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132화 (132/577)

< 새로운 도전 >

***

250명까지 수용 가능한 특별 교육실은 엄숙하기까지 했다.

‘언제쯤 오시려나.’

시계를 보며 주인공이 오기를 다들 초조하게 기다렸다. 김대익 역시 그중 한 명이었다.

게이머스 포럼의 GF 엔진을 개발하기 위한 TFT 소속 프로그래머. 그는 게임을 개발하기 위해서 잘 다니던 명문대학교까지 중퇴하며 뛰어든 2년 차 개발자다. 이런 김대익이 보기에 게이머스 포럼은 진정 놀라운 회사였다.

‘실패한 게임이 지금까지 단 하나도 없는 괴물 같은 곳.’

게임은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간단하게 만든다고 해도 억 단위의 돈이 우습게 들어가는 상품이며 피와 땀을 흘린 결과물이 무조건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었다. 희박한 확률을 뚫고 하나의 대작을 만들었다고 해도 거기서 그치는 일이 허다하다.

후속작이 기대 이하의 성과를 이루는 것이 비일비재하며 그 때문에 게임사 대부분은 언제나 자금 압박에 시달렸다. 이는 킹덤 언더 플레임으로 명성을 떨친 팬더그램을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그 회사조차 삼켜버리면서 모든 상식을 깨부수는 유일한 곳이 등장했으니 바로 게이머스 포럼이었다.

‘업계 신화를 오늘 만날 수 있어.’

김대익은 오늘 기대와 흥분으로 가슴이 뛰었다.

‘불패하는 미다스의 손. 떠오르는 게임계의 태양! 윤태식 대표의 프로젝트 기획안을 오늘 듣는다!’

굳이 명문대의 졸업장을 포기하고 들어갔던 회사, 가마로 소프트. 그 회사에서의 초고속 승진을 포기하고 굳이 이 게이머스 포럼의 막내급 프로그래머로 이직한 것에는 한 사람의 존재가 결정적인 이유로 작용했다.

그즈음이었다. 스피커가 울렸다.

- 대표님께서 들어오십니다.

젊은 남자였다. 연륜 대신 패기로 무장하고 기대만큼이나 거대해 보이는 존재감의 사내다. 눈이 좋지 않은 김대익 조차도 선명하게 보일만큼 유난히 도드라져 보이는 인물.

윤태식 대표. 그가 업계의 거목들과 함께 등장했다.

업계 전설을 뒤따르는 만큼 한 명, 한명이 허투루 볼 수 없는 롤 모델급 인사들이었다.

‘김강철 팀장님.’

그는 이미 기울어져 가는 재미소프트에서 퇴사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회사는 그에게 지급할 퇴직금 따위를 보유할 형편이 못 되었다. 그래서 김강철은 액티브의 판권을 요구했다.

재미소프트의 입장에서 이미 망해버린 게임의 판권 하나를 넘기는 것은 전혀 아쉬울 것이 없었던 일. 주저 없이 쾌척하고 만다. 그리고 김강철은 불사조같이 성공한다.

액티브 플레어.

액티브를 개조해서 만들어낸 게임.

게이머스 포럼이라는 둥지를 찾아서 화려하게 비상한 이 게임은 현재 국내에서 많은 마니아층을 만들어냈고 월 매출 3억을 달성했다. 김대익이 듣기로 김강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매달 2,000만 원씩 통장에 입금이 되는 중이라고 한다.

‘일본에서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데 그때 제시한 계약금이 10억이었다니까.’

이만해도 대단한 수익이지만 함께 들어오는 다른 이들에 비하면 약과에 지나지 않았다.

‘나그네로크의 김재용 기획팀장님.’

이미 액트러스를 통해서 그 실력을 인정받은 남자.

그는 나그네로크로 다시 한번 주가를 크게 올리고 있었다.

‘고작 5%의 지분만을 가졌는데 그 가치가 무려 5억! 그것도 아직 상용화가 되기도 전이야. 그런데도 회사의 가치는 10배나 올랐어.’

나그네로크는 국내에서 성공을 보장 받고 해외에 진출한 것이 아니었다. 일견 도박으로 보이는 대단히 공격적인 방식! 해외에서 동시 출시라는 새로운 형태를 시도했고 대성공이라는 업적을 이룩했다.

‘1년 안에 저 5억이 20억은 될 거로 전망하고들 있다지.’

최근에는 태국과 중국에서도 러브콜을 받고 있다고 한다. 즉, 게임 하나로 순식간에 20억 원의 자산가가 될 예정인 셈이다.

하지만 반대편 인물과 비교하면 이 역시도 부족해진다.

‘뉴 온라인의 조기웅 실장님.’

이 사람은 그야말로 업계 최고의 전설이다. 게임 엔진을 개발하는 사람들치고 뉴 온라인의 조기웅 실장을 모른다면 이제 갓 입문을 했거나,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은 인물이다.

‘3D 게임에서는 모두가 포스트 뉴 온라인을 꿈꾸는 시대니까.’

그는 넷젠의 지분을 10% 보유하고 있는데 이 가치는 무려 200억이었다.

‘200억! 아! 나도 저런 개발자가 되고 싶다.’

게임 개발 하나 잘해서 200억의 자산가가 되었다. 그 때문에 전설이라 하기에 조금도 부족하지 않았다.

물론 이들 전체를 꼬꼬마 수준으로 만드는 한 사람을 좌중이 바라보고 있는 상태였으나, 김대익에게 그는 목표가 될 수 없었다. 개발자가 아니기도 했고 오르기에는 너무나도 높은 산이라서 엄두도 나지 않아서다.

그의 꿈은 조기웅도 아닌 김재용이나 김강철 정도의 네임드 개발자가 되는 것이었다.

- 반갑습니다.

강대에 선 뒤 좌중을 내려다보며 하는 말.

- 회사의 대표인 윤태식입니다.

이를 듣고는 일제히 손뼉을 쳤다. 평소에는 ‘개인 소개인데 왜 벌써부터 호들갑이지?’싶었지만 오늘은 달랐다. 환영하는 마음으로 열렬하게 쳤다.

- ‘왜 이 자리에 모였는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 들으셨죠?”

“네!”

개발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세계관이 명확하다. 보통은 윗사람이 온다고 이렇게 환영하거나 우렁차게 대답하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달랐고 그 이유는 뚜렷했다. 난데없는 유명인사가 아니라 업계종사자들의 우상이 앞에 있기 때문이다.

김대익을 비롯한 개발자들은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자 열심히 경청했다.

그리고 기대만큼 혁신적인 기획안을 들었다. 정확한 의미로는 파격이었다.

- ···우리는 마을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재료를 구해주거나, 상행위 혹은 생존을 위협하는 몬스터를 제거하고 그 부산물을 통해서 장비를 제작. 더욱 강력한 몬스터를 사냥하는 게임을 개발하게 될 것입니다. 레벨도, 스테이터스도 없습니다. 오직 더 좋은 아이템만이 존재합니다.

‘레벨이 없어? 스탯도 없고?’

무조건 수용하려는 마음이었음에도 반문하게 될 정도다.

‘그게 게임이 돼?’

언젠가부터 너무 당연하게 자리 잡은 시스템.

게임을 진행하려면 레벨이 올라야 한다. 일반적인 RPG의 레벨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스킬 레벨과 같은 무언가의 레벨이 올라야만 한다. 그게 게임이고 이게 없으면 게임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 저 남자는 아니라고 했다.

‘말이 안 되잖아.’

이 부분에서 의문을 가지는 것은 김대익 그 혼자만이 아니었다. 여기저기 술렁이는 소리가 들렸다. 이를 본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 질문과 대답. 그것들이 모여서 정말 좋은 게임이 완성된다고 생각합니다. 발언 기회를 드리지요.

‘질문과 대답이 모여서 정말 좋은 게임이 완성 된다니.’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반대의 말이 있기는 했지만, 김대익에게는 윤태식 대표의 저 말이 너무나도 가슴에 와닿았다.

‘나도 언젠가 저런 말을 하는 개발자가 되어야지.’

그가 생각하는 가운데 개발자들이 손을 들고 있었다. 윤태식 대표는 중견 개발자를 짚었고 그가 모두를 대표하여 질문했다.

“과거에는 레벨이 없는 게임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꼭 레벨이라고 칭하지 않더라도 이런저런 형태로 레벨과 유사한 것들이 많이 들어가게 됩니다. 이는 유저의 입장에서 ‘내가 얼마나 성장했는가?’를 가늠하게 해주고 그 나름의 보상 작용을 얻게 합니다. 그런데 레벨이 사라진다면 이 부분에서 만족감이 줄어들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역시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란.’

대충 생각은 들었지만 말로 정리할 수는 없었던 내용. 이 부분이 고스란히 정돈되어 나왔다. 김대익이 ‘나도 같은 생각입니다.’를 생각할 즈음 윤태식 대표의 대답했다.

-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트렌드에 맞춰진 게임, 클리셰를 장착한 할 만한 게임,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게임, 그런 것으로 게임사에 무언가를 남길 수 있겠습니까?

반문이 아니었다. 김대익에게 저것은 통렬하기까지 한 비판으로 들렸다.

1세대 MMORPG에서 가장 큰 성공을 이룬 게임은 누가 뭐라 해도 플레지다. 하지만 1세대 MMORPG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임을 말하자면 MMORPG의 시대를 연 바람의 왕국이 된다.

게임 회사들은 당장 수익을 원한다. 그 때문에 ‘포스트 바람의 왕국’보다는 ‘포스트 플레지’를 외쳤다. 그렇지만 게임사라는 관점으로 보면 플레지가 남긴 것은 ‘크게 성공했다.’가 전부였다.

돈을 매우 많이 번 것. 그게 고작이라는 말.

윤태식 대표가 하는 말은 그것이고 김대익을 비롯한 개발자들의 폐부를 찔렀다.

-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이미 트렌드에 맞춰진 게임은 지겹도록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 이런 시점에서 유저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다시금 물었으나 감히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윤태식 대표는 가만히 개발자들과 시선을 맞추었다. 모두를 침묵시킨 그는 쏘아 보내는 시선들을 마주치며 말했다.

- 의외성입니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참신함. 그리고 창의적인 게임!

‘아!’

- 여러분은 잘 짜인 트렌드를 따라가는, 그저 그런 게임을 만들고 싶으십니까? 아니면 저와 함께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고 싶으십니까?

좌중의 얼굴은 그야말로 놀라움으로 가득 차올랐다.

새로운 도전. 이는 이익을 추구하는 회사로써 함부로 내뱉을 수 없는 말이고 시도할 수 없는 선택이다. 회사는 이윤을 얻고자 한다. 상품은 판매될 때 가치를 갖는다. 게임사에서 게임을 제작하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돈이 되는 상품이라서다.

‘맞아. 그랬었어.’

돈이 되니까 돈이 되는 게임을 만들고 그렇게 일 해왔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동기로 시작하지는 않았다. 참신하고 세상을 놀라게 만들 게임을 개발해보자는 마음. 큰 포부를 품고 시작했다. 그러다가 현실의 벽과 어려움을 마주하고 타협한 것이다.

꿈이 마모되어 태산은 작은 언덕이 된다. 이것이 어른스러운 선택이었다.

그런데 저 남자가 달리 말하고 있다.

‘하자!’

고작 1년 6개월. 그 짧은 시간 동안 가마로 소프트에서 일하며 상실했던 열정에 불을 지폈다. 돈이 되어야 하는 게임 말고 다른 작품을 만들어내자고 한다. 그러던 그가 눈을 번쩍 떴다.

대부분이 열망을 보이는데 일부는 ‘저러다 망겜 되지.’ ‘한 방에 가버릴라.’라며 혀를 차고 있었다. 괜한 반발심이 솟구쳤다. 아울러 저들이 원하는 대답을 저 사람의 입을 통해서 들려주고 싶었다.

크게 뛰는 심장소리를 들으며 그가 손을 높이 들었다.

“질문하나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막내 개발자로서 발언권을 요청하는 일은 좋지 않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행동했다. 이런 패기를 윤태식 대표는 받아주었다.

- 물론입니다.

“대충 게임에 대한 개요를 듣고 오긴 했습니다. 그런데 레벨도 없고 필드도 없는 이런 게임에서 어떤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까?”

- 재미라······.

윤태식 대표는 마치 무언가를 회상하는 것 같은 얼굴을 하고는 기분 좋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 우리는 총 세 가지의 메인 콘텐츠를 연계해서 개발할 겁니다.

“세 가지나요?”

김대익이 본 이 게임은 그냥 사냥, 장비제작, 또 사냥, 장비제작. 결국, 사냥밖에 없는 게임이었다. 그런데 메인 콘텐츠가 세 가지나 된다니?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 간단한 겁니다. 몬스터 프레데터스는 여자들이 즐길 게임이 되지 못할 겁니다. 주요 고객은 늘 남자가 되겠죠. 그렇다면 우리는 주요 고객인 남자들의 성향, 로망, 꿈. 이런 것들을 알고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소 엉뚱해 보이는 대답에 이어 그가 좌중에 물었다.

- 우선 남자들의 로망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부담 없이, 생각나는 대로 말씀해보십시오.

이번에는 할 수 있는 답안들이었다.

“로봇?”

“차?”

멀리 있어서 누군지 알 수 없는 어떤 개발자의 대답이다. 윤태식 대표가 크게 끄덕였다.

- 맞습니다. 남자들의 로망이라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판타지가 배경인 몬스터 프레데터스와는 맞지 않습니다. 자동차를 탈 것으로 대체할 수야 있지만 우리는 필드가 없는 던전 형식의 게임을 개발하니 말 역시도 어울리지 않지요. 그렇다면 무엇이 어울리겠습니까?

프로젝터에는 ‘아지트’라는 명칭이 나타났다.

- 인간은. 특히 남성은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공간을 갖고자 합니다. 또한, 은밀하게 감춰두고 싶은 마음만큼이나 자랑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강하지요. 우리는 게임에 그것을 넣을 겁니다.

그는 처음부터 이런 질문을 받을 것이라 예상하고 나온 게 틀림없었다.

< 새로운 도전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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