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의 도시 >
여기에 게임 상식 하나를 추가한다. 플레지는 인기 아이템이 아니면 고강으로 강화가 될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였다. 이를 장사할 때 이용하면 이익을 더 크게 확장할 수 있다.
- →[귓속말] 구운몽 : 진수야. 힘들게 걍 다마를 많이 모으기보다는 수량이 적어도 고강화 다마를 많이 모아. 값은 꾸준히 오를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 →[귓속말] 황성찬허좁 : 고강은 카타 때문에 떨이 취급받지 않아? 게다가 이제 싸울까지도 돌고 있잖아.
플레지를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결코 할 리가 없는 질문이었다. 하물며 장사꾼으로 지금까지 닳고 닳은 진수가 모를 리 없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녀석이 묻는 이유는 의심이 아니라 다시 한번 확실하게 내 의견을 듣고 싶어서였다.
- →[귓속말] 구운몽 : 포지션이 전혀 달라. 싸울은 최강의 싸움 검이고 다마는 최고의 사냥 검이 될 거거든. 내 눈에는 그리될 미래가 보인다.
- →[귓속말] 황성찬허좁 : ㅇㅋㅇㅋ!
돈벌이가 될 아이템을 짚어줬으니 게임 속 사업은 이것으로 끝이다. 나머지는 내가 즐길 거리를 제대로 누려보는 것뿐이었다.
‘이 몸이 바로 용살자 아니겠어?’
한때, 플레지 폐인이었던 나인 만큼 게임에서 최초라는 이름의 모든 타이틀을 거머쥐고 싶었다. 그리고 오늘 노리고 있던 녀석이 나왔다.
수룡 파푸니르.
“게다가 나를 도발했다고.”
조금 전에 읽었던 긴긴 공지의 끝부분을 떠올렸다.
『파푸니르 - Lv : 68 수중도시 아바르 왕국을 멸망시킨 수룡. 플레지의 4대 원소 중 물을 상징하는 보스 몬스터로 아주 강력한 힘을 가졌습니다. 눈을 마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음을 맞이한다는 전설의 괴수입니다.
※ 파푸니르는 안사락스보다 훨씬 공략하기 어렵게 디자인 되었습니다. 드래곤 슬레이어 구운몽님의 드래곤 레이드 팀이라도 쉽사리 공략할 수 없을 거라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말미에 붙은 추신.
플레지 운영팀에서 보스 몬스터를 디자인 할 때 우리 드래곤 레이드 팀을 인식하고 디자인 했다는 말이었다. 그와 동시에 선전포고를 한 것과도 같았다.
‘게임사에서 이런 식으로 공지를 하다니. 어지간히도 자존심이 상했나봐.’
그들의 도발.
흔쾌히 받아준다. 나를 그리면서 제작했다니 응당 그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 원래부터 사냥하려고 작정했던 만큼 시원스레 성공시키고 말겠다.
‘안사락스보다 좋은 파푸니르의 최고 장점이 있지. 얘는 버로우가 없다는 거야.’
지난 미래에서의 드래곤 슬레이어 팀은 물론이고 나 역시도 안사락스보다는 파푸니르를 좋아한다. 적어도 이 녀석은 다 죽여 놓은 상태에서 버로우를 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사냥 시의 난이도는 파푸니르 쪽이 높지만 귀찮은 버로우가 없다는 점은 오히려 쌍수를 들 점이었다.
더군다나 리젠율도 높다. 내가 들은 풍문에 따르면 시체가 사라지기도 전에 재생성됐을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장점임과 동시에 치명적인 단점이 될 수도 있었다.
‘잡고 나서 바로 나와 버리면 우리는 그냥 전멸이다.”
지난 미래의 레이드 팀은 변칙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그 때문에 한 번의 준비로 두 마리 혹은 세 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반면에 나는 가능한 한 꼼수를 쓰지 않고 스펙을 높여서 정면으로 싸우는 방식을 선택한다.
모양새가 좋고 드래곤 슬레이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방식이라서다. 하지만 한 번의 싸움에 화려하게 모든 것을 불태운다는 것은 그다음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건 차차 부딪치면서 다듬어보자.’
무조건 따라 하지 않는 나만의 공략법. 이를 만들어나가는 것도 새로운 재미가 되어줄 것이다.
업데이트 직후를 플레이하는 기분은 뷔페에서 음식을 골라 먹는 느낌과도 비슷했다. 나는 새로 나온 콘텐츠들 중 무엇을 즐길지 우선순위를 골랐다.
‘파푸니르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을 테니 다른 몬스터나 구경해보자. 철괴를 활용한 강철 아이템들은 나중에 하나씩 만들기로 하고. 이건 유니크하지 않으니까 급하게 달려들 필요가 없어.’
어차피 제작 재료들도 진수성찬에게 공급받아야 한다.
이내 운디네 영지부터 구경하기로 결정! 마우스로 구운몽을 움직였다.
‘기단 영지에서 5시. 위더우드 영지에서 2시. 이런 복잡한 설명은 머리만 아프지. 그냥 플레지 월드의 우측 하단 구석이면 된다. 그리고 텔녀한테 슝~ 날아가면 끝이고.’
기단 때처럼 걸어서 갈 이유 따위가 없었다. 텔레포트 NPC를 통해서 이동한 뒤 마을 위치를 기억하고 순간이동 조종 반지로 날아가면 됐다.
도착한 운디네는 전체적으로 푸른 느낌이 가득 한 곳이었다, 중앙의 분수부터 마을 끝까지는 수로를 통해 물이 흘렀는데 밝고 푸른색이 가득했다. 말 그대로 물의 도시 운디네라는 이름에 딱 맞는 싱그러운 전경이었다.
또한, 여타 마을과 달리 운디네에는 울타리가 없다는 특징이 있다.
플레지의 기존 마을들은 ‘여기부터 여기까지가 마을이다!’를 알려주듯이 울타리가 쳐졌다. 반면에 운디네는 전혀 그런 것이 없었다. 그 덕분에 초행자가 ‘어디까지가 마을이야?’하며 멍하니 다니다 보면 몬스터와 조우하게 되는 구조이기도 했다.
나 역시 즐겁게 관람하다가 사냥감을 만났다.
“케이브맨이네.”
처음으로 만난 녀석은 조악한 삼지창을 들고 이곳저곳을 어슬렁거리는 하얀 땅딸보였다.
『케이브맨 - Lv : 15 운디네의 가장 흔한 몬스터입니다. 작지만 동족의식을 가졌기에 무시하다간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공지에는 친절하게 설명된 내용은 유저들에게 이런 식으로 번역된다.
‘거지.’
주는 게 없어서 사냥할 가치조차 없는 몬스터다.
창작자와 개발자들은 골머리를 싸고 콘셉트에 맞춰서 구성 요소들을 채워 넣어봐야 유저들에게 이는 큰 의미가 없다. 돈 되는 놈, 경험치 많이 주는 놈이 최고다. 게임 개발 회사를 운영하는 내가 이리 생각하는 것도 꽤 웃기지만, 사실이 그렇다.
적당히 썰어주고 다음으로 패스!
운디네 영지 필드를 더 돌아다녔다.
이쪽 지역의 가장 큰 구별 점은 이끼를 통한 습한 지역의 이미지다. 2D 게임의 한계로 ‘늪지’라는 특징이 잘 구현되지는 않았지만 다른 사냥지역과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었다.
그리고 이 늪지대에는 돈이 되는 괜찮은 녀석들이 슬슬 나타난다.
“얘는 짭짤하지.”
무려 지룡 안사락스만큼이나 강력한 독성을 가진 몬스터. 내 기준으로는 설정 붕괴다 싶은 괴물의 이름은 라미아였다.
『라미아 - Lv : 22 운디네 전역에서 만날 수 있는 몬스터입니다. 아름다운 여성의 상반신과 뱀의 하반신을 하고 있으며 강력한 독을 가졌습니다.』
지금까지 플레지의 유저들은 구울의 독 같은 마비 독에나 해독 아이템을 사용했다. 체력을 소모하는 독은 효과가 너무도 미비해서 치료할 필요가 없어서다. 하지만 오늘부터는 인식이 달라진다.
이 라미아의 독은 해독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제대로 각인시켜주게 되니 말이다. 덕분에 해독 효과가 있는 엔트의 가지 가격이 30배나 올라간다.
“배율만 보면 엄청난데, 1골드짜리라서······.”
수익 면에서는 좋지만 큰 이득을 보는 장비류에 비교해서는 중량감이 한참 떨어진다. 그래도 30골드가 모이면 큰돈이 되니 이 역시도 친구들의 피자가게 장만에 큰 일조를 해줄 전망이다.
유저들이 비싸진 해독 아이템을 쓰면서까지 이 몬스터를 잡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 키이익!
칼질로 뚝딱뚝딱 잡으면 품고 있는 돈 되는 아이템이 떨어진다.
「무기 강화 마법석」
비교적 높은 확률로 주는 짭짤한 돈벌이였다. 이 절반은 뱀, 절반은 미녀인 라미아는 각각 녹색과 보라 색깔이 있었다. 지난 미래에서의 풍문에 따르면 녹색보다는 보라색 라미아를 잡을 때 무기 강화 마법석이 나올 확률이 높다고 한다.
뭐가 나올지 견적이 딱 나오는 내 눈으로 볼 때는 이렇게 보였다.
“그놈이 그놈이여~”
녹색이건 보라색이건 줄 만한 놈을 잡으면 알아서 나온다.
쾌속하게 돌아다니며 사뿐히 5개를 먹어주고 다시 이동했다.
‘오~ 터틀 드래곤!’
이번에 만난 몬스터는 다마스커스 사재기의 주인공이 되어주는 예쁘장한 거북이다.
『터틀 드래곤 - Lv : 24 거북이의 형상을 한 몬스터입니다. 높은 방어력과 체력, 검을 손상시키는 단단한 등껍질을 가졌습니다.』
골드 주는 몬스터. 당장 내 검도 손상시키는 녀석.
“바로 패스!”
대충 이즘에서 도보로 탐험하는 육지 여행을 마쳤다.
이제는 랜덤하게 텔레포트를 반복했다. 바로 걸어서는 들어갈 수 없는 로아커 섬에 들어가기 위해서다. 특히 이곳에는 운영팀이 공지하지 않은 몬스터가 존재하니 가장 먼저 잡아줄 필요가 있었다.
쉬링!
휘링!
“아오.”
텔레포트는 처음 한 번은 근처로 떨어지며 연속해서 두 번을 사용하면 먼 곳으로 날아가게 된다. 때문에 로아커 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절대로 빠르게 사용하지 않아야 했다.
천천히 충분한 여유를 두고 사용한다.
쉬리링!
휘리링!
“씁! 이거 진짜 안 되네.”
운이 없는지 엄한 곳으로 또 날아갔다.
이건 오직 운에 달렸으니 나로서도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돌아와서 반복한다.
‘로아커! 로아커! 로아커!’
끈기와 오기로 도전하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 칠전팔기의 정신으로 시도한 끝에 드디어 섬에 들어가는 것을 성공했다. 전형적인 숲 지형이라서 자칫 ‘또 잘못 왔네.’하며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섬임을 알 수 있는 증거물이 존재한다.
『악어 - Lv : 10 로아커 섬에서만 만날 수 있는 몬스터입니다.』
이곳을 악어섬이라 불리게 한 녀석들이 보였다. 레벨로 봐도 허접하고 잡아봐야 주는 아이템도 변변찮은 놈들에 지나지 않는다.
‘기껏해야 저렙 때 폭렙하는 정도지.’
레벨대비 경험치가 높은 편이라서 개를 키울 때나 찾게 되는 장소. 딱 이 정도 사냥터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장소를 최고레벨의 구운몽으로 거듭 오려고 한 이유는 히든 보스 몬스터를 사냥하기 위해서였다.
“크로커다일아. 어디 있니~’
업데이트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느낌상 이 녀석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 예감을 확신하며 섬을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발견했다. 일반적인 회색 악어와는 다른 거대한 갈색 덩어리! 사이즈부터 빅 사이즈인 거대 악어였다.
‘최초로 숨겨진 보스 몬스터를 사냥한다 이거야.’
크로커다일은 이벤트성의 몬스터로 디자인됐다. 획득할 수 있는 좋은 아이템은 일반적인 무기 강화 마법석과 갑옷 강화 마법석이다. 하지만 초창기라서 그런 걸까. 이제 막 업데이트되어서 만난 따끈따끈한 크로커다일은 업그레이드 된 아이템을 품고 있었다.
“축복받은 마법석이 보이는구나.”
거대 악어에게 구운몽이 달라붙었다.
사냥의 난이도는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벌써 죽었네.’
몇 번 ‘뚜샤뚜샤’ 해주면 끝이다. 비단 이것은 나만의 기준이 아니었다. 우리 길드에서 1대 1로 크로커다일을 사냥하지 못할 플레이어는 존재하지 않을 정도다. 눈높이를 더욱 낮춰도 길 가는 고레벨 유저는 누구나 다 처리할 정도였다. 이래서 이벤트 성 몬스터다.
“이제 또 어디를 가볼까?”
예상대로 축복받은 마법석을 획득하고 다른 콘텐츠를 즐기려고 할 때였다.
메시지가 날아왔다.
- →[귓속말] 황성찬허좁 : 태식아. 그러고 보니까 장갑이랑 부츠랑 다 처분해야 하는 거 아니냐? 강철 아이템 나왔잖아.
“당근이지.”
장갑과 부츠는 한때 지존의 상징이었다. 그러다 공급량이 늘면서 누구나 쉽사리 구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고 이제 강철 아이템이 등장하며 숨통이 끊어질 처지였다.
‘강철 부츠와 강철 장갑 때문에 방어력이 부족해졌으니.’
부츠의 방어력은 2. 장갑은 0이다.
하지만 강철 부츠는 방어력이 3이고 강철 장갑은 1이었다. 당연히 기존의 장비는 엄청나게 손해를 보게 되는 거다.
‘이 외에도 강철 세트 중에는 면갑과 판금 갑옷이 있지만, 얘네는 안 쓰이지.’
이것들은 기존의 면갑과 판금 갑옷과 같은 수치면서 무겁기는 훨씬 더 무겁다. 당연히 외면받는 아이템이 된다.
“그런데 이런 것조차 예상 못 한 거냐.”
뻔한 질문을 진수가 물어오다니, 저절로 혀를 차게 된다.
- →[귓속말] 구운몽 : ㅇㅇ 설마 아직도 안 판 똥멍청이는 아니지? 그거 똥값 되는데?
- →[귓속말] 황성찬허좁 : ···야! 그걸 왜 이제야 말해줘!?
- →[귓속말] 구운몽 : 에이~ 그 정도는 알아서 할 때도 됐잖아.
- →[귓속말] 황성찬허좁 : 아아아악!!!
이미 팔아서 이득 보기는 늦은 타이밍이었다.
발광하는 친구에게 얼른 키보드를 두드렸다.
- →[귓속말] 구운몽 : 정 그러면 나 주던가.
- →[귓속말] 황성찬허좁 : 어? 널 달라고? 왜? 어디에 쓰게?
- →[귓속말] 구운몽 : 게이머스 포럼에서 이벤트용으로 풀게.
- →[귓속말] 황성찬허좁 : 아······
달리 방도가 있는 줄 기대했던 진수가 바로 실망했다. 한참 ‘ㅋㅋㅋ’를 보내자 교체선수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 →[귓속말] 윤진수허좁 : 진수 새끼 그로기라 나님 등장이다!
- →[귓속말] 구운몽 : ㅇㅇ
쓴맛을 본 친구들에게 달콤한 당근을 주기로 한다.
- →[귓속말] 구운몽 : 내가 지난번에 철괴 많이 모아두라 했지?
- →[귓속말] 윤진수허좁 : ㅇㅇ
- →[귓속말] 구운몽 : 얼마나 모았냐?
- →[귓속말] 윤진수허좁 : 각 서버마다 10만 개 정도는 있을걸?
철괴는 뼈셋이라는 아이템과 함께 등장한 재료다. 초창기에는 개당 500골드까지 치솟았던 철괴는 시간이 흘러도 별다른 쓰임새가 없자 점점 값이 내려가서 30골드에 이르렀었다.
마침내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게 된 이 재료 아이템을 진수성찬은 내 말에 따라서 쓸어 모아왔다. 꾸준하게 드랍되지만 쓰임새가 없었고 너무나도 헐값이라서 이토록 어마어마한 수량을 모을 수 있었다.
< 물의 도시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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