션 하고 있는 안사락스는 바로 수호탑이다. 이를 대상으로 두고 정확히 1열 혹은 정열을 제대로 한 캐릭터들이 일사분란하게 자리를 잡았다.
안사락스의 레어에서는 던전 특성상 다소 오차가 생길 테지만 팀원들은 그 정도쯤은 유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어그로 획득.”
- 황성찬허좁 : 가스트 밀착!
- 윤진수허좁 : 가스트 밀착!
새로 들어온 멤버들은 거의 매지션이 아니면 엘프다.
가스트를 테이밍 할 수 있는 인원이 더욱 많아졌다는 의미다. 하지만 가스트는 기존의 엘프들만 활용하는 것으로 규칙을 정해두었다. 첫 레이드이기에 신규 팀원들이 긴장해서 실수할 수 확률은 있다. 이를 줄이고자 그들에게는 가능한 한 적은 임무를 맡기는 것이다.
“이쯤 되면 가스트 독이 통했겠지?”
“이것보다는 보통 더 걸리지 않을까?”
나와 진수성찬이 그냥 머리로 대충 생각해서 하는 시뮬레이션이다 보니 이런 부분까지는 디테일하게 시간을 잡을 수 없었다. 게다가 랜덤성으로 걸리는 독이 언제 걸릴 지는 100번을 해봐도 모른다.
“이쯤이면 된 셈 치자.”
“그래. 걸린 거로 치고 넘어갈게.”
“고고!”
적당할 때 넘어가기로 했다.
- 황성찬허좁 : 가스트 성공! 격수 돌격!
- 윤진수허좁 : 가스트 성공! 격수 돌격!
격수 돌격이라는 명령과 동시에 격수들이 무섭게 수호탑으로 돌격한다. 여기서 심영탁이 삐끗했다.
“치명타. 자리 안 좋다.”
치명타가 현재 잡은 위치는 아슬아슬하게 걸치는 곳이었다. 안사락스가 페이즈 3에 사용하는 치명적인 연계기가 마비 독, 점프 공격이다. 이 중에서 마비 독 범위에 당하기 딱 좋은 장소다.
- 윤진수허좁 : 치명타. 조금 아래로.
- 치명타 : 네!
빠릿빠릿한 대답이지만 성찬이는 외려 불호령을 내렸다.
- 윤진수허좁 : 야! 시뮬레이션이라도 진짜처럼 해! 레이드 중에 그런 채팅 쓸 여유 있을 것 같아? 대답 하지 말고 자리만 잡아!
‘괜히 내가 머쓱하네.’
이 말을 들으니 오래간만에 군대 생각이 났다. 군대 구호 중에 ‘훈련은 전투다. 각개 전투.’ 가 있다. 훈련을 진짜처럼 해야 실제 전투에서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아무리 진지해도 우리가 하는 건 게임 아니겠는가.
성찬이에게 슬쩍 말했다.
“살살해. 게임이잖아.”
“쟤를 위해서야. 영탁이가 51렙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그런데 지금 죽으면 그 경험치가 얼마나 아깝겠냐? 조금이라도 확실하게 해서 그런 아까운 일이 없도록 해야 돼.”
“맞아 맞아. 우리도 어제 죽어서 렙따 했잖냐. 아오 속 쓰려!”
진수성찬은 최근에 레벨 50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안사락스 레이드에서의 사망 페널티로 인해서 다시 49로 다운이 된 상황. 누구보다 레벨 다운에 대한 감정이 격해져 있는 상태였기에 치명타의 경험치를 걱정해주고 있는 것이다.
만약 도플갱어 레벨 업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면 어제 죽은 것을 가지고 엄청 징징 댔을 게 눈에 선하다.
‘순서를 따지자면 도플갱어 사냥 덕분에 50레벨이나마 된 거다만··· 그런건 저 자식들 머릿속에 없을 테지.’
괜찮다. 짱짱 센 구운몽 캐릭터로 약올려주면 되니 말이다.
- 황성찬허좁 : 격수들 자리 잡았습니다. 엘프들 자리 잡고, 매지션들은 페이즈 2에 들어가기 전에까지 이동해주세요. 위치는 안사락스의 공격은 피할 수 있고 자신이 담당하는 엘프들의 체력을 회복할 수 있는 곳입니다.
- 윤진수허좁 : 격수들 자리 잡았습니다. 엘프들 자리 잡아 주시고, 매지션들은 페이즈 2에 들어가기 전에 안사락스 공격은 피할 수 있고, 자신이 담당하는 엘프들의 체력은 회복할 수 있는 위치에 자리를 잡아주세요!
현재는 훈련이기에 길고 상세하게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진짜 레이드 때는 이런 여유가 없으니 충분히 익숙해지면 ‘페이즈 1.5~’ 라는 작전구호로 대신할 예정이었다.
안사락스. 나아가 개발진의 도발을 뭉개주겠다는 우리의 각오!
이 모두를 담아 연습을 이어나갔다.
- 황성찬허좁 : 매지션들이 자리를 잘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엘프들 역시 자신을 담당하는 매지션이 안전하게 힐을 할 수 있는 위치를 파악하고 자리를 잡아주시는 게 중요합니다.
알려주고 테스트한다. 이를 거듭 반복하자 진수의 설명을 초보 매지션과 엘프들이 이해했고 새로운 단계로 돌입했다.
“페이즈 2.”
거듭 생각하는 것이지만 다른 길드가 레이드를 실패하는 이유 중에는 우리처럼 연습하지 않는 것도 한 몫 할 것이다. 예전에 금메달을 딴 국가대표의 말이 크게 와 닿은 적이 있다. ‘나보다 땀을 더 흘렸다면 이 메달을 가져가도 좋습니다.’는 것이다.
비록 게임이지만 함부로 무시하면 섭섭하다.
우리는 이렇게 진지하다!
- 황성찬허좁 : 페이즈2 들어갔습니다. 매지션은 꼬리 공격에 당한 엘프들 지원해주세요.
- 윤진수허좁 : 페이즈2 들어갔습니다. 매지션은 꼬리 공격에 당한 엘프들 지원해주세요.
숙지한 대로 ‘착착착’ 자리를 잡았다. 실전에도 이렇게만 해주면 더할나위 없을 좋을 정도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시작이다.
“페이즈 3!”
지금까지는 새로운 매지션들과 엘프들이 중심이 되는 훈련이었다면 이제는 기존의 매지션들을 위한 훈련 요소가 더 크다.
“마비!”
- 황성찬허좁 : 3!
- 윤진수허좁 : 3!
‘3’은 3번째 페이즈에서 보이는 마비 패턴을 나타나는 작전 구호다.
진수와 성찬은 신호와 함께 리무브를 나이트들에게 사용했고 구도자의길과 좌호법도 바쁘게 담당하고 있는 나이트들에게 마법을 난사했다.
- 황성찬허좁 : !
- 윤진수허좁 : !
‘!’이 표시는 해당 패턴에서 해야 하는 행위를 모두 했음을 알리고 자신의 조원들이 그 다음 이어질 안사락스의 공격에서 회피하라는 작전구호다.
이런 방식으로 몇 번의 반복을 통해 레이드 팀원들은 사냥 방식에 익숙해졌다. 지금의 이 수고가 내일 막대한 경험치와 시간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해줄 것이다. 그렇게 훈련을 이어갔고 하루의 시간을 더 보내자 합격점을 줄 수준에 이르렀다.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탠다.
『레벨 업!』
52레벨이었던 구운몽을 53레벨로 업그레이드 완료.
“준비는 끝났다.”
“가자.”
“빠샤!”
안사락스 레이드.
재도전이다.
< 긴급 공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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