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매와 레벨업 >
“여기서 우리는 이점이 세 개가 있어. 저주받은 마법석을 팔아서 챙기는 소득, 축복받은 마법석을 쓰게 만들어서 챙기는 소득, +6짜리에다가 확 지르고 날려버리면? 돈이 몽땅 날려버려서 골드를 사게 만들어버리는 소득이지. 시중에 풀린 게 사라지면 우리가 또 파는 거야.”
“우와 개새끼.”
“졸라 잔인한 새끼.”
“뭐 인마?”
엎치락뒤치락하다가 패배하지 않기 위한 꼼꼼한 안배였다. 누차 생각하는 부분이지만 ‘잘 싸웠지만 졌다’ 보다는 ‘잘 싸워서 이겼다’가 최고다.
“그런데 싸울 말이야. 이걸 자판기에서 팔면 자판기가 사람들 길드 거라는 게 너무 티 나지 않냐? 성도 먹고 돈도 벌고 온갖 욕은 잔뜩 나올 것 같은데?”
“당연하지. 자판기로 판매하면 안 돼.”
“설마!”
“이걸 귀찮게 일일이 채팅해서 판매하라고?”
녀석들에게 혀를 찼다. 진수성찬은 잘 따라오는 듯하다가도 이렇게 머리 회전이 느릴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럴 필요가 없잖냐. 판매할 상품이 무려 싸울아비 장검이야. 현존하는 최강의 싸움 검이지. 이런 좋은 매물은 싸게 사서 비싸게 팔고 싶어 하는 장사꾼들이 넘쳐난다고. 경매로 얘네들한테 팔아. 그러면 지들이 알아서 잘 팔 거야.”
“오오!”
“좋았어. 얼마에 팔까? 몇 개씩?”
“일주일에 두 자루씩. 값은 장사꾼들한테 입찰하게 시켜. 그중에서 가장 비싼 값을 부르는 쪽한테 넘기면 돼.”
“채팅으로?”
“바보냐? 편지지를 써. 그리고 절대로 얼마에 입찰이 되었는가는 공개하지 마.”
“마을에서 외치는 건 아니지?”
“···생각을 직접 해보면 안 되겠니?”
“물어보면 다 알려주는 데 뭐~”
“······.”
게이머스 포럼의 자유 게시판에 ‘윤진수허좁’이라는 닉네임으로 글을 올리게 했다. 내용은 싸울아비 장검을 매주 목요일 저녁 7시에 경매로 거래하겠다는 것이다. 해당 경매에 참여하는 방법과 입찰 방식 역시 상세히 설명했다.
쟁점이 된 부분은 판매 대상자를 오직 장사꾼에 한정한 것이었다. 이는 그간 파악한 닉네임들을 토대로 콕 짚어서 지명했다. 이들 이외의 다른 유저들에게는 아예 판매를 하지 않는다는 선언이었다.
켄헬 서버는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퍼져나갔다. 남은 일은 밥이 잘 지어지도록 뜸을 들이는 것뿐이다.
“이건 기다리면 되고, 그사이 우리는 날린 경험치를 복구하러 가자.”
“진짜? 진짜 폭렙 가능한 거지?”
“우리고 간지나게 변신할 수 있는 거 맞지?”
“물론이지. 파푸니르 때문에 두 번이나 죽었는데, 내가 책임져 줘야지 않겠냐?”
“사랑한다!”
“난 여자가 좋다.”
“미친놈아! 그런 거 아니다!”
진수성찬의 경험치는 현재 49레벨에 68%다. 만약 두 번의 사망이 아니었다면 레벨업을 한창 고대하고 있었을 경험치다. 녀석들이 학수고대하는 변신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내가 안내한 장소는 바로 자학의 숲이었다.
운디네 마을에서 11시 방향으로 올라가면 나오는 이 숲에는 도플갱어가 출현했다.
『도플갱어 - Lv : 19 자학의 숲에서 만날 수 있는 몬스터. 유저의 모습을 훔칠 수 있으며 무리 지어 살기 때문에 매우 위험합니다.』
용의 협곡도 아닌 엉뚱한 장소였지만 진수와 성찬이는 기대하는 모습이었다. 직감적으로 느낀 것이다.
“여기도 끝없이 나오는 그런 명당이 있는 거냐?”
“맞아.”
레벨도 몇 안 되고 주는 아이템도 변변찮은 몬스터가 도플갱어다. 슬라임의 모습이었다가 유저로 변신해서 공격해오는 녀석. 공격도 그냥 마우스를 클릭하는 게 아니라 PK를 할 때처럼 강제로 키를 눌러서 짚어야 했다. 그런 주제에 레벨 19를 넘어서는 능력치를 가졌다.
‘체력이 280이고 방어력은 ?17이지.'
레벨만으로 비슷한 몬스터를 찾으면 18레벨의 웅골리언트가 있었다. 이 몬스터의 체력은 200이며 방어력은 ?5다.
21레벨인 가스트는 체력 200에 방어력 ?10의 수치를 가졌다.
이를 두루 따져보면 도플갱어가 오버밸런스의 몬스터임을 여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주는 아이템은 기껏해야 변신 마법석과 골드 뿐.’
초반에 인기가 더럽게 없었던 것도 이해할 만하다. 물론 나중에는 장당 1,000골드짜리인 변신 마법석을 한 시간 사냥으로 50장씩 모을 수 있다는 소문이 돌며 너도나도 이곳에서 사냥하게 된다. 하지만 이는 나중의 일일 뿐, 지금은 파리만 날렸다.
내가 진수와 성찬이를 안내한 곳은 크고 작은 두 개의 바위가 있는 장소였다. 훗날 ‘도플갱어 밭’이라고 불릴 만큼의 명소가 되는 곳이다.
“몹으로 변신해. 여기서는 멀쩡히 서 있으면 누가 몬스터이고 사람인지 자칫 헷갈릴 수가 있어.”
몬스터는 유저의 모습으로. 유저는 몬스터의 모습으로 변해야 수월하다. 곧장 진수성찬 모두 해골로 변신했고 나는 데스나이트가 되었다. 비주얼적으로는 해골 졸개 두 마리를 부리고 다니는 우두머리 언데드의 모습이었다.
이후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기본 골자는 비비기야.”
예전에 서먼 몬스터 마법서를 챙길 때 사용한 비법이다. 하지만 그때랑 똑같은 방식을 써서는 소용이 없다. 이곳에서는 살짝 변형을 가해야 도플갱어를 무더기로 잡을 수 있게 된다.
“성찬이는 위쪽, 진수는 오른쪽으로 가서 도플갱어들을 최대한 몰아 와.”
둘이 도플갱어들을 몰아서 오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우리는 마치 수성전을 진행하는 것마냥 엄청난 숫자의 도플갱어들에게 둘러싸여서 사냥이다.
우선 몽땅 죽이는 것이 먼저다. 마법은 그다음부터 시작이었다.
“몹들이 다 쓰러져 갈 즈음이면 진수는 거기 큰 바위에서 비비기를 해. 성찬이는 아까 갔던 곳에 다시 가서 몹을 몰아오고.”
이때부터는 과장 조금 보태면 숲에 도플갱어가 넘쳐날 정도가 된다. 말 그대로 엄청난 몰이 사냥! 여기서의 핵심 포인트는 물약 수급을 위한 시간 낭비가 전혀 없다는 점이었다.
진수와 성찬이는 매지션이기 때문에 힐 마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 나는 도플갱어 따위의 공격이 박히지 않을 만큼 방어력이 막강하다. 진수는 바위 옆에서 비비다가 아이템과 골드를 챙기고 성찬이는 몬스터를 몰아온다. 나는 오로지 공격만 했다.
공격력이 가장 높은 내가 골드 따위를 줍는다는 건 그만큼 시간을 손해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렇게 역할을 나누었다.
“후아~ 우리 지금 한 시간 정도 사냥했나?”
“그런 거 같은데? 진수야. 얼마 벌었냐?”
실로 쉴 틈 없이 사냥하고 또 사냥만 하는 시간이 지났다. 숨을 돌릴 겸 중간 정산에 들어갔다.
“일부러 골드 싹 비우고 왔거든. 창을 딱 보면 나오는 숫자가 우리 수입이야.”
바로 옆자리에 있는 만큼 고개를 돌려 인벤토리를 확인했다.
우리 모두의 눈이 진수의 마우스를 따라 움직였다.
“212,329골드! 순수 골드가 아주 짭짤한데?”
“그것만이 아니야. 변신 마법석이 졸라 많아!”
“450개!”
한 시간 동안 우리 셋이 획득한 변신 마법석의 수량이다.
“이게 대체 다 얼마야?”
“60만 골드 조금 넘을 거야. 캬~ 부자가 더 부자 되는 세상~”
보통은 두 사람이 한 시간 동안 사냥하면 3만 골드에 80장 수준의 변신 마법석을 획득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셋은 사냥속도가 월등하게 빨랐고 무한하리만큼의 도플갱어를 불러냈다. 그 덕분에 기대 이상의 큰 수익을 낸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본래의 목표를 확인했다.
“그럼 이제 지금까지 일부러 보지 않았던 경험치를 확인해 볼까?”
상승한 경험치는 2%였다. 얼핏 ‘에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레벨업이 더디기로 정평이 나 있는 플레지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놀라운 효율이다.
“진짜 대박이다. 한 시간에 2%면 겨우 50시간만 하면 레벨업 한다는 거 아냐?”
“지금 70%니까 15시간이면 우리도 50레벨이 된다는 거지.”
친구들이 희망에 들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희망 사항이었다. 예전처럼 게임만 하는 것도 아닌 데다가 진수성찬은 자판기 관리, 나는 회사로 출근해야 한다. 즉, 하루에 기껏해야 4시간 정도만 함께 할 수 있는데 이 4시간에는 파푸니르 레이드도 포함이다.
‘재수 없게 레이드 도중에 죽기라도 하면 레벨업은 하염없이 멀어지지만··· 이 얘기는 하지 말아야지. 괜히 말이 씨가 된다고, 죽고 나서 또 내 욕을 할라.’
기뻐하는 분위기에 호응하며 아싸리 외쳤다.
“좋았어! 이 기세를 몰아서 어디 제대로 사냥을 시작해 보자구!”
“가자 데스 나이트!”
“변신하자!”
그날 우리는 3%의 경험치와 약 70만 골드의 수익을 벌어들였다.
그리고 경매날인 목요일이 찾아왔을 때, 게임에 접속한 내게로 엄청난 비둘기 떼가 날아왔다. 성찬이가 할 말이 무척 많은 모양이었다.
- →[귓속말] 윤진수허좁 : 야. 미치겠어! 분명히 우리가 고지한 아이디에게서만 입찰을 받겠다고 말했는데! 별의별 놈들이 다 입찰한다. 지금 받은 편지지만 100개가 넘는 듯!
- →[귓속말] 구운몽 : 이해해라. 오죽 싸울이 가지고 싶었으면 그랬겠냐.
- →[귓속말] 윤진수허좁 : 그럼. 게네들이 더 비싸게 부르면 걔들에게 넘겨?
- →[귓속말] 구운몽 : 노노~ 그건 아니지. 무조건 장사꾼에게 넘겨.
좋은사람들 길드의 싸울아비 장검 경매. 이것이 오늘 게이머스 포럼의 가장 큰 이슈였다. 사람들은 과연 누가 이 입찰에서 승리할 것인가, 입찰가는 얼마일까? 에 큰 관심을 보였다.
- 솔직히 다른 서버는 싸울아비 장검이 이제 막 제작한다는데 우리 서버는 좋은사람들이 독식하는 형편이라···;;;
- 이실 서버인데요. 독식은 다른 서버라고 뭐 다르지 않음. 싸울은 기단 성을 차지한 길드만 독식하고 있는 게 현실임.
- 그나마 켄헬은 이런 식으로라도 풀기 시작했으니까 일반인도 구매할 가능성이 생기는 거라고 봅니다. 오히려 부럽네요.
- 그래 봤자 돈 많은 올포원 놈들이 독식하겠지.
- 돈이야 트레이더스 포럼의 VIP급이라면 올포원이 아니라도 가능할걸요? 뭐. 저도 지금 트레이더스 포럼을 통해서 총알 장전해두는 중인데, 얼마나 하려나요?
- 너무 비싼 가격에 거래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서민도 좋은 장비 껴보게 ㅜㅜ
- 어이. 싸울을 사는 게 어딜 봐서 서민이냐?
이런 이슈는 엄청난 현질을 유도했다. 덕분에 본의 아니게 진수성찬의 수익도 트레이더스 포럼의 수익과 함께 급상승하는 중이었다.
- →[귓속말] 윤진수허좁 : 진주슈퍼라는 사람이 6싸울 두 자루 해서 7000만 불렀어. 1억을 부른 애도 있었는데 얘는 우리가 확인한 장사꾼 아이디가 아니더라.
- →[귓속말] 구운몽 : 그럼 진주슈퍼에게 팔아. 아닌 애는 싹 거절~!
- →[귓속말] 윤진수허좁 : ㅇㅋㅇㅋ!
검 두 자루에 7000만. 장사꾼이 구매한 가격이니 아마도 [email protected]를 붙여서 판매할 것이다. 이러면 시중에 도는 싸울아비 장검은 대략 4000만에서 5000만이 될 것이다.
현금으로는 400만 원에서 500만 원인 셈.
“진짜 비싸네. 원래도 이랬었나?”
플레지가 원래부터 큰돈이 오가는 게임은 맞았다. 하지만 대대적인 리뉴얼 전에는 이만한 현금가가 나오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참으로 모를 일이었다.
- →[귓속말] 윤진수허좁 : 근데 우리 앞으로도 일주일에 2자루만 판매할 거야?
- →[귓속말] 구운몽 : 그럴 생각인데?
- →[귓속말] 윤진수허좁 : 남는 싸울이 너무 아깝지 않아? 몇 주일 치를 하루 만에 버는 마당이잖아.
부자 드래곤들 덕분에 하루에 적으면 네 자루, 많으면 여덟 자루까지 획득하고 있는 상태다. 두 자루씩 파는 건 너무 적어 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자고로 희귀해야 가치는 올라가는 법이다.
- →[귓속말] 구운몽 : 괜히 어설프게 막 풀었다가는 싸울의 가치만 떨어져. 그건 또 그거 나름대로 문제야. 더군다나 길드원들도 꽤 많이 날리고 있잖아.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말이 있듯이 플레지 유저는 +9강화를 이루지 못하면 왠지 불만족스러워하는 증상이 있었다. 남들이 볼 때는 제아무리 부러운 수준이라고 해도 +7, +8은 어딘가 빈티 난다. 그래서 길? 내에서 자체 소비하는 양도 꽤 됐다.
- →[귓속말] 윤진수허좁 : 네 생각이 그렇다면 맞는 걸 텐데 다들 나랑 비슷하게 생각할 걸?
- →[귓속말] 구운몽 : 물어보고 다수결로 정하지 뭐. 다들 아쉬워하면 조금 더 파는 거로.
- →[귓속말] 윤진수허좁 : ㅇㅇ
이날 판매한 7000만 골드는 드래곤 레이드 팀원들에게 500만 골드씩 분배가 된다. 그리고 이번에는 성찬이의 말이 옳았다. 모두가 두 자루만 판매하는 것에 아쉬움을 토로한 것이다.
이는 의견을 수렴하여 다음 주부터 네 자루씩 거래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이로써 현재 시세가 유지된다는 조건으로 레이드 팀은 매주 100만원의 수익을 공유하게 되었다.
‘드래곤 레이드 팀의 전체 수익으로 봤을 때, 이 정도면 월간 600만원은 꾸준히 벌 수 있게 되는 거잖아. 장사꾼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전업 게이머로 먹고살 정도니, 어마어마하구나.’
2001년이다. 이 정도 급여를 받는 사람들은 대한민국 상위 10개 안에 들어가는 회사를 제외한다면 대기업의 이사급이나 되어야 한다. 그만한 돈을 오직 게임만 하면서 벌게 되었으니 정말 대단할 따름이다.
물론 이들의 정점에는 내가 있다.
“진수성찬이 입금해주는 돈이 매달 1500만 원! 흐흐. 성공한 겜덕인생 아니겠어?”
회사에서 벌어들이는 수익과 비교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하다. 하지만 마음 편하게 즐기고 만족하면서 지내기에는 적당한 것을 넘어서 넘칠 지경의 돈이었다. 꿈속의 내가 간절히 바라던 궁극의 삶이라 하겠다.
이제 파푸니르부터 업데이트한 모든 콘텐츠를 싹싹 훑었다.
다 즐겼으니 회사 일에 집중해야겠다.
< 경매와 레벨업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