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131화 (131/577)

< 새로운 도전 >

*

나는 게이머스 포럼 소속의 모든 팀장급. 그리고 각 자회사의 개발팀장 이상의 인물들을 모두 불렀다. 새로운 식구를 소개하고 설명회를 하기 위해서였다.

“인사하세요. 이제부터 우리와 함께하게 된 팬더그램의 김상윤 사장님입니다.”

“반갑습니다. 김상윤입니다.”

회사에는 이미 팬더그램의 인수로 크게 한 번 술렁였던 적이 있기에 새삼 놀라거나 당황하는 이는 없었다. 또한, 한국은 작은 나라이고 게임 업계는 그만큼 좁다. 개발자들이 워낙 부족한 탓에 서로서로 다들 알고 지내는 사이라서 거창한 소개 같은 건 필요하지 않았다.

곧바로 현재 개발 중인 게임 엔진에 대한 설명회를 했다.

“대표님의 지시에 따라서 순수 우리 기술로 제작했으며 세계 어디를 가도 꿀리지 않을 엔진을 개발하는 것에 총력을 다하였습니다.”

미리 언질을 주었던 만큼 마이크는 김강철 팀장에게 자연스레 넘어갔다. 설명은 지루했고 말하는 방법 역시 요령부득하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게임 개발자들인 만큼 모두가 눈에서 빛을 내면서 경청했다.

“비록 게임 엔진에 대한 개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대표님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아주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그 결과, 사실상 그래픽에 관련된 부분은 거의 완성단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말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는 김상윤 사장을 제외한 모두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거의 완성단계라고요?”

“예. 이번에 들어온 신입들이 그래픽에 관련해서는 아주 확실합니다.”

“놀랍군요.”

“이렇게까지 빠를 줄이야!”

이들의 대화를 호기심 넘치게 듣고 있던 김상윤 사장이 손을 들고 질문했다.

“대체 엔진 개발을 들어간 지 얼마나 되었기에 다들 이렇게 놀라는 겁니까?”

“2개월 됐습니다.”

“네?”

“2개월입니다.”

손가락을 두 개 들면서까지 강조했다. 그제야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김상윤 사장 역시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앞뒤 아무것도 없이, 그냥 2개월이라는 말씀이시죠?”

“네.”

“그게 가능한 겁니까?”

얼떨떨해하는 그에게 김강철 팀장은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현재 그래픽 디바이스를 개발하기 위한 인원만 70명입니다.”

프로젝트팀은 전원 정규직이 아니었다. 프리랜서를 포함한 집단으로 구성했으며 게임 엔진을 제작하는 기간만 계약해서 함께하는 대신, 기간은 정규직보다 좋은 대우를 받았다. 그만큼 지금 우리가 필요한 분야의 경력자만이 참여하고 있다.

실력 미만의 대우를 받던 이들이 함께 모여 총력을 다한 결과였다. 실로 놀라운 시너지 효과를 자랑하는 드림팀이 나타난 셈이다.

“다만 물리 엔진과 범용성을 가지고 있는 툴은 진척이 느린 편입니다.”

“그래서.”

다음으로 마이크는 다시 내게 돌아왔다.

준비했던 포부를 모두에게 밝힐 때였다.

“여러분을 모두 이 자리에 모셨습니다. 우리 게이머스 포럼은 내년인 2002년에 E3에 참가할 계획입니다.”

“E3라면 어떤 게임으로 참가를 하실 생각이신가요?”

“아직 없습니다.”

“네?”

잠깐 사이에 두 번째로 보는 황당한 표정이었다. 참가할 게임조차 정하지 않은 채 일단 참가는 할 것이라고 알리는 대표를 봐서다. 이들의 당연한 반응을 즐기며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그런 게임을 제작해볼까 합니다.”

“지금 김강철 팀장의 말로는 엔진 제작 툴 개발이 늦어진다고 하던데요.”

“그 부분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눠보았습니다. 그 결과, 아무래도 범용 엔진을 개발하는 것은 처음이라 무작정 개발하다가는 시간만 쏟게 될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단순한 엔진 대신 엔진을 활용할 수 있는 게임을 함께 개발하는 쪽으로 선회하였습니다.”

“게임 개발을 위한 프로젝트팀을 만드신다는 거군요.”

통상적으로 거대 게임회사는 게임사가 아래에 스튜디오가 있는 형태다. 하지만 우리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게임을 개발코자한다.

‘엔진이 완성되면 각 회사에서 완성 된 엔진으로 게임을 개발한다. 하지만 엔진이 만들어지는 동안에는 일종의 파견 형식을 사용하자.’

현재 엔진 개발팀에 있는 조기웅 실장과 김재용 팀장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드림팀이라는 카드를 적재적소에 써먹는 거다.

“어떤 게임을 개발하시려는 것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준비한 콘티들을 가지고 함께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정말 고민을 많이 했고 그 바람에 명확히 정답을 내리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그래서 훌륭한 우리 개발자들에게 보여주어서 이들이 선택하는 게임을 개발하기로 했다.

딱 부러지게 정하지 않고 ‘뭘 골라도 괜찮아’라는 여유를 부리는 까닭은 콘티들 전부가 대성공한 게임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년도 별 1위를 점령했던 곡들로만 구성한 알짜배기 패키지라 하겠다.

“첫 번째는 ‘데빌즈 소울’입니다.”

일본의 모 회사에서 제작한 소울 시리즈의 첫 게임이다. 이 시리즈는 이후에 ‘유다희’라는 명칭으로 더욱 명성을 얻게 되는데 ‘어려운 게임!’ 하면 자동으로 떠올리게 되는 시리즈의 대명사가 된다.

“두 번째는 ‘자연의 숨결’이지요.”

서구의 오픈 월드 RPG의 색채를 가지면서도 동양적인 RPG를 만들고 싶다. 그러면서도 일본의 사무라이 느낌이 들지 않는 방식이 뭘까, 고민하다가 꺼낸 카드가 바로 넬다의 전설을 차용하는 것이었다.

양심이 일본 같지 않고 싶다면서 일본산 게임을 가져온 모순점을 지적했지만, 뻔뻔함으로 외면했다.

“세 번째는 몬스터 프레데터스입니다.”

이것도 일본 게임이다. 대형 몬스터를 사냥하고 해당 부산물을 이용해서 더 좋은 장비를 맞춘다. 이를 토대로 더욱 강력한 몬스터를 사냥하고 부산물을 활용하여 장비 업그레이드! 이렇게 오직 파밍, 파밍 또 파밍만 하는 게임이다.

“이럴 수가!”

“정말 새롭군요! 이 모두를 대표님이 구상하신 겁니까?”

‘아니요.’

어떤 질문이 들어와도 막힘없이 대답했지만 이 질문은 조금 뜨끔했다. 그러나 양심이 ‘콕’ 찔러도 나는 끄떡없는 사나이다.

“물론입니다.”

곧 우리 개발자들의 토론이 이어졌다.

“당장 구현을 하기에 자연의 숨결은 조금 어려울 것 같습니다.”

“데빌즈 소울은 너무 어려워서 외면을 받을 겁니다.”

“몬스터 프레데터스는··· 와이번이나 드래곤을 사냥한다는 것을 빼면, 글쎄요.”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이런 파밍만 하는 단순 게임은 금방 질릴 겁니다.”

“그렇다면······.”

이후로도 더 지켜봤는데 내가 원하는 형태의 대화는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이상한 이야기로 단정 짓기까지 한다.

‘이 사람들 이거 왜 이래?’

데빌즈 소울이 어렵기 때문에 외면 받을 수 있다는 건 이해한다. 사실 일본의 게임 시장도 비슷하게 오판하는 실수를 범했기 때문이다. 자연의 숨결을 기술적으로 시기상조라고 여기는 것 역시 이해했다.

그러나 파밍만 하는 단순한 게임이라서 몬스터 프레데터스가 질린다는 것은 얼토당토않았다. 아닌 말로 ‘닥치고 사냥’ 그 자체인 나라가 바로 우리 한국 아니겠는가. 자기 얼굴에 뭘 뱉는지 한참 모르는 게 틀림없었다.

또한, 저들이 나누어야 할 대화가 이런 방향이어서는 곤란하다.

‘몬스터 프레데터스에 대해서 얘기할 거면 타격감을 어떻게 살릴지에 대해서를 고민해야 할 거 아니냐.’

3D 게임은 그 무엇보다 손맛이다. 특히나 논 타깃팅 게임이라면 더더욱 손맛을 어찌 살릴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걸 못 하면 게이머들은 눈을 돌려버리게 된다. 그런데 주력 콘텐츠에 대해 깔아뭉개버리는 방식을 고른다.

끼어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플레지, 뉴 온라인, 나그네로크. 이 셋은 단순히 파밍만 하는 게임이 아닙니까?”

“네?”

“사용자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이나 공성전 같은 것이 있기는 하지만, 글쎄요. 파밍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있는지 알고 싶군요.”

“그건···”

저들의 표정에서 불쾌함이 보였다. 자존심이 상했는데 직장 상사라서 말을 한참 고르는 분위기였다.

살짝 달래주고자 말을 이었다.

“각 게임은 모두 주력 콘텐츠라는 게 존재합니다. 이해하시죠?”

“네.”

“몬스터 프레데터스는 사냥 자체가 주력 콘텐츠입니다. 파밍만 하느냐보다 중요한 포인트는 파밍을 어떻게 하느냐, 인 겁니다.”

“···예.”

대답은 하지만 썩 시원찮았다. 뜻밖으로 감탄할 때도 있지만 어처구니없게 실망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오늘이 바로 그 날이었다.

‘아무래도 아직은 이런 생각이 부족한 것 같네.’

초대박 작품의 기획들이니 개발자들이 열의를 불태우는 것을 아무거나 골라도 된다고 생각했었다. 실력은 출중하지만 기회가 없었을 뿐이라고 자신했기에 정답지만 짚어서 완벽한 성과를 이루어낼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오늘 보고 알았다.

‘어느 정도는 개발에 참여해야겠어. 이 사람들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는 개념이면 다른 개발자들은 더 암담할 거야.’

누가 메인 디렉터를 담당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험난한 고난을 겪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아울러서 게이머스 포럼의 신작이 무엇일지도 답이 나왔다. 가장 익숙한 형태인 파밍조차 저리 수용하지 못하는 패러다임인데 데빌즈 소울은 어불성설이다.

‘물어보고 답하고, 혼자서 북치고 장구는 셈이지만.’

2002 E3 출품 도전작은 몬스터 프레데터스로 결정했다.

그리고 머리를 쥐어짜는 시간이 이어졌다. 개발자들을 이해시키기 위한 구체적 기획안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해시키는 게 이다지도 어려운 일이었다니. 툭 던져도 알아서 잘 받아먹을 때가 꿈 같은 날들이었어!’

내 머릿속에는 몬스터 프레데터스가 또렷하게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 직원들에게는 어떤 형태의 게임인지 정도만 받아들여진 상태였다. 여기서 나타나는 간극을 비유하자면 기막힌 꿈을 꾼 6살 아이가 친구들한테 부족한 어휘력으로 열심히 설명하는 모양이라 하겠다.

자기들이 익숙한 형태로 해석하게 두지 말고 내가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감을 잡을 수 있도록 짚어주고 알려줘야 했다. 내게 부족한 점이 바로 이런 프레젠테이션이었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먹을 때는 ‘앗싸!’ 했지만 이게 안 통하니 그야말로 죽을 맛이 된 것이다.

‘게다가 나는 플레지 골수유저지 몬스터 플레데터스 마니아가 아니었다고! 전에는 소문만 들었다고 나중에 온라인으로 나왔을 때 잠깐 해본 게 전부란 말이야!’

알고는 있으나 디테일이 부족하다. 한 마디로 정보 부족이라 하겠다.

명상이고 나발이고를 해봐야 없는 지식이 나타날 리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이럴 줄 알았다면 세상만사에 두루두루 관심을 두고 살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자주 들었다.

“1 더하기 1보다 어려운 게 1 더하기 1이 왜 2인지를 증명하는 거라더니······.”

‘이게 왜 필요한가요?’ ‘이건 왜죠?’라면서 온갖 ‘왜요?’를 물어보는 사람들을 설득해내는 일. 참으로 녹록지가 않다. 그러나 해야 한다.

우리 회사의 개발자들부터 의구심이 사라져야 게이머들을 이해시킬 수 있는 게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아! 짜증 나. 그냥 머릿속 영상을 통째로 프린트해버리고 싶네.”

홀로 대표이사실에서 몸부림 탭댄스를 춘다. 이후 스트레스가 내려가면 다시 작업 시작!

집중력이 깨질 때까지 붙들고 있다가 사색에 잠겨본다.

‘내가 봐도 진짜 많이 변했어.’

꿈속 미래에서는 평생 컴퓨터를 다뤄보았자 게임을 하는 용도로만 사용해왔다. 그런데 회사를 운영하다 보니 지금은 PPT 등의 워딩 프로세스들을 사용하고 있다. 얻어걸린 행운 같은 능력과는 다르게 이것들은 자신이 배우고 익힌 것들이었다.

“하루하루의 노력이 모여서 특별함을 강화했음이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아~ 이쯤에서 놀고 싶구나. 진수랑 성찬이는 오늘도 플레지에서 느긋하게 놀고 있겠지. 자판기만 붙들었다가 그냥 피자집을 차릴 걸 그랬나? 그런데 인생사 공수래공수거···면 사업을 왜 하겠냐. 쳇.”

차를 마시며 가짜 도사 흉내를 내다가 자멸했다. 그러다 스트레스가 줄어들면 또다시 기획안 작업을 스타트!

‘게임은 결국 아이디어와 아이디어가 얽힌 아이디어의 집약체다.’

내가 떠올린 아이디어를 놓고 생각을 할 때, 과연 이 아이디어는 정말로 좋은 아이디어인가? 이 아이디어가 좋은 아이디어라면 왜? 누구에게 어떻게 좋은가? 과연 좋은 아이디어라면 다 재미가 있는가? 등등의 많은 생각을 고려해야만 했다.

되묻고 답하고 돌아보고 보완한다.

그리고 마침내 결과물을 얻었다.

“이제 가보자.”

< 새로운 도전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