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109화 (109/577)

110.< 클로버 스팅 >

*

일을 맡기고 나흘이 지났을 때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넵! 대표님.”

입구에서부터 사무실까지로 이어지는 발걸음 내내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는 데 김

지애 팀장이 따뜻한 커피를 내게 내밀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대표님!”

“고마워요.”

날이 많이 따듯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아침은 조금 쌀쌀한 편이다. 그 때문일까,

사무실로 손에 쥐어진 커피의 따스함과 향으로 제법 기분이 좋아졌다.

‘호의가 반복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말은 참 맞는 말 같아.’

선물 같아서 더 그럴는지도 모르겠다. 자주 그녀에게 받다보니 이제는 없으면 아

쉬울 정도다. 이런 걸 보면 사람 마음은 편한 대로 적응해버리는 게 틀림없었다.

커피 심부름을 없앴는데 자발적으로 받다보니 이 맛에 길들여졌다. 출근 때 안 주

면 무진장 섭섭하고 ‘무슨 일 있나?’싶을 것이다.

“대표님. 지난번에 맡기신 일말입니다.”

“손누리 말이군요?”

“네. 이한솔 대표와 연락이 되었습니다.”

“와아 벌써요?”

대단해서 놀랍다는 리액션이 저절로 나왔다. 그런데 신속 정확하게 일을 진행한

그녀의 표정은 썩 밝지 않았다.

“네, 대표님. 그런데 손누리 측에서는 우리와 별다른 대화를 할 생각이 없어 보입

니다.”

“생각이 없다?”

이야기가 이어질 듯하여 대표 이사실에서 마저 대화했다.

“해당 업체에서는 이제 막 오픈 한 투가튼 사가2 온라인과 조만간에 출시할 예정

인 발렌타인 데이도 있어서 저희 업체의 도움 없이 스스로도 잘할 수 있다, 라고 합

니다.”

“잘 할 수 있다··· 글쎄요.”

나로서는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다.

‘이건 못 막으려나.’

작년 말에 손누리는 크라비티와 협업으로 제작한 액트러스를 대차게 말아먹었다.

그래서 쉽게 일을 추진할 수 있으리라고 여겼는데, 아무래도 아직은 아니었나 보다.

‘하긴, 국내 게임사 중에서 10위권 이내에 들어가는 곳이니 여력이 남았겠지. 얼

마든지 더 성공할 수도 있다 믿을 테고.’

남은 두 게임.

두 번의 기회.

이런 가능성이 있는데 굳이 이익을 우리와 나눌 이유가 없기는 할 것이다.

‘그런데 기대치랑 현실은 전혀 다르거든.’

희망찬 미래를 꿈꾸는 손누리지만, 그들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

대한민국 패키지 게임의 양대 산맥 중 하나였던 그들이 제작하는 게임들은 1997

년도에 발매한 투가튼 사가 이후로 몽땅 망한다. 조금의 과장도 없이 시원하게 말아

먹는다.

“어쩔 수 없네요. 그래도 나중에 생각이 달라지면 다시 이야기 하자는 여지 정도

는 남겨두세요.”

“알겠습니다.”

“단, 많이 기다려봐야 1년만입니다. 이보다 늦어지면 우리 입장에서 손누리와 손

을 잡을 이유가 전혀 없어집니다.”

그 말에 눈을 반짝인 그녀가 내게 물었다.

“대표님께서는 손누리의 두 상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를 듣고 싶습니다.”

시작부터 회계 다음에 게임으로 발전된 타입이라서일까.

그녀는 작품이라는 표현을 하지 않았다.

게임은 상품이다. 단어적으로만 그렇게 인식하는 게 아니라 시장에 내놓았을 때

는 철저하게 이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 옳다.

“바로 그 점이 부족해서입니다. 상품을 제대로 못 팔 테니까요.”

“네?”

웃으며 커피 한 모금을 마신 뒤 대답했다.

“우선 투가튼 사가2 온라인부터 말하자면, 이 게임은 네임벨류가 악영향을 끼칠

겁니다.”

“높은 기대치를 충족시키기에 모자라다는 말씀이신가요?”

“바로 그겁니다. 팬이라면 하는 순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내 첫 사랑이 없어

졌구나.’라는 것을 말이지요.”

그녀의 표정에 미소가 그려졌다.

뭔지 모르지만 만족스러워 하는 것 같다.

“손누리가 간과한 게 어떤 건가요?”

“이 온라인 게임은 투가튼 사가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어야 합니다. 또한 개발

사가 손누리가 아니었어야만 됩니다. 그랬다면 가능성이 있었을 겁니다.”

투가튼 사가2 온라인.

시원하게 말아먹는 것은 물론 대한민국 RPG의 한 획을 그었던 투가튼 사가의 이

름마저도 바닥에 가라앉힌 게임이다.

유저들은 전설적인 네임벨류가 사용된 만큼 높은 기대를 하였으나 해보는 순간

‘시벌. 내 추억!’이라는 사실을 직감한다. 그 실망감 때문에 광속으로 이탈해버리고

게임 자체가 망해버렸다.

“발렌타인 데이는 무슨 문제가 있나요?”

“발렌타인 데이는···”

말하다가 아차 싶었다.

‘나오지도 않은 게임인데 이걸 내가 다 알고 있으면 말이 안 되잖아.’

미래를 아는 만큼 나는 발렌타인 데이에 대해 두루두루 정통하다.

장르는 호러.

발매 이후 대단한 이슈를 불러왔던 게임이자 비운의 역작이기도 하다.

현 시대로서는 혁신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무력한 주인공이 나와서 피하고 도망

쳐야 하는 방식.

참신한 퍼즐과 그래픽의 한계 덕분에 오히려 실감나게 연출된 귀신들에 이르기까

지 플레이하면 재미와 참신한 공포를 숱하게 느낄 수 있다.

‘물론 고백하려고 학교에 잠입한다거나 일본식 전개방식과 스타일을 완전히 못

버리는 것

등등이 있지만 명작이지. 젠장! 내가 조언만 해줄 수 있으면 우선은 교복부터 가

쿠란 말고 한국식으로 바꾸라고 했을 텐데. 무슨 계백 장군이 일본도를 들고 싸우는

것도 아니고.’

하여간에 골수 게이머라면 이 게임에 대한 애증은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너무나도 잘 만든 공포게임이라서 ‘무서워서 오히려 안 팔렸어요!’라는 루머까지

있는 게임. 그러나 사실은 한국 유저들이 저작권이라는 것의 인식이 부족하여 ‘구매

하면 병신. 불법 다운로드하면 정상’으로 여겼기 때문에 안 팔려서 망한 역사가 있

다.

‘그래서 나중에 리메이크 작을 미안해서 구매했는데··· 울고 싶더라. 하여간 이 회

사는 자기 작품들에 애정이 있는지 없는지 도통 모르겠어. 왜 말로는 사랑하는 내

자식이라면서 스스로 관 뚜껑을 닫아서 파묻는 거냐고.’

과거에는 미안했고 미래에는 속상해지는 게임이었다. 그렇다고 대뜸 ‘이것들이라

도 고쳐줘!’라는 오지랖을 밟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어쩌겠는가.

뉴 온라인에 자극받아서 반은 각성한 엠씨 소프트처럼 변화가 있기를 소심하게

기도해줄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다가 빤히 보는 시선을 느꼈다.

‘맞다 대화중이었지.’

얼른 말을 이었다.

“한국의 패키지 시장은 무너집니다. 인터넷으로 손쉽게 다운을 받을 수 있고 그

럴수록 게임 경험자는 많지만 정작 수입은 없는 형태가 되거든요.”

“아! 반면 온라인 게임은 결제를 해야만 플레이할 수 있는 거네요!”

“맞아요. 그리고 이 문제를 손누리가 자체적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요?”

“어렵죠. 정말로 어려울 거예요.”

‘응? 진짜 뭔 일 있었나?’

굉장히 좋아한다. 그렇다고 ‘복수해줄 거야!’라는 정도는 아니고 뿌듯해하는 느낌

이었다.

‘꼭 우리 가족이 알고 보면 ‘엄마 친구 아들’ 수준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 같은데

···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허튼 생각을 치워버리고는 뒤이어 말했다.

“하지만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고 손누리 역시 두 게임에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지금 손을 잡으려는 것은 우리가 출혈을 감수해야한다는 건데, 그 정도까지는 필요

없어요. 이는 소프트 메가를 고려하지 않은 이유와도 같습니다.”

영영 손을 잡지 못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손누리와 함께 대한민국 패키기 게임의 자존심을 지켜왔던 회사이며 오래 버틸

수 있는 자금력과 능력, 기술력을 두루 갖췄기에 우리를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 대표님!”

답변이 만족스러웠는지 대답이 경쾌했다.

고진환 팀장의 보고는 생각보다 늦게 받았다.

김지애 팀장과 대화한 지 사흘이 더 지난, 일주일째가 되어서야 보고를 받았다.

“크라비티는 현재 새로운 온라인 RPG를 기획하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대표님이 말씀하신 나그네로크가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올해에 오픈하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직은 이름조차 공개를 하지 않은 시점

이었구나.’

아무래도 유저로서 게임들을 접했다 보니 개발사의 일정과 내가 플레이한 타이밍

이 여러모로 혼재된 것 같다.

하기야 나는 플레지를 제외하고는 몇 월 며칠에 어떤 패치가 이루어졌는지 빠삭

하게 아는 게임이 없다. 그래서 꿈을 꾸자마자 돈을 벌기 위해 플레지부터 했던 것

아니겠는가. 누구보다 잘 아니까 말이다.

이리 생각할 즈음 고진환 팀장이 말했다.

“그런데, 대표님. 크라비티는 꽤 폐쇄적인 회사라서 내부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

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여기도냐?’

텐션 때와 비슷하게 두 사람을 보내고 그냥 인수 과정으로 들어가면 될 것이라 예

상했는데, 상황이 예상과는 꽤 다르게 돌아갔다.

물 건너의 중국 쪽이 오히려 더 쉬울 정도였다.

하지만 어디에나 우회로는 존재한다.

“김지애 팀장이 담당했던 손누리가 크라비티와 친분이 있습니다. 김지애씨와 협

업하도록 하세요.”

“네, 대표님.”

고진환 팀장이 나가고 의자에서 팔베개를 한 채 몸을 눕혔다.

“거 참 쉽지 않네.”

하는 수 없다. 원래는 따로따로 일을 맡길 계획이었지만 이렇게 되면 두 사람에게

공동으로 맡길 수밖에. 회사를 맡기기에 누가 적합한 인재인지 알아보려 했지만 지

금은 이런 테스트를 할 때가 아니었다.

‘손누리는 몰라도 크라비티는 확실하게 끌어들여야 해.’

사실 손누리와 크라비티와 접촉하려고 한 이유는 액트러스의 캐릭터들 때문이었

다.

클로버 스팅의 아바타에 가장 적합한 IP들이어서인데, 이 액트러스의 저작권을 손

누리와 크라비티, 그리고 크라비티의 핵심 개발자인 임학규가 소유했다. 때문에 셋

이 함께가 아니라면 아무도 사용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손누리는 불발이 나버렸지. 둘 다 갖는 것이 베스트지만, 이러면 차선이

라도 골라야 해.’

이것이 둘 중에서 하나를 꼽자면 나그네로크를 개발한 크라비티가 훨씬 중요한

첫 번째 이유다.

‘그리고 크라비티 쪽이 훨씬 저평가 됐단 말씀.’

회사의 가치가 손누리보다는 크라비티가 한참 낮다.

게이머들 사이에 전설로 치부되는 이야기 중 하나가 크라비티를 인수한 진정률

대표가 ‘5억을 투자해서 5,000억을 벌었다’는 것이다. 이는 출시 전인 현재 시점을

대입하면 ‘5,000억짜리를 5억에 살 수 있다!’는 답이 나온다.

문제는 크라비티를 보유한 진정률 대표가 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과연 팔겠느

냐는 것.

“이건 충분히 가능성 있지.”

열정과 꿈을 가진 개발자는 게임을 작품이자 핏줄로 여긴다. 반면에 상품으로 대

하는 투자자는 수익과 이윤을 최대로 본다.

내가 아는 한 진정률 대표는 전형적인 사업가 스타일이다.

게임의 완성도보다는 무조건 이익을 우선한다.

‘즉, 돈으로 충분히 설득할 수 있다는 말씀.’

자신한다.

돈만 보고 사는 이들에게 열정과 청춘은 가성비 좋은 연료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

게임을 좋아하고 관성처럼, 일상처럼 즐기다보면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 내가하는 게임은 얼마나 인기가 많을까?

- 이 게임의 개발자는 얼마나 대단한 사람일까?

단순히 여흥이나 취미를 넘어서는 발화점.

내가 즐기고 있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찾고 싶은 시기가 찾아오게 된다.

나 역시 그러했다.

플레지를 한창 즐기던 어느 날, 문득 이와 같은 호기심이 찾아왔다.

우리는 스스로 ‘IT코리아!’ ‘게임 강국 대한민국!’이라고 자부한다. 그렇다면 자랑

스러운 우리 대한민국의 게임과 게임 개발자들은 전 세계적으로 얼마나 인정을 받

고 있을까?

기사들을 검색하고 알아보았다.

그러다 2009년 어느 날, 미국의 유명 웹진에서 해당 내용을 찾을 수 있었다.

기사가 영문이었기 때문에 나의 부족한 독해력으로는 모든 내용들을 완벽하게 해

석해내지 못했다. 단지 그 안에 들어 있던 내용이 정확히 무슨 내용이었는지 정도를

아는 단어에 껴맞춰서 추측하면서 읽었을 뿐이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자랑스러운 한국인 개발자의 이름들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그들의 순위는 과연 몇 위 쯤 할까, 정도였다. 때문

에 엉터리 영어 독해라 해도 크게 문제되지는 않았다.

다만 문제는 오히려 전혀 다른 부분에서 발생했다.

“100위권 이내에 단 한 명도 없었어.”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별 일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자부심을 찾고 그 근거가 필요

했던 당시의 내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자칭, 타칭 게임 강국인데 유명하고 인정받는 개발자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꼭 플레지가 아니더라도, 최소한 내가 아는 게임 중 누구라도 속해있을 줄 알았

는데, 정말 없었지.’

그 때부터 나는 우리가 자랑스럽게 이야기는 ‘게임 강국’이라는 표현을 스스로 다

듬어서 이해했다.

- 잘 플레이 한다.

잘 만들고 잘 한다, 에서 후퇴한 개념이었다.

그러다가 화가 치밀고 참을 수 없는 궁금증이 솟구쳤다.

분명히 한국의 온라인 게임은 전 세계에서도 상위 랭크에 들고 점유율 역시도 높

다.

그런데 왜 세계가 인정할 만한 게임 개발자는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 클로버 스팅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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