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151화 (151/577)

< 긴급 공지 >

좋은사람들 길드에서 골리앗은 총 군주고 타이탄 같은 군주는 일반 군주다. 나는 쉽게 ‘그냥 다 군주’ 같은 개념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콕 짚어서 지적하니 다르게 해석됐다.

“호칭 하나로 직원들은 더욱 큰 자부심을 가지고 업무에 임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호칭에서 오는 혼란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회장으로 오르시지요.”

일리가 있는 말이다. 앞으로 점점 더 성장할 회사를 생각하면 회장이라는 직함을 제대로 가지는 것이 맞았다. 나이가 갑자기 30년은 더 먹은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어쩌랴. 필요한 일이라는 데 말이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죠.”

그리고 나는 현실판 좌호법의 출중한 능력을 실감했다.

“이제 업무와 상관없는 이야기는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저희가 준비한 투자 포트폴리오를 브리핑하도록 하겠습니다. 자료 3페이지를 펼쳐주시기 바랍니다.”

‘업계별로 일 좋아하는 능력자가 넘친다니까. 이 형도 괴물이야.’

그는 영화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분야에서 변호사 생활을 해왔음에도 고작 일주일 만에 자신이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 것인지 방향을 완벽하게 잡았다.

“여기 김형빈 사원이 정리한 자료에 의하면, 영화 제작은 ‘도시로’, ‘정의의 적’, ‘가내의 영광’, ‘연애수첩’, ‘삼일절 특사’, ‘클래지’. 마지막으로 ‘내 사랑 사수궐기 대회’의 순서로 제작될 예정입니다.”

‘무엇에 투자하고 싶다.’라는 그냥 단순한 구상만을 가지고 있던 내 생각을 김형빈과 박경호라는 두 사람이 현실에 맞게 제대로 재구성했다. 여기서 좌호법에게 가혹하게 굴려진 김형빈의 땀과 눈물을 나는 알지만 모르는 것으로 넘어갔다.

‘우리 회사에도 그런 타입 많아. 능력자한테 굴려지면 성장하더라고.’

파이팅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영화의 제작과 개봉. 그리고 투자 시기를 제대로 짚고 가야만 총군주 회장님이 원하시는 투자를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총군주 좀 빼줘.’

“저희가 투자할 영화가 1월, 3월, 5월, 7월, 9월, 11월 같은 식으로 알맞게 나뉘면 또 모르겠습니다만 대부분 성수기를 노려서 개봉을 계획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어렴풋이 아는 이야기가 나왔다.

“하긴, 영화도 성수기가 있었지요. 그게 언제인가요?”

이 물음에는 형빈이가 대답했다.

“일반적으로 영화의 성수기는 방학 기간이라 할 수 있는 12월부터 2월, 가정의 달인 5월, 여름방학 시즌인 7월과 8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비성수기에 해당하는 9월과 10월 중에서 추석과 그 전주는 성수기로 통합니다.”

이런 시기가 중요한 점은 내가 연간 50억을 이야기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도시로’의 흥행 이후로 잡았기 때문이다. ‘도시로’의 10억 이외에 지금 당장 내가 가진 여윳돈은 12억이다.

즉, 수익금을 시작으로 제대로 된 영화 투자의 사이클이 돌아간다.

“저 영화들이 언제 제작을 할 것이냐, 언제 개봉을 할 것이냐, 가 중요하겠군요.”

“그렇습니다.”

“투자를 하고 난 뒤에 정산은 언제쯤 되죠?”

좌호법에게 물어보듯이 했지만 사실 이 부분 역시도 형빈의 분야다. 당연히 우리 둘 다 그의 입만 쳐다보았고 곧 막힘없는 대답이 들렸다.

“통상적으로 영화에 투자하고 정산을 받기까지의 기간을 약 9개월에서 12개월로 잡고 투자합니다. 영화 제작 기간 3개월, 마케팅 3개월. 그리고 개봉 후에 3개월로 최소 9개월이 지난 뒤 정산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일단 영화 한 편의 정산을 받아야만 그다음 투자가 가능하다는 거네.”

“그렇습니다.”

확실히 전문가를 옆에 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우리가 가장 먼저 투자를 해야 하는 영화가 뭐지?”

“일단 가장 먼저 개봉하는 영화인 ‘정의의 적’이 될 것 같습니다. 현재 예상되는 개봉 시기는 내년 초거든요.”

“내년 초?”

지금이 2001년 9월이다. 그런데 이제 제작을 할 영화가 내년 초에 개봉한다니 그게 가능한 일일까 하는 의문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여기서 형빈이가 외부에서는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공개적으로 드러난 사실은 내년 봄에 개봉할 것처럼 하고 있는데, 내부적으로는 아주 빠르게 촬영을 마치고 내년 설날 전에 개봉해서 특수를 노리려 하는 것 같았습니다.”

“오호. 그렇다면 투자가 빠르게 이루어져야겠구나.”

“네. 아마 지금 영화 투자를 받기 위한 계좌가 개설되어 있을 겁니다.”

아주 좋은 브리핑이다.

“그 다음에 개봉하는 영화는 언제쯤으로 보고 있지?”

“현재 두 번째 개봉은 ‘도시로’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제가 터보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정확한 개봉 시기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영화 특성상 성수기에 경쟁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판단을 했었거든요. 그러니 이르면 3월 중순에서 4월에 개봉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맞아. 그러고 보니 그 영화가 봄에 나왔었어.’

듣고 나니 생각났다. 정확한 시기는 잘 모르지만, 아무튼 한창 월드컵을 준비하고 있던 시즌에 등장했었으니 봄에 개봉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짜식. 점점 더 괜찮은 녀석이네. 생각보다 영화판의 흐름을 보는 눈이 좋아.’

관련 지식이 있지만, 초짜라고 생각했던 것에서 김형빈에 대한 평가를 조금 수정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점수가 잘 쌓이면 능력껏 대우해주는 차원에서 월급도 올려줄 예정이다.

나는 다시금 시선을 김형빈에서 좌호법으로 옮기며 말했다.

“투자를 진행한 영화가 그나마 두 번째로 개봉한다는 점을 다행이라고 봐야겠어. 그다음 영화는요?”

“아마도 연애수첩이 될 것 같습니다. 멜로 영화는 많은 관객이 찾는 편이 아니라서 비수기를 노리고 있다고 봐야 할 겁니다.”

다행히 이렇게 되면 초에 개봉한다는 ‘정의의 적’ 배당금을 정산받은 뒤, 이후 영화에 투자하고 또 ‘도시로’의 배당금으로 추가 투자를 할 수 있게 될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김형빈이 경각심을 주었다.

“일단 현재 가장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은 ‘우리가 과연 투자를 할 수 있느냐’입니다.”

“응?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충무로의 가장 흔한 우스개 중 하나가 뭔 줄 아십니까? 바로 ‘투자금은 넘쳐나는데 영화가 없다.’입니다.”

“투자할 사람은 많은데 투자할 만한 영화가 없다는 의미구나.”

“맞습니다.”

내 말에 녀석이 바로 수긍했고 좌호법이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나머지 영화들은 크게 상관이 없습니다. 단, 저 세 개의 영화는 ‘투자금이 몰릴 영화들’입니다. 그런 만큼 신속하게 투자해야만 수익금을 확보할 만큼의 자금을 댈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그렇군요. 이미 알고 있겠지만, 최대 투자금액은 12억. 가능하면 전액 투자를 하고 여의치 않다면 최대한 많은 금액을 투자하고 지분을 높이는 방향으로 추진하세요.”

“알겠습니다.”

회의를 마쳤다. 그리고 TS 투자 운용은 ‘정의의 적’에 투자금 10억 원을 투자하고 지분 20%를 획득했으며 그로부터 일주일 후, 〈684 시나리오〉에 대한 영화와 이후 유통에 관련된 모든 판권을 2억 원에 구매하는 것에 성공했다.

‘완전 짱짱 맨들이네.’

거듭 생각하는 바지만 박봉으로 허덕여서 능력을 타협할 뿐이지 우리나라에는 인재가 참 많다.

75. 긴급 공지

게이머스 포럼에 한 게시물이 심상치 않았다.

조회수 11,450회. 댓글은 무려 78개나 된다. 이 글의 제목은 꽤 의미심장했다.

<[켄헬 서버] 파푸니르 레어에 들어갔는데······.>

넘치는 조회수와 댓글. 무언가 이어질 것만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그리고 이를 클릭하면 게임 운영진보다도 먼저 사실을 발견한 유저의 이야기가 나타났다.

「조금 전에 수중 던전 탐색을 하다가 파푸니르 레어를 발견함.

기왕 온 거 파푸니르나 구경하고 돌아갈까? 라는 생각으로 파푸니르를 찾아 돌아다니는데······.

없음!

구석구석 샅샅이 뒤져 보았다고 확신함.

그런데 없음!

어설프게 돌아다니고 없다고 말하는 거 아님. 정말로 시체가 없었음!

이번에 파푸니르에 대해서 운영진이 말 한 거 기억남?

‘굳이!’ 설명에 ‘구운몽의 레이드 팀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게 디자인했다’고 공언했잖슴? 그래서 나는 당연히. 여전히 파푸니르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얘가 없는 거임.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구운몽님의 레이드 팀이 파푸니르 정벌에 성공했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음. 쿠쿠쿠쿠쿠!」

- 이게 사실이면 플레지 운영진의 능력이 부족한 거 아닌가? 그게 아니면 구운몽님의 스펙이 상상을 훨씬 초월하는 거라거나.

- 설마 진짜로 잡힌 거? 그럼 MC가 호언장담한 게 뭐가 됨요?

└ ㅋㅋㅋ 엠씨 운영능력 모름? 호언장담했다고 믿을 게 못 됨.

- 구라 즐요. 가드서버 유저인데 님들은 파푸니르 못 만나본 듯. 이거는 진짜로 잡으라고 만든 몹이 아님다. 그냥 눈 마주치면 바로 다이임다.

└ 안사락스도 잡으라고 만든 몹이 아닌데, 잡은 거 모르심? 구운몽님 레이드 팀이라면 파푸니르도 잡았을 가능성이 충분할 듯.

└ ㅇㅈ

└ 나도 ㅇㅈ

일명 네티즌 수사대의 보도였다. 사건이 점점 커지면서 관련된 사건과 함께 루머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드디어 엉덩이가 무거웠던 켄헬 서버의 GM이 직접 움직였고 게임에 접속 중인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 →[귓속말] GM켄헬 : 구운몽님. ㅠ.ㅠ

- →[귓속말] 구운몽 : 네?

- →[귓속말] GM켄헬 : 파푸니르 진짜로 잡으셨네요?

- →[귓속말] 구운몽 : ㅎㅎㅎㅎ 네, 잡았습니다. 혹시 문제가 되는 건가요?

- →[귓속말] GM켄헬 : 그런 건 아니고요··· ㅠ_ㅠ 단지 언질이라도 해주시지··· ㅠ0ㅠ

‘아니 그걸 내가 왜 알려줘? 별 웃기지도 않는 소리 하고 있기는.’

게임에 넣어준 보스 몬스터를 유저가 사냥했다. 그걸 운영진에게 왜 이야기를 하는가.

심지어 잡지 못할 것이라고 공표를 한 몬스터인데 말이다. 그걸 ‘내가 잡았다!’라면서 동네방네 소문내는 건 레이드 난이도를 높여달라는 멍청한 짓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얻는 것은 하나도 없고 잃는 것은 넘쳐나니 말이다.

- →[귓속말] 구운몽 : ㅎㅎ;; 굳이 새로 생긴 몹을 잡았다고 이야기를 할 이유가······?

- →[귓속말] GM켄헬 : 네, 압니다. 없어요.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개발팀부터 운영팀까지 다 발칵 뒤집어져서요······ ㅠoㅠ

‘쯧. 그걸 이제서 확인했으니 당연히 뒤집어지지.’

어떻게 까였는지 짐작이 됐다. 아무리 구운몽의 레이드 팀이라도 사냥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을 해뒀다면 당연히 모니터링 정도는 했어야 한다. 그런데 철석같은 확신을 가졌다가 뒤늦게 확인했으니 욕을 먹은 것이다.

“우리 회사에는 이런 일이 없도록 교육해야겠어. 업무 실수를 유저 탓으로 떠넘기는 몰상식한 행동 말이야.”

게이머스 포럼에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잘 다짐했다.

황당한 건 이후 조치였다.

- →[귓속말] GM켄헬 : 아무래도 파푸니르와 안사락스를 더욱 강화시킨 뒤에 다시 업데이트하는 쪽으로 진행하게 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 →[귓속말] 구운몽 : 유저에게 새로운 컨텐츠로 공개를 하고서는 막상 잡히니까 없앤다고요? 지난 번 안사락스야 버그가 있어서 그랬다고 치겠습니다만, 이번에는 너무하는 것 아닙니까?

- →[귓속말] GM켄헬 : 죄송합니다. 저도 위에서 내려온 결정이라서요.

본래 운영진이 내게 이런 말을 해줄 이유는 없지만 영향력을 생각해서 언질이라도 하는 모양새였다. 사실은 있는 게 정상인데 소위 말하는 ‘갑질 운영’으로 유명한 국내의 게임사들은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수정해버리고 통보하기 일쑤다.

그리고 나는 그 모습을 시간을 거스른 오래간만에 확인했다.

『잠시 후 긴급 서버점검으로 게임이 종료됩니다.』

『안전한 장소에서 게임을 종료해 주시기 바랍니다.』

플레지에 메시지가 올라왔다.

‘이렇게 곧바로?’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일 따름이다. 하지만 뭐라고 말을 해봤자 이놈의 게임사가 그런 걸 들어줄 리 만무하다.

그렇게 여유 시간조차 주지 않은 채 셔터가 강제로 내려갔고 유저들은 게임에서 현실로 나오게 되었다.

“우와 용맹한 자식들이네. 대놓고 막장 운영이라니.”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놀라운 녀석들 같다.

< 긴급 공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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