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영자의 요청 >
하지만 이런 나조차도 핑곗거리가 없어서 어찌할 수 없는 아이템이 존재한다.
액세서리!
‘이 비싸고 예쁜 똥 덩어리들을 어떻게 하지?’
강화라도 되어야 증발시키는데 이것들은 그 강화 불가 장비들이라서 이게 불가
능하다. 때문에 누가 보면 한사발 욕을 퍼부을 행동인 쓰레기통에 넣어서 삭제시
키는 식으로 처리하는 중이었다.
이랬는데도 근력의 목걸이는 46개. 지력의 목걸이는 33개나 된다.
‘클래스 따위는 무시하고 몽땅 길드원 숫자에 맞게 분배하자. 엘프나 지력이나
근력을 끼게 하고 이래도 남는 것들은 전부 쓰레기통에 넣어야지.’
엘프들은 손해일 테지만 민첩의 목걸이가 등장하기 전이니 별 수 있으랴. 내가
아니라 개발사를 원망하라고 애도해줄 뿐이다.
이토록 정신 나간 짓들을 수시로 자행했음에도 내 인벤토리는 화려하기 그지없
었다.
나눠줄 장비를 마련한 것은 물론이고 내가 착용하는 장비 역시도 소폭 업그레
이드를 했다.
「+10 축복받은 싸울아비 장검」
「+8 면갑」
「+10 축복받은 엘프족 판금갑옷」
「+8 파워 건틀렛」
「+8 티셔츠」
「+8 보호 망토」
「+8 반사 방패」
「+8 부츠」
토탈 『Amor Class -65』
‘역시 나는 중용을 아는 사나이. 더 높일 수 있어도 자제하는 이 센스를 보시라.’
10검에 8셋!
물론 예전부터 골리앗의 검을 +10강화 해놓기는 했다만, 이건 9까지 안전강화
가 되는 장비라서 살짝 아쉬움이 있었다. 또한 드래곤 슬레이어는 방패를 착용할
수 없는 양손 무기이기 때문에 8셋의 느낌에는 미흡하다.
그래서 이 장비들이 의미 있는 것이다. 빠짐없이 부위별로 딱딱 들어차게 장착
한 결과이니까.
또한 오롯이 장비만으로는 -64방이 나와야 하지만 -65라는 숫자가 된 것은 드디
어 진행 된 50레벨 나이트 업데이트 덕분이었다.
1클래스 마법!
왕년에는 만렙이라 일컬어지던 50레벨.
이 수준에 도달하면 이제는 나이트 유저들도 1클래스의 마법을 배우고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신속하게 움직이는 엠씨 소프트라니! 이 회사가 이렇게 일을 열심
히 하는 곳이라는 것은 미래의 나로서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덕분에 나는 실드 마법을 통해서 방어력을 1추가할 수 있었다. 그렇게 -65라는
멋진 숫자에 도달했다. 도한 텔레포트 마법과 순간이동 조종반지의 조합을 통해서
순간이동 마법석을 쓰지 않고도 자체적으로 텔로포트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름하여 매직 나이트라 하겠다.
“여기에 레이드 팀의 나이들한테는 몽땅 +8축 싸울아비 장검을 돌렸고.”
+9도 가능은 하다만, 그래버리면 우리 불쌍한 올포원들이 더욱 애처롭게 된다.
나야 실제로도 업무로 바쁘다보니 게임 콘텐츠만 자체로 소비하는 편이다. 반면에
길드원들은 사냥은 물론이고 PK로 수시로 벌인다.
그때마다 적 길드원들이 무참하게 썰려나가서 의욕을 잃어버리면 심히 곤란하
다.
나름대로 밸런스를 조심하기 위해 이리 처신했다.
그런데 여기서 묘한 일이 발생했다. 지옥검과 구두룡검을 비롯한 레이드 팀의
나이트들이 +8 싸울아비 장검에 자꾸 강화를 시도한 것이다.
직접 8까지 만들면서 날려먹었다면 엄두도 내지 않았을 테지만, 나한테 딱 받고
‘1번만 시도하면 구운몽을 따라잡을 수 있어!’라며 축복받은 무기 강화석을 사용!
멋지게 날려먹고 트레이더스 포럼에 골드를 구매하여 나한테 재구매하는 웃긴
상황이 자주 발생했다.
‘하여간 부자들이라니까.’
안사락스 레이드 팀에게는 축복받은 싸울아비 장검을 특급 가격인 1,100만 골
드에 판매한다. 이 단가는 함께 사냥한 팀원들 11명에게 각각 100만 골드씩 분배
하고자 정한 단가였다.
이외에도 내 창고에는 +8의 일반 싸울아비 장검이 두 자루, +7이 네 자루, 수정
갑옷 +5짜리가 7개, +6이 3개, +7이 1개 등등 공장에서 상품을 찍어내듯이 양산
할 수 있는 아이템들과 현금 가치 600만원 짜리 투명 망토들로 가득하다.
이 모든 것은 비밀을 잘 유지할 수 있는 길드원들한테만 판매하고 마찬가지로
컨트롤 가능한 수준으로만 소량씩 시장에 판매하는 상태다.
진수랑 성찬이가 골드 현금화가 너무 잘 돼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라니 할 말
다 한 셈!
이상이 기분이 찝찝하다가도 모니터만 보면 한량없이 뿌듯해지는 나의 플레지
속 자산 보유현황이었다.
‘이 만족감을 누가 이해할 수 있으리오!’
이건 십수년을 가난에 허덕이면서 플레이 한 올드 유저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
이다.
현금과는 다른 느낌!
성취감이면서도 추억의 향수마저 물씬 느껴지는 충족감!
“아~ 좋다!”
기분이 매우 상쾌하다.
*
“이것들아! 나님이 오셨다!”
와이셔츠 단추를 확 풀고 간석동의 사무실에 들어갔다.
한창 게임 중이던 진수와 성찬이가 킬킬 거리며 웃었다.
“이야~ 태식이~ 전에는 너무 뜸하더니 요즘은 엄청나게 자주 온다? 보름동안
매일 오다니?”
“잘 나가는 회사의 대표님이 이렇게 퇴근을 일찍 해도 되는 거냐?”
안사락스 레이드를 성공하고 오늘로 16일째.
그간 매일같이 안사락스를 사냥하고자 시간을 칼같이 맞췄다. 그러다보니 정확
하게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는 직장인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건 누이 좋
고 매부 좋은 일이었다.
“짜샤. 우리 회사가 이래서 신의 직장이라는 거다.”
“하긴. 짱짱하게 잘 나가기는 하더라.”
뉴 온라인의 성공!
무려 회원 가입자 300만 명에 최대 동시접속자 13만을 자랑하는 게임이다. 당연
히 진수랑 성찬이도 뉴 온라인에 진출하여 자판기를 운영 중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솜털만큼도 알려주거나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주지 않았다. 예
측이라는 핑계로 설명할 수 있는 플레지와는 다르게 뉴 온라인은 빼도 박도 못하
고 내부정보 거래가 되어서다.
그랬는데도 쏠쏠하게 수익을 내는 것을 보면 녀석들도 제법 장사를 할 줄 알게
된 건 틀림없었다. 나한테 ‘너님 빼면 우리도 장사의 신이라 불린다!’라고 우스개
를 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거기서 끝이 아니야. 내가 열심히 이렇게 퇴근하는 것은 모두가 직원들의 복지
를 위해서다.”
“뭔 개소리냐?”
“생각해봐. 대표님이 엉덩이 붙이고 비타민음료 들고 다니면서 ‘힘들지? 자네가
우리 회사의 미래일세.’라면서 응원해주면 어떤 직원이 퇴근할 수 있겠어? 나부터
‘먼저 간다!’라고 해주니까 직원들도 따박따박 퇴근할 수 있는 거라고.”
보장된 출근과 퇴근.
이로 말미암은 여가가 있는 삶!
이 기본을 지키는 회사가 미래에도 드문 편인데, 나는 선진적으로 실천하는 셈
이었다. 덕분에 넷젠은 게임 개발과 관련된 모든 쥐업 준비생들에게 꿈의 직장이
라고 소문이 자자했다.
반면, 게이머스 포럼은 그렇게까지 선망 받지는 못했다. 매일 같이 매출이 늘어
나고 큰 성장을 이루는 회사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그 전신인 트레이더스 포럼
을 언론이 하도 신랄하게 비난하면서 나쁜 이미지를 많이 가졌다.
이 때문에 게이머스 포럼 역시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편견의 대상이 되어서
좋은 직장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지 못한 상태였다. 들어와서 생활해보면 전혀 다르
지만 말이다.
‘가만히 보면 이 칼 퇴근이라는 것을 자랑스러워 하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지.’
이건 당연해야 정상이다.
정시에 출근하고 퇴근하는 것은 결코 복지가 아니다.
돈을 받는 만큼 일한다.
돈을 준만큼 일을 시킨다.
단순하면서도 합리적인 계산법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에 ‘가족 같은 회사’라 하며 ‘내 일처럼 여기세요!’라는 소명의식을
부여하면 착취를 하게 된다.
가족같이 배려해하고 보듬어주지는 않으면서 어지간한 일은 ‘우리끼리 왜 이
래?’하며 퉁 치는 거다. 일개 직원이었던 나는 이 점이 싫어서 우리 회사에는 철저
하게 상식적인 사고방식을 적용했다.
그 결과 24시간 쉬프트 근무제를 실시하였다.
게임 운영은 24시간 내내 진행된다. 운영팀 뿐만 아니라 서버관리 등등의 관련
직원들이 24시간 배치되어야 원활하게 돌아간다.
때문에 8시간씩 하루 3교대를 하는 근무제를 시행 중이다.
‘원래는 당직 개념의 방식으로 만들려고 했었는데.’
자체 설문을 돌려보니 은근히 3교대를 하고 싶어해서 이리 정했다. 내가 공장에
서 일할 때의 기억으로는 교대 근무가 정말 싫었었는데, 현재의 직원들은 나랑은
성향이 다른가보다.
아무튼 모두가 3교대를 원하고 실제로도 무진장 만족하는 중이니 이를 수렴할
따름이었다.
“알았다. 너님 똥 무진장 굵으시다!”
“더러운 새끼 같으니.”
낄낄 웃고는 컴퓨터 자리에 앉았다.
“그나저나 어때? 자판기는 잘 돌아 가냐?”
물음에 진수와 성찬이가 주거니 받거니 하며 대답했다.
“뉴 온라인? 잘 돌아가지. 그런데 수익성은 플레지만 못해.”
“너님 게임은 자체에서 자동판매 시스템을 지원해 주잖아. 그래서 영업 자체는
편한데, 경쟁자가 졸라 많아서 수익은 그닥이야. 역시 돈은 플레지가 짱이다.”
본래 펼쳐졌어야 할 암울했던 뉴 온라인은 ‘자동사냥 게임’이었다. 켜놓고 구경
하는 식으로나마 연명하게 만들었고 그렇게 현금 거래와 게임의 수명을 연장시키
는 식으로 운영했었다.
반면에 지금의 뉴 온라인은 자동사냥 기능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자동 판매 기능은 내가 직접 추진하여 넣은 상태다.
‘이건 편의성이거든.’
사람마다 다른 게임에 대한 가치관의 문제에 속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자동
시스템으료 용인하는 최대치를 자판기로 본다. 이는 게임 내에 존재하는 아이템의
차익으로만 이익을 낼 뿐 절대로 게임 내에 존재하지 않는 아이템을 생성해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 탓에 진수랑 성찬이가 이익을 덜 보고는 있는 편이지만.
‘이게 맞아.’
억울하면 플레지 개발사도 따라하라고 해라.
물론 그들은 그러지 못할 것이다.
“태식아. 뉴 온라인 매출액은 지금까지 얼마나 되냐?”
“40억 조금 못 미치지.”
“···헐! 출시 첫 달 만에 40억이라고?”
“그렇지.”
“진짜 ‘억’ 소리가 절로 나오네.”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니 녀석들이 기함했다.
“우리는 지금 한 달에 천만 원 조금 넘게 번다고 ‘대박!’ 이러는데···”
“여기는 무슨 이야기 하는 단위가 완전 클래스가 다르구나?”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다. 아무렴 게임 운영과 게임 속의 재화를 거래하며 이익
을 챙기는 것을 비교하겠는가. 게다가 이 녀석들은 아직도 모른다.
순이익이 아니라 매출이다.
“정신 차려라. 월 매출이 40억이라고 40억이 다 내 거겠냐? 직원들 월급 주고 세
금 내고 회사 자본을 늘려서 회사 가치도 올려야 하는 등 뺄 거 다 빼면 그렇게 큰
돈도 아니야. 사업이 그렇게 간단한 숫자놀음으로 되는 게 아니라고.”
“그래도 억 단위잖아?”
“그야 그렇지.”
“···에이 왕 싸가지 사장놈아!”
“하여간 부자들이 맨날 돈 없다고 저러지!”
“인텔리하게 CEO라 하거라.”
“즐!”
“한국어를 사랑하자!”
뭐 그다지 의미가 있지는 않지만, CEO라는 단어가 한국에 유행처럼 번지면서 정
착한 시기는 2003년 봄부터다. 그 이전에는 언론에서나 가끔 괄호치고 넣는 수준
이었기에 일반인들은 거의 사용하지 않던 단어다.
“알았으니까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오늘도 안사락스나 잡자.”
“그래. 세뱃돈 맨날 주는 우리 용 지갑 털어봐야지~”
“오늘도 돈이나 법시다~”
막 부팅을 마친 컴퓨터를 통해서 플레지에 접속했다.
바로 그때였다.
들어가기 무섭게 즉각 메시지가 날아왔다.
- →[귓속말] GM켄헬 : 구운몽님. 기다렸습니다. 지금 소환할 예정인데 괜찮으십
니까?
훅 들어와서 바로 본론을 꺼내는 운영자.
괜스레 진수와 성찬이가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다물었다. 긴장한 모습이다.
반면에 나는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얘네들이 이렇게 예우를 갖춰주다니. 별 일이 다 있네.’
내가 알기로 플레지의 운영자는 일단 소환하고 그다음부터 대화를 진행한다. 그
런데 의사를 정중하게 물어보니 썩 괜찮은 기분이었다.
‘할 말이야 당연히 안사락스일 테고.’
거절할 이유가 없고 그래서도 곤란하다.
- →[귓속말] 구운몽 : 괜찮습니다.
승낙사인.
내 귓속말이 채팅창에 올라가기가 구운몽 캐릭터가 강제로 텔레포트 했다. 이후
플레지 상에서 듣도 보도 못한 공간으로 소환되었다.
- GM켄헬 : 이렇게 갑작스레 소환을 요청한 점은 사과드리겠습니다.
- 구운몽 : 괜찮습니다. 무슨 일이시죠?
- GM켄헬 : 최근에 안사락스를 꾸준히 사냥하셨던 기록이 있으셔서요.
역시, 첫 드래곤 슬레이어 팀이 경험했던 그것이었다.
솔직히 한 달은 지나서 올 줄 알았는데, 요즘 개발사가 열심히 일하는 분위기라
서일까.
보름은 확실히 내 예상보다 빠른 시점이었다.
< 운영자의 요청 > 끝