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107화 (107/577)

108. < 운영자의 요청 >

켄헬 서버의 GM. 박태양이 그리 결단을 내렸을 무렵.

구운몽이 당당한 태도로 메시지를 띄웠다.

- 구운몽 : 어떻습니까? 저희의 사냥 방법이?

‘지나치게 의연한데. 자신들이 버그를 쓴 줄 모르는 건가. 하긴, 그랬다면 관전하

라는 말을 하기 보다는 오히려 숨겼을 테지.’

안사락스의 빈틈을 발견한 것은 칭찬해줄 일이었다.

그의 게임 센스는 과연 높이 살만하다.

하지만 버그는 누가 뭐라 해도 버그다.

박태양은 이 점을 짚어주며 당장의 사냥이 잘못된 것임을 말하려 했다.

- GM켄헬 : 잘 보았습니다만, 방법에 대해 바로 대답해드리기는 어렵겠군요. 현

재 안사락스가 스킬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버그를 발견했습니다.

- 구운몽 : 버그라니 무슨 말입니까?

- GM켄헬 : 예컨대 브레스를 들면 될 겁니다. 처음 구운몽님을 쫓을 때에는 계속

사용했지만 자리를 잡은 직후부터는 단 한 차례도 쓰지 않았습니다.

위치 때문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지 이제 확인할 요량이었다.

그런데 구운몽이 오히려 되물었다.

- 구운몽 : 패턴 아니었습니까?

- GM켄헬 : 패턴이요?

- 구운몽 : 안사락스는 타깃이 원거리에 있으면 스킬을 사용한다, 근접했을 때는

육박전으로 진행된다. 이는 특정 장소에서 발생하는 버그 현상이라기보다는 안사락

스의 특성으로 판단했습니다.

- GM켄헬 : ······.

- 구운몽 : 의도해놓은 공략법인 줄 알았는데 그게 오류였습니까?

캐릭터가 아니라 실제로 대면한 상태였다면 당황한 모습을 역력하게 보일 뻔 했

다.

- GM켄헬 : 그렇다면 구운몽님이 물러섰다면 스킬을 바로 사용했겠군요?

- 구운몽 : 물론입니다. 바로 브레스를 사용하더군요. 이렇게 공수 전환이 자연스

러운데 패턴이 아닌 버그였다니. 이거 참, 오히려 제가 의심이 되네요. 정말로 오류

인지 공략당한 것에 대해 급하게 나온··· 음! 이 부분은 저의 추측에 불과하니 그만

하기로 하겠습니다.

- GM켄헬 : ······.

한 마디 해주려다가 오히려 된통 당했다. 결국 구운몽에게 변명을 하고서 레이드

관전을 마칠 수 있었다.

이후 박태양은 바로 움직였다.

“형욱아.”

“네? 부르셨어요?”

현재 이실 서버의 운영자인 그는 서버 수가 적던 예전에는 박태양의 밑에서 보조

운영자를 했던 이였다. 어리둥절한 그에게 다짜고짜 말했다.

“네 서버에서 안사락스랑 한 번 싸워봐.”

“죽이라고요?”

“아니. 그냥 가서 근접전으로만 붙어봐. 쉽게 때려잡으라는 게 아니라 한 1분에서

2분 정도만 싸워봐. 근접전이어야 한다.”

“네.”

구운몽이 거짓말을 했을 확률은 매우 적다. 하지만 박태양은 엄연히 플레지라는

게임에서 한 개 서버를 담당하는 메인 GM이다. 사실여부를 직접 확인해야 하고 단

순 버그가 아닌 설계상의 오류였다면 이를 개발팀에 연락해서 수정을 해야 할 의무

역시 가지고 있었다.

곧 후배의 ‘GM이실’ 캐릭터가 안사락스와 싸우기 시작했다.

안사락스는 구운몽 때와 마찬가지로 발톱으로 공격하며 육박전을 벌였다.

“조금만 도망 쳐 봐.”

“네.”

아니나 다를까.

‘GM이실’이 안사락스와 거리를 벌리자마자 녹색의 브레스가 화면을 가렸다.

박태양이 인상을 찌푸렸다.

“진짜네.”

“네? 뭐가 진짜에요?”

“너. 지금 안사락스 상대하면서 이상한 거 못 느끼겠냐?”

“글쎄요?”

‘이런 한심한 녀석을 봤나.’

어떤 유저는 물약을 먹어대는 아슬아슬한 싸움 속에서도 단번에 파악해서 용 사

냥을 널어둔 곶감 빼먹듯이 입맛대로 씹어 삼키고 있는데 이 녀석은 운영자 캐릭으

로도 눈치 못 챘다.

“다시 붙어서 싸우고 그러다 물러나봐.”

“네.”

열심히 녹색의 연기를 뿜어대던 안사락스.

‘GM이실’이 근접하자 다시금 앞발질만 반복했다.

저러다 거리를 벌리자 다시 브레스를 뿜었다. 이렇게 두 번, 세 번을 봤는데도 모

르면 바보일 것이다.

“이놈 이거. 붙으면 스킬을 안 쓰네요? 형님. 이거 어떻게 아셨어요?”

“회사에선 과장님이다.”

“아. 네. 과장님은 이거 어떻게 아셨어요?”

“구운몽이 알려줬어.”

“네?”

“구운몽. 몰라?”

슬쩍 짜증까지 비치자 형욱이 재빨리 대답했다.

“알죠. 플레지 전섭 1위. 이 사람은 플레지 안 하는 사람들도 꽤 들어봤을 걸요?”

“그 사람이 이걸 이용해서 안사락스를 잡은 거더라.”

“예? 겨우 이거 가지고요?”

“겨우라니?”

무슨 말이냐는 박태양에게 형욱이 자신의 모니터를 가리켰다.

“제 캐릭터 좀 보세요.”

초창기의 플레지에서는 운영자도 체력이 0이 되면 사망했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서 이래저래 사건사고가 생기다보니 현재는 1보다 아래로 떨어질 경우 순식간에 풀

체력이 되는 방식으로 변화한 상태다.

“제 장비가 +9 카타르에 ?52방입니다. 이 장비가 이실 서버 최고수인 거 아시잖

아요. 그런데 피 다는 속도 보이시죠?

엄청난 속도로 줄어들었다가 빠르게 채워지는 게 실시간으로 보였다. 브레스가

없더라도 안사락스는 무지막지하게 강력하다.

“이런 상황인데 일반 유저가 버티면서 잡았다고요?”

“하던데?”

“···걔는 뭘 끼고 있데요?”

“방패 빼도 너보다 방어력이 높지.”

“헐!?”

형욱이 화들짝 놀라서는 주위를 살폈다.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과장님. 혹시 그 유저에게 돈 받고 장비 팔아주고 그런 거 아니죠?”

“···이 새끼야. 너 뒤질래? 그렇게 회사 떠난 사람들이 몇인데 내가 그 미친 짓을

하냐!?”

사실 박태양의 경력이면 이제 겨우 대리여야 한다. 그럼에도 그가 과장이 된 것은

윗급 전부가 아이템 판매와 같은 불법적인 사건을 벌이다가 들통 나서 대거 물갈이

가 되어서였다. 그러니 그의 입장에서 형욱의 말은 ‘선배님. 퇴직하시고 그 자리 물

려주시죠?’와 동급이었다.

“아이고. 그냥 장난으로 한 말인데 왜 그러세요.”

“장난으로 맞다이 떠볼까?”

“···우와! 구운몽 참 대단하네요. 도대체 뭘 끼면 방어가 저런데요? 한 번 봐도 돼

요?”

“꺼져.”

박태양이 딱 잘라서 거절했다.

가뜩이나 장비 아이템과 관련해서 서슬 퍼런 퇴직의 칼날이 왔다 갔다 한 마당이

다. 이런 판국에 그 말도 안 되는 것들을 보여주면 형욱이 뭐라고 소문을 낼지 모른

다. 나쁜 마음이 없더라도 이건 결코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개인정보 함부로 유출하는 거 아니야. 남의 서버 캐릭터에 관심갖지 말고 자리

로 가라.”

“에이~ 뭐 어때요. 운영자끼리인데. 진짜 신기해서 그래요.”

“앉아서 일이나 해.”

“우와 진짜 치사하시네. 그냥 장비 좀 보면 그게 어때서.”

“안 돼.”

능청스럽게 계속 보여 달라 요청하는 형욱의 말을 철저하게 거절해서 돌려보냈

다. 다음으로 개발팀의 CP에게 메시지를 전송했다.

『안사락스 수정 요청

- 근접 전투 돌입 시 스킬 사용 없음.

- 체력에 따른 버로우 없음. (확인 완료)』

이것으로 자신이 해야 할 조치는 취했다.

이후 며칠간 켄헬 서버의 용던 7층은 당분간 주인이 없는 빈 공간이 되었다. 박태

양에게 다행이었던 점은 ‘정상적인 사냥법이기는 하지만 스킬을 사용하지 않는 부

분은 수정해야 한다.’는 말을 구운몽이 흔쾌히 수락해주었다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증발해버린 안사락스 탓에 한 가지 소문이 커뮤니티 사이트를 도배하기

시작했다.

【님들! 안사락스 잡힌 거 아님?! 왜 켄헬만 없음?】

【켄헬이면 거기잖아. 전섭 최강 있는데.】

【대박! 용이 용 잡았다! 분명해!】

【쉬발. 우리 길드 전멸함. 이거 어떻게 잡은 거임?】

이를 보는 진수와 성찬의 표정은 시원섭섭 그 자체였다.

“그렇게 비밀 유지를 하려고 애를 썼는데, 젠장할 운영자 때문에 다 허사가 됐네.”

“아무래도 우리의 최대 적은 영자같아. 아이고 내 돈줄!”

“뭐~ 그렇지. 인생사 그런 거 아니겠냐.”

내 대꾸에 부들부들 떨던 두 친구가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뭐냐? 너 무슨 좋은 일 있지?”

“왜 너님만 도통한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 보여? 엄청 기분 나쁜 상황이잖아.”

“에이. 마음을 넓게 가져. 업그레이드 돼서 오면 또 재밌고 그런 거라고.”

“말은 맞는데··· 거참.”

“···저 자식이 뭐 잘 못 먹었나?”

영문을 모르는 진수와 성찬이지만, 내가 태연자약한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이게 바로 우산이랑 짚신을 동시에 파는 장사꾼의 마음이란다. 흐흐.’

유저로서 게임을 할 때는 안사락스를 잡아서 좋고 꿀처럼 달콤한 아이템들을 한

껏 먹어서 배불렀다.

반대로 안사락스가 없어지고 큰 이슈가 터지면 다른 쪽에서 흥이 난다.

- 대표님! 안사락스 공략에 대한 소문이 돌기 시작하고부터 게이머스 포럼의 이

용자가 20%나 폭증했습니다.

아무리 광고를 해도 스타 드래프트 대회 이후로는 적자를 면치 못하던 게이머스

포럼. 이곳의 이용자가 급증해 버렸다. 덕분에 흑자로 전환했다.

뿐만이 아니다.

- 대박입니다! 트레이더스 포럼의 매출이 급등하고 있습니다!

원래 올림픽 100미터 달리기도 인간 한계가 10초 라 했었다. 그러나 1960년에 달

성자가 나온 이후로는 9초대가 빈번하게 나와 버린다. ‘불가능해’에서 ‘할 수 있어’가

된 것이고 게임 내에서도 유저들의 도전정신을 자극해버렸다.

그러니 용에게 도전할 스펙을 맞추고자 현금을 쏟아붓게 된 것이다.

이로서 반사이익을 누리게 되었으니 즐겁지 않을 리가 있으랴.

‘회사만 생각하면 흡족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느니라.’

이 이야기를 진수와 성찬이에게 해봐야 약만 올리는 것이 된다. 그래서 나는 ‘헛

헛헛’웃으면서 한껏 여유만 부리는 중이었다.

“흐름이 참 좋잖아. 이제 여기에 방점을 찍어보련다.”

“뭔데?”

“내가 잡은 거라고 확실하게 인터뷰하는 거지.”

안사락스가 공략 되었다는 정보는 공개되었고 ‘구운몽이 했을 것’이라는 강한 추

측을 하는 중이기는 했다. 하지만 90%의 예측과 100%의 확신은 엄연히 무게가 다

르다.

“게이머스 포럼 단독 인터뷰를 진행해볼까나~”

“···이게 오른손이랑 왼손으로 가위 바위 보 하는 거랑 뭐가 달라?”

“너님 짱이다.”

“멍청하기는. 그걸 이제 알았냐?”

“재수없어!”

현재 안사락스는 20개가 넘는 서버에서는 매일 같이 도전했지만 최정예는 물론

이고 최대 100명에 이르던 연합 단위 레이드도 실패하는 중이다. 도저히 잡아낼 수

없을 것만 같은 이 난공불락의 몬스터를 어떻게 잡았을까.

질투로 배가 아프면서도 관심을 갖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 시점에 게이머스 포럼에서 인터뷰 기사가 올라왔다.

《최강의 몬스터 안사락스를 정벌한 플레지 최초의 드래곤 슬레이어 구운몽

? 게이머스 포럼 단독 인터뷰》

거창하고 쓸데없이 길게만 만들어진 제목.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 글 하나에 열광했다.

《처음에는 별로 못 미더웠다.

게이머스 포럼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지만 솔직히 드래곤이라는 존재를 사냥하는

것은 너무 머나먼 사건 같았다. 그래서 오히려 별다른 감흥이 생기지 않았다.

뭐라고 해야 할까?

그냥 ‘잡았으면 잡았나보지.’ ‘드래곤 슬레이어면 고급 아이템이 엄청 나왔겠네?’

‘떼돈 벌었겠다. 부럽다.’ 정도였고 문득 배가 아픈 것 같기도 했다.

아니 솔직히 고백하기로 한다.

배가 많이 아팠다.

그러다가 문득 그 대단한 주인공이 누군지 물어봤고 당사자가 ‘구운몽’이라는 것

을 들었을 때부터 내 머리가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플레지 최대의 이슈메이커!

플레지의 모든 타이틀을 가졌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사나이!

또 다시 그를 취재하게 된 것이다.》

내용은 대충 이런 사설로 시작해서 어떻게 용을 잡을 생각을 했느냐 등의 별 것

아닌 질문과 대답들로 채워져 있었다. 공략법을 상세하게 공개하는 바보 같은 일은

결단코 하지 않았다.

지금의 이슈 몰이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대신 사람들의 눈요기를 제대로 충족

시켜줄 안사락스의 보상 아이템 일부와 안사락스가 쓰러진 스크린 샷을 공개했다.

‘아이템 전부를 보여줄 수는 없지.’

몽땅 보여줬다가는 단순한 질투를 넘어서서 ‘줄여라! 너프해라!’는 여론이 생길 것

이다. 내가 못 먹을 것이면 너도 먹지 마라! 는 의도다.

대신 사람들이 신기해할 만한 신규 아이템인 축복받은 싸울아비 장검과 일반 싸

울아비 장검. 이 두 가지를 획득했다는 것 정도는 확실하게 스크린샷과 함께 공개해

주었다.

그리고 게이머스 포럼은 서버가 감당하기 어려우리만큼의 고객들을 맞이하게 되

었다.

- 님들아! 안사락스가 그렇게 강력한가여?

- 두말하면 잔소리져. 딥따 쎄여! 어지간한 40렙 고수들도 한 방이면 죽는다던데

요?

- 구운몽님이니까 몸빵이라도 하시는 거지 다른 님들은 택도 없다고 함!

- 제가 듣기로 구운몽님은 거의 1대 1이 가능하다던데요? 나머지 팀원들은 구운

몽님 보조 정도만 하고.

- 저도 아는 분에게 들은 건데여. 구운몽님은 이미 체력도 한계까지 올렸구 방어

구가 올 9 셋이래여!

- 우와 풀 10셋?! 대박! 완전 대박!

“아니, 바로 위에서 9셋인데 왜 밑에서는 10으로 올라가?”

소문이라는 건 확실히 퍼지면서 점점 과장되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의 플레지는 한계 체력이 존재하기는 했다. 1,000이라는 수치였는데 현재의

내 체력은 626이었다. 그러니까 최대치에 도달했다는 말은 근거 없는 낭설이다.

‘방어구가 올 9셋이라는 것도 공갈이고.’

8셋이다. 물론 10셋으로 올라가는 것이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아직은 생각

이 없었다. 이유는 현재의 전반적인 수준이 모든 방어구가 +6강화된 되어도 ‘초고

수’로 칭송되는 것에서 기인한다.

이 마당에 +9강화, +10강화로 도배를 해버린다면 부러움을 넘어서서 박탈감을 안

겨주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별별 이야기가 다 나오네. 이거 진짜 재밌어.”

이 소문이라는 건 참 한없이 부풀려지나보다.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구운몽은 신격화의 캐릭터로 재탄생 중이었다.

- 켄헬 서버는 가끔 구운몽님이 GM이랑 붙어서 대결도 한다더라구요. 근데 영자

도 쉽게 상대 못하나봐여.

- 허걱? 구운몽님이 그렇게 쎈데 영자님이 더 쎄여?

- 당연하져! 영자가 가진 무기가 타격치 200짜리래요.

- 세상에나! 그걸 맞고 버틴다니!!!???!

흥미로운 자극들만 증폭되면서 낭설에 낭설이 더해지니 이제는 사실이라고 할 만

한 부분도 보이지 않는 시점에 이르렀다.

본토행티켓이 언급해준 ‘켄헬의 용’이라는 칭호가 사실화 되어 모두에게 인식되

는 순간이었다.

< 운영자의 요청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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