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127화 (127/577)

<정모에서 >

또한 직업은 직업일 뿐, 이 자리에서는 일과 관련된 대화를전혀 나누지 않는 것도 한몫했다. 나이와 직장을 묻는 것은 딱 자기소개의 의미였다.

취미를 글기고 휴식을 취하러 은 여가활동인 만큼 길드원들은 그선을 넘지 않았다. 훅 넘는다손 쳐도 가볍게 흥미위주로 나누어서 어색함을 덜어내는 정도였다.

'같이 있기에 안 어울리는 직업들이 있으니 진작부터 이래왔는지도 모르고.'

자세히 일 얘기 해봐야 좋을 게 하등 없다.

"총 군주님. 한잔 받으시지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사장님. 오늘 우리 때문에 다른 손님들을 못 받아서 어떡하죠?"

"전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돈이야 쓸 만큼 벌었

고 가게는 즐겁게 놀고 그러려고 차린 거거든요. 좋은 사람들이랑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만큼 충분히 만족합니다."

사람들이 하도 많다보니 저마다의 소개를 내가듣는데 만도 시간이 한참 소요된 상태였다. 그 사이 지옥검은 익숙하게 고기를 뒤집고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내며 물었다.

"이제 다 소개 받았으니 너도 좀 알려줘 봐."

"저도 궁금하군요. 총군주님은 무슨 일을 하십니까?"

어차피 작정하고 왔다. 덩달아 질문이 들어오기에 자연스레 대답했다.

"그냥 이 근방에서 1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운영이요?

"아아... 하긴. 오늘 모습을 보니 이해가 되기는 합니다."

미묘한 반응들이었다. 이유를 묻자 심영탁이 자신의 추론을 이야기했다.

"오시기 전에 우리끼리 내기도 하고 얘기를 많이 했었거든요. 대세는 직업 없는 백수가 플레지에 올인하고 있다는

거였고요."

"맞아. 접속해서 귓속말을 하면 항상 풀 접속. 심지어 레벨업 속도는 그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했지. 이건 백수도 완전 백수가 아니면 불가능한 거거든."

"나중에 엠씨와 하신 만렙 인터뷰를 보고 웃었지 뭡니까.

'규칙적으로 게임해서 성공했다'라고 하셔서요. 하하하!"

"미친 듯이 하신 거 옆에서 빤히 봤으니 웃을 수밖에 없지요."

서로 공감하는 옷음이 한 바탕 휘저었다. 물론 저들의 추측은 옳았다. 당시의 나는 백수였으니 말이다.

뒤이은 이들이 꼽은내 직업 2순위도 굉장히 날카로웠다.

심영탁이 짚었던 내 직장은 플레지의 자판기 운영자였다.

"하시는 모습이 영락없이 길마님 판박이었거든요. 기막히게 시세를 딱딱 읽어내는 거랑 네가 공성전에 준비하고 아이템 짚어주는 게 말입니다. 그런데... 조금 지나니 뭐가 안 맞더라니까요?"

"맞아. 꼭 팔아서 남한테 넘겼나 싶을 정도인데 어떤 때는 잘 짚어내기도 하고."

"애매해."

'그렇겠지. 처음에만 흔자하고 나중에는 진수랑 성찬이가 함께 운영했으니까.)

분명히 정답이지만 아쉽게도 들린 답안지였다.

그즈음 지옥검이 말했다.

"이 근방의 회사라면 강남에서 운영한다는 거야?"

"그렇지."

"헐! 강남에서 IT회사면 게이머스 포럼이잖아. 거기를운영한다면 설마 게이머스 포럼의 회장님이었던 거?"

'억? 바로 우리 회사가 나오냐?'

그저 강남과 IT를 합쳤을 뿐인데 이 무슨 미친 통찰력인가!

어쨌거나 정답이 나왔다. 내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살짝 빠르게 담덕이 핀잔을 주었다.

"에이. 지옥아, 너무 갔다. 게이머스 포럼이면 플레지의 경쟁작인 뉴 온라인을 개발한곳인데 거기 회장님이 플레지 최고수에 최강의 길드 총길마라고? 그럴 리가 있겠냐?"

"역시. 그건 좀 많이 갔죠?"

"신소리 그만하고 여기 불판이나 갈아야 쓰컸다."

"넵~"

눈치 주며 더는 파고들지 않는 매너를 보였다.

'캐묻지 않기로 미리 다들 이야기를 마쳤나 보네.'

아무래도 오래도록 내가정모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에대해 나름대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덕분에 처음 각오와는 다르게 굳이 내입으로 애써 밝힐 필요가 없는 상태로 화기애애한 시간을 지냈다.

'나중에 자연스럽게 말이 나오면 얘기해야지.

입담과 먹성 좋은 사람들.

맛있는 요리와 함께 하는 시간이 그렇게 츨러갔다.

"술이 참 다네요."

"우리 가게라서 하는 말인데, 고기도 살살 녹습니다."

"네? 하하하! 정말 그러네요."

비어가는 술병.

나른하게 취해간다. 아직 나누지 못한 게임 에피소드만 으로도 며칠을 지새울 정도로 이야기는 끊이지 않았다.

어느덧 먹성 좋은 장정들이 배를 두드리고 포만감을 만끽했다. 지각하는 인원들을 기다릴 겸, 불참자에게 메시지 를주며시간을 보냈다. 살짝 아쉽게도 진수와 성찬, 구두릉검, 세이하, 검 같은 빠진 멤버들도 제법 있었다.

하지만 오늘만 날이겠는가. 정모는 다음에도 있고 함께하는 한 기회는 언제고 찾아온다. 그렇게 빠진 사람의 허전함은 조금도 느끼지 않으며 풍요를 만끽할 무렵. 지옥검이 말했다.

"이제 다들 든든히 식사를 하신 것 같으니 2차갑시다! 다들 담덕 형님이 운영하는 노래방 다들 아시죠?"

"물론이지~"

"좋지"

"갑시다들!"

"겅모가 좋다!"

2차를 진행한 노래방은 고기 뷔페에서 길을 건너 몇 블

록을 지나면 나오는 곳이었다. 젊은 길드원들이 좋아하는 이유가 이거였다. 나이 지긋한 형님들이 술과 고기를 아낌없이 베풀어주니 자신들은 먹고 마시며 분위기를 신명나게 띄우면 된다.

*

사회생활 최고의 윤활유이자 사람을 들었나 놨다 하는 기술이 있다. 아부가 바로 그것인데 오늘 아주 그 맛을 제대로 즐기고 있었다.

♬I believe in you. I believe in your mind.

벌써 일 년이 지났지만 일 년 뒤에도 그 일 년 뒤에도 널 기다려♬

노래를 짝- 부르면 열화와 같은 환호가 이어진다.

"우와! 대박!"

"총군주님 처음 들어오실 때부터 지옥검처럼 모델인가?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캬아! 노래도 가수처럼 잘 하시는군요! 역시! 대단하십니다!"

"이거 그냥 이런 데 있기는 너무 아쉬운 실력입니다. 이번에 저와 친한 회사 밴드에서 보컬을 뽑고 있는데, 총군주님. 관심 없으세요?"

'비행기 타는 기분이구만! 우리 회사도 보너스 주지 말고 회식 자리를 자주 가져버릴까?'

접대성 회식 문화의 고단함을 잘 알기 때문에 우리 회사는 회식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참가여부도 직원들의 자율성을 보장했다. 덕분에 얼큰하게 술이 취한 상태에서 듣는 원색적인 칭찬과 환호에 다소 면역이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기분이 아주 좋았다. 괜히 왕들이 간신배들에게 농락당한 게 아니다.

모르고 들으면 감격적이고 알면서 들어도 듣기 좋은 게 칭찬이라서다.

'이러다 연예인 되겠어.'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고는 기분 좋게 대답했다.

"제안은 감사하지만 지금도 하는 것들이 많아서 벅차거든요."

진짜로 그 회사 어디에요? 가까우면 서로 만나서 점심도 하고 그러면 좋지 않습니까?"

그러며 자연스럽게 회사명을 밝혔다.

"아까 지옥검이 농담처럼 말했던 회사입니다."

"농담? 아까 지옥이가 어디라고 했었는데요?"

"게이머스 포럼이요."

푸학-!

그 말에 지옥검이 격렬하게 반응했다. 입에서 분무기처럼 맥주가뿜어졌고 졸지에 테이블과 길드원들을 축축하게 적셨다.

'으악!''에이!' '더럽게 뭐 하는 거냐?' 하는 저마다의 반응 속에서 지옥검이 내게 물었다.

"야. 진짜야?"

"뭐가?"

"네가 게이머스 포럼 회장이라는 거 진짜냐고."

나는 앞이 아니라 옆에 있어서 참사를 다행이 피할 수 있었다.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

"정확히 말하면 대표지. 우리 회사는 아직 회장이니 뭐니그런 거 안 만들었거든."

"야. 너. 내가 진짜 관심법으로 지켜본다?"

"이야. 이 멘트 오랜만이네.'

관심법. 태조 왕건이라는 드라마를 통해서 유행하게 된독심술의 이름이다. 술을 마셔서일까. 새삼 '내가 추억에서 살고 있구나.'싶어서 흐뭇한 웃음이 나왔다.

"야! 민증 까봐! 나 완전 진지하다."

말뿐일 따름. 얼굴을 술에 취해서 붉고 빙글빙글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 거울이 없어서 그렇지 나도 같은 모습일 것이다. 그만큼 기분 좋게 서로 취한 상태다.

"여기 있다."

바로 꺼내주었다.

"어디보자~이름이 윤! 태! 식! ...오마이 갓! 지저스! 훌리 셋! 진짜 이름이 똑같잖아! 이거 진짜냐? 남 신분증 들고 다니면 큰일난다?"

"그럴 리가 없잖아."

"우오오!"

같은 방에 있던 인물들이 모두 놀란 얼굴로 나와 지옥검을 번갈아 본다. 다들 취한 상태라 더욱 과장된 반응이었다.

"맙소사. 담덕 형님이 여기서 제일 잘나가는 줄 알았는데 게이머스 포럼이면 밀리신 거 아니에요?"

담덕이 껄껄 웃으며 손을 휘저었다.

"그게 비교가 되냐? 우리 나이트클럽이 아무리 잘나간다고 해도 세계에 게임을 팔아먹는 게이머스 포럼이랑 비교하면 그냥 동네 술집이야."

율리아나 나이트 클럽은 직원만 해도 200명이 되고 연매출액도 300억이나 되는 이 시대 유흥의 메카다. 절대로 동네 술집 수준으로 낮춰 부를 수 없다.

그 너스레에 나 역시 극구 부인했다.

"아직 그 정도는 아닙니다."

진담이다. 나중에는 어마어마해지지만 아직은 크게 자랑할수준이 되지 못했다.

"어쩐지. 딱 들어오실때부터 대표님 카리스마가 확 느껴졌다는 거 아닙니까."

"몸에 배어 든 여유라고나 할까?"

이제는모든 대화가게이머스 포럼을 거치는 방법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대형 경쟁사의 대표자가 이렇게 대놓고 플레지

를 해도 되는 거냐?"

"어차피 회사 간부들은 다 알아."

"진짜?"

"내가 괜히 구운몽 인터뷰를 게이머스 포럼에서 했겠어?

이미 다 알고 짜고 치는 거야."

"역시 우리 총군주님. 확실히 다르십니다. 가수로 유명해질 것 없이 그냥 연예인들을 고용하는 위치라니요!"

아낌없는 칭찬 퍼레이드에자존감이 하늘까지 치솟았다.

반면에 지옥검은 속이 쓰린 기색이었다.

"이러면 그동안 템 사느라트레이더스 포럼을 이용한 게 다 총군주님 배불려 주려고 한 게 되는 거잖아!"

"기왕 돈 쓰는 거 엉뚱한 사람 배불리는 것 보다는 우리총군주님 배불리는 게 낫지 뭘 그래?"

"어? 그건 또 그러네."

그는 금방화내는 만큼 순식간에 꺼지는 단순명쾌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소식은 빠르게 움직인다. 40명에 가까운 인원이 한 방에 있을 수 없었으니 노래방 곳곳에 길드원들이 분산된 상태

였다. 막내인 범이는 다른 길드원들에게 이 엄청난 소식을 전하겠다며바쁘게 여러 방을 돌아다녔다.

녀석이 어디에 들렀는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월드컵 경기에서 골을 넣을 때의 관객들 반응처럼 특정 방향에서 우와아-!소리가 났기 때문이다.

'그래도 소문이 퍼져서 이득 될 것은 없으니까. 아직은 입조심을 당부해야겠구나.'

지금까지의 관계는 물론이고 아까의 매너까지 보건데 비밀 유지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고 생각하던 그때였다.

발달한 내 청각이 바깥에서 일어난 소란을 감지했다.

'뭐지?'

자리에서 일어나문을 열어보니 덩치 좋은 4명의 사내들에게 범이가 둘러싸인 모슴이 보였다. 겁을 먹어서일까. 녀석은 달큰하게 취했던 술이 확 깬 표정이었다.

집중하자각양각색의 노래와 반주 사이로 저들의 대화가

들렸다.

"이 노래방이 너희 거냐? 이런 식으로 시끄럽게 떠들고 그러면 다른 손님들에게 피해가 와? 안 와?"

"이 친구가 참 개념이 없네. 이거 은근히 영업 방해인 거알아 몰라?"

'에고. 범이가 쫄았네.'

저렇게 당할 것 없이 방 쪽으로 오기만 하면 다 해결이 된다. 나쁜 놈들 때려잡는 사람부터 저들의 대선배격인 형님도 있다. 하지만 당황하면 이거고 저거고 떠올리지 못하는게 사람이다.

'도와줘야지.'

여기서 나는 평소랑 다른 선택을 했다. 술에 취하기도 했겠다, 그간 운동이나 하면서 아껴뒀던 힘도 써볼 생각이 든것이다.

'내가 반은 초능력자라고. 이 짜식들아.'

취해서 부리는 객기이자패기!

어쩌면 꾹꾹 잘 참아왔던 내 본성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99강화를 할수 있음에도 자제하듯이신체능력이 뛰어남에도 조절하고 있던 자물쇠가 툭 풀렸다. 우리 길드원을 위하여 플레지의 구운몽처럼 이 몸이 직접 해결해주겠다!

"그만들 하시지요?"

때릴 것처럼 치켜든 상대의 손목을 잡았다.

<정모에서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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