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139화 (139/577)

< 경매와 레벨업 >

“태식아! 이건 뭐냐?”

“라스트 페이즈겠지. 빠르게 힐 돌려서 전원 체력 회복!”

한결 정신없어지는 가운데 파푸니르의 동작이 두 배로 빨라졌다.

- 파푸니르 : 하찮은 것! 죽어라!

‘이걸 용언이라고 쳐 줘야 하는 건가?’

스킬을 사용하면서 쓰는 대사라고 봐야 할지 분간이 잘 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이 대사를 한 이후 앞발 공격이 한 번에서 두 대씩 후려치는 것으로 바뀌었다는 점이었다. 안사락스보다 한 방이 약해도 이게 두 대를 맞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Hit Point : 64/653』

구운몽조차도 버티기 버거워할 정도다. 순식간에 체력 게이지가 텅 비어버렸다.

“대박이다. 이건 진짜 너 아니면 무조건 즉사네.”

“지옥검이나 검이라도 이건 못 버틸 듯하다.”

『Hit Point : 653/653』

깜짝 놀란 성찬과 진수의 회복마법이 내 체력을 다시 풀피로 돌려주었지만 실로 간담이 서늘한 순간이었다. 그야말로 강철 세트로 업그레이드를 하는 바람에 겨우 버텼다.

“피격 대상이 한 명뿐이라는 점이 다행이야.”

한 명만 공격하는 대신에 반드시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서 설정된 기술이었던 것 같다. 다만 저들은 몰랐을 것이다. 내가 이 공격을 받고도 생존할 거라는 점을 말이다.

‘아직 운영팀에서 즉사형 용언 마법은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다.’

지난 미래의 2005년에는 안식의 드래곤이라 불리는 용언마법이 있었다. 이것에 직격당하면 장비가 좋든 나쁘든 무조건 즉사하는데 현재의 운영팀은 이 아이디어를 아직 얻지 못한 것 같았다. 아니면 대놓고 구운몽을 저격하는 행위라서 자제했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이제는 초창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스킬의 연계 속도가 빨라졌다. 한순간이라도 멍을 때린다면 이어지는 공격까지 체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에 이를 정도로 빨라진 페이스다.

‘그래도 거의 다 왔어. 이게 끝이라면 우리의 승리다.’

『불쾌함이 사라지며 다시 기분이 상쾌해집니다.』

“부패 끝!”

- 윤진수허좁 : 0!

어떻게 보면 나보다 성찬이 더 바쁜 것 같다. 하지만 이어지는 용언에 의해서 생각이라는 사치를 부릴 틈이 없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 파푸니르 : 나의 종들이여! 이 하찮은 것들에게 지옥을 보여주어라!

“뭐가 또 있어?”

플레지 개발진이 고민을 정말 많이 한 모양이다. 신규 패턴이 아직 남아 있었나 보다.

“칼을 갈았네. 갈았어. 대체 이렇게 많은 스킬을 사용했던 몹이 있었긴 하냐?”

“없었지.”

그러나 이번에는 어떤 스킬인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주문만 봐도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그의 수하들을 부른 것이고 대상은 물의 정령인 운다인이었다.

‘모르는 팀이 여기까지 온다면 어설프게 운다인을 상대하려다가 전멸하는 일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네.’

우리 팀 역시 내가 없었다면 그 대다수에 들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운다인은 물리공격에 거의 면역성을 지닌 몬스터라서 나이트나 엘프가 사냥하려고 한다면 파푸니르를 잡는 속도보다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엘프랑 나이트는 계속 파푸니르 노리고 매지션들이 마법으로 처리해.”

“마법으로?”

“딱 봐도 정령이라 칼질 안 박히게 생겼잖냐. 마법으로 잡아라.”

“오케이!”

나팔수가 된 성찬이가 재빨리 전달했다.

- 윤진수허좁 : 매지션들은 마법으로 빠르게 운다인을 처리합니다! 격수와 엘프는 계속 파푸니르 점사하세요!

타깃을 구분하여 공세를 퍼부었다. 소환수들이 정리되고 다시금 파푸니르만이 남았다.

인간적으로 이 이상의 패턴이 더 나올 리는 없다고 본다. 느낌 상 이쯤이면 쓰러질 때도 됐다!

하지만 최강의 보스는 그냥 무너지지 않았다.

놈이 최후로 발악했다.

- 파푸니르 : 같잖은 재주 하나 믿고 너무 설치는구나.

- 파푸니르 : 어디 스스로의 재주를 실컷 사용해 보거라!

스킬 반전의 용언.

“역류!”

『용의 기운이 마력을 뒤틀어버리는 것을 느낍니다.』

- 윤진수허좁 : 2!

- 파푸니르 : 나의 종들이여! 이 하찮은 것들에게 지옥을 보여주어라!

‘뭐라고!?’

마법을 봉쇄하고 마법이 아니면 상대할 수 없는 몬스터를 소환하는 패턴!

“미친!”

내 입에서 나온 욕설이 아니다. 진수성찬에게서 나온 욕설이다. 하지만 녀석들의 심정이 십분 이해됐다.

‘운다인의 패턴은 전혀 없던 패턴이야.’

훗날의 레이드 버전 용 파푸니르라 해도 자신의 체력을 회복하고 버프를 걸며 소환하기는 했지만 이런 식의 조합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필시 현재 플레지의 시스템 상에서 제작할 수 있는 패턴 중에는 최고의 아이디어를 총합한 것이 분명했다.

여기에 하나가 더해졌다.

-파푸니르 : 하찮은 것들아. 꺼져라!

광역 데미지를 입히는 물보라였다. 이쯤 되니 이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진짜 위기감이 엄습했다.

“태식아! 어쩌냐?”

내 대답은 승부수를 띄우는 것!

“운다인 무시! 파푸니르 일점사!”

마법도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어설프게 운다인을 잡아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마지막 끝내기 패턴을 난사 중인 보스 몬스터에게 총공세를 가하는 편이 나았다.

- 윤진수허좁 : 운다인 무시합니다! 파푸니르 일점사하세요!

이제부터는 누가 먼저 죽느냐의 싸움이다.

‘젠장. 역류는 언제 끝나는 거야?’

상대적으로 짧은 용언 유지시간조차 길게 느껴질 만큼 초조한 싸움이다. 1분 1초가 1년처럼 길게 느껴지는 마당이었다. 만약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내가 작정하고 고강화 아이템으로 도배하고 드래곤의 목을 썰어 주리라, 다짐했다.

그때 끝난 줄 알았던 용언이 발휘됐다.

- 파푸니르 : 공포를 느껴보아라!

- 크아아!

물보라와 함께 강력한 데미지가 퍼졌다.

으억!

크억!

팀원들이 무더기로 쓰러졌다. 또다시 혼자 살아남는 건가 싶은 그 순간, 파푸니르의 거대한 몸 역시 엎어지고 말았다. 이후 엄청난 양의 아이템들이 우수수 쏟아졌다.

“대박! 잡았다!”

“아! 어!? 젠장!”

『뒤틀린 마력이 제 자리를 찾는 것을 느낍니다.』

그제야 역류 마법이 풀렸다.

“아 진짜! 또 누웠어! 이 새끼 마지막까지 구질구질하네!”

“자폭하는 게 어딨냐! 스킬 쓰고 죽기 있기 없기!?”

다시금 데스나이트 변신이 멀어지고 만 진수와 성찬이가 투덜거렸다. 그리고 생존자들은 남은 소환수들을 모두 정리한 뒤 기쁨의 시간을 누렸다.

- 범 :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 구도자의길 : 이걸 잡아내는군요. 세상에······.

- 지옥검 : 오래간만에 진짜 쫄깃쫄깃한 기분이었습니다!

- 구두룡검 : 2번 만에 해결! 하하하하!

플레지 운영진은 정말로 우리가 파푸니르를 사냥할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드랍 아이템을 줄일 줄 알았는데 오히려 늘어났어.’

내 기억으로는 안사락스나 파푸니르 모두 별반 차이가 없어야 하는데 지금은 드랍 아이템이 확실히 달랐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느긋하게 감상할 여유는 없었다. 리젠이 빠른 파푸니르인 만큼 자칫 또 드래곤을 레이드하는 상황이 초래할 수 있었다.

- 구운몽 : 안사락스와 여러모로 다른 파푸니르입니다. 이 자리에 오래 머물러서 좋을 것이 없으니 귀환 후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 좌호법 : 존명!

- 범 : 존명!

대답을 그러려니 여기고는 모두가 기뻐할 정산시간을 가졌다.

용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싸울아비 장검은 축복받은 싸울이 1개, 그냥 일반 싸울이 1개씩 2자루가 나왔고 보석은 안사락스와 달리 각 등급의 사파이어를 50개씩 획득했다. 또한, 특별하게 만들 수 있는 드래곤 아머의 재료인 수룡의 비늘이 10장.

끝으로 투명 망토 대신 나온 아이템은 수룡의 벨트라는 물건이었다.

“이게 뭐지?”

나조차도 처음 보는 이름의 아이템이 나왔다. 내 기억에 없는 것으로 봐서는 원래는 존재하지 않았던 장비가 틀림없었다.

‘게다가 원래 벨트류가 업데이트되는 시기는 2002년이야. 최소 반년에서 1년은 빠른 업데이트가 이루어진 거지.’

도대체 어떤 성능을 가진 아이템일까?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확인하기로 했다.

“뭐야? 너 설마 여기에 그거 바르려고?”

내가 확인 마법석을 클릭하자 진수가 뜯어말렸다. 새로운 업데이트 이후로 마음에 드는 것 중 하나는 아이템에 확인 마법석을 사용하면 해당 아이템이 가진 모든 능력이 채팅창에 나타난다는 점이다.

굳이 돌려가며 확인할 필요 없이 한 번에 내용을 공유할 수 있었다.

이를 진수가 말리는 이유는 확인함과 동시에 가치는 10%가량 하락하기 때문이다.

‘사람 심리라는 게 참 웃겨.’

1000만 골드의 가치가 있는 아이템이 확인을 해버리면 900만 골드가 되는 이유. 이는 단순한 심리적인 문제였다. 무기와 방어구랑은 다르게 액세서리는 강화 불가능 아이템이다. 이런 물건을 확인해버리면 영원히 ‘+0’이라는 글자가 붙게 된다.

‘이러면 촌스럽다나?’

가치가 10% 하락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0이라는 숫자를 못 견뎌 하는 심리다. 그런데 이 녀석들은 몰라도 한참 모르는 부분이 있다.

“뭔 상관이냐?”

“왜 상관이 없냐? 이게 얼마짜리일지 모르는데!”

“무려 벨트라고!”

“목걸이 기억 안 나? 또 잡으면 또 나올걸? 엄청 쌓여서 버려야 될 걸?”

“어? 그러네?”

“이거 우리가 독식하는 거였구나.”

파푸니르는 앞으로도 계속 사냥할 것이고 이 레어급 아이템은 추후 우리 길드에는 매우 흔한 아이템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러잖아도 레이드 팀원들은 드래곤 아머로 슬슬 갈아 끼는 중이잖아. 용비늘이 너무나도 넘쳐나서. 그런데 고작 벨트 가지고 왜 그래? 아마추어같이.”

“맞다. 네 말이 맞다.”

“확인해보자!”

간단히 설득한 후 확인 마법석을 사용했다.

채팅창에 수룡의 벨트가 가진 능력치가 화려하게 올라왔다.

『+0 수룡의 벨트

클래스 : 모든 클래스 / AC : 0 / 최대 HP + 30 / 최대 MP +40 / 물 속성 저항 +10% / 마법 저항력 +5% / 재질 : 가죽 / 무게 : 3.00

수룡 파푸니르의 의지가 담긴 벨트. 착용 시, 최대 무게 게이지가 20% 상승하며 회복마법과 물약의 회복력이 10% 상승한다.』

“오! 대박!”

“헐! 이거 뭐냐?”

우리는 물론 팀원들 모두가 깜짝 놀랐다. 이건 단순히 가치를 정하기 힘들 정도로 그냥 엄청나다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오우거 벨트의 상위 아이템이었어.’

부가효과 중에서도 가장 탐나는 것! 그건 바로 물약과 회복마법의 회복량 상승이라는 부분이었다. 저것 하나면 드래곤 레이드는 정말로 한층 쉬워져 버린다.

“이거 앞으로도 파푸니르를 계속 때려잡아 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지 않냐?”

못 잡는 사람은 평생 못 잡아도 한 번 잡아본 이들은 점점 쉽게 사냥할 수 있다.

“이거 얼마 정도 할 거 같냐?”

“가치를 매길 수 없지. 아니. 가치를 매겨서도 안 돼.”

“응? 왜?”

“앞으로 공성전은 이 벨트를 더 많이 가진 길드가 이길 테니까.”

시장에 풀어야 할 아이템과 비밀로 남겨둬야 할 아이템. 그중에서 이 벨트는 후자였다. 특히나 이제 엘븐 와플 때문에 엔트의 사과 소비를 줄여야 할 시점이라 수룡의 벨트는 더욱 소중하다 할 수 있었다.

“착용해 봐. 아직 착용 안 되는 건 아니겠지?”

“어디 보자··· 오케이. 된다. 착용 되네.”

벨트를 착용함과 동시에 무게 게이지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뭐야? 20%가 원래 그렇게 높은 거였어?”

“힘 업에 벨트까지 더해지면 말갱이를 거의 두 배 정도 들 수 있겠어. 운몽이는 진짜 안 죽겠구나.”

“그렇지. 고로? 또 잡자!”

모두가 탐낼 만한 아이템이 나왔다. 파푸니르는 안사락스에 비해 재등장 시기조차 빠른 몬스터였다. 그렇다면 남은 답은 하나다.

죽이고 뺏고 나눠 갖는 것.

아바롤에서 레이드 팀은 재정비했고 마치는 족족 재사냥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날, 파푸니르는 세 번이나 연거푸 사냥당하는 굴욕을 겪었고 우리는 수룡의 벨트 3개를 수확하였다. 다들 이토록 열심히 하는 이유는 또 운영진이 수를 쓸 우려가 있어서였다.

안사락스처럼 파푸니르도 감춰버리기 전에.

소문이 나기 전에 최대한 뽑아낼 각오였다.

- 구운몽 : 수룡의 벨트는 먼저 나이트에게 분배하겠습니다. 일단은 지옥검과 검 그리고 제가 먼저 분배받도록 하겠습니다. 괜찮으시죠?

- 비전 : 당연히 괜찮습니다. 세 분이 강력함을 과시해주셔야 우리도 편하거든요!

- 범 : 맞아요. 세분의 건재함이 길드를 평화롭게 합니다. 먼저 가져가시는 거 찬성합니다.

- 악마혈 : 다음에는 제가 분배받을 수 있나요?

- 구운몽 : 그렇게 분배되도록 하겠습니다.

축배를 들기 딱 좋은 밤이었다.

71. 경매와 레벨업

안사락스에 이어 파푸니르라는 보물 창고를 독식했다. 이쯤 되니 길드의 모든 나이트가 +7 싸울아비 장검 이상을 장비하고 갈수록 여타 길드와의 전력차가 극심해졌다.

“엘븐 판금 시세가 너무 떨어졌어. 매물이 너무 많아졌는데 그게 다 우리 길드원 들 거라고.”

“죄다 드래곤 아머를 입으니 하는 수 없지 뭐.”

싸움은 아슬아슬하게 쫓기고 잡힐 듯해야 보는 맛이 있다. 실제로는 아니라 해도 그런 연출을 보여주어야 이인자도 즐기려는 마음이 생긴다.

이를 위해 자체 밸런스 조절에 들어갔다.

“이제 싸울을 풀자.”

“하기야 이제는 벨트마저 끼는 상태니까. 오케이. 드디어 왕창 돈을 벌어보겠구나.”

“참고로 걍 싸울은 판매하지 말고 무조건 +6을 만들어서 팔아.”

“응? 그건 왜?”

일반 싸울아비 장검을 판매하면 +5까지 강화한 뒤 축복받은 강화석을 통해 +7에 성공하는 유저들이 늘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6짜리를 판매하면 저주받은 무기 강화석으로 강화 수치를 ?1 내리고 그다음에 축복받은 강화석을 써야 한다.

< 경매와 레벨업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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