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145화 (145/577)

< 맞다, 그게 있었지 >

*

이튿날 바로 충무로로 향했다. 투자하기 위해 터보 엔터테인먼트라는 영화사를 찾았는데 이번에는 게이머스 포럼이 아닌 ‘윤태식’이 나섰다. 비용 부담도 적었고 통째로 내가 꿀꺽 삼키기 안성맞춤인 좋은 상품이라서다.

‘남들이 침 바를라. 얼른 챙겨야지~!’

초조함을 티 내지 않으며 찾아간 사무실에서 어제 보았던 김형빈이라는 친구를 마주했다. 그가 계약서를 가지고 회의실로 안내했다.

계약서에는 순 제작비용 총 16억. 추후 광고 및 마케팅 비용까지 합하여 도합 총 제작비용 28억 원이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이 가운데 내가 투자하는 비용은 경상비 중 일부에 해당하는 비용으로서 3억을 투자하고 지분 15%를 가지는 것이었다.

‘좋아. 그런데 아쉬워. 어떻게 지분을 더 먹을 수는 없을까?’

잘못 된다는 경우의 수를 배제하고 보니 욕심이 솟구쳤다. 속으로는 안달났으면서 나는 많은 계약을 체결한 경험을 바탕으로 태연자약하게 물었다.

“듣기로는 지금 3억이 없어서 영화는 물론이고 회사도 엎어질 수 있다고 하던데요. 마케팅을 위한 비용은 따로 남아 있는 겁니까?”

“그게··· 영화를 어느 정도 제작하기만 하면 어떻게든 끌어올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어서······.”

자신감은 다소 떨어졌지만 의도는 그러했다. 마케팅을 위한 12억 중 일부는 업체들에게 제공받을 계획이라는 것. 대상 업체는 영화가 자신들의 홍보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곳들을 이후에 백방으로 찾을 요량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제대로 된 대안 없이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과도 같았다.

“그래도 12억이면 상당히 많은 업체를 당겨 와야 하는 것이잖습니까. 가능한 게 맞습니까?”

이 말에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놀랍네. 이렇게 별다른 대책도 없이 만들어진 영화가 대박 신화를 이뤄냈는지 알 수가 없어.’

아무튼 나로서는 마냥 땡큐일 뿐이다.

“제안을 하나 하지요.”

“제안이요?”

“일단 지금의 이 계약서는 없던 걸로 하는 겁니다..”

“그··· 그건···!”

심장이 멈춰버릴 것 같은 표정이다. 내가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투자를 안 하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니, 가서 윗분들이랑 이야기를 해보세요.”

“이야기요? 어떤 걸 말씀하시는지···?”

“10억.”

오해없이 들으라며 분명한 어조로 숫자를 강조했다.

“제가 10억까지는 투자할 용의가 있습니다. 10억을 투자하고 지분에 관한 사항은 새로이 조정하는 것. 이를 전달해 보세요. 물론 조건이 맞지 않아도 3억은 투자할 거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 넵! 알겠습니다!”

형빈도 지금 회사의 사정을 뻔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가 생각하기? 이는 틀림없는 기회다. 그런 만큼 형빈이 곧장 움직였다. 금방 돌아오겠다며 인사하고는 회의실을 뛰쳐나갔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기다린다는 의미는 아니었걸랑?’

부리나케 움직이는 뒷모습을 보며 나는 뺨을 긁적였다.

원래는 이번 제안을 토대로 회의하고 그 이후에 다시 방문할 테니 연락을 달라는 의도였다. 딱 말하고 폼 나게 돌아 나오는 그림을 연출하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형빈이 허겁지겁 날뛰는 바람에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에이. 기다려야겠네.’

다행스럽게도 그들의 회의는 짧게 끝난 모양이다. 10분 남짓한 시간이 흐르자 형빈과 함께 40대의 남성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터보 엔터테인먼트에서 투자배급부의 부장을 담당하고 있는 윤길현이라고 합니다.”

“네. 윤태식입니다. 반갑습니다.”

“제가 이 친구에게 듣기로는 10억의 투자로 지분조정을 요구하셨다고 하던데, 맞으신지요?”

“그렇습니다.”

고개를 끄덕이자 윤길현 부장이 무의식중에 손가락을 비볐다.

“지금 저희 상황이 투자를 받게 된다면 한 번에 목돈으로 투자를 받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혹시··· 가능한지요?”

쉽게 말해 지금 10억을 한 번에 내놓을 수 있냐는 질문이다. 내 대답은 가능하다였다.

“계약서 작성만 완료 되면 계좌로 바로 입금을 해드리겠습니다.”

“아! 예.”

크게 안심하는 모습이었다. 이 부분이 조금 의아했다.

10억은 20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가치가 높은 액수다. 이런 돈을 새파랗게 젊은 녀석이 아무렇지도 않게 투자한다고 말했다. 이러면 사기꾼인지 의심하는 게 정상인데 그는 일말의 의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 이유를 묻자 윤길현 부장이 장담했다.

“제가 영화 투자 쪽에서만 경력이 17년입니다. 진짜 투자를 할 사람인지 가짜로 말만 하는 사람인지는 눈빛만 봐도 압니다.”

나는 진짜로 보이는 모양이다.

‘마음에 드는데?’

기분이 살짝 좋다.

“그렇군요.”

“어떤 방식으로 지분 조정을 하길 원하시는지는 이 친구에게 물어봐도 모른다고 대답하더군요. 혹시 제가 들을 수 있겠습니까?”

대충 계약서를 읽어 보니까 지분율로 단순하게 투자금에 대한 수익을 분배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고, 또 다른 방법은 초기 수익 배분에서 손해를 보는 대신에 손인분기점을 넘긴 이후에 지분율을 크게 높여서 받는 방법이 있었다.

나는 성공을 확신하고 있으니 도박성으로 지분율을 받는 편이 나았다.

“제 투자금에 대한 지분율을 아예 포기하는 대신, 18억을 초과하는 수익금 부분에서 지분을 40% 가져가도록 하겠습니다.”

총 제작비용을 28억으로 추정하고 있다. 즉, 내가 투자하는 10억을 포기하면 손익분기점은 18억이 된다. 이를 초과하는 분배금에서 40%의 지분을 가지겠다는 뜻은 ‘18억 이상의 매출을 올리지 못하면 한 푼도 받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심지어 이후로 25억의 매출을 더 올려야만 원금을 모두 회복할 수 있다. 모르는 사람입장에서는 그냥 도박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하지만 대박이 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도시로의 흥행성적은 대략 340억. 그 중 170억이 영화관에서 가져가는 금액이라고 치면, 내가 10억을 투자해서 버는 금액은 대략 45억 5천만 원 정도지. 하지만 지금 내 제안대로 바뀌면 수익은 약 60억 8천만 원이 된다!’

기본 계약으로만 해도 수익률이 455%인데 이렇게 하면 무려 608%가 되어 버린다. 단순히 계약변경만으로 15억이 추가로 주머니에 들어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장님이 수익을 내기 상당히 어려워질 텐데요?”

영화에 이런 식으로 투자를 하는 건 누가 봐도 정신 나간 투자다. 윤길현 부장이 우려하는 바가 실로 옳다.

‘당장 지금은 이게 웬 떡이냐 싶기도 할 테지. 물론 나중에 영화가 대박나면 그때는 배가 제법 아프겠지만. 흐흐!’

삐져나오는 웃음을 꾹 누르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저는 그렇게 하고도 충분히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니까요. 그러니 투자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정 그러시다면··· 알겠습니다.”

둘은 서로의 얼굴만 번갈아 쳐다보고는 이내 계약서를 준비해서 오겠다는 말과 함께 회의실에서 일어났다. 망할 작품을 성공시킨 것도 아니고 이건 엄연히 타 회사의 미래 수익을 대놓고 빼앗은 셈이었다. 그러나 별다른 양심의 가책은 없었다.

그런 것에 연연해하지 않기로 하기도 했거니와 터보 엔터테인먼트는 ‘도시로’를 통해서 번 돈을 허공에 들이 붓는 놀라운 퍼포먼스를 벌이게 되기 때문이다.

‘너희가 사활을 건 다음 영화가 그거잖냐. 110억원짜리 한국 영화계의 전설적인 작품. 역대급 제작비를 부어서 쫄딱 망해버린 혼돈의 카오스이자 전설의 레전드! 성냥팔이 소녀의 강림!’

관련된 모든 회사는 물론이고 감독부터 출연 배우까지 깡그리 인생을 말아 먹는 엄청난 영화다. 초대작이라는 말에 기대어 상영관에서 보았다가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는 신경험을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후 과정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윤길현 과장이 새로운 계약서를 가지고 찾아와서 계약을 완료했고 나는 바로 10억 원을 터보 엔터테인먼트의 계좌로 입금했다.

그리고 회사로 돌아오며 일단락 지은 뒤 입맛을 다셨다.

“고작 몇 달 만에 50억을 벌 수 있는 방법이라니. 이거 생각보다 쏠쏠하잖아?”

돈이 돈을 번다는 말은 과연 진리라고 본다. 확실하게 성공작을 가름할 수 있다면 영화에 투자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는 점을 오늘에야 실감한 것이다.

물론 뉴 온라인이나 나그네로크 온라인 같은 게임에 투자하는 것에 비하면 투자비용 대비 수익이 낮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쪽은 단기성 투자다. 관리하고 게임을 운영하며 중장기로 수익을 보는 것보다 자금 자체의 흐름은 훨씬 좋은 종목이라 하겠다.

‘몬스터 프레데터스만 해도 내년 6월의 E3를 목표로 개발하는 거니까 아직 10개월이나 남았지. 한참이나 더 걸려. 반면에 여기는 돈 넣으면 돈이 바로 나와.’

투자라는 건 언제나 리스크를 담보로 하는 법!

어디까지나 쪽박을 차지 않는다는 전제조건이 있어야 지금의 생각이 얼토당토 않게 된다. 그리고 나는 게임만큼 상세하지는 않더라도 적잖게 미래를 알고 있다. 이는 리스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고 돈을 쓸어 모을 수 있는 좋은 투자 상품을 찾았다는 뜻이었다.

‘캐시 카우로 최고잖아?’

확신이 있지만 엄연히 큰돈을 쓰는 일이었다. 고민은 많을수록 좋고 결단을 하면 그때부터 과감하게 움직여도 된다.

며칠 더 신중히 생각하고 내 기억을 되짚으며 점검했다.

“하자. 겸사겸사 연예계쪽 인맥도 만들어보고.”

떡 먹고 알 먹는 거다. 그리 확정하고는 휴대폰을 잡았다.

이제부터 필요한 것은 스피드와 인맥이다.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 여보세요?

“어. 영탁아. 형이다.”

- 예! 치명타 심영탁이 총군주님께 인사드립니다. 형빈이한테 형님의 카리스마에 압도당한 이야기를 오늘로 몇 번째나 듣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넉살 좋은 말들을 흐뭇하게 듣고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말인데 너 혹시 영화 시나리오나 대본 이런 거 받은 거 없냐?”

- 에이~ 형님. 누가 저 같은 삼류 배우 따위에게 그런 걸 보여주겠어요?

“인마. 예능인은 자신감이야. 스스로를 삼류니 뭐니 그렇게 말하는 거 아니다.”

- 사실은 사실인데요. 물론! 언젠가 일류··· 아니 한류 스타가 될 겁니다. 미래의 한류스타 심영탁! 잊지 마십쇼!

들떠서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는 소리가 휴대폰으로까지 전해졌다. 나는 맞장구 쳐주며 대꾸했다.

“그 스타가 조금 더 빨리 되는 방법이 지금 있는데 놓칠 생각이냐? 내가 영화계의 큰 손이 되는데 네가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면? 이리저리 이득을 취할 수 있지 않겠어?”

- 아! 그러네요. 제가 정말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상부상조하는 거야. 대신 연결이 시원찮으면 내 마음대로 움직일 테고 네가 한류 스타가 되는 편한 길은 없어지겠지. 어때? 손을 잡아보겠어?”

- 존명!

“좋아. 해보도록 하자.”

계기에 따라서 사람은 변하게 된다. 지금의 제안이 영탁에게 그 역할을 했는지 그는 곰이 아니라 여우처럼 생각하고 내게 적절한 제안들을 여러 가지 해 주었다.

나는 괜찮은 것들을 취합해서 움직였다.

‘시나리오는 형빈이를 통해서 보기로 말을 했고 촬영 현장이나 구경 가봐야지. 도시로는 기념비적인 작품이기도 하잖아? 그리고 나중에는 TV로만 보던 여배우들도 볼 수 있을 테고. 하하핫!’

나중에 영화를 보고 무례하게 찾아가서 할머니를 힘들게 만드는 나쁜 관광객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이전에 방문하고 후일 그런 고생을 하지 않도록 적절하게 대처해 주는 편이 나았다.

더불어서 유성호 정도면 친해져서 나쁠 게 전혀 없는 배우다.

‘영탁이도 나중에는 유명해진다만 솔직히 유성호랑 비교할 수준은 아니거든.’

인맥이란 넓으면 넓을수록 좋다. 이제 고작 8살짜리인 아이이니 몇 번 찾아가고 산타클로스처럼 선물을 안겨주면 이미지 좋게 친해지는 일은 간단히 해결할 수 있었다.

마침 내게는 멋진 선물이 가득 있었다.

‘카더라 통신으로는 도시로의 촬영 비화 중에 이런 게 있다더라.’

유성호는 8살의 어린이인 만큼 시골에서의 촬영을 극도로 꺼려했다고 했다. 그래서 당시에 감독이 시골에 컴퓨터를 설치해주겠다는 조건을 걸고, 촬영을 시작했는데 막상 촬영을 시작하고부터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이는 돈가스 사주겠다며 데리고 나가서는 고래를 잡아버리는 잔인무도한 짓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즉, 자주 가고 말고도 필요 없이 8살 도시 아이가 사무치게 바라는 게임을 안겨주면 좋은 이미지 만들기는 한 방에 해결이다.

“레오닌이면 차고도 넘친다는 사실~!”

성호에게 선물할 레오닌을 준비하고서 다음 날, 영탁과 함께 충청북도 영동에 가기로 했다.

이튿날.

“형님! 저 왔습니다.”

“잘 왔다. 이거 좀 실어.”

먼 길을 나서는 만큼 오늘의 새벽 파푸니르 사냥은 건너뛰었다.

“형님. 이게 다 뭡니까?”

“선물.”

이른 아침시간에 굳이 우리 집까지 찾아온 영탁을 부려먹으며 주차장 앞의 종이 박스와 아이스박스를 실었다.

“어이쿠! 이거 진짜 무거운 데요? 대체 뭐가 든 건가요?”

“이것저것.”

유성호에게 선물할 19인치 모니터와 최고 등급의 레오닌 풀 세트. 촬영지의 모두가 충분히 먹을 만한 음식들까지 중형차에 가득 실었다. 트렁크는 물론이고 뒷좌석까지 빈틈없이 구겨 넣을 만큼의 물량이다.

“이거 돈 엄청 나간 거 아니에요?”

“얼마 안 해.”

전체의 비용을 합산한다면 무려 400만 원이다. 그냥 선물로 주는 것 치고는 적지 않은 비용이지만 내 입장에서는 큰돈도 아니고 인맥이라 여기면 남는 장사였다. 오히려 거저라고 보아도 된다.

“형님! 운전은 제가 하겠습니다.”

“오냐. 잘 해봐라.”

“예! 맡겨만 주십쇼!”

내비게이션도 없는 시대다. 터보 엔터테인먼트에게서 받은 지도만을 가지고 혼자 찾아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오지나 마찬가지의 시골 마을. 총 8가구 밖에 되지 않을 만큼의 시골이다.

출발지와 목적지만 쓰고 길찾기 버튼 하나면 해결하는 미래가 애타게 그리워질 만큼 막막했었다. 이런 마당에 나서주니 맡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렇게 장장 3시간을 달렸고 드디어 촬영 현장에 도착했다.

< 맞다, 그게 있었지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